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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72 양후열전(穰侯列傳) 1/2] 외척의 정치 참여

by प्रज्ञा 2024.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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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穰侯魏冉者, 秦昭王母宣太后弟也. 其先楚人, 姓羋氏. 

1 양후 위염은(穰侯魏冉者), 진 소왕의 어머니(秦昭王母) 선태후의 동생이다(宣太后弟也). 그 선조는(其先) 초나라 사람이고(楚人), 성은 미씨다(姓羋氏). 


2 秦武王卒, 無子, 立其弟爲昭王. 昭王母故號爲羋八子, 及昭王即位, 羋八子號爲宣太后. 宣太后非武王母. 武王母號曰惠文后, 先武王死. 宣太后二弟: 其異父長弟曰穰侯, 姓魏氏, 名冉; 同父弟曰羋戎, 爲華陽君. 而昭王同母弟曰高陵君·涇陽君. 而魏冉最賢, 自惠王·武王時任職用事. 武王卒, 諸弟爭立, 唯魏冉力爲能立昭王. 昭王即位, 以冉爲將軍, 衛咸陽. 誅季君之亂, 而逐武王后出之魏, 昭王諸兄弟不善者皆滅之, 威振秦國. 昭王少, 宣太后自治, 任魏冉爲政. 

2 진 무왕이 죽고(秦武王卒), 자식이 없어(無子), 그 동생을 세워(立其弟) 소왕이 되었다(爲昭王). 소왕의 어머니는(昭王母) 예전에(故) 호칭이(號) 미팔자였는데(爲羋八子), 소왕이 즉위함에 이르러(及昭王即位), 미팔자의 호칭이(羋八子號) 선태후가 되었다(爲宣太后). 선태후가(宣太后) 무왕의 어머니가 아니었다(非武王母). 무왕의 어머니는(武王母) 호칭이(號) 혜문후이고(曰惠文后), 무왕보다 먼저 죽었다(先武王死). 선태후에게(宣太后) 동생이 둘 있었는데(二弟): 그 아버지가 다르(其異父) 큰 동생이(長弟) 양후로(曰穰侯), 성은 위 씨고(姓魏氏), 이름은 염이고(名冉); 아버지를 같이하는 동생은(同父弟) 미융으로(曰羋戎), 화양군이다(爲華陽君). 그리고(而) 소양군과(昭王) 어머니가 같은 동생으로(同母弟) 고릉군과 경양군이 있다(曰高陵君·涇陽君). 그러나(而) 위염이(魏冉) 가장 현명해서(最賢), 혜왕과 무왕 때부터(自惠王·武王時) 직에 임명되어(任職) 일에 쓰였다(用事). 무왕이 죽고(武王卒), 여러 동생이(諸弟) 자리를 다투었지만(爭立), 오직(唯) 위염의 힘으로(魏冉力) 소왕을 즉위시킬 수 있었다(爲能立昭王). 소왕이 즉위하고( 昭王即位, 以) 위염이 장군이 되어(冉爲將軍), 함양을 지켰다(衛咸陽). 계군의 난을 평정하고(誅季君之亂, 而) 마침내(逐) 무왕의 후를(武王后) 위나라로 내쫓고(出之魏), 소왕의(昭王) 여러 형제 중에(諸兄弟) 선한지 못한 사람을(不善者) 모두 죽이니(皆滅之), 위엄이(威) 진나라에 떨쳤다(振秦國). 소왕이 어리고(昭王少), 선태후가  직접 다스리고(宣太后自治), 위염을 등용하여(任魏冉) 정치했다(爲政). 


3 昭王七年, 樗里子死, 而使涇陽君質於齊. 趙人樓緩來相秦, 趙不利, 乃使仇液之秦, 請以魏冉爲秦相. 仇液將行, 其客宋公謂液曰:"秦不聽公, 樓緩必怨公. 公不若謂樓緩曰'請爲公毋急秦』. 秦王見趙請相魏冉之不急, 且不聽公. 公言而事不成, 以德樓子; 事成, 魏冉故德公矣." 於是仇液從之. 而秦果免樓緩而魏冉相秦. 

