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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71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茂列傳) 2/3] 남는 빛을 나누어도 빛은 줄지 않는다

by प्रज्ञा 202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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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甘茂者, 下蔡人也. 事下蔡史舉先生, 學百家之說. 因張儀·樗里子而求見秦惠王. 王見而說之, 使將, 而佐魏章略定漢中地. 

7 감무는(甘茂者), 하채 사람이다(下蔡人也). 하채의 사거선생을 모시고(事下蔡史舉先生), 백가의 설을 배웠다(學百家之說). 장의와 저리자를 의지해서(因張儀·樗里子而) 진 혜왕을 만날 것을 구했다(求見秦惠王). 왕이 만나고서(王見而) 기뻐하며(說之), 장수로 삼아(使將, 而) 위장을 도와(佐魏章) 한중 땅을 평정하도록 했다(略定漢中地). 


8 惠王卒, 武王立. 張儀·魏章去, 東之魏. 蜀侯煇·相壯反, 秦使甘茂定蜀. 還, 而以甘茂爲左丞相, 以樗里子爲右丞相. 

8 혜왕이 죽고(惠王卒), 무왕이 즉위했다(武王立). 장의와 위장이 떠나(張儀·魏章去), 동쪽(東) 위나라고 갔다(之魏). 촉후 휘와(蜀侯煇) 재상 전장이(相壯) 반란을 일으키자(反), 진나라가(秦) 감무로 하여금(使甘茂) 촉을 평정하도록 했다(定蜀). 돌아와서(還, 而以) 감무가 좌승상이 되었고(甘茂爲左丞相, 以) 저리자가 우승상이 되었다(樗里子爲右丞相). 


9 秦武王三年, 謂甘茂曰: "寡人欲容車通三川, 以窺周室, 而寡人死不朽矣." 甘茂曰: "請之魏, 約以伐韓, 而令向壽輔行." 甘茂至, 謂向壽曰: "子歸, 言之於王曰'魏聽臣矣, 然願王勿伐'. 事成, 盡以爲子功." 向壽歸, 以告王, 王迎甘茂於息壤. 甘茂至, 王問其故. 對曰: "宜陽, 大縣也, 上黨·南陽積之久矣. 名曰縣, 其實郡也. 今王倍數險, 行千里攻之, 難. 昔曾參之處費, 魯人有與曾參同姓名者殺人, 人告其母曰'曾參殺人', 其母織自若也. 頃之, 一人又告之曰'曾參殺人', 其母尚織自若也. 頃又一人告之曰'曾參殺人', 其母投杼下機, 踰墻而走. 夫以曾參之賢與其母信之也, 三人疑之, 其母懼焉. 今臣之賢不若曾參, 王之信臣又不如曾參之母信曾參也, 疑臣者非特三人, 臣恐大王之投杼也. 始張儀西并巴蜀之地, 北開西河之外, 南取上庸, 天下不以多張子而以賢先王. 魏文侯令樂羊將而攻中山, 三年而拔之. 樂羊返而論功, 文侯示之謗書一篋. 樂羊再拜稽首曰: '此非臣之功也, 主君之力也.' 今臣, 羈旅之臣也. 樗里子·公孫奭二人者挾韓而議之, 王必聽之, 是王欺魏王而臣受公仲侈之怨也." 王曰: "寡人不聽也, 請與子盟." 卒使丞相甘茂將兵伐宜陽. 五月而不拔, 樗里子·公孫奭果爭之. 武王召甘茂, 欲罷兵. 甘茂曰: "息壤在彼." 王曰: "有之." 因大悉起兵, 使甘茂擊之. 斬首六萬, 遂拔宜陽. 韓襄王使公仲侈入謝, 與秦平. 

9 진 무왕 3년(秦武王三年), 감무에게 말하길(謂甘茂曰): "과인이(寡人) 용거를 타고(容車) 삼천까지 가서(通三川, 以) 주실을 엿보고 싶은데(窺周室), 그렇다면(而) 과인이 죽더라도(寡人死) 썩지 않을 것이오(不朽矣)."라고 했다.

감무가 말하길(甘茂曰): "청컨대(請) 위나라에 가서(之魏), 한나라를 칠 것을 약속받을 테니(約以伐韓, 而) 상수로 하여금(令向壽) 행하는 것을 돕도록 해주십시오(輔行)."라고 했다.

