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신
海於天地間, 爲物最鉅, 自三代聖王, 莫不祀事. 考於傳記, 而南海神次最貴, 在北ㆍ東ㆍ西三神河佰之上, 號爲祝融. 天寶中, 天子以爲古爵, 莫貴於公侯. 故海岳之祀, 犧幣之數, 放而依之, 所以致宗極於大神. 今王亦爵也, 而禮海岳, 尙循公侯之事, 虛王儀而不用, 非致崇極之意也. 由是冊尊南海神, 爲廣利王, 祝號祭式, 與次俱升. 因其故廟, 易而新之, 在今廣州治之東南海道八十里扶胥之口, 黃木之灣.
바다는(海) 하늘과 땅 사이에서(於天地間), 사물 된 것으로(爲物) 가장 거대하다(最鉅), 삼대의 성왕으로부터(自三代聖王), 누구도(莫) 제사 지내서 섬기지 않은 사람이 없다(不祀事). 전해오는 기록을(於傳記) 살펴보면(考, 而) 남해신의 서열은(南海神次) 가장 귀하고(最貴), 북과 동, 서 삼신과(北東西三神) 하백의(河佰之) 위에 있으며(在上), 호칭이(號) 축융이다(爲祝融).
천보 연간에(天寶中), 천자가(天子) 以爲옛 작위로(古爵), 무엇도(莫) 공후보다(於公侯) 귀한 것이 없다고(貴) 여겼다(貴). 그러므로(故) 바다와 산의 제사에(海岳之祀), 희생과 폐물의 수를(犧幣之數), 그것을 따르고(放而) 의지하니(依之), 큰 신에게(於大神) 지극한 존경을 바친 것이다(所以致宗極). 지금(今) 왕도 또한(王亦) 작위이니(爵也, 而) 바다와 산에 예를 갖추는데(禮海岳), 아직(尙) 공후의 예를 따르면서(循公侯之事), 왕의 의례를 비우고(虛王儀而) 쓰지 않으니(不用), 지극히 높이는 뜻이 아니다(非致崇極之意也).
이 때문에(由是) 책명으로(冊) 남해의 신을 높이고(尊南海神), 광리왕으로 삼고(爲廣利王), 호칭과(祝號) 제사의 방식이(祭式), 지위와 함께(與次俱) 높아졌다(升). 그 옛날 사당이기 때문에(因其故廟), 바꾸어(易而) 시로 만들고(新之), 지금(今) 광주 치소의(廣州治之) 동남쪽(東南) 바닷길로(海道) 80리 거리인(八十里) 부서 어귀(扶胥之口), 황목만에(黃木之灣) 있다(在).
* 神次(신차): 신으로서의 서열
* 河佰(하백): 황하의 신으로 풍이(馮夷) 또는 빙이(冰夷)로도 알려져 있다.
* 祝融(축융): 적제(赤帝) 축융(祝融)은 중국 신화의 불의 신이자 남쪽의 신이다.
* 천보(天寶, 742년 ~ 756년 7월)는 당나라(唐)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의 세 번째 연호이자 마지막 연호이다.
* 海岳(해악): 바다와 산악(山岳)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사당이 엉망이 되었다
常以立夏氣至, 命廣州刺史, 行事祠下, 事訖驛聞. 而刺史常節度五嶺諸軍, 仍觀察其郡邑, 於南方事, 無所不統. 地大以遠. 故常選用重人, 旣貴而富, 且不習海事. 又當祀時, 海常多大風. 將往皆憂戚, 旣進觀顧怖悸. 故常以疾爲辭, 而委事於其副, 其來已久. 故明宮齋廬, 上雨旁風, 無所蓋障, 牲酒瘠酸, 取具臨時, 水陸之品, 狼藉籩豆, 薦祼興俯, 不中儀式. 吏滋不恭, 神不顧享, 盲風怪雨, 發作無節, 人蒙其害.
늘(常) 입하의 절기가(立夏氣) 이른 것으로(以至), 광주자사에게 명하여(命廣州刺史), 사당 아래서(祠下) 행사를 하고(行事), 일이 끝나면(事訖) 역마로 보고했다(驛聞). 그러나(而) 자사가(刺史) 늘(常) 오령제군을 거느리고(節度五嶺諸軍), 또한(仍) 그 군과 읍을 관찰했는데(觀察其郡邑), 남방의 일에 대해서(於南方事), 통괄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無所不統).
