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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95] 소식(蘇軾) 육일거사집서(六一居士集序): 욱일거사 문집의 서문

by प्रज्ञा 2025.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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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言有大而非誇, 達者信之, 衆人疑焉. 孔子曰: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孟子曰: “禹抑洪水, 孔子作『春秋』, 而余距楊墨.” 蓋以是配禹也. 文章之得喪, 何與於天, 而禹之功, 與天之幷, 孔子孟子以空言配之, 不已誇乎.

무릇(夫) 말에(言) 크지만 공허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有大而非誇), 사리에 통달한 사람은(達者) 그것을 믿지만(信之), 보통사람은(衆人) 의심한다(疑焉).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하늘이(天之) 장차(將) 이 문을 없애려고 한다면(喪斯文也), 나중에 죽을 사람이(後死者) 이 문에(於斯文)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不得與也).”라고 했다.

맹자가 말하길(孟子曰): “우임금이(禹) 홍수를 억제하고(抑洪水), 공자가(孔子) 춘추를 지었고(作『春秋』, 而) 나는(余) 양주와 묵적을 막을 것이다(距楊墨).”라고 했다.

대개(蓋) 이 때문에(以是) 우임금에 짝한다(配禹也). 문장을(文章之) 잃고 얻는 것이(得喪), 어찌(何) 하늘과 관계있고(與於天, 而) 우임금의 공이(禹之功), 하늘과 함께(與天之) 나란할 수 있지만(幷), 공자와 맹자가(孔子孟子) 공허한 말로(以空言) 그와 짝하는 것은(配之), 과장된 것이 아닌가(不已誇乎).

 

自『春秋』作而亂臣賊子懼, 孟子之言行, 而楊墨之道廢, 天下以爲是固然, 而不知大其功. 孟子旣沒, 有申ㆍ商ㆍ韓非之學, 違道而趨利, 殘民以厚生(主), 其說至陋也, 而士以是, 罔其上, 上之人僥倖一切之功, 靡然從之. 而世無大人先生如孔子ㆍ孟子者, 推其本末, 權其禍福之輕重, 以救其惑. 故其學遂行, 秦以是喪天下, 陵夷至於勝廣ㆍ劉項之禍, 死者十八九. 天下蕭然, 洪水之患, 蓋不至此也.

춘추를 지은 때로부터(自『春秋』作而) 난신적자가(亂臣賊子) 두려워했고(懼), 맹자의 말이(孟子之言) 행해지자(行, 而) 양주와 묵적의 도가(楊墨之道) 없어졌지만(廢), 천하는(天下) 이것이 본래 그렇다고(是固然) 여기고(以爲, 而) 그 공을 크게 여길 줄 몰랐다(不知大其功). 맹자가 죽고 나서(孟子旣沒), 신불해와 상앙, 한비자의 학문이 있어(有申ㆍ商ㆍ韓非之學), 도를 어기고(違道而) 이익을 좇아(趨利), 백성을 해쳐(殘民以) 임금을 잘살도록 했으니(厚生(主)), 그 설이(其說) 지극히 비루하고(至陋也, 而) 사가 이 때문에(士以是), 그 윗사람을 속이고(罔其上), 윗사람은(上之人) 일체의 공을(一切之功) 요행으로 바라고(僥倖), 모두가(靡然) 그것을 따랐다(從之). 그러나(而) 세상에(世) 큰 선생으로(大人先生) 공자와 맹자처럼(如孔子ㆍ孟子者), 그 근본과 말단을 미루어(推其本末), 그 화복의 경중을 헤아리고(權其禍福之輕重, 以) 그 미혹을 구할 사람이(救其惑) 없었다(無). 그러므로(故) 그 학문이(其學) 마침내 행해져서(遂行), 진나라가(秦) 이 때문에(以是) 천하를 잃었고(喪天下), 진승과 오광, 유방과 항우의 혼란에 이르러(至於勝廣ㆍ劉項之禍) 쇠퇴했고(陵夷), 죽은 사람이(死者) 열에 여덟아홉 명이었다(十八九). 천하가 숙연해지고(天下蕭然), 홍수의 환란은(洪水之患), 대개(蓋) 이것에 이르지 못했다(不至此也).

 

* 僥倖(요행): 행복()을 바람, 뜻밖에 얻는 행운(), 분에 넘치는 결과를 바라다.

* 陵夷(능이): ‘구릉()이 세월()이 지나면서 평평()해진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성()하다가 나중에는 쇠퇴(退)함을 이르는 말.