감무가 <위나라에> 이르자(甘茂至), 상수에게 말하기(謂向壽曰): "그대는 돌아가서(子歸), 왕에게(於王) '위나라가(魏) 신의 말을 들었지만(聽臣矣, 然) 원컨대(願) 왕께서는(王) <한나라를> 공격하지 마십시오(勿伐)'라고 말하도록 해라(言之曰). 일이 성사되면(事成), 모두(盡) 그대의 공으로 여길 것이다(以爲子功)."라고 했다. 

상수가 돌아가(向壽歸), 왕에게 고하니(以告王), 왕이(王) 식양에서(於息壤) 감무를 마중했다(迎甘茂). 감무가 이르자(甘茂至), 왕이 그 까닭을 물었다(王問其故).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의양은(宜陽), 큰 고을이고(大縣也), 상당과 남양은(上黨·南陽) <물자를> 쌓아둔 것이 오래되었습니다(積之久矣). 이름이(名) 현이라고 하지만(曰縣), 그 실제는(其實) 군입니다(郡也). 지금(今) 왕께서(王) 수많은 험한 곳을 넘어(倍數險), 천리를 가서(行千里) 공격하는 것은(攻之), 어렵습니다(難). 옛날(昔) 증삼이 비에 머물 때(曾參之處費), 노나라에(魯人) 증삼과 같은 성과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有與曾參同姓名者) 사람을 죽였는데(殺人), 사람들이(人) 그 어머니에게 고하길(告其母曰)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曾參殺人)'라고 하니, 그 어머니가(其母) 베를 짜며 태연했습니다(織自若也). 얼마 지나지 않아(頃之), 한 사람이(一人) 또(又) 고하길(告之曰)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曾參殺人)'라고 하니, 그 어머니가(其母) 여전히(尚) 베를 짜며 태연했습니다(織自若也). 얼마 뒤 또(頃又) 한 사람이 고하길(一人告之曰)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曾參殺人)'라고 하니, 그 어머니가(其母) 북을 내던지며(投杼) 아래로 내려와서(下機), 담을 넘어 달아났습니다(踰墻而走). 무릇(夫) 증삼의 현명함을(以曾參之賢) 그 어머니가 믿었지만(與其母信之也), 세 사람이 의심하자(三人疑之), 그 어머니가(其母) 두려워했습니다(懼焉). 지금(今) 신의 현명함이(臣之賢) 증삼보다 못하고(不若曾參), 왕께서 신을 믿는 것이(王之信臣) 또한(又) 증삼의 어머니가(曾參之母) 증삼을 믿는 것보다(信曾參) 못한데(不如也), 신을 의심하는 사람은(疑臣者) 다만 세 사람이 아니고(非特三人), 신은(臣) 대왕이 북을 던질까 두렵습니다(恐大王之投杼也). 처음(始) 장의가(張儀) 서쪽으로(西) 파촉의 땅을 병합하고(并巴蜀之地), 북쪽으로(北) 하외의 땅을 넓히고(開西河之外), 남으로(南) 상용을 취해서(取上庸), 천하 사람들이(天下) 장의의 <공이> 많다고 여기지 않고(不以多張子而) 선왕을 현명하다고 여겼습니다(以賢先王). 위나라 문후가(魏文侯) 악양으로 하여금(令樂羊) 장수가 되어(將而) 중산을 공격하도록 하고(攻中山), 삼 년이 지났지만(三年而) 빼앗지 못했습니다(拔之). 악양이 돌아와(樂羊返而) 공적을 논할 때(論功), 문후가(文侯) 그에게(之) 헐뜯는 문서 한 상자를 보여주었습니다(謗書一篋). 악양이 재배하고(樂羊再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길(稽首曰): '이것은(此) 신의 공이 아니고(非臣之功也), 주군의 공입니다(主君之力也).'라고 했습니다. 지금(今) 신은(臣), 떠도는 신하입니다(羈旅之臣也). 저리자와 공손석(樗里子·公孫奭) 두 사람이(二人者) 한나라를 싸고돌려고(挾韓而) 의논하면(議之), 왕께서(王) 반드시(必) 들어줄 것이고(聽之), 이것은(是) 위나라 왕을 속이고(王欺魏王而) 신은(臣) 공중치의 원한을 받게 될 것입니다(受公仲侈之怨也)."라고 했다.