땅이 넓고(地大) 멀었기 때문에(以遠), 그러므로(故) 늘(常) 중요한 사람을(重人) 가려서 등용하고(選用), 이미(旣) 귀하고 부유한 데다(貴而富), 또(且) 바닷일을 익히지 않았다(不習海事). 또(又) 제사를 지낼 때를 맞이하면(當祀時), 바다에(海) 늘(常) 큰 바람이 많았다(多大風). 장차 가려고 하면(將往) 모두(皆) 근심하고 걱정했으며(憂戚), 이미 나아가서 보면(旣進觀) 다만(顧) 두렵고 떨렸다(怖悸). 그러므로(故) 늘(常) 병을(以疾) 핑계 삼아(爲辭, 而) 일을(事) 그 부관에게(於其副) 맡겨서(委), 그 가는 것이(其來) 이미 오래다(已久).
그러므로(故) 명궁의 재실과 집은(明宮齋廬), 위에서 비가 들어오고(上雨) 옆에서 바람이 들어오고(旁風), 덮고 가리는 것이 없었고(無所蓋障), 제물과 술이(牲酒) 여위고 시큼거려서(瘠酸), 함께 임시로 취해서(取具臨時), 바다와 육지의 물품이(水陸之品), 제기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고(狼藉籩豆), 제사 지내는 것이(薦祼興俯), 의식에 맞지 않았다(不中儀式). 관리는(吏) 더욱(滋) 공손하지 않고(不恭), 신은(神) 흠향하지 않고(不顧享), 사나운 바람과(盲風) 괴이한 비가(怪雨), 발작하는 것이(發作) 절도가 없고(無節), 사람들이(人) 그 해를 입었다(蒙其害).
* 五嶺諸軍(오령제군): 당나라 시대 광동과 광서 지방에 오부가 있었는데 광주자사가 이 오부의 군사를 관리했다.
* 怖悸(포계): 두려워서 마음이 울렁거림.
* 狼藉(낭자): 여기저기 흩어져 어지러움.
* 薦祼興俯(천관흥부): 薦은 '제물을 바치다', 祼은 '강신주를 붓다', 興俯는 '일어나고 굽혀 절하는 것'으로 제사의 여러 동작을 말한다.
* 顧享(고향): 신이 고개를 돌려 제사를 흠향하다.
노국 공규가 광주자사로 오다
元和十二年, 始詔用前尙書右丞ㆍ國子祭酒魯國孔公, 爲廣州刺史兼御史大夫, 以殿南服. 公正直方嚴, 中心樂易, 祗愼所職. 治人以明, 事神以誠, 內外殫盡, 不爲表襮. 至州之明年將夏, 祝冊自京師至, 吏以時告, 公乃齋祓視冊, 誓群有司曰: “冊有皇帝名, 乃上所自署. 其文曰: ‘嗣天子某, 謹遣某官某敬祭,’ 其恭且嚴, 如是敢有不承. 明日吾將宿廟下, 以供晨事.”
원화 12년에(元和十二年), 비로소(始) 전 상서우승 국자좨주였던(前尙書右丞國子祭酒) 노국 공규를(魯國孔公) 임용해서(詔用), 광주자사 겸 어사대부로 삼고(爲廣州刺史兼御史大夫, 以) 남쪽을 다스리도록 했다(殿南服). 공이(公) 정직하고(正直) 엄격했지만(方嚴), 마음은(中心) 즐겁고 편안해서(樂易), 맡은 일을(所職) 공경하고 삼갔다(祗愼). 밝음으로 사람을 다스리고(治人以明), 정성으로 신을 섬겨서(事神以誠), 안과 밖으로(內外) 힘을 다하고(殫盡),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不爲表襮). 광주에 도착한(至州之) 다음 해(明年) 여름이 오려고 하자(將夏), 축책이(祝冊) 서울로부터(自京師) 이르러(至), 관리가(吏) 그것을 바로 보고하자(以時告), 공이 이에(公乃) 재계하여 부정한 것을 물리치고(齋祓) 책문을 보고(視冊),
여러 유사에게 훈계하여 말하길(誓群有司曰): “책문에(冊) 황제의 이름이 있으니(有皇帝名), 곧(乃) 임금이(上) 스스로 서명한 것이다(所自署). 그 글에 이르길(其文曰): ‘천자 자리를 이은(嗣天子) 제가(某), 삼가(謹) 모관 모씨를 보내어(遣某官某) 공경하여 제사 지냅니다(敬祭),’라고 했고, 그(其) 공경과 엄숙함이(恭且嚴), 이와 같으니(如是) 감히(敢) 받들지 않음이 있겠는가(有不承). 내일(明日) 내가(吾) 사당 아래 머물면서(將宿廟下, 以) 새벽 제사를 올릴 것이다(供晨事).”라고 했다.