 

方秦之未得志也, 使復有一孟子, 則申韓爲空言, 作於其心, 害於其事, 作於其事, 害於其政者, 必不至若是烈也. 使楊墨得志於天下, 其禍豈減於申韓哉. 由此言之, 雖以孟子配禹, 可也.

바야흐로(方) 진나라가(秦之) 뜻을 얻지 못했을 때(未得志也), 다시 한 명의 맹자가 있었다면(復有一孟子, 則) 신불해와 한비자는(申韓) 공허한 말이 되도록 만들어(使爲空言), 그 마음에 일어나서(作於其心), 그 일에 해를 끼치고(害於其事), 그 일에 일어나서(作於其事), 그 정치에 해를 끼치는 것이(害於其政者), 반드시(必) 이와 같은 맹렬함에(若是烈)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不至也). 만약(使) 양주와 묵적이(楊墨) 천하에 뜻을 얻었다면(得志於天下), 그 화가(其禍) 어찌(豈) 신불해와 한비보다(於申韓) 적겠는가(哉). 이것으로 말하면(由此言之), 비록(雖) 맹자가 우임금과 짝하더라도(以孟子配禹), 괜찮다(可也).

 

太史公曰: “蓋公言黃老, 賈誼晁錯, 明申ㆍ韓.” 錯不足道也, 而誼亦爲之, 余以是, 知邪說之移人, 雖豪傑之士, 有不免者, 況衆人乎. 自漢以來, 道術不出於孔氏, 而亂天下者多矣. 晉以老莊亡, 梁以佛亡, 莫或正之, 五百餘年而後, 得韓愈, 學者以愈配孟子, 或庶幾焉.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합공은(蓋公) 황제와 노자를 말했고(言黃老), 가의와 조조는(賈誼晁錯), 신불해와 한비자를 밝혔다(明申ㆍ韓).”라고 했다. 조조는(錯) 말할 것이 못되지만(不足道也, 而) 가의도 또한(誼亦) 그러했으니(爲之), 내가(余) 이 때문에(以是), 사설이(邪說之) 사람을 옮기도록 한 것을(移人) 알 수 있고(知), 비록(雖) 뛰어난 선비라도(豪傑之士), 면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니(有不免者), 하물며(況) 보통 사람은 어떻겠는가(衆人乎). 동한 이래로(自漢以來), 도와 술이(道術) 공자에게 나오지 않고(不出於孔氏, 而) 천하를 혼란스럽게 한 것이(亂天下者) 많았다(多矣). 진나라가(晉) 노장 때문에(以老莊) 망했고(亡), 양나라가(梁) 불교 때문에 망했고(以佛亡), 누구도(莫)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고(或正之), 오백여 년이 지나(五百餘年而後), 한유를 얻어(得韓愈), 학자가(學者) 한유를(以愈) 맹자에 짝했으니(配孟子), 혹(或) 비거의 비슷하다(庶幾焉).

 

愈之後三百有餘年而後, 得歐陽子, 其學推韓愈ㆍ孟子, 以達於孔氏, 著禮樂仁義之實, 以合於大道. 其言簡而明, 信而通, 引物連類, 折之於至理, 以服人心, 故天下翕然師尊之. 自歐陽子之存, 世之不悅者, 譁而攻之, 能折困其身, 而不能屈其言. 士無賢不肖, 不謀而同曰: “歐陽子今之韓愈也.”

한유의 뒤로(愈之後) 삼백 여 년이 지나(三百有餘年而後), 구양자를 얻었고(得歐陽子), 그 배움이(其學) 한유와 맹자를 미루어(推韓愈ㆍ孟子, 以) 공자에게 이르렀고(達於孔氏), 예악과 인의의 실질을(禮樂仁義之實) 드러내서(, 以) 대도에 맞도록 했다(合於大道). 그 말이(其言) 간략하고 밝으며(簡而明), 믿을만하고 통해서(信而通), 사물을 끌어(引物) 비슷한 것으로 이어서(連類), 지극한 이치에 절충하니(折之於至理, 以) 사람의 마음을 감복시켰고(服人心), 그러므로(故) 천하가(天下) 모두(翕然) 스승으로 존경했다(師尊之). 구양자가 있고부터(自歐陽子之存), 세상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世之不悅者), 시끄럽게(譁而) 공격하고(攻之), 그 몸을(其身) 곤경에 빠드릴 수 있었지만(能折困, 而) 그 말을 굽히도록 하지 못했다(不能屈其言). 선비 가운데(士) 현명한 사람과 못난 사람 없이(無賢不肖), 모의하지 않고(不謀而) 같이 말하길(同曰): “구양자는(歐陽子) 지금의(今之) 한유다(韓愈也).”라고 했다.

