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129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17] 진사도(陳師道) 진소유자서(秦少游字敍): 진소유의 자에 대해서 凞寧元豊之間, 眉蘇公之守徐, 余以民事太守, 間見如客. 揚秦子過焉, 置醴備樂, 如師弟子. 其時余病臥旅中, 聞其行道雍容, 逆者旋目, 論說偉辨, 坐者屬耳. 世以此奇之, 而亦以此疑之, 惟公以爲傑士. 是後數歲, 從吾歸, 見于廣陵逆旅之家, 夜半語未卒別去, 余亦以謂當建侯萬里外也.희녕, 원풍 연간에(凞寧元豊之間), 미소공이(眉蘇公之) 서주에서 태수를 할 때(守徐), 내가(余) 백성으로(以民) 태수를 섬겼고(事太守), 사이에(間) 빈객처럼 만났다(見如客). 양진자가(揚秦子) 그곳에 들르면(過焉), 술자리를 벌이고(置醴) 좋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備樂), 마치 사제지간 같았다(如師弟子). 그때(其時) 내가(余) 여행 중에 병으로 누워 있었는데(病臥旅中), 듣기로(聞) 그가(其) 길 떠나는 것이(行道) 대단해서(雍容), .. 2025. 3. 31.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16] 진사도(陳師道) 사정기(思亭記): 부모를 생각하는 정자 甄故徐富家, 至甄君, 始以明經敎授, 鄕稱善人而家益貧, 更數十歲, 不克葬, 乞貸邑里, 葬其父母兄弟凡幾喪, 邑人憐之, 多助之者. 旣葬益樹以木, 作室其旁而問名於余, 余以謂: “目之所視而思從之. 視干戈則思鬪, 視刀鋸則思懼, 視廟社則思敬, 視第家則思安, 夫人存好惡喜懼之心, 物至而思, 固其理也. 今夫升高而望松梓, 下丘壟而行墟墓之間, 荊棘莽然, 狐兎之迹交道, 其有不思其親者乎. 請名之曰: ‘思亭.’견씨는(甄) 본래(故) 서주의 부잣집이고(徐富家), 견군에 이르러(至甄君), 비로소(始) 경에 밝아(以明經) 가르쳤으니(敎授), 마을 사람들이(鄕)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는데(稱善人而) 집안이 더욱 가난해져(家益貧), 다시(更) 수십 년이 지나(數十歲), 장사를 지내지 못하고(不克葬), 마을에 빌려줄 것을 구걸해서(乞貸邑里.. 2025. 3. 31.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15] 진사도(陳師道) 왕평보문집후서(王平甫文集後序): 왕평보 문집의 발문 歐陽永叔, 謂梅聖兪曰: “世謂詩能窮人, 非詩之窮, 窮則工也.” 聖兪以詩名家, 仕不前人, 年不後人, 可謂窮矣.구양영숙이(歐陽永叔), 매성유를 평하여 말하길(謂梅聖兪曰): “세상에서(世)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한다고 말하지만(謂詩能窮人), 시가 궁하게 만드는 것이(詩之窮) 아니고(非), 궁하면(窮則) 뛰어나게 된다(工也).”라고 했다. 성유가(聖兪) 시로(以詩) 이름을 날렸지만(名家), 벼슬은(仕) 남보다 앞서지 못했고(不前人), 나이는(年) 남보다 뒤에 서지 못했으니(不後人), 궁했다고 할만하다(可謂窮矣). 其同時, 有王平甫者, 臨川人也. 年過四十, 始名薦書, 群下士, 歷年未幾, 復解章綬, 歸田里, 其窮甚矣. 而文義蔚然, 又能於詩. 惟其窮愈甚, 故其得愈多, 信所謂人窮而後工也. 雖然天之命物, 用之不全, 實者不.. 2025. 3. 31.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14] 진사도(陳師道) 상림수주서(上林秀州書): 임수주에게 보내는 편지 宗周之制, 士見于大夫卿公, 介以厚其別, 詞以正其名, 贄以效其情, 儀以致其敬, 四者備矣, 謂之禮成. 