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岡之地多竹, 大者如椽. 竹工破之, 刳去其節, 用代陶瓦, 比屋皆然, 以其價廉而工省也. 子城西北隅, 雉堞圮毁, 蓁莽荒穢, 因作小樓二間, 與月波樓通. 遠呑山光, 平挹江瀨. 幽闃遼夐, 不可具狀. 夏宜急雨, 有瀑布聲, 冬宜密雪, 有碎玉聲, 宜鼓琴, 琴調和暢, 宜詠詩, 詩韻淸絶, 宜圍棋, 子聲丁丁然, 宜投壺, 矢聲錚錚然, 皆竹樓之所助也.
황강 땅에는(黃岡之地) 대나무가 많아서(多竹), 큰 것은(大者) 서까래와 비슷하다(如椽). 대나무 장인이(竹工) 그것을 잘라(破之), 그 마디를 없애고(刳去其節), 질기와를 대신해서 쓰고(用代陶瓦), 집집마다(比屋) 그러하니(皆然), 그 값이 싸고(以其價廉而) 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工省也). 자성의(子城) 서북쪽 모퉁이에(西北隅), 낮은 담이(雉堞) 허물어지고(圮毁), 우거진 잡초가(蓁莽) 황폐하니(荒穢), 이에(因) 작은 누각 두 칸을 짓고(作小樓二間), 월파루와(與月波樓) 서로 이었다(通). 멀리(遠) 산빛을 삼키는 듯하고(呑山光), 강여울을 평평하게 뜨는 듯하다(平挹江瀨). 고요하고 아득한 것을(幽闃遼夐), 모두 형상으로 말할 수 없다(不可具狀). 여름이면(夏) 과연(宜) 소나기가 내려(急雨), 폭포수 소리가 있고(有瀑布聲), 겨울이면(冬) 과연 눈이 많이 내려(宜密雪), 취옥 소리가 있는 듯하고(有碎玉聲), 거문고 타면(宜鼓琴), 거문고 곡조가(琴調) 화창하고(和暢), 시를 읊으면(宜詠詩), 시의 운이 맑고 고절하며(詩韻淸絶), 바둑을 두면(宜圍棋), 돌 소리가 맑으며(子聲丁丁然), 투호놀이를 하면(宜投壺), 화살 소리가 쟁쟁하니(矢聲錚錚然), 모두(皆) 대나무 누각이(竹樓之) 돕는 것이다(所助也).
* 陶瓦(도와): 잿물은 덮어 씌워서 구워 만든 기와. 질기와.
* 比屋(비옥): '집집마다'라고 해석한다. 比는 '연이어서'란 뜻이다.
* 圮毁(치첩): 성(城)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敵)을 감시(監視)하거나 공격(攻擊)하거나 한다.
* 荒穢(황예): 거칠고 더러움.
* 和暢(화창): 날씨와 바람이 온화(溫和)하고 맑음.
* 錚錚(쟁쟁): 쇠붙이 따위가 맞부딪쳐 맑게 울리는 소리, 쇠붙이 따위가 맞부딪쳐 맑게 울리는 소리.
公退之暇, 披鶴氅衣, 戴華陽巾, 手執『周易』一卷, 焚香黙坐, 消遣世慮, 江山之外, 第見風帆沙鳥, 煙雲竹樹而已. 待其酒力醒, 茶煙歇, 送夕陽, 迎素月, 亦謫居之勝槪也. 彼齊雲落星, 高則高矣, 井幹麗譙, 華則華矣, 止于貯妓女, 藏歌舞, 非騷人之事, 吾所不取.
업무에서 물러난(公退之) 한가한 때면(暇), 학창의 를 걸치고(披鶴氅衣), 화양건을 쓰고(戴華陽巾), 손에(手) 주역 한 권을 들고(執『周易』一卷), 향 사르며(焚香) 조용히 앉아 있으면(黙坐), 세상의 걱정이 사라지고(消遣世慮), 강산 바깥에(江山之外), 단지(第) 바람을 맞는 배와(風帆) 모래밭의 새(沙鳥) , 연기 같은 구름과(煙雲) 대나무 숲이(竹樹) 보일뿐이다(見而已). 그 술기운이 깨고(其酒力醒), 차 연기가 다하기를(茶煙歇) 기다려(待), 석양을 보내고(送夕陽), 달빛을 맞이하니(迎素月), 또한(亦) 귀양살이의 흥취로다(謫居之勝槪也). 저(彼) 제운루와 낙성루는(齊雲落星), 높이로는 높고(高則高矣), 정간루와 여초루는(井幹麗譙), 화려하기로는 화려하지만(華則華矣), 다만(止) 기녀를 불러 모아(于貯妓女), 춤과 노래를 품었으니(藏歌舞), 시인의 일이 아니고(非騷人之事), 내가 취하지 않을 것이다(吾所不取).
* 鶴氅衣(학창의): 웃옷의 한 가지. 흰 창의에 소매가 넓고 가로 돌아가며 검은 헝겊으로 가를 넓게 꾸밈.
* 消遣(소견): 어떠한 것에 재미를 붙여 심심하지 아니하게 세월(歲月)을 보냄.
* 第見(제견): 第는 '다만, 단지'란 뜻이다.
* 謫居(적거): 귀양살이를 하고 있음.
* 騷人(소인): 시인(詩人)과 문사(文士)를 통틀어 이르는 말. 중국(中國) 초나라(楚--)의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부(離騷賦)>에서 나온 말이다.
吾聞竹工, 云: “竹之爲瓦僅十稔, 若重覆之, 得二十稔.” 噫! 吾以至道乙未歲, 自翰林出滁上, 丙申移廣陵, 丁酉又入西掖, 戊戌歲除日, 有齊安之命, 己亥閏三月到郡, 四年之間, 奔走不暇. 未知明年, 又在何處, 豈懼竹樓之易朽乎. 後之人與我同志, 嗣而葺之, 庶斯樓之不朽也. 咸平二年八月十五日記.
내가 죽공에게 듣기로(吾聞竹工, 云): “대나무로(竹之) 기와를 만든 것은(爲瓦) 거의 십 년을 가고(僅十稔), 만약(若) 거듭 덮으면(重覆之), 20년을 갑니다(得二十稔).”라고 했다. 아(噫)! 내가(吾) 지도 원년 을미년에(以至道乙未歲), 한림원에서 나와(自翰林出) 저주로 갔고(滁上), 병신년에(丙申) 광릉으로 옮겼다가(移廣陵), 정유년에(丁酉) 또(又) 중서성으로 들어가고(入西掖), 무술년(戊戌歲) 섣달그믐에(除日), 제안으로 가라는 명이 있었고(有齊安之命), 기해년 윤 삼월에(己亥閏三月) 제안군에 이르렀으니(到郡), 4년 사이에(四年之間), 분주하게 다니며(奔走) 쉴 틈이 없었다(不暇). 내년에(明年), 또(又) 어느 곳에 있을지(在何處) 알 수 없으니(未知), 어찌(豈) 대나무 누각이(竹樓之) 쉽게 썩는 것을(易朽) 걱정하겠는가(懼乎). 후인이(後之人) 나와 뜻을 같이한다면(與我同志), 이어서(嗣而) 고칠 것이니(葺之), 이 죽루가(斯樓之) 썩지 않기를(不朽) 바란다(庶也). 함평 2년 8월 15일에 쓰다(咸平二年八月十五日記).
* 至道乙未(지도을미): 송 태종 지도 원년(995년)이 을미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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