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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29 한유(韓愈)]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 / 문창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

by प्रज्ञा 2024.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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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가 유종원의 부탁으로 문창선사에 보낸 글이다. 부도(浮屠)는 '붓다'의 음역으로 일반적으로 불제자인 승려를 가리킨다. 제목의 송(送)은 전별 시문문집의 서문이란 뜻이었지만 한유 시대에 와서는 한 편의 전별문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人固有儒名而墨行者, 問其名則是, 校其行則非, 可以與之游乎? 如有墨名而儒行者, 問其名則非, 校其行則是, 可以與之游乎? 揚子雲稱: “在門墻則揮之, 在夷狄則進之.” 吾取以爲法焉.

사람들 가운데(人) 본래(固) 유가의 이름을 가졌으면서(儒名而) 묵가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어(墨行者), 그 명분을 물으면(問其名則) 옳지만(是), 그 행실을(其行) 비교해 보면(校則) 그르다면(非), 그와 함께(與之) 놀 수 있겠는가(可以游乎)? 만약(如) 묵가의 이름을 가졌으면서(墨名而) 유가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어(儒行者), 그 명분을 물으면 그르지만(問其名則非), 그 행실을 비교해 보면 옳다면(校其行則是), 그와 함께 놀 수 있겠는가(可以與之游乎)? 양자운이 말하길(揚子雲稱): “문하에 있다면(在門墻則) 그를 내치지만(揮之), 오랑캐의 땅에 있다면(在夷狄則) 끌어올 것이다(進之).”라고 했다. 내가(吾) 취해서(取) 법으로 삼으려고 한다(以爲法焉).

文暢喜爲文章, 其周遊天下, 凡有行, 必請於搢紳先生, 以求詠謌其所志. 貞元十九年春, 將行東南, 柳君宗元, 爲之請作詩. 解其裝, 得所得叙詩累百餘篇, 非至篤好, 其何能致多如是邪. 惜其無以聖人之道告之者, 而徒擧浮屠之說, 贈焉.

문창이(文暢) 글짓기를 좋아하고(喜爲文章), 그가(其) 천하를 두루 돌면서(周遊天下), 무릇(凡) 가는 곳마다(有行), 반드시(必) 덕이 있는 선생에게 요청하여(請於搢紳先生, 以) 그가 뜻하는 것을(其所志) 시로 읊어줄 것을 요구했다(求詠謌). 정원 19년 봄에(貞元十九年春), 동남쪽으로 떠났을 때(將行東南), 유종원이(柳君宗元), 그를 위해(爲之) 시를 지어줄 것을 <나에게> 청했다(請作詩). 그 여장을 풀고(解其裝), 서시를 얻은 것이(得所得叙詩) 모두(累) 백여 편이고(百餘篇), 지극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非至篤好), 그 어찌(其何) 이처럼(如是) 많음에 이르렀겠는가(能致多邪). 안타깝게도(惜) 그 가운데(其) 성인의 도로(以聖人之道) 일러준 것이(告之者) 없고(, 而) 다만(徒) 불교의 설을 들어 써서(擧浮屠之說), 준 것뿐이다(贈焉).

 

* 搢紳(진신): ‘홀()을 큰 띠에 꽂는다.’는 뜻으로, 모든 벼슬아치를 통틀어 이르는 말.지위(地位)가 높고 행동(行動)이 점잖은 사람.

 

夫文暢浮屠也, 如欲聞浮屠之說, 當自就其師而問之, 何故, 謁吾徒而來請也? 彼見吾君臣父子之懿, 文物禮樂之盛, 其心必有慕焉, 拘其法而未能入. 故樂聞其說而請之, 如吾徒者宜當告之以二帝三王之道, 日月星辰之所以行, 天地之所以著, 鬼神之所以幽, 人物之所以蕃, 江河之所以流而語之, 不當又爲浮屠之說而瀆告之也.

문창이(夫文暢) 불제자이니(浮屠也), 만약(如) 불교의 설을(浮屠之說) 들으려고 했다면(欲聞), 마땅히(當) 스스로(自) 그 스승에게 나아가(就其師而) 들을 것인데(問之), 무슨 까닭으로(何故), 우리 무리를 찾아(謁吾徒而) 와서 청하는가(來請也)? 저 사람이(彼) 우리(吾) 군신부자의 아름다움과(君臣父子之懿), 문문예악의 융성함을(文物禮樂之盛) 보고(見), 그 마음에(其心) 반드시(必) 사모하는 것이 있지만(有慕焉), 그 법에 얽매여(拘其法而) 아직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未能入). 그러므로(故) 그 설을 듣기를 좋아하고(樂聞其說而) 청한 것이니(請之), 만약(如) 우리 무리가(吾徒者) 마땅히(宜當) 이제삼왕의 도와(以二帝三王之道), 일월성신이(日月星辰之) 운행하는 까닭과(所以行), 천지가 분명한 이유와(天地之所以著), 귀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 까닭과(鬼神之所以幽), 만물이 번성한 까닭과(人物之所以蕃), 강하가 흐르는 까닭을(江河之所以流) 일러주고(告之而) 말해야 하고(語之), 또(又) 불교의 설을 말하고(爲浮屠之說而) 더럽히도록 (瀆) 일러주는 것은(告之) 맞지 않다(不當也).