士之相見, 如女之從人, 有願見之心, 而無自行之義. 必有紹介爲之前焉, 所以別嫌而愼微也. 故曰: “介以厚其別.”  주나라 제도에(宗周之制), 선비가(士) 대부와 공경을 만날 때는(見于大夫卿公), 소개로(介以) 그 구별을 두텁게 하고(厚其別), 말로(詞以) 그 명분을 바르게 하고(正其名), 폐백으로(贄以) 그 정성을 다하고(效其情), 예의로(儀以) 그 공경을 지극하게 했으니(致其敬), 네 가지가(四者) 갖추어진 것을(備矣), 이것을 예가 이루어졌다고 했다(謂之禮成). 선비가(士之) 서로 만날 때는(相見), 마치(如) 여자가(女之) 남을 따르는 것처럼(從人),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더라도(有願見之心, 而) 스스로.. 2025. 3. 30.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13] 진사도(陳師道) 여진소유서(與秦少游書): 진소유에게 보내는 글 辱書喩以章公, 降屈年德, 以禮見招, 不佞何以得此? 豈侯嘗欺之耶. 公卿不下士尙矣, 乃特見於今而親於其身, 幸孰大焉.편지에서(辱書) 장공께서(喩以章公), 나이와 덕을 굽히고(降屈年德), 예로(以禮) 만나자고 불렀지만(見招), 제가(不佞) 어찌(何以) 이런 것을 얻겠습니까(이런 대접을 받겠습니까)(得此)? 어찌(豈) 공이 일찍이(侯嘗) 그것을 속인 것인가요(欺之耶). 공경이(公卿) 선비를 낮게 대하지 않는 것은(不下士) 오래되었지만(尙矣), 이에(乃) 더욱(特) 지금에 보고(見於今而) 그 몸에 가까워지니(親於其身), 다행인 것이(幸) 무엇이 더 크겠습니까(孰大焉). * 辱書(욕서): 상대편을 높이어 그가 자기에게 쓴 편지를 이르는 말. 辱字. * 不佞(불녕): ‘편지글(便紙-)에서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 2025. 3. 30.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12] 장뢰(張耒) 답이추관서(答李推官書): 이추관에게 답하는 글 南來多事, 久廢讀書, 昨送簡人還, 忽辱惠及所作「病暑賦」及雜詩, 誦詠愛歎, 旣有以起竭涸之思, 而又喜世之學者, 比來稍稍追古人之文章, 述作體製, 往往已有所到也, 耒不才. 少時喜爲文辭, 與人遊, 又喜論文字, 謂之嗜好則可, 以爲能文則世自有人, 決不在我.남으로 와서(南來) 일이 많았고(多事), 오랫동안(久) 독서를 하지 못했는데(廢讀書), 어제(昨) 편지 심부름하는 사람이 돌아와(送簡人還), 문득(忽) 외람되이(辱惠) 병서부와 여러 시 지은 것을(所作「病暑賦」及雜詩) 가져다주니(及), 외고 읊조리고(誦詠) 아끼고 탄식하다(愛歎), 다해서 마른 것 같은 생각을(竭涸之思) 일어나게 할 수 있고(旣有以起, 而) 또(又) 세상의 학자가들이(世之學者), 근래에(比來) 점점(稍稍) 옛사람의 문장을 좇아(追古人之文章), 글을 .. 2025. 3. 25.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11] 장뢰(張耒) 서오대곽숭도전후(書五代郭崇韜傳後): 곽승도 열전에 붙이는 글 自古大臣, 權勢已隆極, 富貴已亢滿, 前無所希, 則退爲身慮, 自非大姦雄包異志, 與夫甚庸駑昏闟茸, 鮮有不然者. 其爲謀實難, 不憂思之不深, 計之不工. 然異日釁之所起, 往往自夫至深至工, 是故莫若以正. 