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蔡澤見逐於趙, 而入韓ㆍ魏, 遇奪釜鬲於涂. 聞應侯任鄭安平ㆍ王稽, 皆負重罪, 應侯內慙. 乃西入秦, 將見昭王, 使人宣言, 以感怒應侯, 曰: “燕客蔡澤, 天下駿雄弘辯之士也, 彼一見秦王, 秦王必相之而奪君位.” 應侯聞之, 使人召蔡澤. 蔡澤入, 則揖應侯, 應侯固不快; 及見之, 又倨. 應侯因讓之, 曰: “子常宣言代我相秦, 豈有此乎?” 對曰: “然.” 應侯曰: “請聞其說.”
01 채택이(蔡澤) 조나라에 쫓겨나고(見逐於趙, 而) 한나라와 위나라에 들어가서(入韓ㆍ魏), 길에서(於涂) 솥까지 빼앗겼다(遇奪釜鬲). 응후가(應侯) 정안평과 왕계를 등용했는데(任鄭安平ㆍ王稽), 모두(皆) 중죄를 짊어지고(負重罪), 응후가(應侯) 속으로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을(內慙) 들었다(聞).
이에(乃) 서쪽으로(西) 진나라에 들어가(入秦), 소왕을 만나려고 하며(將見昭王), 사람을 시켜(使人) 선언하게 해서(宣言, 以) 응후를 화나게 만들려고 말하길(感怒應侯, 曰): “연나라 빈객(燕客) 채택은(蔡澤), 천하의(天下) 뛰어나고 말 잘하는 사인데(駿雄弘辯之士也), 한 번 진왕을 만나면(彼一見秦王), 진왕이(秦王) 반드시(必) 재상으로 삼아(相之而) 그대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다(奪君位).”라고 했다.
응후가 듣고서(應侯聞之), 사람을 시켜(使人) 채택을 불렀다(召蔡澤). 채택이 들어가서(蔡澤入, 則) 응후에게 읍하자(揖應侯), 응후가(應侯) 참으로 불쾌하게 여겼는데(固不快); 그를 만났는데도(及見之), 또 거만했다(又倨).
응후가(應侯) 이에 사양하며 말하길(因讓之, 曰): “그대가(子) 늘(常) 선언하길(宣言) 나를 대신해서(代我) 진나라의 재상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相秦), 아마도(豈) 이런 일이 있었는가(有此乎)?”라고 했다.
대답하길(對曰): “그렇습니다(然).”라고 했다.
응후가 말하길(應侯曰): “청컨대(請)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聞其說).”라고 했다.
* 釜鬲(부력): 모두 취사용 솥의 일종인데, 釜는 다리가 없고 鬲은 세 개의 발이 달렸다.
02 蔡澤曰: “吁, 何君見之晩也? 夫四時之序, 成功者去. 夫人生手足堅强, 耳目聰明, 聖知, 豈非士之所願與?” 應侯曰: “然.” 蔡澤曰: “質仁秉義, 行道施德於天下, 天下懷樂敬愛, 願以爲君王, 豈不辯智之期與?” 應侯曰: “然.” 蔡澤復曰: “富貴顯榮, 成理萬物, 萬物各得其所. 生命壽長, 終其年而不夭傷, 天下繼其統, 守其業, 傳之無窮, 名實純粹, 澤流千世, 稱之而毋絶, 與天下終, 豈非道之符, 而聖人所謂吉祥善事與?” 應侯曰: “然.”
02 채택이 말하길(蔡澤曰): “아(吁), 어찌(何) 그대가 나를 본 것이(君見之) 늦었는가(晩也)? 무릇(夫) 사계절의 순서는(四時之序), 성공하면 물러난다(成功者去). 무릇(夫) 사람의 손발이(人生手足) 강하고(堅强), 군과 귀가 총명해서(耳目聰明), 성을 아는 것은(聖知), 어찌(豈) 선비가 바라는 것이 아니겠는가(非士之所願與)?”라고 했다.
응후가 말하길(應侯曰): “그렇다(然).”라고 했다.