* 殫盡(탄진), 殫竭(탄갈): (마음이나 힘을) 남김없이 다함.
* 表襮(표폭): 자신의 공로나 능력을 겉으로 드러내다.
* 祝冊(축책): 제사 지낼 때 임금이 지어 보낸 글로 축관이 그것을 읽었다.
* 晨事(신사): 아침 제사
자사가 제사를 지내다
明曰吏以風雨白, 不聽, 於是州府文武吏士凡百數, 交謁更諫, 皆揖而退. 公遂陞舟, 風雨少弛, 棹夫奏功. 雲陰解駁, 日光穿漏, 波伏不興. 省牲之夕, 載暘載陰, 將事之夜, 天地開除, 月星明穊. 五鼓旣作, 牽牛正中, 公乃盛服執笏, 以入卽事, 文武賓屬, 俯首聽位, 各執其職. 牲肥酒香, 樽爵淨潔, 降登有數, 神具醉飽. 海之百靈祕怪, 怳惚畢出, 蜿蜿蜑蜑, 來享飮食. 闔廟旋艫, 祥飇送颿, 旗纛旄麾, 飛揚晻藹, 鐃鼓嘲轟, 高關噭譟, 武夫奮棹, 工師唱和. 穹龜長魚, 踊躍后先, 乾端坤倪, 軒豁呈露.
다음날(明曰) 관리들이(吏) 비바람으로(以風雨) 고했지만(白), 듣지 않았고(不聽), 이에(於是) 광주부(州府) 문무관리가(文武吏士) 모두(凡) 백여 명인데(百數), 번갈아 알현하고(交謁) 다시 간했지만(更諫), 모두(皆) 읍하고(揖而) 물러나도록 했다(退). 공이(公) 마침내(遂) 배에 오르자(陞舟), 비바람이(風雨) 조금 약해졌고(少弛), 노 젓는 사람이(棹夫) 공덕을 아뢰니(奏功), 어두운 구름이(雲陰) 흩어지고(解駁), 햇빛이(日光) <구름을> 뚫고 비추며(穿漏), 물결도 잠잠해져서(波伏) 일어나지 않았다(不興).
제물을 준비하는 저녁에(省牲之夕), 햇빛이 들었다(載暘) 구름이 끼었다 하다가(載陰), 제사를 지내려는(將事之) 밤에(夜), 천지가(天地) 열려 트이고(開除), 달과 별이(月星) 밝고 촘촘했다(明穊). 오경의 북소리가(五鼓) 울리고서(旣作), 견우성이(牽牛) 한가운데 있자(正中), 공이(公乃) 옷을 갖춰 입고(盛服) 홀을 들고(執笏, 以) 들어가(入) 곧 제사를 지내니(卽事), 문무 관속들도(文武賓屬), 머리를 숙이고(俯首) 자리에 대개하며(聽位), 각자(各) 맡은 일을 집행했다(執其職).
제물은 살찌고(牲肥) 술은 향기로우며(酒香), 술통과 술잔은(樽爵) 깨끗했으며(淨潔), 제사 의식에는(降登) 법도가 있으니(有數), 신이(神) 모두(具) 취하도록 마시고 배불리 먹었다(醉飽). 바다의 모든 신령과(海之百靈) 신비한 유령이(祕怪), 황홀하게 모두 나와서(怳惚畢出), 꿈틀거리며(蜿蜿蜑蜑), 아서(來) 음식을 흠향했다(享飮食). 사당을 닫고(闔廟) 배로 돌아오니(旋艫), 상서로운 바람이(祥飇) 배를 달리게 하고(送颿), 깃발과 휘장이(旗纛旄麾), 날아올라(飛揚) <해를 가려> 어둑어둑해지고(晻藹), 징소리와 북소리가(鐃鼓) 요란하고(嘲轟), 피리 소리와 나팔 소리가(高關) 요란하게 울리고(噭譟), 무인들은(武夫) 힘껏 노를 젓고(奮棹), 악공은(工師) 노래로 화답했다(唱和). 큰 거북과(穹龜) 기다란 고기가(長魚), 앞뒤로 뛰고(踊躍后先), 하늘가와 땅끝이(乾端坤倪), 훤히 트이고(軒豁) 밝게 드러났다(呈露).