왕이 말하길(王曰): "과인이(寡人) 듣지 않을 것이니(不聽也), 청컨대(請) 그대와 맹세하겠다(與子盟)."라고 했다.

마침내(卒) 승상 감무로 하여금(使丞相甘茂) 군대를 이끌고(將兵) 의양을 치도록 했다(伐宜陽). 5개월이 지나도록(五月而) 빼앗지 못하자(不拔), 저리자와 공손석이(樗里子·公孫奭) 과연(果) 그것을 다퉜다(爭之). 무왕이(武王) 감무를 불러(召甘茂), 군대를 물리려고 했다(欲罷兵).

감무가 말하길(甘茂曰): "식양이(息壤) 저기 있습니다(在彼)."라고 했다.

왕이 말하길(王曰): "그런 것이(맹약한 일이) 있다(有之)."라고 했다.

이에(因) 크게 모든 군사를 일으켜(大悉起兵), 감무로 하여금(使甘茂) 공격하도록 했다(擊之). 6만 명의 머리를 베고(斬首六萬), 마침내(遂) 의양을 함락시켰다(拔宜陽). 한 양왕이(韓襄王) 공중치로 하여금(使公仲侈) 들어가 사죄하도록 하고(入謝), 진나라와 화친을 맺었다(與秦平). 

 

* 自若(자약): 큰 일을 당()하여도 아무렇지 않고 침착()함. 태연()함.

* 羈旅(가려): 객지()에 머묾. 또는 그런 나그네.


10 武王竟至周, 而卒於周. 其弟立, 爲昭王. 王母宣太后, 楚女也. 楚懷王怨前秦敗楚於丹陽而韓不救, 乃以兵圍韓雍氏. 韓使公仲侈告急於秦. 秦昭王新立, 太后楚人, 不肯救. 公仲因甘茂, 茂爲韓言於秦昭王曰: "公仲方有得秦救, 故敢捍楚也. 今雍氏圍, 秦師不下殽, 公仲且仰首而不朝, 公叔且以國南合於楚. 楚·韓爲一, 魏氏不敢不聽, 然則伐秦之形成矣. 不識坐而待伐孰與伐人之利?" 秦王曰: "善." 乃下師於殽以救韓. 楚兵去. 

10 무왕이(武王) 마침내(竟) 주나라에 이르렀지만(至周, 而) 주나라에서 죽었다(卒於周). 그 동생이 즉위하여(其弟立), 소왕이 되었다(爲昭王). 왕의 어머니(王母) 선태후는(宣太后), 초나라 여자다(楚女也). 초 회왕이(楚懷王) 전날(前) 진나라가 단양에서 초나라를 물리칠 때(秦敗楚於丹陽而) 한나라가 구원하지 않은 것을(韓不救) 원망하고(怨), 이에(乃) 군대로(以兵) 한나라 옹씨를 포위했다(圍韓雍氏). 한나라가(韓) 공중치로 하여금(使公仲侈) 진나라에 위급함을 알렸다(告急於秦). 진나라 소왕이(秦昭王) 새로 왕위에 올랐고(新立), 태후가 초나라 사람이어서(太后楚人), 즐거 구원하려 하지 않았다(不肯救).

공중치가(公仲) 감무에게 의지해서(因甘茂), 감무가(茂) 한나라를 위해(爲韓) 진나라 소왕에게 말하길(言於秦昭王曰): "공중치가(公仲) 막(方) 진나라의 구원을 얻음이 잇을 것이라고 여기고(有得秦救), 그러므로(故) 감히(敢) 초나라를 막았습니다(捍楚也). 지금(今) 옹씨가 포위되어(雍氏圍), 진나라 군대가(秦師) 효로 내려갈 수 없고(不下殽), 공중치가(公仲) 또(且) 머리를 들고(仰首而) 입조하지 않고(不朝), 공숙이(公叔 또(且) 나라를(以國) 남쪽으로(南) 초나라에 합칠 것입니다(合於楚). 초나라와 한나라가 하나가 되면(楚·韓爲一), 위씨가(魏氏) 감히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고(不敢不聽), 그렇다면(然則) 진나라를 치는(伐秦之) 형세가(形) 만들어질 것입니다(成矣). 알지 못하겠지만(不識) 앉아서(坐而) 쳐들오기를 기다리는 것과(待伐與) 남을 치는 것이(伐人之) 무엇이 더 유리할까요(利)?"라고 했다.