채택이 말하길(蔡澤曰): “인을 바탕으로 삼고(質仁) 의를 가지고(秉義), 천하에(於天下) 도를 행하고 덕을 베풀어(行道施德), 천하가(天下) 즐거움과 공경, 사랑을 품어(懷樂敬愛), 왕으로 삼기를 원하는 것이(願以爲君王), 어찌(豈) 변자와 지자가(辯智之) 기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不期與)?”라고 했다.
응후가 말하길(應侯曰): “그렇다(然).”라고 했다.
채택이 다시 말하길(蔡澤復曰): “부귀하고(富貴) 영예가 드러나고(顯榮), 이치로 만물을 이루어(成理萬物), 만물이(萬物) 각자 제자리를 얻고(各得其所); 목숨이 오래가고(生命壽長), 제 나이에 죽어서(終其年而) 일찍 죽지 않고(不夭傷), 천하가(天下) 그 줄기를 잇고(繼其統), 그 업을 지키고(守其業), 전하는 것에(傳之) 끝이 없고(無窮), 이름과 실질이 순수하고(名實純粹), 은택이 흐르는 것이 천 세이고(澤流千世), 그것에 걸맞고(稱之而) 끊어짐이 없어서(毋絶), 천하와 함께 끝나는 것이(與天下終), 어찌(豈) 도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고(非道之符, 而) 성인이(聖人) 이른바(所謂) 길상선사가 아니겠는가(吉祥善事與)?”라고 했다.
응후가 말하길(應侯曰): “그렇다(然).”라고 했다.
03 澤曰: “若秦之商君ㆍ楚之吳起ㆍ越之大夫種, 其卒亦可願矣?” 應侯知蔡澤之欲困己以說, 復曰: “何爲不可?” 夫公孫鞅事孝公, 極身毋二, 盡公不還私, 信賞罰以致治, 竭智能, 示情素, 蒙怨咎, 欺舊交, 虜魏公子卬, 卒爲秦禽將破敵軍, 攘地千里; 吳起事悼王, 使私不害公, 讒不蔽忠, 言不取苟合, 行不取苟容, 行義不固毁譽, 心有伯主强國, 不辭禍凶; 大夫種
03 채택이 말하길(澤曰): “진나라의 상군과(秦之商君) 초나라의 오기(楚之吳起), 월나라의 대부 문종과 같다면(若越之大夫種), 아마(其) 끝내(卒) 또한(亦) 바랄만하지 않은가(可願矣)?”라고 했다.
응후는(應侯) 채택이(蔡澤之) 자기를 궁지로 몰려고 하며 말하는 것을(欲困己以說) 알고는(知), 다시 말하길(復曰):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何爲不可)? 무릇(夫) 공손앙은(公孫鞅) 효공을 섬기고(事孝公), 몸을 다해서(極身) 두 마음을 품지 않았고(毋二), 공을 다하고(盡公) 사로 돌리지 않았고(不還私), 상벌을 믿음직스럽게 해서(信賞罰以) 다스림에 이르렀고(致治), 지혜와 능력을 다해서(竭智能), 마음일 깨끗한 것을 보였고(示情素), 원망과 꾸짖음을 당하고(蒙怨咎), 오랜 친구에게 속았지만(欺舊交), 위공자 앙을 사로잡고(虜魏公子卬), 마침내(卒) 진나라를 위해(爲秦) 적장을 사로잡고(禽將) 적군을 깨뜨려(破敵軍), 얻은 땅이(攘地) 천 리가 되었고(千里); 오기는(吳起) 도왕을 섬기고(事悼王), 사사로움이(使私) 공을 해치지 않도록 하고(不害公), 참언이(讒) 충성을 덮지 않도록 하고(不蔽忠), 말로(言) 아부하지 않았고(不取苟合), 행동이(行) 비굴하지 않았고(不取苟容), 의를 행하는 것이(行義) 명예를 훼손함을 돌아보지 않았고(不固毁譽), 마음에(心) 주인을 패자로 만들고 나라를 강하게 하는 것이 있으면(有伯主强國), 화와 흉을 사양하지 않았으며(不辭禍凶); 대부 문종은(大夫種) 월왕을 섬겨(事越王), 임금이 떠나(主離) 곤욕을 당할 때(困辱), 충성을 다하고(悉忠而) 풀어지지 않았고(不解), 주인이(主) 비록(雖) 망하고 끊어졌지만(亡絶), 능력을 다하며(盡能而) 떠나지 않고(不離), 공이 많았지만(多功而) 자랑하지 않고(不矜), 부귀했지만(貴富) 교만하고 나태하지 않았다(不驕怠). 만약(若) 이 세 사람과 같다면(此三子者), 의리가 지극하고(義之至), 충성의 절개가 있는 것이다(忠之節也). 그러므로(故) 군자가(君子) 자기를 죽여(殺身以) 이름을 이루는 것이니(成名), 의가 있는 곳이라면(義之所在), 몸이 비록 죽더라도(身雖死), 후회가 없으니(無憾悔), 어찌(何) 하지 못했다고 할만한가(爲不可哉)?”라고 했다.