 

民之初生, 固若禽獸然, 聖人者立然後, 知宮居而粒食, 親親而尊尊, 生者養而死者藏. 是故道莫大乎仁義, 敎莫正乎禮樂刑政, 施之於天下, 萬物得其宜, 措之於其躬, 體安而氣平. 堯以是傳之舜, 舜以是傳之禹, 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ㆍ武, 文ㆍ武以是傳之周公ㆍ孔子, 書之於冊, 中國之人, 世守之, 今浮屠者, 孰爲而孰傳之邪.

사람이(民之) 처음 생겼을 때는(初生), 본래(固) 짐승과 같았지만(若禽獸然), 성인이 선 뒤에야(聖人者立然後), 집에 살고(宮居而) 곡식을 먹고(粒食), 어버이를 친하게 여기고(親親而) 윗사람을 존중하고(尊尊), 산 사람을 봉양하고(生者養而) 죽은 사람은 장사 지내는 것을(死者藏) 알게 되었다(知). 이 때문에(是故) 도는(道) 인의보다 큰 것이 없고(莫大乎仁義), 가르침은(敎) 예악형정보다 바른 것이 없어서(莫正乎禮樂刑政), 천하에 시행하니(施之於天下), 만물이(萬物) 그 마땅함을 얻었고(得其宜), 자기 몸에 그것을 두어(措之於其躬), 몸이 평안하고(體安而) 기가 평안하게 되었다(氣平). 요임금이(堯) 이것을(以是) 순임금에게 전했고(傳之舜), 순임금이 이것을 우임금에게 전했고(舜以是傳之禹), 우임금이 이것을 탕임금에게 전했고(禹以是傳之湯), 탕임금이 이것을 문왕과 무왕에게 전했고(湯以是傳之文ㆍ武), 문왕과 무왕이 이것을 주공과 공자에게 전해서(文ㆍ武以是傳之周公ㆍ孔子), 책에(於冊) 그것을 써서(書之), 나라 사람들이(中國之人), 대대로(世) 그것을 지켰으니(守之), 지금(今) 불교는(浮屠者), 누가 만들고(孰爲而) 누가 전한 것인가(孰傳之邪).

 

* 粒食(입식): 쌀을 먹음, 곡식을 먹음.

 

夫鳥俛以啄, 仰而四顧, 夫獸深居而簡出, 懼物之爲己害也. 猶且不脫焉, 弱之肉, 强之食, 今吾與文暢, 安居而暇食, 優游以生死, 與禽獸異者, 寧可不知其所自邪. 夫不知者, 非其人之罪也, 知而不爲之者惑也, 悅乎故, 不能卽乎新者弱也, 知而不以告之者不仁也, 告而不以實者不信也. 余旣重柳請, 又嘉浮屠能喜文辭, 於是乎言.

무릇夫) 새는(鳥) 부지런히 쪼다가(俛以啄), 고개를 들어(仰而) 사방을 바라보고(四顧), 무릇(夫) 짐승은(獸) 깊은 곳에 있다가(深居而) 드물게 나오는 것은(簡出), 다른 것이(物之) 자기를 해칠까 두려워서이다(己害也). 그런데도(猶且) 벗어나지 못하고(不脫焉), 약한 자의 고기를(弱之肉), 강한 자가 먹으니(强之食), 지금(今) 내가(吾) 문창과 함께(與文暢), 편안히 지내며(安居而) 한가롭게 먹고(暇食), 한가롭게 지내며 살다가(優游以生) 죽을 수 있으니(死), 금수와(與禽獸) 다른 것이니(異者), 어찌(寧) 그 유래한 것을(其所自) 알지 못할 수 있겠는가(可不知邪). 무릇(夫) 알지 못하는 것은(不知者), 그 사람의 죄가 아니고(非其人之罪也), 알면서(知而) 하지 않는 것은(不爲之者) 미혹이니(惑也), 옛것을 좋아하고(悅乎故), 새로운 것에(乎新者)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不能卽) 약한 것이며(弱也), 알면서(知而) 일러주지 않는 것은(不以告之者) 불인이고(不仁也), 일러주었는데(告而不) 실제로 여기지 않는 것은(以實者) 불신이다(不信也). 내가(余) 이미(旣) 유종원의 청을 중요하게 여기고(重柳請), 또(又) 불제자가(浮屠) 문학을 좋아하는 것을(能喜文辭) 기쁘게 생각해서(嘉), 이에(於是) 말하는 것이다(乎言).

 

* 優游(우유): 하는 일 없이 한가(閑暇)롭고 편안(便)하게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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