3 소왕 7년(昭王七年), 저리자가 죽고(樗里子死, 而) 경양군으로 하여금(使涇陽君) 제나라에 볼모로 가도록 했다(質於齊). 조나라 사람(趙人) 누완이(樓緩) 와서(來) 진나라에서 재상이 되니(相秦), 조나라가 불리하다고 여겨(趙不利), 이에(乃) 구액을 시켜(使仇液) 진나라에 가서(之秦), 위염을 진나라 재상으로 삼도록 요청하라고 했다(請以魏冉爲秦相).

구액이 장차 떠나려고 하는데(仇液將行), 그 식객(其客) 송공이 구액에게 말하길(宋公謂液曰):"진나라가(秦) 공이 말을 듣지 않으면(不聽公), 누완은(樓緩) 반드시 공을 원망할 것입니다(必怨公). 공께서(公) 누완에게(謂樓緩曰) '공을 위해서 진나라에 급하게 하지 말라고 부탁할 것입니다(請爲公毋急秦'라고 말하는 것만 못합니다(不若). 진왕이(秦王) 조나라이 청을 보고(趙請) 위염을 재상으로 삼는 것을(相魏冉之) 급하지 않다는 것을(不急) 알면(見), 또(且) 공이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不聽公). 공이 말하고서(公言而)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事不成, 以) 누완에게 덕을 베푼 것이고(德樓子); 일이 이루어지면(事成), 위염이(魏冉) 반드시(故) 공에게 덕을 베풀 것입니다(德公矣)."라고 했다.

이에(於是) 구액이 그것을 따랐다(仇液從之). 그러자(而) 진나라가(秦) 과연(果) 누완을 파면하고(免樓緩而) 위염을(魏冉) 진나라에서 재상으로 삼았다(相秦). 


4 欲誅呂禮, 禮出奔齊. 昭王十四年, 魏冉舉白起, 使代向壽將而攻韓·魏, 敗之伊闕, 斬首二十四萬, 虜魏將公孫喜. 明年, 又取楚之宛·葉. 魏冉謝病免相, 以客卿壽燭爲相. 其明年, 燭免, 復相冉, 乃封魏冉於穰, 復益封陶, 號曰穰侯. 

4 여례를 죽이려고 하자(欲誅呂禮), 여례가(禮) 제나라로 달아났다(出奔齊). 소왕 14년(昭王十四年), 위염이(魏冉) 백기를 등용해서(舉白起), 상수를 대신해서 장군을 시키고(使代向壽將而) 한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하도록 하고(攻韓·魏), 이 궐에서 그들을 무찔러(敗之伊闕), 24만 명의 목을 베고(斬首二十四萬), 위나라 장군 공손희를 사로잡았다(虜魏將公孫喜). 이듬해에(明年), 또(又) 초나라의 완과 섭을 빼앗았다(取楚之宛·葉). 위염이(魏冉) 병을 핑계로(謝病) 재상에서 물러나고(免相, 以) 객경(客卿) 수촉이 재상이 되었다(壽燭爲相). 그 다음 해에(其明年), 수촉이 물러나고(燭免), 다시 위염을 상으로 삼았고(復相冉), 이에(乃) 위염을 양 땅에 봉해서(封魏冉於穰), 다시(復) 도 땅에 봉하는 것을 더해서(益封陶), 호칭이(號) 양후가 되었다(曰穰侯). 


5 穰侯封四歲, 爲秦將攻魏. 魏獻河東方四百里. 拔魏之河內, 取城大小六十餘. 昭王十九年, 秦稱西帝, 齊稱東帝. 月餘, 呂禮來, 而齊·秦各復歸帝爲王. 魏冉復相秦, 六歲而免. 免二歲, 復相秦. 四歲, 而使白起拔楚之郢, 秦置南郡. 乃封白起爲武安君. 白起者, 穰侯之所任舉也, 相善. 於是穰侯之富, 富於王室. 

