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園獻妹(이원헌매)
17 楚考烈王無子, 春申君患之, 求婦人宜子者進之, 甚衆, 卒無子. 趙人李園持其女弟, 欲進之楚王, 聞其不宜子, 恐久毋寵. 李園求事春申君爲舍人, 已而謁歸, 故失期. 還謁, 春申君問之狀, 對曰: "齊王使使求臣之女弟, 與其使者飲, 故失期." 春申君曰: "娉入乎?" 對曰: "未也." 春申君曰: "可得見乎?" 曰: "可." 於是李園乃進其女弟, 即幸於春申君. 知其有身, 李園乃與其女弟謀. 園女弟承閒以說春申君曰: "楚王之貴幸君, 雖兄弟不如也. 今君相楚二十餘年, 而王無子, 即百歲後將更立兄弟, 則楚更立君後, 亦各貴其故所親, 君又安得長有寵乎? 非徒然也, 君貴用事久, 多失禮於王兄弟, 兄弟誠立, 禍且及身, 何以保相印江東之封乎? 今妾自知有身矣, 而人莫知. 妾幸君未久, 誠以君之重而進妾於楚王, 王必幸妾;妾賴天有子男, 則是君之子爲王也, 楚國盡可得, 孰與身臨不測之罪乎?" 春申君大然之, 乃出李園女弟, 謹舍而言之楚王. 楚王召入幸之, 遂生子男, 立爲太子, 以李園女弟爲王后. 楚王貴李園, 園用事.
17 초나라 고열왕에게(楚考烈王) 자식이 없었고(無子), 춘신군이 그것을 걱정해서(春申君患之), 부인 중에 아들을 낳을 만한 사람을 구해서(求婦人宜子者) 바쳤는데(進之), 매우 많았지만(甚衆), 결국(卒) 자식이 없었다(無子). 조나라 사람 이원이(趙人李園) 자기 여동생을 데려와서(持其女弟), 초왕에게 바치려고 했지만(欲進之楚王), 왕이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것을(其不宜子) 듣고(聞), 오래 지나면(久) 총애가 없을 것을 걱정했다(恐毋寵). 이원이(李園) 춘신군을 섬기를 바라고(求事春申君) 사인이 되어(爲舍人), 얼마 지나지 않아(已而) 알리고 <고향에> 돌아갔다가(謁歸), 일부러(故) <돌아올> 시기를 놓쳤다(失期). 돌아와 보고하자(還謁), 춘신군이 그에게 상황을 묻자(春申君問之狀),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제왕이(齊王) 사신을 보내(使使) 신의 여동생을 바란다고 하기에(求臣之女弟), 그 사자와 함께(與其使者) 술자리를 했고(飲), 그러므로(故) 기한을 놓쳤습니다(失期)."라고 했다.
춘신군이 말하길(春申君曰): "폐백은 들어왔는가(娉入乎)?"라고 했다.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아직입니다(未也)."라고 했다.
춘신군이 말하길(春申君曰): "볼 수 있겠는가(可得見乎)?"라고 했다.
말하길(曰): "볼 수 있습니다(可)."라고 했다.
이에(於是) 이원이(李園乃) 여동생을 바쳤고(進其女弟), 바로(即) 춘신군에게 총애를 받았다(幸於春申君). 그(동생)에게 몸이 있음을(임신했음을) 알고(知其有身), 이원과 그 여동생이(李園乃與其女弟) 모의한 것이다(謀).
이원의 여동생이(園女弟) 한가한 때를 틈타(承閒以) 춘신군을 설득하여 말하길(春申君曰): "초왕이(楚王之) 군을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것이(貴幸君), 비록(雖) 형제라도(兄弟) 같지 않을 것입니다(不如也). 지금(今) 군께서(君) 초나라에서 재상한 것이(相楚) 20여 년이고(二十餘年, 而) 왕에게(王) 자식이 없으니(無子), 만약(即) 죽은 뒤에(百歲後) 장차(將) 다시(更) 형제를 세우면(立兄弟, 則) 초나라가(楚) 다시(更) 임금의 후계를 세울 것이고(立君後), 또한(亦) 각자(各) 옛날 친하게 지내던 사람을 귀하에 여길 것이니(貴其故所親), 군도 또한(君又) 어찌(安) 오랫동안 총애가 있겠습니까(得長有寵乎)? 다만 그렇지 않더라도(非徒然也), 군께서(君) 일을 다스린 것이(貴用事) 오래인데(久), 왕의 형제에게(於王兄弟) 많은 실례가 있었을 것이고(多失禮), 형제가 정말 즉위하면(兄弟誠立), 화가 또한 몸에 이를 것인데(禍且及身), 어찌(何以) 재상의 인수와 강동의 봉토를(相印江東之封)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保乎)? 지금(今) 첩은(妾) 혼자서(自) 임신한 것을 알고(知有身矣, 而) 다른 사람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人莫知). 신첩이(妾) 군께 총애를 받은 것이(幸君) 오래지 않지만(未久), 진실로(誠) 군의 권력으로(以君之重而) 초왕에게 첩을 바친다면(進妾於楚王), 왕께서 반드시(王必) 첩을 총애할 것이고(幸妾); 첩이 하늘의 도움으로(妾賴天) 남자가 있다면(有子男, 則) 이것은(是) 군의 아들이(君之子) 왕이 되는 것이니(爲王也), 초나라를(楚國) 모두 얻을 수 있는데(盡可得), 몸에 예측할 수 없는 죄가 닥치는 것과(身臨不測之罪) 어느 것이 나을까요(孰與乎)?"라고 했다.
