24 張儀既出, 未去, 聞蘇秦死, 乃說楚王曰: "秦地半天下, 兵敵四國, 被險帶河, 四塞以爲固. 虎賁之士百餘萬, 車千乘, 騎萬匹, 積粟如丘山. 法令既明, 士卒安難樂死, 主明以嚴, 將智以武, 雖無出甲, 席卷常山之險, 必折天下之脊, 天下有後服者先亡. 且夫爲從者, 無以異於驅群羊而攻猛虎, 虎之與羊不格明矣. 今王不與猛虎而與群羊, 臣竊以爲大王之計過也.
24 장의가 이미 <옥에서> 나와서(張儀既出), 아직 떠나지 않았는데(未去), 소진의 죽음을 듣고(聞蘇秦死), 이에(乃) 초왕을 설득하여 말하길(說楚王曰): "진나라의 땅은(秦地) 천하의 반이고(半天下), 병사는(兵) 네 나라와 맞먹고(敵四國), 험산 산으로 둘러싸이고(被險) 강을 띠처럼 둘러(帶河), 사방이 막혀서(四塞以) 견고합니다(爲固). 호랑이처럼 날랜 병사가(虎賁之士) 백만이고(百餘萬), 전차가 천 승이고(車千乘), 기마가 만 필이고(騎萬匹), 쌓아둔 식량은 산과 같습니다(積粟如丘山). 법령이 이미 명확하고(法令既明), 병사들은(士卒) 어려운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安難) 죽음을 즐거워하며(樂死), 임금이(主) 밝고 엄하며(明以嚴), 장수는(將) 지혜롭고 싸움을 잘해서(智以武), 비록(雖) 병사를 내보내는 일이 없더라도(無出甲), 상산의 험한 요새를 석권하여(席卷常山之險), 반드시(必) 반드시 천하의 등뼈를 꺾을 수 있고(折天下之脊), 천하에(天下) 나중에 복종하는 사람이 있으면(有後服者) 먼저 망할 것입니다(先亡). 또(且) 저(夫) 합종을 하는 사람들은(爲從者), 양 떼를 몰아서(驅群羊而) 사나운 호랑이를 공격하는 것과(於攻猛虎) 다르지 않고(無以異), 호랑이와 양이(虎之與羊) 대적할 수 없는 것이(不格) 명백합니다(明矣). 지금(今) 왕께서(王) 사나운 호랑이와 함께 하지 않고(不與猛虎而) 양 떼와 함께 한다면(與群羊), 신은(臣) 마음속으로(竊) 대왕의 계책이 잘못되었다고 여길 것입니다(以爲大王之計過也).
* 虎賁(호분): ‘매우 날래다.’는 뜻으로, 천자(天子)를 호위(護衛)하는 군사(軍事)나 용사(勇士)를 이르는 말.
25 凡天下彊國, 非秦而楚, 非楚而秦, 兩國交爭, 其勢不兩立. 大王不與秦, 秦下甲據宜陽, 韓之上地不通. 下河東, 取成皋, 韓必入臣, 梁則從風而動. 秦攻楚之西, 韓·梁攻其北, 社稷安得毋危?
25 무릇(凡) 천하의 강국은(天下彊國), 진나라 아니면(非秦而) 초나라이고(楚), 초나라 아니면(非楚而) 진나라이니(秦), 두 나라가 서로 싸우면(兩國交爭), 그 형세가(其勢) 함께 설 수 없습니다(不兩立). 대왕께서(大王) 진나라와 함께 하지 않으면(不與秦), 진나라가(秦) 군사를 내려보내(下甲) 의양을 점거하고(據宜陽), 한나라의 상지는(韓之上地)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不通). 하동으로 내려와(下河東), 성고를 빼앗으면(取成皋), 한나라는(韓) 반드시(必) 들어와 신하가 될 것이고(入臣), 양나라는(梁則) 바람(형세)을 따라(從風而) 움직일 것입니다(動). 진나라가(秦) 초나라의 서쪽을 공격하고(攻楚之西), 한나라와 양나라가(韓·梁) 그 북쪽을 공격한다면(攻其北), 사직이(社稷) 어찌(安) 위태로움이 없겠습니까(得毋危)?
