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卻說孫堅被劉表圍住, 虧得程普, 黃蓋, 韓當, 三將死救得脫, 折兵大半, 奪路引兵回江東. 自此孫堅與劉表結怨.
1 한편(卻說) 손견은(孫堅) 유표에게 포위당했지만(被劉表圍住), 다행히(虧得) 정보와 황개, 한당(程普, 黃蓋, 韓當), 세 장수가(三將) 죽기를 무릅쓰고(死) 구해서(救) 벗어날 수 있었지만(得脫), 병사의 태반을(兵大半) 꺾이고(折), 길을 빼앗아(奪路) 군사를 이끌고(引兵) 강동으로 돌아갔다(回江東). 이로부터(自此) 손견과 유표가(孫堅與劉表) 원한을 맺었다(結怨).
2 且說袁紹屯兵河內, 缺少糧草. 冀州牧韓馥, 遣人送糧以資軍用. 謀士逢紀說紹曰: "大丈夫縱橫天下, 何待人送糧爲食?冀州乃錢糧廣盛之地, 將軍何不取之?" 紹曰: "未有良策." 紀曰: "可暗使人馳書與公孫瓚, 令進兵取冀州, 約以夾攻, 瓚必興兵. 韓馥無謀之輩, 必請將軍領州事; 就中取事, 唾手可得."
2 한편(且說) 원소는(袁紹) 하내에(河內) 군대를 주둔했지만(屯兵), 군량과 마초가(糧草) 부족했다(缺少). 기주목 한복이(冀州牧韓馥), 사람을 보내(遣人) 군량을 보내서(送糧以) 군용으로 쓰도록 했다(資軍用).
모사(謀士) 봉기가 원소를 설득해 말하길(逢紀說紹曰): "대장부가(大丈夫) 천하를 종횡하는데(縱橫天下), 어찌(何) 남이 식량 보내는 것을 기다려(待人送糧) 먹고살겠습니까(爲食)? 기주는(冀州) 곧(乃) 돈과 식량이(錢糧) 넓고 풍성한 땅인데(廣盛之地), 장군은(將軍) 어찌(何) 취하지 않습니까(不取之)?"라고 했다.
원소가 말하길(紹曰): "좋은 계책이 아직 없다(未有良策)."라고 했다.
봉기가 말하길(紀曰): "몰래(可暗) 사람을 시켜(使人) 급한 편지를(馳書) 공손찬에게 보내고(與公孫瓚), 군대를 내어 기주를 취하도록 하고(令進兵取冀州), 약속해서(約以) 와서 공격하라고 하면(夾攻), 공손찬이(瓚) 반드시(必) 군대를 일으킬 것입니다(興兵). 한복에게(韓馥) 꾀를 내는 사람이 없으므로(無謀之輩), 반드시(必) 장군에게 청하여(請將軍) 주의 일을 처리하도록 할 것이니(領州事); 나아가(就) 일을 취하면(中取事), 손에 침을 뱉는 것처럼(唾手) 얻을 것입니다(可得)."라고 했다.
3 紹大喜, 即發書到瓚處. 瓚得書, 見說共攻冀州, 平分其地, 大喜, 即日興兵. 紹卻使人密報韓馥. 馥慌聚荀諶, 辛評, 二謀士商議. 諶曰: "公孫瓚將燕·代之眾, 長驅而來, 其鋒不可當. 兼有劉備·關·張助之, 難以抵敵. 今袁本初智勇過人, 手下名將極廣, 將軍可請彼同治州事, 彼必厚待將軍, 無患公孫瓚矣."
3 원소가(紹) 크게 기뻐하며(大喜), 곧(即) 편지를 보내(發書) 공손찬의 처소에 이르렀다(到瓚處). 공손찬이 편지를 받고(瓚得書), 함께 기주를 공격해서(共攻冀州), 그 땅을(其地) 공평하게 나누자고(平分) 말한 것을 보고(見說), 크게 기뻐하며(大喜), 그날(即日) 군대를 일으켰다(興兵). 원소가(紹) 도리어(卻) 사람을 시켜(使人) 은밀하게(密) 한복에게 알렸다(報韓馥). 한복이(馥) 당황하며(慌) 순섬과 신평을 모아(聚荀諶, 辛評), 두 모사와(二謀士) 상의했다(商議).