춘신군이(春申君) 매우 그럴듯하다고 여기고(大然之), 이원의 동생을 내보내(乃出李園女弟), 삼가고 머물게 하고(謹舍而) 초왕에게 말했다(言之楚王). 초왕이(楚王) 불러들여(召入) 총애하고(幸之), 마침내(遂) 아들을 낳아서(生子男), 세워(立) 태자가 되고(爲太子, 以) 이원의 여동생이(李園女弟) 왕후가 되었다(爲王后). 초왕이(楚王) 이원을 귀하게 여겨(貴李園), 이원이(園) 일을 다스렸다(用事).
* 即百歲後(즉백세후): 만약 죽은 뒤. 백세후(百歲後)는 百歲之後로 지체 높은 사람이 죽은 뒤의 뜻. 即(즉)은 만약.
18 李園既入其女弟, 立爲王后, 子爲太子, 恐春申君語泄而益驕, 陰養死士, 欲殺春申君以滅口, 而國人頗有知之者.
18 이원이(李園) 그 여동생을 들여보내고 나서(既入其女弟), 세워(立) 왕후가 되고(爲王后), 아들은(子) 태자가 되자(爲太子), 춘신군의 말이 새 나오거나(春申君語泄而) 더욱 교만해질 것을(益驕) 염려해서(恐), 은밀 하계(陰) 죽음을 각오한 용사를 길러(養死士), 춘신군을 죽여(殺春申君以) 입을 막으려고 했으나(欲滅口, 而) 나라 사람들이(國人) 꽤(頗) 아는 사람이 있었다(有知之者).
무망지복(毋望之福)과 무망지화(毋望之禍)
19 春申君相二十五年, 楚考烈王病. 朱英謂春申君曰: "世有毋望之福, 又有毋望之禍. 今君處毋望之世, 事毋望之主, 安可以無毋望之人乎?" 春申君曰: "何謂毋望之福?" 曰: "君相楚二十餘年矣, 雖名相國, 實楚王也. 今楚王病, 旦暮且卒, 而君相少主, 因而代立當國, 如伊尹·周公, 王長而反政, 不即遂南面稱孤而有楚國? 此所謂毋望之福也." 春申君曰: "何謂毋望之禍?" 曰: "李園不治國而君之仇也, 不爲兵而養死士之日久矣, 楚王卒, 李園必先入據權而殺君以滅口. 此所謂毋望之禍也." 春申君曰: "何謂毋望之人?" 對曰: "君置臣郎中, 楚王卒, 李園必先入, 臣爲君殺李園. 此所謂毋望之人也." 春申君曰: "足下置之, 李園, 弱人也, 仆又善之, 且又何至此!" 朱英知言不用, 恐禍及身, 乃亡去.
19 춘신군이(春申君) 재상이 되고(相) 25년이 되어(二十五年), 초나라 고열왕이 병들었다(楚考烈王病).
주영이(朱英) 춘신군에게 말하길(謂春申君曰): "세상에는(世) 바라지 않던 복과(有毋望之福), 또(又) 바라지 않던 화가 있습니다(有毋望之禍). 지금(今) 군은(君) 바랄 것 없는 세상에 살면서(處毋望之世), 바랄 것 없는(변덕스러운) 임금을 모시고 있으니(事毋望之主), 어찌(安) 바라지 않던 것을 없앨 수 있는(곤경에 처해서 바라지 않아도 도와주는) 사람을 두지 않습니까(可以無毋望之人乎)?"
춘신군이 말하길(春申君曰): "무엇을(何) 바라지 않던 복이라고 하는가(謂毋望之福)?"라고 했다.
말하길(曰): "군께서(君) 초나라에서 재상을 지낸 것이(相楚) 29여 년이고(二十餘年矣), 비록(雖) 이름은 상국이지만(名相國), 실제는 초왕입니다(實楚王也). 지금(今) 초왕이 병들었고(楚王病), 머지않아(旦暮且) 죽으면(卒, 而) 군께서 어린 임금을 돕고(君相少主), 이로 인하여(因而) 대신 서서(代立) 나랏일을 맡을 것이니(當國), 이윤이나 주공과 같고(如伊尹·周公), 왕이 자라면(王長而) 정권을 돌려주거나(反政), 그렇지 않으면(不即) 마침내 남면하고(遂南面) 왕을 칭하고(稱孤而) 초나라를 가질 수 있습니다(有楚國). 이것이(此) 이르바(所謂) 바라지 않던 복입니다(毋望之福也)."라고 했다.