* 怨咎(원구): 원망(怨望)하고 꾸짖음.
* 苟合(구합): 겨우 합치(合致)함, 아부(阿附)함.
* 苟容(구용): 비굴(卑屈)하게 남의 비위(脾胃)를 맞춤.
04 蔡澤曰: “主聖臣賢, 天下之福也; 君明臣忠, 國之福也; 父慈子孝, 夫信婦貞, 家之福也. 故比干忠不能存殷, 子胥知不能存吳, 申生孝而晉惑亂. 是有忠臣ㆍ孝子, 國家滅亂何也? 無明君賢父以聽之, 故天下以其君父爲戮辱, 憐其臣子. 夫待死而後可以立忠成名, 是微子不足仁, 孔子不足聖, 管仲不足大也?”
04 채택이 말하길(蔡澤曰): “임금이 성스럽고(主聖) 신하가 현명한 것은(臣賢), 천하의 복이고(天下之福也); 임금이 밝고 신하가 충성스러운 것은(君明臣忠), 나라의 복이고(國之福也); 아버지가 자애롭고 아들이 효성스러운 것(父慈子孝), 남편이 믿음직하고 여자가 정조가 있는 것은(夫信婦貞), 집안의 복이다(家之福也). 그러므로(故) 비간의(比干) 충성으로도(忠) 은나라를 보존하지 못했고(不能存殷), 오자서의 지혜로도(子胥知) 오나라를 보존할 수 없었고(不能存吳), 신생이 효성스러웠지만(申生孝而) 진나라가 혼란스러워졌다(晉惑亂). 이것은(是) 충신과 효자가 있더라도(有忠臣ㆍ孝子), 나라가(國家) 망하고 혼란스러워지는 것은(滅亂) 어째서인가(何也)? 밝은 임금과 현명한 아버지가 들을 수 없기 때문이고(無明君賢父以聽之), 그러므로(故) 천하는(天下) 그 임금과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면(以其君父爲戮辱), 그 신하와 자식을 불쌍히 여깁니다(憐其臣子). 무릇(夫) 죽음을 기다리고 나서(待死而後) 충을 세우고 이름을 이룬다면(可以立忠成名), 이것은(是) 미자가(微子) 인을 이루지 못하고(不足仁), 공자가 성을 이루지 못하고(孔子不足聖), 관중이(管仲) 위대하기에 부족한 것이 아닌가요(不足大也)?”라고 했다.
05 於是應侯稱善. 蔡澤得少間, 因曰: “商君ㆍ吳起ㆍ大夫種, 其爲人臣盡忠致功, 則可願矣; 閎夭事文王, 周公輔成王也; 豈不亦忠乎! 以君臣論之, 商君ㆍ吳起ㆍ大夫種, 其可願孰與閎夭ㆍ周公哉!” 應侯曰: “商君ㆍ吳起ㆍ大夫種不若也.” 蔡澤曰: “然則君之主, 慈仁任忠, 不欺舊故, 孰與秦孝公ㆍ楚悼王ㆍ越王乎?” 應侯曰: “未知何如也.”
05 이에(於是) 응후가(應侯) 좋다고 칭찬했다(稱善).
