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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國語)

[국어(國語) 주어 상(周語 上) 14] 내사 흥이 진문공이 패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다 / 진문공필패(晉文公必霸)

by प्रज्ञा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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襄王使太宰文公及內史興賜晉文公命, 上卿逆于境, 晉侯郊勞, 館諸宗廟, 饋九牢, 設庭燎. 及期命于武宮, 設桑主, 布筵, 太宰蒞之, 晉侯端委以入. 太宰以王命命冕服, 內史贊之, 三命而後即冕服. 旣畢, 賓·饗·贈·餞如公命侯伯之禮, 而加之以宴好. 內史興歸, 以告王曰: "晉, 不可不善也. 其君必霸, 逆王命敬, 奉禮義成. 敬王命, 順之道也; 成禮義, 德之則也. 則德以導諸侯, 諸侯必歸之. 且禮所以觀忠·信·仁·義也, 忠所以分也, 仁所以行也, 信所以守也, 義所以節也. 忠分則均, 仁行則報, 信守則固, 義節則度. 分均無怨, 行報無匱, 守固不偷, 節度不攜. 若民不怨而財不匱, 令不偷而動不攜, 其何事不濟! 中能應外, 忠也; 施三服義, 仁也; 守節不淫, 信也, 行禮不疚, 義也. 臣入晉境, 四者不失, 臣故曰: '晉侯其能禮矣, 王其善之!' 樹于有禮, 艾人必豐." 
양왕이(襄王) 태사 문공과 내사 흥을 시켜(使太宰文公及內史興) 진 문공에게 명복을 주었는데(賜晉文公命), 상경이 국경에서 맞이하고(上卿逆于境), 진후가 교외에서 위로하고(晉侯郊勞), 종묘에서 묵도록 하고(館諸宗廟), 구우를 보내고(饋九牢), 뜰에 큰 촛불을 밝혔습니다(設庭燎).

무궁에서 명을 받을 때가 되자(及期命于武宮), 뽕나무 신주를 설치하고(設桑主), 궤연을 펼쳐 놓고(布筵), 태재가 자리에 오자(太宰蒞之), 진후가 선비의 복장으로 들어왔습니다(晉侯端委以入). 태재가(太宰) 왕명으로(以王命) 면복을 주고(命冕服), 내사가 이끌어(內史贊之), 세 번 사양하고 나서(三命而後) 면복을 받으러 나아갔습니다(即冕服). <예를> 마치고 나서(旣畢), 빈, 향, 증, 전의 예가(賓·饗·贈·餞) 마치(如) 공이 명을 받은 후백의 예처럼 했으며(公命侯伯之禮, 而) 잔치를 열고 우호를 다짐했습니다(加之以宴好).

내사 흥이 돌아와(內史興歸), 왕에게 말하길(以告王曰): "진나라는(晉), 잘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不可不善也). 그 임금은(其君) 반드시 패자가 될 것이며(必霸), 왕명을 맞이하는 것이(逆王命) 공경스러웠고(敬), 예의를 받드는 것이(奉禮義) 완성되었습니다(成). 왕명을 공경하는 것은(敬王命), 순종하는 도리이고(順之道也); 예의를 이룬 것은(成禮義), 덕의 법칙입니다(德之則也). 덕을 법칙으로 삼아(則德以) 제후를 인도하면(導諸侯), 제후가 반드시 돌아갈 것입니다(諸侯必歸之). 또한(且) 예는(禮) 충, 신, 인, 의를 볼 수 있는 것이니(所以觀忠·信·仁·義也), 충은(忠) <균등하게> 나누는 것이고(所以分也), 인은 행하는 것이고(仁所以行也), 신은 지키는 것이고(信所以守也), 의는 절도 있는 것입니다(義所以節也). 충으로 나누면(忠分則) 균등하고(均), 인으로 행하면(仁行則) 보답이 있고(報), 신으로 지키면 굳세고(信守則固), 의로 절도 있으면 법도가 있습니다(義節則度). 나눈 것이 균등하면(分均) 원망이 없고(無怨), 행하고 보답하면(行報) <재용이> 다함이 없고(無匱), 지킨 것이 굳세면(守固) 구차하지 않고(不偷), 절도 있게 법도를 지키면(節度) <백성이> 흩어지지 않습니다(不攜). 만약(若) 백성이 원망하지 않고(民不怨而) 재용이 다하지 않고(財不匱), 령이 구차하지 않고(令不偷而) 행동이 흩어지지 않으면(動不攜), 어떤 일이(其何事) 다스려지지 않겠습니까(不濟)! 마음이(中) 바깥에 호응하는 것이(能應外), 충이고(忠也); 세 번 사양한 것이(施三服義), 인이고(仁也); 절도를 지켜 음탕하지 않은 것이(守節不淫), 신이고(信也), 예를 행하면서 잘못하지 않은 것이(行禮不疚), 의입니다(義也). 신이(臣) 진나라 경계에 들어가고(入晉境), 네 가지를 잃지 않아서(四者不失), 신이 그러므로 생각하기를(臣故曰): '진후가(晉侯) 그 예를 잘하니(其能禮矣), 왕께서(王) 그를 잘 대해야 한다(其善之)!'라고 했습니다. 예가 있는 곳에 <은혜를> 심으면(樹于有禮), 보답이 많을 것입니다(艾人必豐)."라고 했다. 