진왕이 말하길(秦王曰): "좋다(善)."라고 했다. 이에(乃) 군대를 효에 ㅂ내서(下師於殽以) 한나라를 구했다(救韓). 초나라 군대가 물러갔다(楚兵去). 


11 秦使向壽平宜陽, 而使樗里子·甘茂伐魏皮氏. 向壽者, 宣太后外族也, 而與昭王少相長, 故任用. 向壽如楚, 楚聞秦之貴向壽, 而厚事向壽. 向壽爲秦守宜陽, 將以伐韓. 韓公仲使蘇代謂向壽曰: "禽困覆車. 公破韓, 辱公仲, 公仲收國復事秦, 自以爲必可以封. 今公與楚解口地, 封小令尹以杜陽. 秦楚合, 復攻韓, 韓必亡. 韓亡, 公仲且躬率其私徒以閼於秦. 願公孰慮之也." 向壽曰: "吾合秦楚非以當韓也, 子爲壽謁之公仲, 曰秦韓之交可合也." 蘇代對曰: "願有謁於公. 人曰貴其所以貴者貴. 王之愛習公也, 不如公孫奭;其智能公也, 不如甘茂. 今二人者皆不得親於秦事, 而公獨與王主斷於國者何? 彼有以失之也. 公孫奭黨於韓, 而甘茂黨於魏, 故王不信也. 今秦楚爭彊而公黨於楚, 是與公孫奭·甘茂同道也, 公何以異之? 人皆言楚之善變也, 而公必亡之, 是自爲責也. 公不如與王謀其變也, 善韓以備楚, 如此則無患矣. 韓氏必先以國從公孫奭而後委國於甘茂. 韓, 公之讎也. 今公言善韓以備楚, 是外舉不僻讎也." 向壽曰: "然, 吾甚欲韓合." 對曰: "甘茂許公仲以武遂, 反宜陽之民, 今公徒收之, 甚難." 向壽曰: "然則奈何? 武遂終不可得也?" 對曰: "公奚不以秦爲韓求潁川於楚? 此韓之寄地也. 公求而得之, 是令行於楚而以其地德韓也. 公求而不得, 是韓楚之怨不解而交走秦也. 秦楚爭彊, 而公徐過楚以收韓, 此利於秦." 向壽曰: "柰何?" 對曰: "此善事也. 甘茂欲以魏取齊, 公孫奭欲以韓取齊. 今公取宜陽以爲功, 收楚韓以安之, 而誅齊魏之罪, 是以公孫奭·甘茂無事也." 

11 진나라가(秦) 상수로 하여금(使向壽) 의양을 평정하도록 하고(平宜陽, 而) 저리자와 감무로 하여금(使樗里子·甘茂) 위나라 피지를 치도록 했다(伐魏皮氏). 상수는(向壽者), 선태후의 외척이며(宣太后外族也, 而) 소왕과(與昭王) 어려서(少) 함께 자랐고(相長), 그러므로(故) 임용되었다(任用). 상수가(向壽) 초나라에 가자(如楚), 초왕이(楚) 진나라가 상수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듣고(聞秦之貴向壽, 而) 상수를 두텁게 모셨다(厚事向壽). 상수가(向壽) 진나라를 위해(爲秦) 의양을 지키고(守宜陽), 장차(將) 한나라를 치려고 했다(以伐韓). 한나라 공중치가(韓公仲) 소대로 하여금(使蘇代) 상수에게 말하도록 시키길(謂向壽曰): "짐승도 궁지에 몰리면(禽困) 수레를 뒤엎는다(覆車). 공이(公) 한나라를 깨뜨리고(破韓), 공중에게 모욕을 주면(辱公仲), 공중이(公仲) 나라를 들어(收國) 다시 진나라를 섬기고(復事秦), 스스로(自) 반드시(必) 봉토를 받으려고 할 것이다(以爲可以封). 지금(今) 공이(公) 초나라에(楚) 해구의 땅을 주고(解口地), 소영윤을 두양에 봉한 것이다(封小令尹以杜陽). 진나라와 초나라가 합쳐서(秦楚合), 다시 한나라를 공격하면(復攻韓), 한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韓必亡). 한나라가 망하면(韓亡), 공중이(公仲) 또(且) 몸소(躬) 그 사로운 무리를 이끌고서(率其私徒以) 진나라에 맞설 것이다(閼於秦). 원컨대(願) 공께서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公孰慮之也)."라고 했다.