채택이(蔡澤) 잠시 뒤에 말하길(得少間, 因曰): “상군과 오기, 대부 문종은(商君ㆍ吳起ㆍ大夫種), 그 신하가 되어(其爲人臣) 충성을 다해서(盡忠) 공을 이룬 것이라면(致功, 則) 원한 것이고(可願矣); 굉요가 문왕을 섬기고(閎夭事文王), 주공이 성왕을 도운 것이(周公輔成王也); 어찌(豈) 또한 충이 아니겠습니까(不亦忠乎)! 임금과 신하로(以君臣) 그것을 논한다면(論之), 상군과 오기, 대부 문종이(商君ㆍ吳起ㆍ大夫種), 어찌(其) 굉요와 주공과 라면(與閎夭ㆍ周公哉) 누가 원한 것이겠습니까(可願孰)!”라고 했다.
응후가 말하길(應侯曰): “상군과 오기, 대부 문종은(商君ㆍ吳起ㆍ大夫種) 같지 않다(不若也).”라고 했다.
채택이 말하길(蔡澤曰): “그렇다면(然則) 그대의 임금이(君之主), 자애롭고 인자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맡기고(慈仁任忠), 옛 친구를 속이지 않는 것은(不欺舊故), 진효공과 초도왕, 월왕과 비교해서(與秦孝公ㆍ楚悼王ㆍ越王) 누가 더 나은가요(孰乎)?”라고 했다.
응후가 말하길(應侯曰): “어떤지 알 수 없다(未知何如也).”라고 했다.
06 蔡澤曰: “主固親忠臣, 不過秦孝ㆍ越王ㆍ楚悼, 君之爲主正亂ㆍ批患ㆍ折難ㆍ廣地ㆍ殖穀ㆍ富國ㆍ足家ㆍ强主, 威蓋海內, 功章萬里之外, 不過商君ㆍ吳起ㆍ大夫種, 而君之祿位貴盛, 私家之富過於三子, 而身不退, 竊爲君危之.
06 채택이 말하길(蔡澤曰): “임금이(主) 진실로(固) 충신을 친하게 하는 것은(親忠臣), 진효공과 월왕, 초도왕을 넘지 못하지만(不過秦孝ㆍ越王ㆍ楚悼), 그대는(君之) 주인을 위해(爲主) 혼란을 바로잡고(正亂), 걱정을 없애고(批患) 어려움을 해결하고(折難) 땅을 넓히고(廣地) 식량을 늘리고(殖穀)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富國) 집안을 풍족하게 하고(足家) 주인을 강하게 해서(强主), 위엄이(威) 해내를 덮었고(蓋海內), 공이(功) 만리 밖까지 드러났지만(章萬里之外), 상군과 오기, 대부 문종을 넘지 못하고(不過商君ㆍ吳起ㆍ大夫種, 而) 그대의(君之) 녹봉과 지위가(祿位) 귀하고 대단하지만(貴盛), 사가의 부는(私家之富) 세 사람을 넘었는데(過於三子, 而) 몸이(身) 물러나지 않으니(不退), 참으로(竊) 그대가 위험할까 여기는 것입니다(爲君危之).
07 語曰: ‘日中則移, 月滿則虧, 物盛則衰’, 天之常數也. 進退盈縮, 變化, 聖人之常道也. 昔者, 齊桓公九合諸侯, 一匡天下, 至葵丘之會, 有驕矜之色, 畔者九國: 吳王夫差無適於天下, 輕諸侯, 凌齊ㆍ晉, 遂以殺身亡國; 夏育ㆍ太史啓叱呼駭三軍, 然而身死於庸夫此皆乘至盛不及道理也.
