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魏易地, 西周弗利. 樊餘謂楚王曰: “周必亡矣. 韓‧魏之易地, 韓得二縣, 魏亡二縣. 所以爲之者, 盡包二周, 多於二縣, 九鼎存焉. 且魏有南陽‧鄭地‧三川而包二周, 則楚方城之外危, 韓兼兩上黨以臨趙, 卽趙羊腸以上危. 故易成之曰(日), 楚‧趙皆輕.” 楚王恐, 因趙以止易也.
한나라와 위나라가 땅을 바꾸려 했는데(韓‧魏易地), 서주에게 불리했다(西周弗利).
번여가(樊餘) 초왕에게 말하길(謂楚王曰): “주나라는(周)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必亡矣). 한나라와 위나라가 땅을 바꾸면(韓‧魏之易地), 한나라가 현 2개를 얻고(韓得二縣), 위나라는 현 2개를 잃습니다(魏亡二縣). 이렇게 하는 까닭은(所以爲之者), 두 주나라를 완전히 병합하면(盡包二周), 두 현보다 많고(多於二縣), 구정이(九鼎)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存焉). 또(且) 위나라에(魏) 남양과 정지, 삼천이 있는데(有南陽‧鄭地‧三川而) 두 주나라를 포함한다면(包二周, 則) 초나라의(楚) 방성 바깥이(方城之外) 위험해지고(危), 한나라가(韓) 두 상당을 겸해서(兼兩上黨以) 조나라에 대하면(臨趙), 곧(卽) 조나라 양장 북쪽이(趙羊腸以上) 위험해집니다(危). 그러므로(故) 교환이 이루어지는 날에(易成之曰(日)), 초나라와 조나라가(楚‧趙) 모두(皆) 가벼워질 것입니다(輕).”라고 했다.
초왕이 노하여(楚王恐), 조나라에 의지하여(因趙以) 교환을 중단시켰다(止易也).
* 韓魏易地(한위역지): 자세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周 赧王(난왕) 47년에 있었던 일로 보고 있다.
* 方城(방성): 楚나라의 산 이름이며 요새로 지금의 河南省 方城縣 동북쪽이다. 《方輿紀要》에 “초나라가 산 위에 성을 쌓아 요새가 되었다. 그 산이 수백 리까지 이어져 있어 장성이라고도 한다. [楚置城於山上 以爲要隘 其山連接幾數百里 亦曰長城]”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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