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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백이열전(伯夷列傳) (1/2)] 백이와 숙제는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by प्रज्ञा 2023.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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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죽군의 두 아들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가 망한 뒤에도 은나라에 대한 충성을 버릴 수 없다고 하여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 굶어 죽었다고 한다. 공자는 백이와 숙제가 원망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사마천은 정말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夫學者載籍極博, 猶考信於六藝. 詩書雖缺, 然虞夏之文可知也. 

무릇(夫) 학자들의(學者) 서책은(載籍) 지극히 방대하지만(極博), 오히려(猶) 살펴보면(考) 육예를 믿을 수 있다(信於六藝). 시경과 서경이(詩書) 비록(雖) 없어진 것도 있지만(缺), 그러나(然) 우나라와 하나라의 글을(虞夏之文) 알 수 있다(可知也). 

 

* 載籍(재적), 書冊(서책): 여러 문서(文書)를 묶어 놓은 책(冊).

 

堯將遜位, 讓於虞舜, 舜禹之閒, 岳牧咸薦, 乃試之於位, 典職數十年, 功用旣興, 然後授政. 示天下重器, 王者大統, 傳天下若斯之難也. 

요가 장차(堯將) 자리를 사양하고(遜位), 우순에게 양위하였고(讓於虞舜), 순과 우 사이에(舜禹之閒), 악목이 모두(岳牧咸) <우를> 추천했으므로(薦), 이에(乃) 자리에서(於位) 그를 시험하고(試之), 직무를 대행한 것이(典職) 수십 년이 지나(數十年), 공적이(功用) 이미 이루어지고 나서(旣興, 然後) 정권을 주었다(授政). 천하는 소중한 그릇이고(天下重器), 왕은(王者) 중요한 통치자이므로(大統), 천하를 전하는 것이(傳天下) 이와 같이(若斯之) 어려운 것을(難) 보인 것이다(也). 

 

* 岳牧(악목): 岳(악)은 '사악四嶽'으로 요순시대 사방 제후의 우두머리를 뜻하고, '牧(목)'은 12주의 목으로 각 주의 행정 장관을 뜻한다. 후세의 공경(公卿), 제후(諸侯)에 해당한다.

* 功用(공용), 功效(공효): 공을 들인 보람, 공적.

 

而說者曰堯讓天下於許由, 許由不受, 恥之逃隱. 及夏之時, 有卞隨·務光者. 此何以稱焉? 

그러나(而) 말하는 사람은(說者) 요가(曰堯) 허유에게(於許由) 천하를 양보했는데(讓天下), 허유가 받지 않고(許由不受), 그것을 부끄러워하여(恥之) 도망가 숨었다(逃隱). 하나라에 이르러(及夏之時), 변수와 무광 같은 사람이 있었다(有卞隨·務光者). 이들이(此) 무엇 때문에(何以) 칭송받을까(稱焉)? 

 

* 許由(허유): ″기산(箕山)에 은거했던 허유는 어질고 지혜롭기로 명성이 높아서 요임금이 구주(九州)를 맡아달라고 청해왔다. 허유는 이를 거절하고 안 듣느니만 못한 말을 들었다 하여 자기의 귀를 영수(潁水) 물에 씻었다고 한다.

* 卞隨(변수)·務光(무광): 장자에 나오는 일화로 탕임금이 걸왕을 정벌하고 변수에게 천하를 양보하자 주수에 빠져 죽었다. 탕임금이 다시 무광에게 천하를 넘겨주려고 하자 돌을 지고 여수에 몸을 던져 죽어버렸다.

 

太史公曰:余登箕山, 其上蓋有許由冢云. 孔子序列古之仁聖賢人, 如吳太伯·伯夷之倫詳矣. 余以所聞由·光義至高, 其文辭不少槪見, 何哉?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내가(余) 기산에 올랐는데(登箕山), 그 위에(其上) 아마도(蓋) 허유의 무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있었다(有許由冢云). 공자가(孔子) 옛 인자와 성인, 현인을 차례로 열거하면서(序列古之仁聖賢人), 오태백과 백이 같은 무리를(如吳太伯·伯夷之倫) 상세하게 설명했다(詳矣). 나는(余) 허유와 무광의 의리가 지고하다고(由·光義至高) 들은 것이 있는데(以所聞), 그 글(시경과 서경의 글)에서(其文辭) 조금의 개략적인 것을 볼 수 없으니(不少槪見), 어째서인가(何哉)? 