07 속담에 이르길(語曰): ‘해가 가운데 이르면(日中則) 지기 시작하고(移), 달이 가득 차면(月滿則) 이지러지고(虧), 만물이 성하면(物盛則) 쇠한다(衰)’라고 한 것은, 하늘의(天之) 정해진 법칙입니다(常數也). 나아가고 물러나고(進退) 가득 차고 줄어드는(盈縮), 변화는(變化), 성인의 정해진 도입니다(聖人之常道也). 옛날(昔者), 제환공이(齊桓公) 제후를 모아서(九合諸侯), 천하를 한 번 바로잡았고(一匡天下), 규구의 회동에 이르러(至葵丘之會), 교만하고 자랑하는 기색이 있어(有驕矜之色), 배반한 것이(畔者) 아홉 나라이고(九國): 오왕 부차에게(吳王夫差) 천하에 적수가 없었는데(無適於天下), 제후를 가벼이 여기고(輕諸侯), 제나라와 진나라를 업신여기다(凌齊ㆍ晉), 마침내(遂) 몸을 죽이고 나라를 망쳤고(以殺身亡國); 하육과 태사 계가(夏育ㆍ太史啓) 호령하여(叱呼) 삼군을 놀라게 했지만(駭三軍), 그렇지만(然而) 몸은(身) 평범한 사람에게 죽임 당했으니(死於庸夫) 이것은 모두(此皆) 지극히 왕성한 것을 올라타지만(乘至盛) 도리에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不及道理也).
08 夫商君爲孝公平權衡, 正度量, 調輕重, 決裂阡陌, 敎民耕戰, 是以兵動而地廣, 兵休而國富, 故秦無敵於天下, 立威諸侯, 功已成, 遂以車裂;
08 무릇(夫) 상군이(商君) 효공을 위해(爲孝公) 권형을 공평하게 하고(平權衡), 도량을 바르게 하고(正度量), 경중을 고르게 하고(調輕重), 경작지의 경계를 찢고(決裂阡陌), 백성에게 농사와 싸움을 가르쳤고(敎民耕戰), 이 때문에(是以) 군대가 움직여서(兵動而) 땅이 넓어졌으며(地廣), 군대가 쉬며(兵休而) 나라가 부유해졌고(國富), 그러므로(故) 진나라에(秦) 천하에 적수가 없었고(無敵於天下), 제후에게 위엄을 세웠지만(立威諸侯), <상앙의> 공이 이미 이루어지고(功已成), 마침내(遂) 거열형에 처해졌고(以車裂);
楚地, 持戟百萬, 白起率數萬之師以與楚戰, 一戰擧鄢郢, 再戰燒夷陵, 南幷蜀ㆍ漢, 又越韓ㆍ魏, 攻强趙, 北阬馬服, 誅屠四十餘萬之衆, 流血成川, 沸聲若雷, 使秦業帝, 自是之後, 趙ㆍ楚懾服, 不敢攻秦者, 白起之勢也, 身所服者七十餘城, 功已成矣, 賜死於杜郵;
초나라의 땅은(楚地), 창을 가진 사람이(持戟) 백만이었지만(百萬), 백기가(白起) 수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率數萬之師以) 초나라와 싸워(與楚戰), 사움 한 번에(一戰) 언과 영을 함락시켰고(擧鄢郢), 다시 싸워(再戰) 이릉을 불태우고(燒夷陵), 남으로(南) 촉과 한을 병합하고(幷蜀ㆍ漢), 또(又) 한과 위를 넘어(越韓ㆍ魏), 강한 조나라를 공격하고(攻强趙), 북으로(北) 마복을 항복시키고(阬馬服), 40여 만의 병사를 죽여서(誅屠四十餘萬之衆), 흐르는 피가(流血) 내를 이루고(成川), 들끓는 소리가(沸聲) 우레와 같아서(若雷), 진나라로 하여금(使秦) 제업을 이루게 하고(業帝), 이로부터 그 뒤로(自是之後), 조나라와 초나라가(趙ㆍ楚) 두려워하며 복종하고(懾服), 감히 진나라를 공격하지 못한 것은(不敢攻秦者), 백기의 세력이니(白起之勢也), 몸소(身) 복종시킨 것이(所服者) 70여 성이었지만(七十餘城), 공이 이미 이루어지고서(功已成矣), 두우에서 죽음을 받았고(賜死於杜郵);
* 阡陌(천맥): 밭 사이의 길. 남북(南北)으로 난 것을 천(阡), 동서(東西)로 난 것을 맥(陌)이라 함.
* 懾服(섭복): 두려워서 복종(服從)함.
09 吳起爲楚悼罷無能, 廢無用, 損不急之官, 塞私門之請, 壹楚國之俗, 南攻楊越, 北幷陳ㆍ蔡, 破橫散從, 使馳說之士, 無所開其口, 功已成矣, 卒支解; 大夫種爲越王墾草刱邑, 辟地殖穀, 率四方士, 上下之力, 以禽勁吳, 成霸功, 勾踐終棓而殺之.