26 且夫從者聚群弱而攻至彊, 不料敵而輕戰, 國貧而數舉兵, 危亡之術也. 臣聞之, 兵不如者勿與挑戰, 粟不如者勿與持久. 夫從人飾辯虛辭, 高主之節, 言其利不言其害, 卒有秦禍, 無及爲已. 是故願大王之孰計之.
26 또(且) 저(夫) 합종을 하는 사람들은(從者) 약한 나라를 모아서(聚群弱而) 지극히 강한 나라를 공격하는데(攻至彊), 적을 헤아리지 않고(不料敵而) 가벼이 싸우고(輕戰), 나라가 가난한데도(國貧而) 자주(數) 병사를 일으키는 것은(舉兵), 위험하고 망하는 술책입니다(危亡之術也). 신이 듣건대(臣聞之), 병사가 같지 않으면(兵不如者) 더불어 싸우지 말고(勿與挑戰), 식량이 같지 않으면(粟不如者) 더불어 오래 싸우지 말라고(勿與持久) 했습니다. 무릇(夫) 합종을 주장하는 자들은(從人) 말을 꾸미고(飾辯) 허황되게 말하고(虛辭), 임금의 절개를 높이 사고(高主之節), 그 이로운 것을 말하고(言其利) 그 해로운 것을 말하지 않으니(不言其害), 결국(卒) 진나라<가 공격하는> 재앙이 있더라도(有秦禍), 할 것이 없습니다(無及爲已). 이 때문에(是故) 원컨대(願) 대왕께서는(大王之)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孰計之).
27 秦西有巴蜀, 大船積粟, 起於汶山, 浮江已下, 至楚三千餘里. 舫船載卒, 一舫載五十人與三月之食, 下水而浮, 一日行三百餘里, 里數雖多, 然而不費牛馬之力, 不至十日而距扜關. 扜關驚, 則從境以東盡城守矣, 黔中·巫郡非王之有. 秦舉甲出武關, 南面而伐, 則北地絕. 秦兵之攻楚也, 危難在三月之內, 而楚待諸侯之救, 在半歲之外, 此其勢不相及也. 夫(待)[恃]弱國之救, 忘彊秦之禍, 此臣所以爲大王患也.
27 진나라 서쪽에(秦西) 파촉이 있고(有巴蜀), 큰 배가 곡식을 싣고(大船積粟), 문산에서 일어나(起於汶山), 강을 떠서 내려오면(浮江已下), 초나라에 이르는 것이(至楚) 3000여 리가 됩니다(三千餘里). 배가(舫船) 병사를 싣는데(載卒), 한 척에(一舫) 50 명과 3개월치 식량을 싣고(載五十人與三月之食, 下水而浮), 하루에(一日) 300여 리를 가니(行三百餘里), 리수가(里數) 비록 많지만(雖多), 그렇지만(然而) 우마의 힘을 쓰지 않고(不費牛馬之力), 십일이 되지 않아서(不至十日而) 간관에 도착합니다(距扜關). 간관이 놀라면(扜關驚, 則) 국경을 따라서(從境以) 동쪽의 모든 성이(東盡城) 지켜야 하니(守矣), 검중과 무군은(黔中·巫郡) 왕의 소유가 아닐 것입니다(非王之有). 진나라가(秦) 군대를 일으켜(舉甲) 무관을 나서고(出武關), 남쪽으로 향하여(南面而) 친다면(伐, 則) 북쪽 땅은 고립될 것입니다(北地絕). 진나라 군대가(秦兵之) 초나라를 공격하면(攻楚也), 위난은(危難) 석 달 안에 있는데(在三月之內, 而) 초나라가(楚) 제후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은(待諸侯之救), 반년 바깥에 있으니(在半歲之外), 이것은(此) 그 세력이(其勢) 서로 미치지 못합니다(不相及也). 무릇(夫) 약한 나라의 도움을 기다리면서((待)[恃]弱國之救), 강한 진나라의 재앙을 잊는 것(忘彊秦之禍), 이것이(此) 신이 대왕을 위해 걱정하는 것입니다(臣所以爲大王患也).