* 省牲(성생): 나라의 제사(祭祀)에 쓸 희생(犧牲)을 검사(檢査)하던 일.
* 正中(정중): 한가운데.
* 降登有數(강등유수): 降登은 내려가고 올라오는 것으로 제사의 법도를 말하고 有數는 정해진 수가 있음을 말한다.
* 醉飽(취포): 醉且飽(취차포) 「실컷 마시고 먹어서 취(醉)하고 부름」을 이르는 말.
* 嘲轟(조굉): 큰 소리를 내며 울리다.
* 噭譟(교조): 요란하게 소리 나다.
* 唱和(창화): (악기(樂器)의 곡에 따라) 노래로 화합(和合)함.
* 踊躍(용약): 좋아서 뜀.
* 軒豁(헌활): 훤히 터져 드넓은 모양(模樣).
* 呈露(노정): 드러나거나 나타남. 또는 드러내거나 나타냄.
제사의 효과
祀之之歲, 風災熄滅, 人厭魚蟹, 五穀胥熟. 明年祀歸, 又廣廟宮而大之, 治其庭壇, 改作東西兩序, 齋庖之房, 百用具修. 明年其時, 公又固往, 不懈益虔, 歲仍大和, 耋艾歌詠.
제사를 지낸(祀之之) 해에(歲), 폭풍의 재난이(風災) 없어져서(熄滅), 사람들이(人) 물고기와 게를 실컷 먹었고(厭魚蟹), 오곡이(五穀) 모두(胥) 잘 익었다(熟). 다음 해(明年) 제사 지내고(祀) 돌아와서(歸), 또(又) 사당의 집을 넓히고(廣廟宮而) 크게 지어서(大之), 그 마당과 제단을 수리하고(治其庭壇), 동서 양쪽 방과(東西兩序), 재실과 부엌의 방을(齋庖之房) 다시 짓고(改作), 모든 용구를(百用具) 갖추었다(修). 다음 해(明年) 그때에도(其時), 공이 또(公又) 고집스럽게 가서(固往), 게을리하지 않고(不懈) 더욱 경건하게 하니(益虔), 날씨가(歲) 잇달아(仍) 크게 좋아서(大和), 나이 많은 늙은이들이(耋艾) 노래하고 칭송했다(歌詠).
* 熄滅(식멸): 불이 꺼져 없어짐, 자취도 없이 없애 버림.
자사의 공덕
始公之至, 盡除他名之稅, 罷衣食於官之可去者, 四方之使, 不以資交. 以身爲帥, 燕享有時, 賞與以節, 公藏私蓄, 上下與足. 於是免屬州負逋之緡錢二十有四萬, 米三萬二千斛, 賦金之州耗金, 一歲八百. 困不能償, 皆以丏之, 加西南守長之俸, 誅其尤無良不聽令者, 由是皆自重愼法. 人士之落南不能歸者, 與流徙之冑百二十八族, 用其才良而廩其無告者, 其女子嫁者, 與之錢財, 令無失時. 刑德幷流, 方地數千里, 不識盜賊, 山行海宿, 不擇處所, 事神治人, 可謂備至矣.
처음(始) 공이 왔을 때(公之至), 다른 이름의 세금을(他名之稅) 모두 없애고(盡除), 관에서 의식을 받는 사람 가운데(衣食於官之) 없앨만한 사람을(可去者) 파면하고(罷), 사방의 사신과(四方之使), 재물로(以資) 사귀지 않았다(不交). 몸소(以身) 본보기가 되어(爲帥), 잔치하는 일에(燕享) 때가 있고(有時), 상은(賞) 절도로 주며(與以節), 나라의 창고와(公藏) 개인의 재물이(私蓄), 상하가(上下) 함께 풍족했다(與足).
