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犀首者, 魏之陰晉人也, 名衍, 姓公孫氏. 與張儀不善.
55 서수는(犀首者), 위나라(魏之) 음진 사람으로(陰晉人也), 이름은 연이고(名衍), 성은 공손씨다(姓公孫氏). 장의와(與張儀) 사이가 좋지 않았다(不善).
56 張儀爲秦之魏, 魏王相張儀. 犀首弗利, 故令人謂韓公叔曰: "張儀已合秦魏矣, 其言曰'魏攻南陽, 秦攻三川'. 魏王所以貴張子者, 欲得韓地也. 且韓之南陽已舉矣, 子何不少委焉以爲衍功, 則秦魏之交可錯矣. 然則魏必圖秦而棄儀, 收韓而相衍." 公叔以爲便, 因委之犀首以爲功. 果相魏. 張儀去.
56 장의가(張儀) 진나라를 위해(爲秦) 위나라로 가자(之魏), 위왕이(魏王)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다(相張儀).
서수가(犀首) 이롭지 않다고 생각했고(弗利), 그러므로(故) 사람을 시켜(令人) 한공숙에게 말하길(謂韓公叔曰): "장의가(張儀) 이미(已) 진나라와 위나라를 합치도록 했고(合秦魏矣), 그가 말하길(其言曰) '위나라가(魏) 남양을 공격하고(攻南陽), 진나라가 삼천을 공격한다(秦攻三川)'라고 했습니다. 위왕이(魏王) 장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所以貴張子者), 한나라 땅을 얻으려 해서입니다(欲得韓地也). 또(且) 한나라의 남양은(韓之南陽) 이미(已)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진데(舉矣), 그대는(子) 어찌(何) 작은 것이라도 맡겨서(少委焉以) 공손연이 공을 세우도록 하지 않습니까(不爲衍功), 그러면(則) 진나라와 위나라의 교류를(秦魏之交) 어긋나게 할 수 있습니다(可錯矣). 그렇다면(然則) 위나라는(魏) 반드시(必) 진나라를 도모할 것이고(圖秦而) 장의를 버리고(棄儀), 한나라를 거두어(收韓而) 저를 재상으로 삼을 것입니다(相衍)."라고 했다.
공숙이(公叔) 이롭겠다고 여겨(以爲便), 이에(因) 그것(남양)을 서수에게 맡겨((委之犀首以) 공을 세우도록 했다(爲功). 과연(果) 위나라에서 재상이 되었다(相魏). 장의는 떠났다(張儀去).
57 義渠君朝於魏. 犀首聞張儀復相秦, 害之. 犀首乃謂義渠君曰: "道遠不得復過, 請謁事情." 曰: "中國無事, 秦得燒掇焚杅君之國;有事, 秦將輕使重幣事君之國." 其後五國伐秦. 會陳軫謂秦王曰: "義渠君者, 蠻夷之賢君也, 不如賂之以撫其志." 秦王曰: "善." 乃以文繡千純, 婦女百人遺義渠君. 義渠君致群臣而謀曰: "此公孫衍所謂邪?" 乃起兵襲秦, 大敗秦人李伯之下.
57 의거군이(義渠君) 위나라에 입조했다(朝於魏). 서수는(犀首) 장의가 다시 진나라에서 재상이 된 것을 듣고(聞張儀復相秦), 해롭다고 여겼다(害之).
서수가(犀首) 이에(乃) 의거군에게 일러 말하길(謂義渠君曰): "길이 멀어서(道遠) 다시 지나지 못할 것이니(不得復過), 청컨대(請) <우리> 사정을 말하겠습니다(謁事情)."라고 했다.
<의거군이> 말하길(曰): "중국에(中國) 일이 없으면(無事), 진나라는(秦) 임금의 나라를(君之國) 노략질하고 불사를 것이고(得燒掇焚杅); 일이 있으면(有事), 진나라가(秦) 서둘러(輕) 사신과 많은 폐물로(使重幣) 임금의 나라를 섬길 것입니다(將事君之國)."라고 했다.
그 후(其後) 다섯 나라가 진나라를 쳤다(五國伐秦).
마침(會) 진진이(陳軫) 진나라 왕에게 말하길(謂秦王曰): "의거군이(義渠君者), 오랑캐 가운데 현명한 군주이니(蠻夷之賢君也), 그에게 뇌물을 보내서(賂之以) 그 뜻을 어루만지는 것만 못합니다(不如撫其志)."라고 했다.
진왕이 말하길(秦王曰): "좋다(善)."라고 했다.
이에(乃以) 수놓은 비단 천 필과(文繡千純), 여인 100명을(婦女百人) 의거군에게 보냈다(遺義渠君).
의거군이(義渠君) 여러 신하를 이르게 해서(致群臣而) 상의하여 말하길(謀曰): "이것이(此) 공손연이 말한 것인가(公孫衍所謂邪)?"라고 했다. 이에(乃) 군대를 일으켜(起兵) 진나라를 습격하고(襲秦), 이백 아래에서(李伯之下) 진나라를 크게 무찔렀다(大敗秦人).
58 張儀已卒之後, 犀首入相秦. 嘗佩五國之相印, 爲約長.
58 장의가(張儀) 이미 죽은 뒤에(已卒之後), 서수가(犀首) 진나라에 들어가 재상이 되었다(入相秦). 일찍이(嘗) 다섯 나라 재상의 인수를 차고(佩五國之相印), 맹약의 우두머리가 되었다(爲約長).
59 太史公曰: 三晉多權變之士, 夫言從衡彊秦者大抵皆三晉之人也. 夫張儀之行事甚於蘇秦, 然世惡蘇秦者, 以其先死, 而儀振暴其短以扶其說, 成其衡道. 要之, 此兩人真傾危之士哉!
59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삼진에(三晉)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선비가 많았고(多權變之士), 무릇 합종과 연횡을 말해서(夫言從衡)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사람은(彊秦者) 모두(大抵皆) 삼진 사람이다(三晉之人也). 무릇(夫) 장의가(張儀之) 일을 행한 것은(行事) 소진보다 심했고(甚於蘇秦), 그러나(然) 세상 사람들이(世) 소진을 미워한 것은(惡蘇秦者),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이며(以其先死, 而) 장의가(儀振) 그 단점을 드러내서(暴其短以) 그 설을 받쳐주고(扶其說), 연횡의 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成其衡道). 요컨대(要之), 이 두 사람은(此兩人) 진실로(真) 나라를 기울게 한(傾) 위험한 선비가 아니겠는가(危之士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