28 大王嘗與吳人戰, 五戰而三勝, 陣卒盡矣; 偏守新城, 存民苦矣. 臣聞功大者易危, 而民敝者怨上. 夫守易危之功而逆彊秦之心, 臣竊爲大王危之.
28 대왕께서(大王) 일찍이(嘗) 오나라와 싸웠는데(與吳人戰), 다섯 번 싸워서(五戰而) 세 번 이기고(三勝), 진을 친 병사가(陣卒) 모두 없어졌고(盡矣); 구석의(偏) 신성을 지키는 것에(守新城), 백성의 고통만 남았습니다(存民苦矣). 신이 듣건대(臣聞) 공이 큰 것은(功大者) 쉽게 위험해지고(易危, 而) 백성이 피폐해지는 것은(民敝者) 윗사람을 원망합니다(怨上). 무릇(夫) 쉽게 위험에 빠지는 공을(易危之功) 지키면서(守而) 강한 진나라의 마음을 거스르는 것이(逆彊秦之心), 신이 생각건대(臣竊) 대왕을 위하여(爲大王) 위험합니다(危之).
29 且夫秦之所以不出兵函谷十五年以攻齊·趙者, 陰謀有合天下之心. 楚嘗與秦構難, 戰於漢中, 楚人不勝, 列侯執珪死者七十餘人, 遂亡漢中. 楚王大怒, 興兵襲秦, 戰於藍田. 此所謂兩虎相搏者也. 夫秦楚相敝而韓魏以全制其後, 計無危於此者矣. 願大王孰計之.
29 또(且) 저(夫) 진나라가(秦之) 15년 동안(十五年) 함곡관을 나서서(出兵函谷以) 제나라와 조나라를 공격하지 않은(不攻齊·趙) 까닭은(所以 者), 은밀하게 모의함에(陰謀) 천하를 합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有合天下之心). 초나라가(楚) 일찍이(嘗) 진나라와(與秦) 어려움에 얽혀(構難), 한중에서 싸웠는데(戰於漢中), 초나라가 이기지 못하고(楚人不勝), 열후와(列侯) 집규 중에(執珪) 죽은 사람이(死者) 7 0여 명입니다(七十餘人), 마침내(遂) 한중을 잃었습니다(亡漢中). 초왕이(楚王) 크게 화내어(大怒), 병사를 일으켜(興兵) 진나라를 습격해서(襲秦), 남전에서 싸웠습니다(戰於藍田). 이것이(此) 이른바(所謂) 두 호랑이가(兩虎)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相搏者也). 무릇(夫) 진나라와 초나라가(秦楚) 서로 피폐해져서(相敝而) 한나라와 위나라가(韓魏) 온전하게(以全) 그 뒤를 제압하면(制其後), 계책에(計) 이보다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無危於此者矣). 원컨대(願) 대왕께서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大王孰計之).
30 秦下甲攻衛陽晉, 必大關天下之匈. 大王悉起兵以攻宋, 不至數月而宋可舉, 舉宋而東指, 則泗上十二諸侯盡王之有也.
30 진나라가 병사를 내려보내(秦下甲) 위나라 양진을 공격하면(攻衛陽晉), 반드시(必) 천하의 가슴에(天下之匈) 크게 빗장을 거는 것입니다(大關). 대왕께서(大王) 병사를 다 일으켜(悉起兵以) 송나라를 공격하면(攻宋), 몇 달이 지나지 않아(不至數月而) 송나라를 빼앗을 수 있고(宋可舉), 송나라를 빼앗고(舉宋而) 동으로 가면(東指, 則) 사수 주변 12 제후가(泗上十二諸侯) 모두(盡) 왕의 차지가 됩니다(王之有也).
31 凡天下而以信約從親相堅者蘇秦, 封武安君, 相燕, 即陰與燕王謀伐破齊而分其地; 乃詳有罪出走入齊, 齊王因受而相之; 居二年而覺, 齊王大怒, 車裂蘇秦於市. 夫以一詐偽之蘇秦, 而欲經營天下, 混一諸侯, 其不可成亦明矣.