순섬이 말하길(諶曰): "공손찬이(公孫瓚) 연주와 대주의 무리를 거느리고(將燕·代之眾), 오래 달려오면(長驅而來), 그 예봉을(其鋒) 감당할 수 없습니다(不可當). 게다가(兼) 유비와 관우, 장비의 도움이 있으면(有劉備·關·張助之), 대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難以抵敵). 지금(今) 원본초의(袁本初) 지혜와 용맹이(智勇) 남보다 뛰어나고(過人), 수하에(手下) 명장이(名將) 지극히 많으니(極廣), 장군이(將軍) 그에게(彼) 고을의 일을(州事) 함께 처리하자고(同治) 청하면(可請), 그가(彼) 반드시(必) 장군을 후하게 대하고(厚待將軍), 공손찬을 걱정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無患公孫瓚矣)."라고 했다.
* 抵敵(저적): 대적(對敵).
4 韓馥即差別駕關純去請袁紹. 長史耿武諫曰: "袁紹孤客窮軍, 仰我鼻息, 譬如嬰兒在股掌之上, 絕其乳哺, 立可餓死. 奈何欲以州事委之?此引虎入羊群也." 馥曰: "吾乃袁氏之故吏, 才能又不如本初. 古者擇賢者而讓之, 諸君何嫉妒耶?" 耿武歎曰: "冀州休矣!" 於是棄職而去者三十餘人. 獨耿武與關純伏於城外, 以待袁紹.
4 한복이(韓馥) 바로(即) 별가 관순을 보내(差別駕關純去) 원소를 청하려고 했다(請袁紹).
장사(長史) 경무가 간언하길(耿武諫曰): "원소는(袁紹) 외로운 떠돌이고(孤客) 궁색한 군대로(窮軍), 우리의 의향을 우러러볼 뿐이니(仰我鼻息), 비유하자면(譬如) 어린아이가(嬰兒) 사타구니와 손바닥 위에 있는 것과 같아서(在股掌之上), 그 젖과 먹을 것이 끊어지면(絕其乳哺), 서서(立) 굶어 죽을 것입니다(可餓死). 어찌(奈何) 고을의 일을(以州事) 그에게 맡기려고 합니까(欲委之)? 이것은(此) 호랑이를 끌어들여(引虎) 양 무리에 들이는 것입니다(入羊群也)."라고 했다.
한복이 말하길(馥曰): "내가(吾) 바로(乃) 원씨의(袁氏之) 옛 신하인데(故吏), 재능도(才能) 또한(又) 본초보다 못하다(不如本初). 옛날(古者) 현자를 택해서(擇賢者而) 그에게 양보했는데(讓之), 그대들은(諸君) 어찌(何) 질투하는가(嫉妒耶)?"라고 했다.
경무가 탄식하며 말하길(耿武歎曰): "기주가(冀州) 끝나는구나(休矣!)"라고 했다.
이에(於是) 직을 버리고(棄職而) 떠난 사람이(去者) 30여 명이었다(三十餘人). 오직(獨) 경무와 관순이(耿武與關純) 성 바깥에 매복해서(伏於城外, 以) 원소를 기다렸다(待袁紹).
* 股掌(고장): 사타구니와 손바닥.
5 數日後, 紹引兵至. 耿武·關純拔刀而出, 欲刺殺紹. 紹將顏良立斬耿武, 文醜砍死關純. 紹入冀州, 以馥爲奮威將軍, 以田豐, 沮授, 許攸, 逢紀分掌州事, 盡奪韓馥之權. 馥懊悔無及, 遂棄下家小, 匹馬往投陳留太守張邈去了.
5 며칠 뒤에(數日後), 원소가(紹) 병사를 이끌고(引兵) 도착했다(至). 죽무와 관순이(耿武·關純) 칼을 뽑아(拔刀而) 나가서(出), 원소를 찌르려고 했다(欲刺殺紹). 원소의 장수(紹將) 안량이(顏良) 선 채로(立) 적무를 베고(斬耿武), 문추가(文醜) 관순을(關純) 베어 죽였다(砍死).
원소가(紹) 기주에 들어가(入冀州), 한복을(以馥) 분위장군으로 삼고(爲奮威將軍), 전풍과 저수, 허유, 봉기로(以田豐, 沮授, 許攸, 逢紀) 주의 일을(州事) 나누어 맡도록 하니(分掌), 한복의 권한을(韓馥之權) 모두 빼앗았다(盡奪). 한복이(馥) 뉘우치며 한탄했지만(懊悔) 어쩔 수 없었고(無及), 마침내(遂) 가족을 버리고(棄下家小), 필마로(匹馬) 진류태수 장막에게(陳留太守張邈) 가서 투항했다(往投去了).
* 懊悔(오회) → 悔恨(회한): 뉘우치며 한탄함.
* 家小(가소): 아내와 자식(子息)을 아울러 이르는 말.