상수가 말하길(向壽曰): "내가(吾) 진나라와 초나라를 합치려는 것은(合秦楚) 그것으로 한나라에 대적하려는 것이 아니고(非以當韓也), 그대가(子) 나를 위해(爲壽) 공중치에게 알려서(謁之公仲), 진나라와 한나라의 교류가(秦韓之交)화합할 수 있다고(可合也) 말해주시오(曰)."라고 했다.

소대가 대답하여 말하길(蘇代對曰): "원컨대(願) 공에게 알릴 것이 있습니다(有謁於公). 사람들이 말하길(人曰) 존귀한 것은(貴) 그 존귀하게 된 까닭을(其所以貴者) 소중하게 여깁니다(貴). 왕께서(王之) 아끼는 것이(愛習公也), 공손석보다 못하고(不如公孫奭); 그 지혜와 능력은(其智能) 공이(公也), 감무보다 못하다고 여깁니다(不如甘茂). 지금(今) 두 사람이(二人者) 모두(皆) 진나라를 섬기는 것을(於秦事) 직접 하지 못하고(不得親, 而) 공께서(公) 오직(獨) 왕과 함께(與王) 나라 일에 주로 결단하는 것이(主斷於國者) 어째서인가요(何)? 저들은(彼) <신뢰를> 잃은 것이 있어서입니다(有以失之也). 공손석은(公孫奭) 한나라에 무리가 있고(黨於韓, 而) 감무는(甘茂) 위나라에 무리가 있고(黨於魏), 그러므로(故) 왕이 믿지 않습니다(王不信也). 지금(今) 진나라와 초나라가(秦楚) 강함을 다투고(爭彊而) 공은(公) 초나라에 무리가 있으니(黨於楚), 이것은(是) 공손석, 감무와 더불어(與公孫奭·甘茂) 같은 길이니(同道也), 공이(公) 그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何以異之)? 사람들이(人) 모두(皆) 초나라가 잘 변절한다고 말하는데(言楚之善變也, 而) 공은(公) 반드시(必) 그렇지 않다고 하니(亡之), 이것은(是) 스스로(自) 책임질 일입니다(爲責也). 공께서(公) 왕과 함께(與王) 그 변덕을 대비할 것을 의논하고(謀其變也), 한나라와 잘 지내서(善韓以) 초나라를 대비하는 것만(備楚) 못하니(不如), 이와 같다면(如此則)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無患矣). 한나라는(韓氏) 반드시(必) 먼저(先) 나라를 들어(以國) 공손석을 따르고 나서(從公孫奭而後) 감무에게 나라를 맡겼습니다(委國於甘茂). 한나라는(韓), 공의 원수입니다(公之讎也). 지금(今) 공께서(公) 한나라와 잘 지내서 초나라를 대비한다면(善韓以備楚), 이것은(是) 밖에서 등용하는 것은(外舉) 원수라도 피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습니다(不僻讎也)."라고 했다.

상수가 말하길(向壽曰): "그렇다(然), 나는(吾) 한나라가 연합하기를(韓合) 매우 바란다(甚欲)."라고 했다.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감무는(甘茂) 공중치에게 무수를 돌려주고(許公仲以武遂), 의양의 백성을 돌려보내기로 했으니(反宜陽之民), 지금(今) 공의 무리가 그것을 얻는 것은(公徒收之), 매우 어렵습니다(甚難)."라고 했다.

상수가 말하길(向壽曰): "그렇다면(然則) 어찌해야 하는가(奈何)? 무수를(武遂) 끝내(終) 얻을 수 없는가(不可得也)?"라고 했다.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공은(公) 어찌(奚) 진나라로(以秦) 한나라를 위해(爲韓) 초나라에 영천을 요구하지 않습니까(求潁川於楚)? 이것은(此) 한나라가 맡긴 땅입니다(韓之寄地也). 공이 요구해서(公求而) 얻으면(得之), 이것은(是) <진나라의> 영이(令) 초나라에서 행해진 것이고(行於楚而) 그 땅으로(以其地) 한나라에 덕을 베풀 수 있습니다(德韓也). 공이 요구해서 얻지 못하면(公求而不得), 이것은(是) 한나라와 초나라의 원한이(韓楚之怨) 풀리지 않을 것이고(不解而) 서로(交) 진나라로 달려올 것입니다(走秦也). 진나라와 초나라가 강함을 다투고(秦楚爭彊, 而) 공이(公) 조용히(徐) 초나라를 나무라고(過楚以) 한나라를 거둔다면(收韓), 이것은(此) 진나라에 이익입니다(利於秦)."라고 했다.