이에(於是) 속주가(屬州) 빚지고 내지 못한(負逋之) 돈 24만 전과(緡錢二十有四萬), 곡식 3만 2천 곡을(米三萬二千斛) 면제해 주고(免), 부과한 금을(賦金之) 주에서 금을 쓴 것이(州耗金), 일 년에(一歲) 8백이었다(八百). 곤궁해서(困) 갚지 못한 것이(不能償), 모두(皆) 없애주고(以丏之), 서남 수장의 봉록을(西南守長之俸) 더해주고(加), 더욱이(其尤) 불량해서(無良) 령을 듣지 않는 사람을(不聽令者) 처벌하니(誅), 이것을 따라(由是) 모두(皆) 스스로 진중해지고(自重) 법을 삼갔다(愼法).
인사 가운데(人士之) 남으로 떨어져(落南) 돌아가지 못한 사람과(不能歸者, 與) 옮겨 다니는 무리(流徙之冑) 128 족 가운데(百二十八族), 그 재능 있고 훌륭한 살마을(其才良) 등용하고(用而) 하소연할 곳 없는 사람을(其無告者) 구호하니(廩), 그 여자 가운데(其女子) 시집가야 할 사람은(嫁者), 그들에게 돈과 재물을 주고(與之錢財), 때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했다(令無失時). 형벌과 은덕이(刑德) 함께 흐르고(幷流), 사방 땅(方地) 수천 리에서(數千里), 도적을 알지 못하고(不識盜賊), 산에서 가고(山行) 바다에서 묵으면서(海宿), 머물 곳을 가리지 않고(不擇處所), 신을 모시고(事神)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治人), 완전하고 지극했다고 할 수 있다(可謂備至矣).
* 緡錢(민전): 꿰미에 꿴 엽전.
* 丏(면): 없던 것으로 해주다, 면제해 주다, 免과 같다.
* 廩(늠): 곡식을 대주다, 구휼하다.
* 備至(비지): 극진하다.
공의 덕을 비석에 새기다
咸願刻廟石, 以著厥美而繫以詩, 乃作詩. 曰: “南海陰墟, 祝融之宅. 卽祀于旁, 帝命南伯. 吏惰不躬, 正自今公. 明用享錫, 祐我家邦. 惟明天子, 惟愼厥使. 我公在官, 神人致喜. 海嶺之陬, 旣足旣濡. 胡不均弘, 俾執事樞. 公行勿遲, 公無遽歸. 匪我私公, 神人具依.”
모두가(咸) 사당 비석에(廟石) 새겨서(刻, 以)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著厥美而) 시로써 붙이기를(繫以詩) 원하니(願), 이에 시를 지어 말하길(乃作詩, 曰):
“남해의(南海) 그윽한 터는(陰墟), 축융의 집이다(祝融之宅).
곧(卽) 곁에서 제사 지낼 때()祀于旁), 황제가(帝) 남백에게 명령했다(命南伯).
관리들이 게을러(吏惰) 몸소 하지 않았는데(不躬), 지금 공으로부터(自今公) 바르게 되었다(正).
제사를(享錫) 잘 지내서(明用), 우리 집안과 나라를 도우셨다(祐我家邦).
오로지(惟) 밝은 천자가(明天子), 이 관리를 선발했네(惟愼厥使).
우리 공이(我公) 관직에 계시니(在官), 귀신과 사람이(神人) 지극히 기뻐한다(致喜).
바다와 산의 구석이(海嶺之陬), 이미(旣) 풍족하고(足) 이미 편안하다(旣濡).
어찌(胡) 고르게 하고 넓혀서(不均弘), 일의 중추를 맡도록(執事樞) 시키지 않겠는가(俾).
공의 걸음이(公行) 더지디 않게 하고(勿遲), 공에게(公) 급히 돌아가도록 하지 말라(無遽歸). 내가 공을 사사로이 여기는 것이(我私公) 아니라(匪), 귀신과 사람이(神人) 모두(具) 의지하기 때문이다(依).”라고 했다.
* 海嶺(해령): 큰 바다 밑에 산맥(山脈) 모양(模樣)으로 솟은 지형(地形), 남해 바다와 오령산맥(五嶺山脈).
* 俾執事樞(비집사추) : 정치의 중추를 맡기어 행하다.
* 匪(비) : ~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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