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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24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1 유령(劉伶) 주덕송(酒德頌)] 술의 덕을 칭송함 劉伶, 字伯倫, 沛國人. 貌甚醜悴, 而志氣放曠, 以宇宙爲狹. 性好酒, 常携酒自隨, 使人荷鍤從之, 云: “死便埋我.” 故著此頌, 頌酒德之美也. 유령은(劉伶), 자가 백륜이고(字伯倫), 패국 사람이다(沛國人). 모습은(貌) 매우(甚) 추하고 파리했지만(醜悴, 而) 뜻과 기상은(志氣) 거리낌이 없어서(放曠, 以) 우주가(宇宙) 작다고 여겼다(爲狹). 성품이(性) 술을 좋아해서(好酒), 늘(常) 술을 휴대하고(携酒) 스스로 지녔으며(自隨), 사람들로 하여금(使人) 삽을 메고 따르게 하여(荷鍤從之), 말하길(云): “죽거든(死) 바로(便) 나를 묻어라(埋我).”라고 했다. 그러므로(故) 이 송을 지어(著此頌), 술의 덕이 아름다운 것을 노래했다(頌酒德之美也). * 放曠(방광): 언행(言行)에서 거리낌이 없음. 有.. 2024. 2. 13.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0 제갈량(諸葛亮) 후출사표(後出師表)] 뒤에 군사를 이끌고 나가며 올리는 상소문 의견이 분분하지만 先帝慮漢賊不兩立, 王業不偏安, 故託臣以討賊也. 以先帝之明, 量臣之才, 固知臣伐賊, 才弱敵强也. 然不伐賊, 王業亦亡, 惟坐而待亡, 孰與伐之, 是故託臣而弗疑也. 臣受命之日, 寢不安席, 食不甘味. 선제께서(先帝) 한나라와 적은(漢賊) 양립할 수 없고(不兩立), 왕업이(王業) 한쪽에서 편안할 수 없음을(不偏安) 염려하셨고(慮), 그러므로(故) 적을 토벌할 것을(以討賊) 신에게 부탁하셨습니다(託臣也). 선제의 밝음으로(以先帝之明), 신의 재주를 헤아려(量臣之才), 신이 적을 토벌하는 것이(臣伐賊), 재주가 약하고(才弱) 적이 강한 것을(敵强) 진실로 알았습니다(固知也). 그러나(然) 적을 토벌하지 않으면(不伐賊), 왕업도 또한 없을 것이니(王業亦亡), 오직(惟) 앉아서(坐而) 망하기를 기다리 것.. 2024. 2. 13.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9 제갈량(諸葛亮) 출사표(出師表)]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기에 앞서 올린 상소 명확한 신상필벌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殂. 今天下三分, 益州疲弊, 此誠危急存亡之秋也. 然侍衛之臣, 不懈於內; 忠志之士, 忘身於外者, 蓋追先帝之殊遇, 欲報之於陛下也. 선제가 창업하시고(先帝創業) 반도 지나지 않아서(未半, 而) 중도에(中道) 돌아가셨습니다(崩殂). 지금(今) 천하가 셋으로 나뉘었고(天下三分), 익주는(益州) 피폐하니(疲弊), 이것은(此) 진실로(誠) 위급하고(危急) 사느냐 죽느냐의(存亡之) 중요한 때입니다(秋也). 그러나(然) 모시는 신하가(侍衛之臣),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不懈於內); 충성스러운 무사가(忠志之士), 밖에서 몸을 잊은 것은(忘身於外者), 대개(蓋) 선제의 특별한 대우를 추모하고(追先帝之殊遇), 폐하에게(於陛下) 그것을 갚고자 하는 것입니다(欲報之也). * 急存亡之秋: 秋는 .. 2024. 2. 13.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8 중장통(仲長統) 락지론(樂志論)] 행복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락지론은 벼슬길을 마다하고 평생 포의(布衣)로 살았던 중국 후한시대 ‘중장통(仲長統, 179~220)’의 글로 ‘즐겁게 큰 뜻을 실행하는 방법'을 말했다. 