상수가 말하길(向壽曰): "어찌해야 하는가(柰何)?"라고 했다.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이것이(此) 좋은 방법입니다(善事也). 감무가(甘茂) 위나라로 제나라를 취하려 하고(欲以魏取齊), 공손석이 한나라로 제나라를 치려고 합니다(公孫奭欲以韓取齊). 지금(今) 공께서(公) 의양을 빼앗아서(取宜陽以) 공을 세웠고(爲功), 초나라와 한나라를 얻어(收楚韓以) 안심시키고(安之, 而) 제나라와 위나라를 죄를 물으면(誅齊魏之罪), 이 때문에(是以) 공손석과 감무에게는(公孫奭·甘茂)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無事也)."라고 했다. 


12 甘茂竟言秦昭王, 以武遂復歸之韓. 向壽·公孫奭爭之, 不能得. 向壽·公孫奭由此怨, 讒甘茂. 茂懼, 輟伐魏蒲阪, 亡去. 樗里子與魏講, 罷兵. 

12 감무가 마침내(甘茂竟) 진 소왕에게 말해서(言秦昭王, 以) 무수를(武遂) 한나라에 돌려주었다(復歸之韓). 상수와 공손석이 다투었지만(向壽·公孫奭爭之), 할 수 없었다(不能得). 상수와 공손석이(向壽·公孫奭) 이것 때문에(由此) 원망하고(怨), 감무를 헐뜯었다(讒甘茂). 감무가 두려워해서(茂懼), 위나라 포판을 치는 것을 그만두고(輟伐魏蒲阪), 떠났다(亡去). 저리자가(樗里子) 위나라와 화친을 맺고(與魏講), 군대를 거두었다(罷兵). 


13 甘茂之亡秦奔齊, 逢蘇代. 代爲齊使於秦. 甘茂曰: "臣得罪於秦, 懼而遯逃, 無所容跡. 臣聞貧人女與富人女會績, 貧人女曰: '我無以買燭, 而子之燭光幸有餘, 子可分我餘光, 無損子明而得一斯便焉.' 今臣困而君方使秦而當路矣. 茂之妻子在焉, 願君以餘光振之." 蘇代許諾. 遂致使於秦. 已, 因說秦王曰: "甘茂, 非常士也. 其居於秦, 累世重矣. 自殽塞及至鬼谷, 其地形險易皆明知之. 彼以齊約韓魏反以圖秦, 非秦之利也." 秦王曰: "然則柰何?" 蘇代曰: "王不若重其贄, 厚其祿以迎之, 使彼來則置之鬼谷, 終身勿出." 秦王曰: "善." 即賜之上卿, 以相印迎之於齊. 甘茂不往. 蘇代謂齊湣王曰: "夫甘茂, 賢人也. 今秦賜之上卿, 以相印迎之. 甘茂德王之賜, 好爲王臣, 故辭而不往. 今王何以禮之?" 齊王曰: "善." 即位之上卿而處之. 秦因復甘茂之家以市於齊. 

13 감무가(甘茂之) 진나라에서 도망쳐서(亡秦) 제나라로 갔는데(奔齊), 소대를 만났다(逢蘇代). 소대가(代) 제나라를 위해(爲齊)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길이었다(使於秦).

감무가 말하길(甘茂曰): "신이(臣) 진나라에 죄를 지어(得罪於秦), 두려워(懼而) 도망쳤는데(遯逃), 살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無所容跡). 신이 듣기로(臣聞) 가난한 여자와(貧人女與) 부유한 여자가(富人女) 모여서 길쌈을 하는데(會績), 가난한 여인이 말하길(貧人女曰): '나에게(我) 초를 살 수 없는데(無以買燭, 而) 그대의 촛불 빛이(子之燭光) 다행이(幸) 남는 것이 있으니(有餘), 그대가(子) 나에게 남은 빛을 나누어주면(可分我餘光), 그대의 밝음에는 손해가 없지만(無損子明而) <나는> 약간의 편리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得一斯便焉).'라고 했다. 지금(今) 내가 곤란하지만(臣困而) 그대가(君) 바야흐로(方)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는(使秦而) 자리에 있습니다(當路矣). 저의 처와 자식이(茂之妻子) 거기에 있으니(在焉), 원컨대(願) 그대가(君) 남은 빛으로(以餘光) 그들을 구제해주시오(振之)."라고 했다.