 

* 命服(명복): 天子가 신하에게 내려 준 官服이다. 周代에 官秩을 一命에서 九命까지 아홉 등급으로 나누어 두고, 그 命數의 등급에 따라 官服을 주는 일정한 제도가 있었으므로 붙여진 명칭으로 諸侯는 七命으로, 七章의 冕服을 주었다. 《詩經小雅采芑》

* 九牢(구뢰): 牛‧羊‧豕 각 1마리씩 갖춘 것이 일우(一牢)다. 上公을 접대할 때 九牢를 쓰는데, 晉文公이 上公의 禮로 太宰文公과 內史興을 접대하여 天子에 대하여 존중함을 보인 것이다.

* 筵(궤연): 죽은 이의 혼령(魂靈)을 위()하여 차려 놓은 영궤(靈几)와, 영궤에 딸린 모든 물건(物件).

* 端委(단위): 端은 玄端服, 委는 委貌冠. 《說文》에는 諸侯의 祭服이라 하였는데, 韋昭는 “선비의 복장이다. 諸侯의 아들이 아직 爵命을 받지 못하면 선비의 옷을 입는다.” 하였다.

* 三命(삼명): 세 차례 王命으로 文公에게 命하면 文公은 세 번 사양하여 겸손의 뜻을 표시하는 일.

* 艾人必豐: 남이 나에게 보답함이 반드시 많을 것임. 艾는 보답함, 豐은 豐厚함이다.


王從之, 使于晉者, 道相逮也. 及惠後之難, 王出在鄭, 晉侯納之. 

왕이 그 말을 따라(王從之), 진나라에 사신을 가는 사람이(使于晉者), 길에 서로 이어졌다(道相逮也). 혜후의 난을 당하여(及惠後之難), 왕이 도망가 정나라에 있을 때(王出在鄭), 진후가 다시 들여보내주었다(晉侯納之). 

 

* 惠后之難: 惠后는 周惠王의 王后인 陳嬀로, 襄王의 繼母이다. 惠王에게 사랑을 받아 王子帶를 낳자, 子帶를 세워 太子를 삼으려 하였으나 미처 세우지 못하고 惠王이 죽었다. 襄王이 즉위하자 子帶는 齊나라로 달아났는데 襄王이 국내로 돌아오게 하였더니 襄王의 王后인 隗氏와 간통하므로 隗氏를 廢位시켰다. 大夫인 頹叔과 桃子가 子帶를 王으로 옹립하고, 狄의 군대를 빌려 襄王을 공격하니 襄王은 鄭나라로 망명하였다.(뒤에 晉文公이 子帶를 誅殺하고 襄王을 復位시켰다.)

 

襄王十六年, 立晉文公. 二十一年, 以諸侯朝王于衡雍, 且獻楚捷, 遂爲踐土之盟, 于是乎始霸. 

양왕 16년에(襄王十六年), 진 문공을 <제후로> 세웠다(立晉文公). 21년에(二十一年), 제후를 데리고(以諸侯) 형옹에서 왕에게 조회하고(朝王于衡雍), 또(且) 초나라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바치고(獻楚捷), 마침내(遂) 천토의 맹을 만들고(爲踐土之盟), 이에(于是乎) 비로소 패자가 되었다(始霸). 

 

* 踐土會盟(천토회맹): 진나라(--) 문공()이 제후()를 천토()에 모아, 주나라(周--)의 천자()를 공경()하고 조공()할 것을 맹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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