孔子曰: "伯夷·叔齊, 不念舊惡, 怨是用希." "求仁得仁, 又何怨乎?" 余悲伯夷之意, 睹軼詩可異焉. 其傳曰: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백이와 숙제는(伯夷·叔齊), 옛 잘못을(舊惡) 기억하지 않으니(不念), 원망이(怨) 이 때문에(是用) 거의 없었다(希)."라고 했고, "인을 구해서(求仁) 인을 얻었으니(得仁), 또(又) 무엇을 원망했겠는가(何怨乎)?"라고 했다. 나는(余) 백이의 뜻을 슬퍼했는데(悲伯夷之意), 없어진 시를 보면(睹軼詩) 다를 수 있다(可異焉). 그 전해오는 것에서 말하길(其傳曰):

伯夷·叔齊, 孤竹君之二子也. 父欲立叔齊, 及父卒, 叔齊讓伯夷. 伯夷曰: "父命也." 遂逃去. 叔齊亦不肯立而逃之. 國人立其中子. 於是伯夷·叔齊聞西伯昌善養老, 盍往歸焉. 及至, 西伯卒, 武王載木主, 號爲文王, 東伐紂.

백이와 숙제는(伯夷·叔齊), 고죽군의(孤竹君之) 두 아들이다(二子也). 아버지가(父) 숙제를 <군으로> 세우려고 했으나(欲立叔齊), 아버지가 죽자(及父卒), 숙제가(叔齊) 백이에게 양보했다(讓伯夷). 백이가 말하길(伯夷曰): "아버지의 명이다(父命也)."라고 하고, 마침내(遂) 달아나 버렸다(逃去). 숙제도 또한(叔齊亦) 오르려 하지 않고(不肯立而) 도망갔다(逃之). 나라 사람들이(國人) 그 중자를 세웠다(立其中子). 이에(於是) 백이와 숙제가(伯夷·叔齊) 서백인 창이(西伯昌)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듣었으니(善養老), 어찌(盍) 가서 의탁하지 않겠는가(往歸焉). <주나라에> 이르렀을 때(及至), 서백이 죽고(西伯卒), 무왕이(武王) 위패를 <수레에> 싣고(載木主), 호를(號) 문왕이라고 하며(爲文王), 동으로(東) 주왕을 치려고 했다(伐紂).

伯夷·叔齊叩馬而諫曰: "父死不葬, 爰及干戈, 可謂孝乎? 以臣弑君, 可謂仁乎?" 左右欲兵之. 太公曰: "此義人也."

백이와 숙제가(伯夷·叔齊) 말고삐를 잡아당기며(叩馬而) 간언하여 말하길(諫曰): "아버지가 죽었는데(父死) 장사 지내지 않고(不葬), 바로(爰) 전쟁에 이르는 것을(及干戈), 효라고 할 수 있을까요(可謂孝乎)? 신하로써(以臣) 군주를 죽이는 것을(弑君), 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可謂仁乎)?"라고 했다. 좌우 <신하들이> 그들을 베려고 했다(左右欲兵之). 태공이 말하길(太公曰): "이들은(此) 의로운 사람들이다(義人也)."라고 했다.

 

* 干戈(간과): 무기()의 총칭(), 싸움 또는 전쟁().

 

扶而去之. 武王已平殷亂, 天下宗周, 而伯夷·叔齊恥之, 義不食周粟, 隱於首陽山, 采薇而食之.

부축해서(扶而) 떠나도록 했다(去之). 무왕이(武王) 은나라의 어지러움을 평정하고 나서(已平殷亂), 천하가(天下) 주나라를 종주로 삼았고(宗周, 而) 백이와 숙제가(伯夷·叔齊)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恥之), 의롭게(義)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不食周粟), 수양산에 숨어들어(隱於首陽山), 고사리를 캐서(采薇而) 먹었다(食之).

 

及餓且死, 作歌. 其辭曰: "登彼西山兮, 采其薇矣.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適歸矣? 于嗟徂兮, 命之衰矣!" 遂餓死於首陽山.

굶어서 죽음에 이르러(及餓且死), 노래를 지었다(作歌). 그 가사에서 말하길(其辭曰): "저 서산에 올라(登彼西山兮), 고사리를 캤네(采其薇矣). 폭력으로(以暴) 폭력을 바꾸었는데(易暴兮), 그 잘못을 알지 못한다(不知其非矣). 신농, 우, 하나라가(神農·虞·夏) 홀연히 없어졌으니(忽焉沒兮), 내가(我) 어디로(安) 돌아갈까(適歸矣)? 아(于嗟) <죽음으로> 가는구나(徂兮), 명이 다했구나(命之衰矣)!"라고 했다. 마침내(遂) 수양산에서(於首陽山) 굶어 죽었다(餓死).

由此觀之, 怨邪非邪

이것으로 보면(由此觀之), 원망한 것인가(怨邪) <원망하지> 않은 것인가(非邪)? 

 

* 怨邪非邪: 문장의 구조는 선택 의문형으로 만들었지만 담긴 뜻은 '원망하지 않았겠는가'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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