소대가 허락했다(蘇代許諾). 마침내(遂) 진나라에 사신으로 도착했다(致使於秦). <일을> 마치고(已), 인하여(因) 진왕을 설득해 말하길(說秦王曰): "감무는(甘茂),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非常士也). 그가(其) 진나라에 머물면서(居於秦), 대대로(累世) 중용되었습니다(重矣). 효의 요새로부터(自殽塞) 귀곡에 이르기까지(及至鬼谷), 그(其) 지형이 험하고 쉬운 것을(地形險易) 모두(皆) 잘 알고 있습니다(明知之). 그가(彼) 제나라로(以齊) 한나라, 위나라와 약속하고(約韓魏反以) 진나라를 도모한다면(圖秦), 진나라에게 이익이 아닙니다(非秦之利也)."라고 했다.

진왕이 말하길(秦王曰): "그렇다면(然則) 어찌해야 하는가(柰何)?"라고 했다.

소대가 말하길(蘇代曰): "왕께서(王) 그 예물을 많이 보내고(重其贄), 그 녹을 두텁게 해서(厚其祿以) 그를 맞이해서(迎之), 그가 오도록 해서(使彼來則) 귀곡에 머물게 하고(置之鬼谷), 종신토록(終身)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만(勿出) 못합니다(不若)."라고 했다.

진왕이 말하길(秦王曰): "좋다(善)."라고 했다.

곧(即) 그에게 상경의 벼슬을 내리고(賜之上卿, 以) 재상의 인수로(相印) 제나라에서 그를 맞이했다(迎之於齊). 감무가 가지 않았다(甘茂不往).

소대가(蘇代) 제 민왕에게 말하길(謂齊湣王曰): "저(夫) 감무는(甘茂), 현명한 사람입니다(賢人也). 지금(今) 진나라가(秦) 그에게 상경의 벼슬을 내리고(賜之上卿, 以) 재상의 인수로 그를 맞으려고 합니다(相印迎之). 감무가(甘茂) 왕께서 내린 덕 때문에(德王之賜), 왕의 신하 되기를 바라고(好爲王臣), 그러므로(故) 사양하고 가지 않았습니다(辭而不往). 지금(今) 왕께서는(王) 무엇으로(何以) 그를 예우하겠습니까(禮之)?"라고 했다.

제왕이 말하길(齊王曰): "좋다(善)."라고 했다. 곧(即) 그를 상경의 자리에 앉히고(位之上卿而) 머물도록 했다(處之). 진나라가(秦) 이로 인해(因) 감무의 집안을 회복시켜(復甘茂之家以) 제나라와 경쟁했다(市於齊). 

 

* 容跡(용적): 발자취를 용납한다는 뜻으로, 살거나 출입할 수 있게 함을 이르는 말.

* 當路(당로): 정권()을 잡음, 중요()한 지위()나 직분()에 있음.


14 齊使甘茂於楚, 楚懷王新與秦合婚而驩. 而秦聞甘茂在楚, 使人謂楚王曰: "願送甘茂於秦." 楚王問於范蜎曰: "寡人欲置相於秦, 孰可?" 對曰: "臣不足以識之." 楚王曰: "寡人欲相甘茂, 可乎?" 對曰: "不可. 夫史舉, 下蔡之監門也, 大不爲事君, 小不爲家室, 以茍賤不廉聞於世, 甘茂事之順焉. 故惠王之明, 武王之察, 張儀之辯, 而甘茂事之, 取十官而無罪. 茂誠賢者也, 然不可相於秦. 夫秦之有賢相, 非楚國之利也. 且王前嘗用召滑於越, 而內行章義之難, 越國亂, 故楚南塞厲門而郡江東. 計王之功所以能如此者, 越國亂而楚治也. 今王知用諸越而忘用諸秦, 臣以王爲鉅過矣. 然則王若欲置相於秦, 則莫若向壽者可. 夫向壽之於秦王, 親也, 少與之同衣, 長與之同車, 以聽事. 王必相向壽於秦, 則楚國之利也." 於是使使請秦相向壽於秦. 秦卒相向壽. 而甘茂竟不得復入秦, 卒於魏. 