예로부터(自古) 대신은(大臣), 권세가(權勢) 이미 높고 지극하며(已隆極), 부귀가(富貴) 이미 가득 차서(已亢滿), 앞으로(前) 바라는 것이 없으면(無所希, 則) 물러나(退) 몸을 위해(爲身) 생각했고(慮), 스스로(自) 큰 간웅으로(大姦雄) 다른 뜻을 품었거나(包異志, 與) 매우 평범하고(夫甚庸) 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이(駑昏闟茸) 아니라면(非), 그렇지 않음이 있는 사람은(有不然者) 드물다(鮮). 그 모의하는 것은(其爲謀) 실제로 어려우니(實難), 걱정하고 생각한 것이(憂思之) 깊지 않은 것도 아니고(不不深),.. 2025. 3. 24.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10] 장뢰(張耒) 송진소장서(送秦少章序): 진소장을 떠나며 『詩』不云乎. “蒹葭蒼蒼, 白露爲霜.” 夫物不受變則材不成, 人不涉難則智不明. 季秋之月, 天地始肅, 寒氣欲至, 方是時, 天地之間, 凡植物, 出於春夏雨露之餘, 華澤充溢, 支節美茂, 及繁霜夜零, 旦起而視之, 如戰敗之軍, 卷旗棄鼓, 裹瘡而馳, 吏士無人色, 豈特如是而已. 於是天地閉塞而成冬, 則摧敗拉毁之者過半, 其爲變亦酷矣.시에서(『詩』) 말하지 않던가(不云乎). “갈대가(蒹葭) 창창(무성)한데(蒼蒼), 흰 이슬(白露) 서리가 되었다(爲霜).”라고 했다. 무릇(夫) 만물이(物)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不受變則) 재목이 이루어지지 않고(材不成), 사람이(人) 어려움을 건너지 않으면(不涉難則) 지혜가 밝아지지 않는다(智不明). 늦가을 달이 뜨고(季秋之月), 천지가(天地) 오그라들기 시작하고(始肅), 찬기운이 오려고 .. 2025. 3. 23.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09] 장뢰(張耒) 약계(藥戒): 약에서 얻는 교훈 客有病痞, 積於其中者, 伏而不能下, 自外至者, 捍而不得納. 從醫而問之, 曰: “非下之不可.” 歸而飮其藥, 旣飮而暴下, 不終日而向之伏者散而無餘, 向之捍者柔而不支, 焦鬲導達, 呼吸開利, 快然若未始有疾者, 不數日, 痞復作, 投以故藥, 其快然也亦如初.손님 가운데(客) 창증에 걸린 사람이 있어(有病痞), 뱃속에 쌓인 것들이(積於其中者), 체해서(伏而) 내려가지 않고(不能下), 바깥에서 온 것도(自外至者), 막혀서(捍而) 받아들이지 못했다(不得納). 의원에게(從醫而) 물으니(問之), 말하길(曰): “내려보내지 않으면(非下之) 안된다(不可).”라고 했다. 돌아와(歸而) 그 약을 마시니(飮其藥), 마시고 나서(旣飮而) 갑자기 내려가(暴下), 하루가 지나지 않아(不終日而) 전에(向之) 쌓인 것이 흩어지고(伏者散而) 남은.. 2025. 3. 16.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08] 이구(李覯) 원주학기(袁州學記): 원주의 학교에 대해서 皇帝二十有三年, 制詔州縣立學. 惟時守令, 有哲有愚. 有屈力殫慮, 祗順德意. 有假宮借師, 苟具文書. 或連數城, 亡誦弦聲, 倡而不和, 敎尼不行.황제 23년에(皇帝二十有三年), 명령을 내려(制詔) 주현에(州縣) 학교를 세웠다(立學). 당시(惟時) 수령 가운데(守令), 명석한 사람이 있고(有哲) 우매한 사람도 있었다(有愚). 힘을 다하고 생각 다해서(有屈力殫慮), 경건히(祗) 깊은 생각을 따른 사람도 있었다(順德意). 궁을 빌리고 선생을 빌려서(有假宮借師), 구차하게(苟) 책만 갖춘 사람도 있었다(具文書). 혹(或) 여러 성을 이어서(連數城), 글 읽은 소리가 없고(亡誦弦聲), 주창해도 응답하지 않고(倡而不和), 가르침이 막혀(敎尼) 행해지지 않았다(不行). * 制詔(제조): 명령(命令). 황제(皇帝)의 칙명(.. 2025. 3. 1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