5 양후가(穰侯) 봉해지고(封) 4년이 지나(四歲), 진나라 장수가 되어(爲秦將) 위나라를 쳤다(攻魏). 위나라가(魏) 하동 사방 400리를 바쳤다(獻河東方四百里). 위나라의 하내를 함락시키고(拔魏之河內), 크고 작은 성 60여 개를 빼앗았다(取城大小六十餘). 소왕 19년에(昭王十九年), 진나라가(秦) 서제를 칭하고(稱西帝), 제나라가(齊) 동제를 칭했다(稱東帝). 한 달여가 지나(月餘), 여례가 돌아와서(呂禮來, 而) 제나라와 진나라는(齊·秦) 각각(各) 다시(復) 제에서 돌아와(歸帝) 왕이 되었다(爲王). 위염이(魏冉) 다시(復) 제나라에서 재상노릇 하고(相秦), 6년이 지나 그만두었다(六歲而免). 그만두고 2년이 지나(免二歲), 다시(復) 진나라에서 재상이 되었다(相秦). 4년이 지나서(四歲, 而) 백기를 시켜(使白起) 초나라의 영을 함락시키고(拔楚之郢), 진나라가(秦) 남군을 두었다(置南郡). 이에(乃) 백기를 봉하여(封白起) 무안군으로 삼았다(爲武安君). 백기는(白起者), 양후가(穰侯之) 등용한 사람으로(所任舉也), 서로 사이가 좋았다(相善). 이에(於是) 양후의 부가(穰侯之富), 왕실보다 더 부유했다(富於王室). 


6 昭王三十二年, 穰侯爲相國, 將兵攻魏, 走芒卯, 入北宅, 遂圍大梁. 梁大夫須賈說穰侯曰:"臣聞魏之長吏謂魏王曰: '昔梁惠王伐趙, 戰勝三梁, 拔邯鄲; 趙氏不割, 而邯鄲復歸. 齊人攻衛, 拔故國, 殺子良; 衛人不割, 而故地復反. 衛·趙之所以國全兵勁而地不并於諸侯者, 以其能忍難而重出地也. 宋·中山數伐割地, 而國隨以亡. 臣以爲衛·趙可法, 而宋·中山可爲戒也. 秦, 貪戾之國也, 而毋親. 蠶食魏氏, 又盡晉國, 戰勝暴子, 割八縣, 地未畢入, 兵復出矣. 夫秦何厭之有哉! 今又走芒卯, 入北宅, 此非敢攻梁也, 且劫王以求多割地. 王必勿聽也. 今王背楚·趙而講秦, 楚·趙怒而去王, 與王爭事秦, 秦必受之. 秦挾楚·趙之兵以復攻梁, 則國求無亡不可得也. 願王之必無講也. 王若欲講, 少割而有質; 不然, 必見欺.'此臣之所聞於魏也, 願君[王]之以是慮事也. 《周書》曰'惟命不于常』, 此言幸之不可數也. 夫戰勝暴子, 割八縣, 此非兵力之精也, 又非計之工也, 天幸爲多矣. 今又走芒卯, 入北宅, 以攻大梁, 是以天幸自爲常也. 智者不然. 臣聞魏氏悉其百縣勝甲以上戍大梁, 臣以爲不下三十萬. 以三十萬之眾守梁七仞之城, 臣以爲湯·武復生, 不易攻也. 夫輕背楚·趙之兵, 陵七仞之城, 戰三十萬之眾, 而志必舉之, 臣以爲自天地始分以至于今, 未嘗有者也. 攻而不拔, 秦兵必罷, 陶邑必亡, 則前功必棄矣. 今魏氏方疑, 可以少割收也. 願君逮楚·趙之兵未至於梁, 亟以少割收魏. 魏方疑而得以少割爲利, 必欲之, 則君得所欲矣. 楚·趙怒於魏之先己也, 必爭事秦, 從以此散, 而君後擇焉. 且君之得地豈必以兵哉! 邦晉國, 秦兵不攻, 而魏必效絳安邑. 又爲陶開兩道, 幾盡故宋, 衛必效單父. 秦兵可全, 而君制之, 何索而不得, 何爲而不成! 願君熟慮之而無行危." 穰侯曰:"善." 乃罷梁圍. 

6 소왕 32년에(昭王三十二年), 양후가 상국이 되어(穰侯爲相國), 군대를 이끌고(將兵) 위나라를 치니(攻魏), 망묘가 도망가서(走芒卯), 북택에 들어가(入北宅), 마침내(遂) 대량을 포위했다(圍大梁).