14 제나라가(齊) 초나라에(於楚) 감무를 사신으로 보내자(使甘茂), 초 회왕이(楚懷王) 새로이(新與) 진나라와 혼인을 맺고(秦合婚而) 기뻐하고 있었다(驩).

그런데(而) 진나라가(秦) 감무가 초나라에 있다는 것을 듣고(聞甘茂在楚), 사람을 시켜(使人) 초왕에게 말하길(謂楚王曰): "원컨대(願) 감무를 진나라로 보내주기를 바란다(送甘茂於秦)."라고 했다.

초왕이(楚王) 범연에게 물어 말하길(問於范蜎曰): "과인이(寡人) 진나라에 보내려고 하는데(欲置相於秦), 누가 좋겠는가(孰可)?"라고 했다.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신이(臣) 그것(마땅한 사람)을 알기에 부족합니다(不足以識之)."라고 했다.

초왕이 말하길(楚王曰): "과인이(寡人) 감무를 재상으로 하려는데(欲相甘茂), 어떤가(可乎)?"라고 했다.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안됩니다(不可). 무릇(夫) 사거(감무의 스승)는(史舉), 하채의 문지기로(下蔡之監門也), 크게(大) 임금을 섬기지 못하고(不爲事君), 작게는(小) 가정을 돌보지 못해서(不爲家室, 以) 진실로(茍) 천하고(賤) 청렴하지 않아서(不廉) 세상에 소문이 났으니(聞於世), 감무는(甘茂) 그를 모시고(事之) 따랐습니다(順焉). 그러므로(故) 혜왕의 현명함과((惠王之明), 무왕의 통찰력과(武王之察), 장의의 변론에도(張儀之辯, 而) 감무가 그들을 섬기고(甘茂事之), 십궁을 취하면서도(여러 관직을 거치면서도)(取十官而) 죄가 없었습니다(無罪). 감무는(茂誠) 현명한 사람이나(賢者也), 그렇지만(然) 진나라에서 재상이 될 수 없습니다(不可相於秦). 무릇(夫) 진나라에(秦之) 현명한 재상이 있다면(有賢相), 초나라의 이익이 아닙니다(非楚國之利也). 또한(且) 왕께서(王) 얼마 전(前) 일찍이(嘗) 월나라에서 소활을 등용했고(用召滑於越, 而) 안으로內) 장의의 난을 일으키도록 해서(行章義之難), 월나라가 어지러워졌고(越國亂), 그러므로(故) 초나라의 남쪽(楚南) 여문을 막고(塞厲門而) 강동을 군으로 만들었습니다(郡江東). 생각해 보면(計) 왕의 공적이(王之功) 이와 같을 수 있던 까닭은(所以能如此者), 월나라가 어지럽고(越國亂而) 초나라가 다스려졌기 때문입니다(楚治也). 지금(今) 왕께서는(王) 월나라에 <계책을> 쓸 줄 알지만(知用諸越而) 제나라에 ㅆ는 것을 잊고 있으니(忘用諸秦), 신은(臣) 왕께서 하시는 일이(王爲) 큰 잘못으로 생각됩니다(鉅過矣). 그렇다면(然則) 왕께서(王) 만약(若) 진나라에 재상을 보내려고 한다면(欲置相於秦, 則) 누구도(莫若) 상수만 한 사람이 없습니다(向壽者可). 상수가(夫向壽之) 진나라 왕에 대해서는(於秦王), 가깝고(親也), 어려서(少) 그와 함께(與之) 같은 옷을 입고(同衣), 커서는(長) 그와 같은 마차를 타고(與之同車, 以) 일을 들었습니다(聽事). 왕께서(王) 반드시(必) 상수를 진나라에 재상으로 보낸다면(相向壽於秦, 則) 초나라의 이익입니다(楚國之利也)."라고 했다.

이에(於是) 사신을 시켜(使使) 진나라가 상수를 재상으로 삼도록 청하려고(請秦相向壽) 진나라에 보냈다(於秦). 진나라가(秦) 마침내(卒) 상수를 재상으로 삼고(相向壽. 而) 감무는(甘茂) 끝내(竟) 진나라 들어가지 못하고(不得復入秦), 위나라에서 죽었다(卒於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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