31 무릇(凡) 천하가(天下而) 합종을 약속해서(以信約從親) 서로 굳게 하자고 한 사람은(相堅者) 소진이고(蘇秦), 무안군에 봉해져(封武安君), 연나라에서 재상이 되자(相燕), 곧(即) 은밀하게(陰) 연왕과 모의하여(與燕王謀) 제나라를 치고(伐破齊而) 그 땅을 나누었고(分其地); 이에(乃) 거짓으로(詳) 죄가 있는 것처럼 하고(有罪) 달아나(出走) 제나라에 들어가서(入齊), 제나라 왕이(齊王) 인하여 받아들여(因受而) 재상으로 삼았고(相之); 2년을 머물다가(居二年而) 깨달아서(覺), 제왕이 크게 화내어(齊王大怒), 시전에서(於市) 소진을 거열형에 처했습니다(車裂蘇秦). 무릇(夫) 사기꾼인 소진으로(以一詐偽之蘇秦, 而) 천하를 경영하여(欲經營天下), 제후를 하나로 합치는 것은(混一諸侯), 그것이(其)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不可成) 또한(亦) 분명합니다(明矣).
32 今秦與楚接境壤界, 固形親之國也. 大王誠能聽臣, 臣請使秦太子入質於楚, 楚太子入質於秦, 請以秦女爲大王箕帚之妾, 效萬室之都以爲湯沐之邑, 長爲昆弟之國, 終身無相攻伐. 臣以爲計無便於此者."
32 지금(今) 진나라와 초나라가(秦與楚) 경계를 땅의 경계를 접하고 있어(接境壤界), 진실로(固) 형체가 친한 나라입니다(形親之國也). 대왕께서(大王) 진실로(誠) 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能聽臣), 신이 청컨대(臣請) 진나라 태자로 하여금(使秦太子) 초나라에 인질로 오게 하고(入質於楚), 초나라 태자가(楚太子) 진나라에 인질로 들어가며(入質於秦), 청컨대(請) 진나라 왕년를(以秦女) 대왕의 시첩으로 삼고(爲大王箕帚之妾), 만 호의 도읍을 바쳐(效萬室之都以) 탕목읍으로 삼아서(爲湯沐之邑), 오래도록(長) 형제의 나라가 되어(爲昆弟之國), 종신토록(終身) 서로 침공함이 없을 것입니다(無相攻伐). 신이(臣) 계책을 생각한 것 중에(以爲計) 이것보다 편한 것이 없습니다(無便於此者)."라고 했다.
* 湯沐之邑(탕목지읍): 제왕이 다스리던 땅을 제후에게 하사하고 필요한 비용을 쓰도록 하던 땅인데, 나중에는 황후, 공주 등의 개인 소유 토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탕목'은 목욕이나 할 정도로 수입이 적은 땅'이란 뜻이다.
33 於是楚王已得張儀而重出黔中地與秦, 欲許之. 屈原曰: "前大王見欺於張儀, 張儀至, 臣以爲大王烹之; 今縱弗忍殺之, 又聽其邪說, 不可." 懷王曰: "許儀而得黔中, 美利也. 後而倍之, 不可." 故卒許張儀, 與秦親.
33 이에(於是) 초왕이(楚王) 이미(已) 장의를 얻었고(得張儀而) 검중의 땅을 내어(出黔中地) 진나라에 주는 것을(與秦) 무겁게(아깝게) 여겨(重), 허락하려고 했다(欲許之).
굴원인 말하길(屈原曰): "전날(前) 대왕께서(大王) 장의에게 속임을 당했고(見欺於張儀), 장의가 오면(張儀至), 신은(臣) 대왕께서 그를 삶아 죽일 것이라고(大王烹之) 여겼는데(以爲); 지금(今)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더라도(縱弗忍殺之), 또(又) 그의 사악한 말을 따르는 것은(聽其邪說), 옳지 않습니다(不可)."라고 했다.
회왕이 말하길(懷王曰): "장의를 용서하고(許儀而) 검중을 얻는 것은(得黔中), 이득이다(美利也). 뒤에(後而) 배신하는 것은(倍之), 안된다(不可)."라고 했다.
그러므로(故) 마침내(卒) 장의를 용서하고(許張儀), 진나라와 친교를 맺었다(與秦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