직언을 서슴지 않고 작은 일에 구속받지 않아서 광생(狂生)이라고 불렸다. 주군에서 기용하려고 했지만 병을 핑계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헌제 때 순욱이 상서랑으로 천거했고 조조의 군사로도 일했다. 後漢仲長統, 字公理. 少好學, 性倜儻敢言, 不矜小節. 每州郡命召, 輒稱疾不就, 常以爲: “凡遊帝王者, 欲以立身揚名耳, 而名不常存, 人生易滅, 優游偃仰, 固以自娛其志.” 故爲之著論云. 후한의 중장통은(後漢仲長統), 자가 공리이다(字公理). 어려서부터(少) 배우기를 좋아했고(好學), 성품이 기개가 있고(性倜儻) 말을 과감하게 했으며(敢言), 작은 예절을 존중.. 2024. 2. 12.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7 왕포(王褒) 성주득현신송(聖主得賢臣頌)] 어진 임금이 현명한 신하 얻은 것을 기리며 此篇起句有策體. 蓋前漢王褒, 字子淵本蜀人, 爲漢宣帝徵召, 詔爲此頌. 起四句說譬自叙, 第一節, 且謙辭叙應詔之意, 第二節, 勉宣帝審己正統, 第三節, 方論賢者國家之器用, 第四節, 論聖主得賢臣之功, 第五節, 論人臣之遭遇, 第六節, 總論臣主相得之美. 時上頗好神仙, 故末段不取彭祖喬松之事. 이 편의(此篇) 기구에는(起句) 책문의 체제가 있다(有策體). 대체로(蓋) 전한의 왕포는(前漢王褒), 자가(字) 자연이고(子淵) 본래(本) 촉나라 사람이다(蜀人), 한나라 선제가(漢宣帝) 불렀기 때문에(爲徵召), 이 송을 지었다(詔爲此頌). 기 4구의 말로(起四句) 비유해서(說譬) 자기를 서술했고(自叙), 제1절은(第一節), 또(且) 겸손한 말로(謙辭) 부름에 응하는 뜻을 서술했고(叙應詔之意), 제2절은(第二節), 선제가(宣帝) .. 2024. 2. 12.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9-0 제갈량(諸葛亮) 출사표(出師表) 해설] 이 글을 읽고 눈물 떨구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陳靜觀云: “前段起處, 便提先帝中道崩殂, 後面又繼以深追先帝遺詔, 後段提起先帝臨崩, 寄臣以大事, 後面又繼以不効, 告先帝之靈, 此最是感激痛苦懇切處. 盖緣先帝臨崩, 祗分付後主孔明兩人, 今日如何忘得?” 진정관이 말하길(陳靜觀云): “앞 단락이(前段) 일어난 곳에서(起處), 선제가(先帝) 중간에(中道) 죽었음을(崩殂) 제시하고(便提), 뒤에서(後面) 또(又) 선제가 남긴 유언을(先帝遺詔) 깊이 따르는 것으로(以深追) 이었으며(繼), 후단에서(後段) 선제가 죽음에 직면해서(先帝臨崩), 신(제갈량)에게(臣) 대사를 부탁한 것을(寄以大事) 제시하고(提起), 후면에서(後面) 또한(又) 효력이 없으면(不効), 선제의 영령에게 고하는 것으로(以告先帝之靈) 이었으니(繼), 이것이(此) 가장(最是) 감격스럽고(感激) 고통스러우.. 2024. 2. 11.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6 가의(賈誼) 조굴원부(弔屈原賦)] 굴원의 비운을 슬퍼하는 노래 가의가 주발 등에게 미움을 받아 장사왕(長沙王) 태부(太傅)로 좌천당하였다. 장사로 가는 길에 상강(湘江)을 지나게 되었는데 굴원이 상강의 지류인 멱라강에 빠져 죽은 것을 생각하고 그 처지가 자신과 비슷한 것을 애통해하면서 이 글을 썼다. 迂齋云: “誼謫長沙, 不得意, 投書弔屈原而因以自諭. 然譏議時人, 太分明, 其才甚高, 其志甚大, 而量亦狹矣.” 