위나라 대부(梁大夫) 수고가(須賈) 양후를 설득해 말하길(說穰侯曰): "신이 듣건대(臣聞) 위나라의 고위 관리가(魏之長吏謂) 위왕에게 말하길(魏王曰): '옛날(昔) 양 혜왕이 조나라를 칠 때(梁惠王伐趙), 삼량에서 전투를 이기고(戰勝三梁), 한단을 빼앗았지만(拔邯鄲); 조나라가 <땅을> 떼어 주지 않았고(趙氏不割, 而) 한단이(邯鄲) <조나라에> 돌아갔습니다(復歸). 제나라가(齊人) 위나라를 공격해서(攻衛), 옛 나라를 빼앗고(拔故國), 자량을 죽였는데(殺子良); 위나라가(衛人) <땅을> 떼어주지 않고(不割, 而) 옛 땅이(故地) 다시 되돌아왔습니다(復反). 위나라와 조나라가(衛·趙之) 나라를 보전하고(所以國全) 군대가 강하고(兵勁而) 땅을(地) 제후에게 병합당하지 않은 것은(不并於諸侯者), 그 어려움을 참고(其能忍難而) 땅을 내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重出地也). 송나라와 중산은(宋·中山) 여러 번 침략을 받고(數伐) 땅을 떼어주어(割地, 而) 나라가 기울어 망했습니다(國隨以亡). 신은(臣) 위나라와 조나라를 본받을만하다고 여기고(以爲衛·趙可法, 而) 송나라와 중산을 경계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宋·中山可爲戒也). 진나라가(秦), 욕심이 많은 나라이니(貪戾之國也, 而)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毋親). 위나라를 잠식하고(蠶食魏氏), 또(又) 진나라를 다 빼앗고(盡晉國), 전쟁에서(戰) <장군> 포자를 이기고(勝暴子), 8개 현을 떼어 갔는데(割八縣), 땅이(地) 들어가기도 전에(未畢入), 군대가(兵) 다시 나왔습니다(復出矣). 무릇(夫) 진나라가(秦) 어찌(何) 만족하는 것이 있겠습니까(厭之有哉)! 지금(今) 또(又) 망묘가 도망가고(走芒卯), 북택까지 들어왔는데(入北宅), 이것은(此) 감히 양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非敢攻梁也), 또(且) 왕을 협박해서(劫王以) 땅을 많이 떼어 가려는 요구입니다(求多割地). 왕께서는(王) 반드시(必) 들어주지 마십시오(勿聽也). 지금(今) 왕께서(王) 초나라와 조나라를 배반하고(背楚·趙而) 진나라와 화친을 맺으면(講秦), 초나라와 조나라가 노해서(楚·趙怒而) 왕을 버리고(去王), 왕과(與王) 진나라 섬기는 것을 다툴 것이고(爭事秦), 진나라가(秦) 반드시(必) 받아줄 것입니다(受之). 진나라가(秦) 초나라와 조나라의 군대를 끼고(挾楚·趙之兵以) 다시 양나라를 쳐들어오면(復攻梁, 則) 나라를 구하려 해도(國求) 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無亡不可得也). 원컨대(願) 왕께서는(王之) 반드시(必) 화친하지 마십시오(無講也). 왕께서(王) 만약(若) 화친하고자 한다면(欲講), 조금 떼어주고(少割而) 인질을 받고(有質); 그렇지 않다면(不然), 반드시(必) 속임을 당할 것입니다(見欺).'라고 했습니다. 이것은(此) 제가(臣之) 위나라에서 들은 것이니(所聞於魏也), 원컨대(願) 그대는(君 [王]之) 이것으로(以是) 일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慮事也). 주서에 이르길(《周書》曰) '오직(惟) 천명은(命) 일정하지 않다(不于常)'라과 했으니, 이것은(此) 다행히(幸之) 자주 있는 것이 아니라는(不可數) 말입니다(也). 