 

* 翕然(흡연): 대중()의 의사()가 한 곳으로 쏠리는 정도()가 대단한 모양().

 

宋興七十餘年, 民不知兵, 富而敎之, 至天聖景祐極矣, 而斯文終有愧於古, 士亦因陋守舊, 論卑而氣弱. 自歐陽子出, 天下爭自濯磨, 以通經學古爲高, 以救時行道爲賢, 以犯顔敢諫爲忠, 長育成就, 至嘉祐末, 號稱多士, 歐陽子之功爲多. 嗚呼! 此豈人力也哉. 非天其孰能使之.

송나라가 일어난 것이(宋興) 70여 년이 되어(七十餘年), 백성은(民) 군사일을 알지 못하고(不知兵), 부유하고 가르침을 받아서(富而敎之), 천성과 경우 연간에 이르러(至天聖景祐) 극치를 이루었고(極矣, 而) 이 문이 끝내(斯文終) 옛날에 비해(於古) 부끄러운 점이 있으니(有愧), 선비도 또한(士亦) 비루함을 따라(因陋) 옛것을 지키고(守舊), 논의가 비루하고(論卑而) 기운이 약해졌다(氣弱). 구양자가 나오고부터(自歐陽子出), 천하가(天下) 자기를 갈고닦기를(自濯磨) 다투었고(, 以) 경에 통달하고(通經) 옛것을 공부하는 것을(學古) 고상하게 여기고(爲高, 以) 시대를 구하고(救時) 도를 행하는 것을(行道) 현명하다고 여기고(爲賢, 以) <임금의> 안색을 범하는 것을(犯顔敢諫) 충으로 여기고(爲忠), 자라고(長育) 이룸이 있어(成就), 가우 말기에 이르러(至嘉祐末), 선비가 많다고 일컬어졌으니(號稱多士), 구양자의 공이(歐陽子之功) 많다(爲多). 아(嗚呼)! 이것이(此) 어찌(豈) 사람의 힘이겠는가(人力也哉). 하늘의 힘이 아니면(非天) 그 누가(其孰) 할 수 있었겠는가(能使之).

 

歐陽子歿十有餘年, 士始爲新學, 以佛老之似, 亂周孔之實. 識者憂之, 賴天子明聖, 詔修取士法, 風厲學者, 專治孔氏, 黜異端, 然後風俗一變. 考論師友淵源所自, 復知誦習歐陽子之書.

구양자가(歐陽子) 죽고(歿) 십여 년이 지나고(十有餘年), 선비가(士) 새로운 학문하기를(爲新學) 시작해서(始, 以) 불교와 도교가 비슷하게(佛老之似), 주공과 공자의 내용을 어지럽혔다(亂周孔之實). 식자가(識者) 이것을 걱정하고(憂之), 천자의 밝은 성에 의지해서(賴天子明聖), 칙령으로(詔) 선비를 뽑는 법을(取士法) 보완하고(修), 학자를 격려해서(風厲學者), 공자만을 오로지 공부하도록 해서(專治孔氏), 이단을 몰아내고 나서(黜異端, 然後) 풍속이 한 번 변했다(風俗一變). 스승과 벗의 연원이(師友淵源) 비롯된 것을(所自) 밝혀 논하고(考論), 다시(復) 구양자의 글을(歐陽子之書) 외고 익힐 줄 알게 되었다(知誦習).

 

* 風厲(풍려): 썩 부지런하여서 게으르지 아니함.

 

予得其詩文七百六十六篇於其子棐, 乃次而論之曰: “歐陽子論大道似韓愈, 論事似陸贄, 記事似司馬遷, 詩賦似李白.” 此非予言也, 天下之言也. 歐陽子諱修字永叔, 旣老自謂六一居士云.

내가(予) 그 아들 비에게서(於其子棐) 그 시문(其詩文) 760여 편을 얻어서(七百六十六篇), 이에(乃) 차례대로 엮어(次而) 논하길(論之曰): “구양자가(歐陽子) 큰 도를 논하는 것은(論大道) 한유와 비슷하고(似韓愈), 일은 논하는 것은(論事) 육지와 비슷하고(似陸贄), 일을 기록한 것은(記事) 사마천과 비슷하고(似司馬遷), 시부를 지은 것은(詩賦) 이백과 비슷하다(似李白).”라고 했다.

이것은(此) 내 말이 아니고(非予言也), 천하의 말이다(天下之言也). 구양자가(歐陽子) 이름이 수이고(諱修) 자는 영숙이며(字永叔), 늙은 뒤에(旣老) 스스로(自) 육일거사라고 했다(謂六一居士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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