迂齋云: “가의가(誼) 장사로 귀양 가면서(謫長沙), 뜻을 얻지 못하고(不得意), 글을 던져(投書) 굴원을 조문하고(弔屈原而) 잇달아(因) 자신을 비유했다(以自諭). 그러나(然) 당시 사람들을 비난하고 평론한 것이(譏議時人), 매우(太) 분명하고(分明), 그 재주가(其才) 아주 높고(甚高), 그 뜻이(其志) 매우 크지만(甚大, 而) 역량은 또한 작았다(量亦狹矣).. 2024. 2. 9.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5 가의(賈誼) 과진론(過秦論)] 진나라의 잘못을 논함 全篇皆陳靜觀批. ○ 此篇, 論秦能取天下在據關中, 失天下在恃關中, 此是一篇大意. 文如百萬之軍, 鼓譟赴敵, 而行陣部曲整然. 前日據關中, 便有取天下之勢, 後來恃關中, 乃不思守天下之道. 전편은(全篇) 모두(皆) 진종관의 비평이다(陳靜觀批). ○ 이 편은(此篇), 진나라가(論秦) 천하를 취할 수 있던 것은(能取天下) 함곡관을 의지함에 있고(在據關中), 천하를 잃은 것이(失天下在) 함곡관을 믿었기 때문이니(恃關中), 이것은(此) 이 한 편의(是一篇) 큰 뜻이다(大意). 문장은(文) 백만 대군이(百萬之軍), 북 치고 떠들며(鼓譟) 적에게 달려가는 듯했고(如赴敵, 而) 행진과 대오가(行陣部曲) 정연했다(整然). 전에는(前日) 함곡관에 의지해서(據關中), 바로(便) 천하를 취하는 기세가 있었지만(有取天下之勢), 나중에(.. 2024. 2. 8.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4 한무제(漢武帝) 추풍사(秋風辭)] 가을 바람을 노래하다 休齋云: “詩變而爲騷, 騷變而爲辭, 皆可歌也. 辭則兼詩騷之聲而尤簡邃焉者.”휴제가 말하길(休齋云): “시가 변해서(詩變而) 소가 되었고(爲騷), 소가 변해서(騷變而) 사가 되었으니(爲辭), 모두(皆) 노래라고 할 수 있따(可歌也). 사란(辭則) 시와 소의 소리를 함께 가져서(兼詩騷之聲而) 더욱(尤) 질박하고 심오한 것이다(簡邃焉者).”라고 했다.漢武帝因祠后土於汾陰, 作「秋風辭」一章, 凡三易韻, 其節短, 其聲哀, 此辭之權輿乎.한 무제가(漢武帝) 분음에서(於汾陰) 후토에 제사 지내고 잇달아(因祠后土), 추풍사 1장을 지었으니(作「秋風辭」一章), 모두(凡) 3번(三) 운을 바꿨고(易韻), 그 가락이 짧고(其節短), 그 소리가 슬프니(其聲哀), 이것이(此) 사의 시작이다(辭之權輿乎). * 后土(후토): 토지의 신.. 2024. 2. 8.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3 이사(李斯)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 시황제가 외국 유세객을 쫓아내는 것에 대해 올리는 글 * 이사(李斯, 기원전 284년 ~ 기원전 208년)는 중국 전국시대 ~ 진나라의 철학자·정치가이며, 자는 통고(通古), 초나라 상채(上蔡) 사람이다. 여불위 천거로 진나라 조정에 출사하여 시황제를 섬겼다. 그는 유학자였으나 사상적 기반은 법치주의이며, 도량형의 통일, 분서 등 실시하여, 진시황을 도와 진의 법치주의 기반을 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고, 시황제 사후, 조고와 권력 싸움에 패하고서 살해당했다. 생전 유학자를 자처하였으나 사후 법가로 분류되었다. 순황의 문인이다. 臣聞吏議逐客, 竊以爲過矣. 昔者繆公求士, 西取由余於戎; 東得百里奚於宛; 迎蹇叔於宋; 來邳豹ㆍ公孫支於晉, 此五子者, 不産於秦. 而繆公用之, 幷國二十, 遂覇西戎. 孝公用商鞅之法, 移風易俗, 民以殷盛, 國以富强, 百姓樂用, 諸侯親服, 獲..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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