09 오기가(吳起) 초나라 도왕을 위해(爲楚悼) 무능한 사람을 물리치고(罷無能), 쓸모없는 자리를 없애고(廢無用), 급하지 않은 관직을 덜어내고(損不急之官), 사문의 청을 막고(塞私門之請), 초나라의 풍속을 하나로 만들어(壹楚國之俗), 남으로(南) 양성을 공격하고(攻楊越), 북으로(北) 진과 채를 병합하고(幷陳ㆍ蔡), 연횡을 깨뜨리고(破橫) 합종을 흩어버려(散從), 말하는 사로 하여금(使馳說之士), 입을 열 곳이 없도록 만들었지만(無所開其口), 공이 이미 이루어지고(功已成矣), 마침내(卒) 사지가 찢겼고(支解); 대부 문종은(大夫種) 월왕을 위해(爲越王) 땅을 개간하고 식량을 늘렸고(墾草刱邑, 辟地殖穀), 사방의 사를 이끌고(率四方士), 상하의 힘으로(上下之力, 以) 강한 오나라 왕을 사로잡았지만(禽勁吳), 패업이 이루어지고(成霸功), 구천이(勾踐) 끝내(終) 배반하고 죽였습니다(棓而殺之).
10 此四子者, 成功而不去, 禍至於此. 此所謂信而不能詘, 往而不能反者也. 范蠡知之, 超然避世, 長爲陶朱. 君獨不觀博者乎? 或欲分大投, 或欲分功, 此皆君之所明知也. 今君相秦, 計不下席, 謀不出廊廟, 坐制諸侯, 利施三川ㆍ以實宜陽, 決羊腸之險, 塞太行之口, 又斬范ㆍ中行之途, 棧道千里於蜀ㆍ漢, 使天下皆畏秦. 秦之欲得矣, 君之功極矣, 此亦秦之分功之時也.
10 이 네 사람은(此四子者), 공을 이루었지만(成功而) 떠나지 않아서(不去), 화가(禍)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至於此). 이것이(此) 이른바(所謂) 펼줄 알지만(信而) 굽힐줄 모르고(不能詘), 갔지만(往而) 돌아오지 못하는 것입니다(不能反者也). 범려는(范蠡) 이것을 아고(知之), 초연히(超然) 세상을 피해(避世), 오랫동안(長) 도주공이 되었습니다(爲陶朱). 그대가(君) 오직(獨) 도박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까(不觀博者乎)? 크게 이겼으면 하기도 하고(或欲分大投), 이긴 것을 나누어 가지려고도 하니(或欲分功), 이것은 모두(此皆) 그대가(君之) 잘 아는 것입니다(所明知也). 지금(今) 그대가(君) 진나라에서 재상에 있으면서(相秦), 계책은(計) 자리를 뜨지 않고(不下席), 모책은(謀) 조정을 나서지 않고도(不出廊廟), 앉아서(坐) 제후를 제압하고(制諸侯), 이익은(利) 삼천에 시행되고(施三川以) 의양을 채우며(實宜陽), 양장의 험한 길을 열어(決羊腸之險), 태행의 입구를 막고(塞太行之口), 또(又) 범씨와 중행씨의 길을 잘로(斬范ㆍ中行之途), 잔도가(棧道) 촉과 한에 천리가 이어지고(千里於蜀ㆍ漢), 천하로 하여금(使天下) 모두(皆) 진나라를 두려워하도록 만들었습니다(畏秦). 진나라가(秦之) 얻으려는 것은(欲得矣), 그대의 공이(君之功) 끝까지 이루었으니(極矣), 이것은 또한(此亦) 진나라가 공을 나눌 때입니다(秦之分功之時也).
* 棧道(잔도): 험(險)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 선반처럼 달아서 낸다.
11 如是不退, 則商君ㆍ白公ㆍ吳起ㆍ大夫種是也. 君何不以此時歸相印, 讓賢者授之? 必有伯夷之廉, 長爲應侯, 世世稱孤, 而有喬ㆍ松之壽, 孰與以禍終哉? 此則君何居焉?” 應侯曰: “善.” 乃延入坐爲上客.