무릇(夫) 전쟁에서(戰) 포자를 이기고(勝暴子), 8현을 떼어 받은 것은(割八縣), 이것은(此) 병력의 정밀함이 아니고(非兵力之精也), 또한(又) 계략의 교묘함도 아니니(非計之工也), 하늘의 행운이(天幸) 많은 것입니다(爲多矣). 지금(今) 또(又) 망묘가 도망하고(走芒卯), 북택까지 들어와서(入北宅, 以) 대량을 공격하는데(攻大梁), 이것是以天幸自爲常也.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게 여기지 않습니다(智者不然). 신이 듣기로(臣聞) 위나라가(魏氏) 그 백개 현의 뛰어난 병사를 모두 모아(悉其百縣勝甲以上) 대량을 지키는데(戍大梁), 신이 생각하기에(臣以爲) 30만 아래가 아닙니다(不下三十萬). 39만의 무리로(以三十萬之眾) 대량의 7척 성을 지키니(守梁七仞之城), 신이 여기기로(臣以爲) 탕왕과 무왕이 다시 살아오더라도(湯·武復生), 쉽게 공격할 수 없습니다(不易攻也). 무릇(夫) 초나라와 조나라의 병사를 가벼이 뒤에 두고(輕背楚·趙之兵), 7척의 성을 올라가(陵七仞之城), 30만의 무리와 싸워서(戰三十萬之眾, 而) 뜻이(志)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必舉之), 신이 생각하기에(臣以爲) 천지가 처음 나누어진 때로부터(自天地始分以) 지금까지(至于今), 있던 일이 아닙니다(未嘗有者也). 공격해서 함락하지 못하면(攻而不拔), 진나라 군대는(秦兵) 반드시 지칠 것이고(必罷), 도읍도(陶邑) 반드시 망한다면(必亡, 則) 이전의 공은(前功) 반드시 버려질 것입니다(必棄矣). 지금(今) 위나라가(魏氏) 막 의심하고 있으므로(方疑), <땅을> 작게 떼어 거둘 수 있습니다(可以少割收也). 원컨대(願) 군께서(君) 초나라와 조나라의 군대를 보내서(逮楚·趙之兵) 대량에 이르지 못했을 때(未至於梁), 빨리(亟以) 위나라에게서 조금 떼어 받으십시오(少割收魏). 위나라가(魏) 막 의심하고 있으며(方疑而) 조금 떼어주는 것이(得以少割) 이롭다고 여기면(爲利), 반드시(必) 하려고 할 것이고(欲之, 則) 군께서(君)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得所欲矣). 초나라와 조나라가(楚·趙) 위나라가 <진나라와 화친에> 자기를 앞선 것을(於魏之先己也) 화내며(怒), 반드시(必) 진나라 섬기기를 다툴 것이니(爭事秦), 합종은(從) 이것을 따라서 흩어질 것이고(以此散, 而) 군께서는(君) 뒤에(後) <하고 싶은 것을> 고를 수 있습니다(擇焉). 또한(且) 군께서(君之) 땅을 얻는 것이(得地) 어찌(豈) 반드시(必) 군대로만 하겠습니까(以兵哉)! 옛 진나라 땅을(邦晉國), 진나라 군대가 공격하지 않더라도(秦兵不攻, 而) 위나라는(魏) 반드시(必) 강과 안읍을 바칠 것입니다(效絳安邑). 또(又) 도 땅을 위해(爲陶) 두 갈래 길을 열어(開兩道), 거의(幾) 옛 송나라에 닿을 것이고(盡故宋), 위나라가(衛) 반드시(必) 단보를 바칠 것입니다(效單父). 진나라 군대가(秦兵) 온전할 수 있고(可全, 而) 군께서 통제할 수 있으니(君制之), 무엇을 구하더라도(何索而) 얻지 못할 것이며(不得), 무엇을 하더라도(何爲而) 이루지 못하겠습니까(不成)! 원컨대(願) 군께서 깊이 생각하시어(君熟慮之而) 위험한 행동이 없기를 바랍니다(無行危)."라고 했다.

양후가 말하길(穰侯曰):"좋다(善)."라고 했다. 이에(乃) 양이 포위를 풀었다(罷梁圍). 

 

* 貪戾(탐루): 욕심()이 많아 바른길(정도())에서 벗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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