춘신군이 말하길(春申君曰): "무엇을(何) 무망지화라고 하는가(謂毋望之禍)?"라고 했다.
曰: "이원은(李園)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고(不治國而) 군을 원수로 여기니(君之仇也),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지만(不爲兵而) 죽음을 각오한 전사를 기른 것이(養死士之日) 오래되었고(久矣), 초왕이 죽으면(楚王卒), 이원이(李園) 반드시(必) 먼저 들어가서(先入) 권력에 의지하고(據權而) 군을 죽여(殺君以) 입을 막을 것입니다(滅口). 이것이(此) 이른바(所謂) 무앙지화입니다(毋望之禍也)."라고 했다.
춘신군이 말하길(春申君曰): "무엇을(何) 무망지인이라고 하는가(謂毋望之人)?"라고 했다.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군께서(君) 저를 낭중에 임명하고(置臣郎中), 초왕이 죽으면(楚王卒), 이원이(李園) 반드시 먼저 들어올 것이니(必先入), 제가(臣) 군을 위해(爲君) 이원을 죽일 것입니다(殺李園). 이것이(此) 이른바(所謂) 무망지인입니다(毋望之人也)."라고 했다.
춘신군이 말하길(春申君曰): "그대는(足下) 그만두시오(置之), 이원은(李園), 약한 사람이고(弱人也), 내가(仆) 또(又) 그를 잘 대해주고 있고(善之), 또한(且又) 어찌(何) 그런 일에 이르겠는가(至此)!"라고 했다.
주영은(朱英) <자기> 말이 쓰이지 않을 것을 알고(知言不用),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염려해서(恐禍及身), 이내(乃) 달아났다(亡去).
* 毋望之福(무망지복) : 뜻하지 않은 복. 우연한 복.
* 毋望之世(무망지세) : 생사가 수시로 변하는 세상을 말한다.
* 毋望之人(무망지인) : 곤경(困境)에 처했을 때에 청하지 않아도 구원해 주는 사람
* 代立當國(대립당국) : 어린 군주 대신 국정을 장악하다.
20 後十七日, 楚考烈王卒, 李園果先入, 伏死士於棘門之內. 春申君入棘門, 園死士俠刺春申君, 斬其頭, 投之棘門外. 於是遂使吏盡滅春申君之家. 而李園女弟初幸春申君有身而入之王所生子者遂立, 是爲楚幽王.
20 그 뒤로 17일이 지나서(後十七日), 초 고열왕이 죽고(楚考烈王卒), 이원이 과연 먼저 들어가(李園果先入), 극문 안에(於棘門之內) 죽음을 각오한 전사를 숨겼다(伏死士). 춘신군이(春申君) 극문에 들어가자(入棘門), 이원의 병사가(園死士) 춘신군을 찌르고(俠刺春申君), 그 머리를 베어(斬其頭), 극문 밖으로 던졌다(投之棘門外). 이에(於是) 마침내(遂) 관리를 시켜(使吏) 춘신군의 집안을 모조리 없앴다(盡滅春申君之家). 그리고(而) 이원의 여동생이(李園女弟初) 춘신군에게 총애를 받아(幸春申君) 임신해서(有身而) 왕에게 들어가(入之王) 낳은 아들이(所生子者) 마침내 즉위하니(遂立), 이 사람이(是) 유왕이다(爲楚幽王).
21 是歲也, 秦始皇帝立九年矣. 嫪毐亦爲亂於秦, 覺, 夷其三族, 而呂不韋廢.
21 이 해가(是歲也), 진시황제(秦始皇帝) 즉위하고(立) 9년 째였다(九年矣). 노애도(嫪毐) 또한(亦) 진나라에서 난을 일으키다가(爲亂於秦), 발각되어(覺), 그 삼족을 멸하고(夷其三族, 而) 여불위를 쫓아냈다(呂不韋廢).
22 太史公曰:吾適楚, 觀春申君故城, 宮室盛矣哉! 初, 春申君之說秦昭王, 及出身遣楚太子歸, 何其智之明也! 後制於李園, 旄矣. 語曰: "當斷不斷, 反受其亂." 春申君失朱英之謂邪?
22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내가(吾) 초나라에 가서(適楚), 춘신군의 옛 성을 봤는데(觀春申君故城), 궁실이 웅장했다(宮室盛矣哉)! 처음에(初), 춘신군이(春申君之) 진 소왕을 설득하고(說秦昭王), 몸을 던져(出身) 초나라 태자를 돌아오도록 한 것이(及遣楚太子歸), 얼마나(何) 그 지혜가(其智之) 밝았던가(明也)! 나중에(後) 이원에게 제압되어(制於李園), 눈이 어두워졌다(旄矣). 속담에 이르길(語曰): "마땅히 잘라야 하는데(當斷) 자르지 못하면(不斷), 도리어(反) 그 혼란스러움을 당한다(受其亂)."라고 했다. 춘신군이(春申君) 주영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失朱英之) 말하는 것일까(謂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