11 이와 같은데도(如是) 물러나지 않는다면(不退, 則) 상군과 백공, 오기, 대부 문종이(商君ㆍ白公ㆍ吳起ㆍ大夫種) 이것입니다(是也). 그대는(君) 어찌(何) 이때에(以此時) 재상의 인수를 돌려주어(歸相印), 현자에게 양보하여(讓賢者) 받도록 하지 않습니까(不授之)? 반드시(必) 백이의 청렴이 있고(有伯夷之廉), 오랫동안(長) 응후가 되어(爲應侯), 대대로(世世) 고를 칭하고(稱孤, 而) 교와 송의 수명이 있을 것이니(有喬ㆍ松之壽), 화로 마치는 것과 더불어(與以禍終) 무엇이 좋은가요(孰哉)? 여기에서(此則) 그대는(君) 어찌 처신할 것인가요(何居焉)?”라고 했다.
응후가 말하길(應侯曰): “좋다(善).”라고 했다. 이에(乃) 안으로 들여(延入) 앉히고(坐) 상객으로 삼았다(爲上客).
12 後數日, 入朝言於秦昭王曰: “客新有從山東來者蔡澤, 其人辯士, 臣之見人甚衆, 莫有及者, 臣不如也.” 秦昭王召見, 與語, 大說之, 拜爲客卿. 應侯因謝病, 請歸相印. 昭王彊起應侯, 應侯遂稱篤, 因免相. 昭王新說蔡澤計畫, 遂拜爲秦相, 東收周室.
12 며칠 뒤(後數日), 조정에 들어가(入朝) 소왕에게 말하길(言於秦昭王曰): “빈객 가운데 새로이(客新) 산동에서 온 사람이 있어(有從山東來者) 채택이라 하는데(蔡澤), 그 사람이(其人) 말 잘하는 사이고(辯士), 신이(臣之) 사람을 본 것이(見人) 매우 많은데(甚衆), 누구도(莫) 미치는 사람이 있지 않으니(有及者), 저도(臣) 그보다 못합니다(不如也).”라고 했다.
진소왕이 불러 만나서(秦昭王召見), 함께 이야기하고(與語), 크게 기뻐하며(大說之), 벼슬을 주어(拜) 객경으로 삼았다(爲客卿). 응후가(應侯) 병을 핑계로(因謝病), 재상의 인수를 돌려주기를 청했다(請歸相印). 소왕이(昭王) 강하게(彊) 응후를 일어나도록 했지만(起應侯), 응후가(應侯) 끝내(遂) 병이 중하다고 일러서(稱篤), 이에(因) 재상직을 면했다(免相). 소왕이(昭王) 새로이(新) 채택의 계획을 기뻐하고(說蔡澤計畫), 마침내(遂) 벼슬을 내려(拜) 진나라 재상으로 삼았고(爲秦相), 동쪽으로(東) 주나라 왕실을 거두었다(收周室).
13 蔡澤相秦王數月, 人或惡之. 懼誅, 乃謝病歸相印, 號爲剛成君. 秦十餘年, 昭王ㆍ孝文王ㆍ莊襄王, 卒事始皇帝. 爲秦使於燕, 三年而燕使太子丹入質於秦.
13 채택이(蔡澤) 진날에서 재상이 되고(相秦王) 몇 달이 지나(數月), 사람들 가운데 혹(人或) 그를 비방했다(惡之). 죽임 당할까 두려워하며(懼誅), 이에(乃) 병을 핑계로(謝病) 재상의 인수를 돌려주니(歸相印), 호를(號) 강성군이라 했다(爲剛成君). 진나에서(秦) 10여 년을 지내면서(十餘年), 소왕과 효문왕, 장양왕을 지나(昭王ㆍ孝文王ㆍ莊襄王), 마침내(卒) 시황제를 섬겼다(事始皇帝). 진나라 사신이 되어(爲秦使) 연나라에서(於燕), 3년이 지나(三年而) 연나라에서(燕) 태자 단으로 하여금(使太子丹) 진나라에 인질로 들어오도록 했다(入質於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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