6 卻說公孫瓚知袁紹己據冀州, 遣弟公孫越來見紹, 欲分其地. 紹曰: "可請汝兄自來, 吾有商議." 越辭歸. 行不到五十里, 道旁閃出一彪軍馬, 口稱: "我乃董丞相家將也!" 亂箭射死公孫越. 從人逃回見公孫瓚, 報越已死. 瓚大怒曰: "袁紹誘我起兵攻韓馥, 他卻就裏取事; 今又詐董卓兵射死吾弟, 此冤如何不報!" 盡起本部兵, 殺奔冀州來.
6 각설하고(卻說) 공손찬은(公孫瓚) 원소가(袁紹) 이미(己) 기주를 차지하고 지키는 것을(據冀州) 알고(知), 동생 공손월을 보내(遣弟公孫越) 와서 원소를 만나서(來見紹), 그 땅을 나누려고 했다(欲分其地).
원소가 말하길(紹曰): "너의 형이(汝兄) 직접 와서(自來) 청한다면(請), 내가(吾) 상의할 수 있을 것이다(可有商議)."라고 했다.
공손월이 인사하고 돌아갔다(越辭歸). 가기를(行) 50리도 이르지 않아서(不到五十里), 길 옆에서(道旁) 갑자기(閃) 한 무리의 군마가 나와서(出一彪軍馬), 말하길(口稱): "나는(我) 바로(乃) 동 승상 집안의(董丞相家) 장수다(將也)!"라고 했다.
어지러이(亂) 활을 쏴서(箭射) 공손월을 죽였다(死公孫越). 따르던 사람들이(從人逃) 돌아가(回) 공손찬을 보고(見公孫瓚), 공손월이 이미 죽었다고 보고했다(報越已死).
공손찬이 크게 노하여 말하길(瓚大怒曰): "원소가(袁紹) 내가(我) 군사를 일으켜(起兵) 한복을 공격하도록(攻韓馥) 꼬드기고(誘), 도리어(他卻) 안으로 나아가(就裏) 일을 취하고(取事); 지금(今) 또(又) 동탁의 군사(董卓兵) 활을 쏴(射) 내 동생을 죽였다고(死吾弟) 속이니(詐), 이 원한을(此冤) 어찌(如何) 갚지 않겠는가(不報)!"라고 했다.
본부의 군사를(本部兵) 모두 일으켜(盡起), 기주로 달려갔다(殺奔冀州來).
7 紹知瓚兵至, 亦領軍出. 二軍會於磐河之上: 紹軍於磐河橋東, 瓚軍於橋西. 瓚立馬橋上, 大呼曰: "背義之徒, 何敢賣我!" 紹亦策馬至橋邊, 指瓚曰: "韓馥無才, 願讓冀州於吾, 與爾何干?" 瓚曰: "昔日以汝爲忠義, 推爲盟主; 今之所爲, 眞狼心狗行之徒, 有何面目立於世間!" 袁紹大怒曰: "誰可擒之?"
7 원소는(紹) 공산찬의 군사가 이른 것을(瓚兵至) 알고(知), 또한(亦) 군대를 이끌고(領軍) 나왔다(出). 두 군대가(二軍) 반하 가에서(於磐河之上) 만났고(會): 원소군은(紹軍) 반하교 동쪽에(於磐河橋東), 공손찬 군은(瓚軍) 다리 서쪽에 있었다(於橋西).
공손찬이(瓚) 말을(馬) 다리 위에(橋上) 세우고(立), 크게 소리 질러 말하길(大呼曰): "의를 배반한(背義之) 무리가(徒), 어찌 감히(何敢) 나를 파는가(賣我)!"라고 했다.
원소도 또한(紹亦) 말에 채찍질하며(策馬) 다리 가에 이르러(至橋邊), 공손찬을 가리키며 말하길(指瓚曰): "한복에게(韓馥) 재능이 없어(無才), 기주를(冀州) 나에게(於吾) 넘기기를 바랐는데(願讓), 네가(與爾) 어찌 간섭하는가(何干)?"라고 했다.
공손찬이 말하길(瓚曰): "지난날(昔日) 너를(以汝) 충성스럽고 의롭다고 여기고(爲忠義), 추대하여(推) 맹주로 삼았는데(爲盟主); 지금(今之) 하는 짓은(所爲), 참으로(眞) 이리의 심보와(狼心) 개처럼 행동하는(狗行之) 무리이니(徒), 무슨 면목이 있어(有何面目) 세상에 설 수 있는가(立於世間)!"라고 했다.
원소가 크게 노하여 말하길(袁紹大怒曰): "누가(誰) 저놈을 잡을 수 있겠느냐(可擒之)?"라고 했다.
8 言未畢, 文醜策馬挺鎗, 直殺上橋. 公孫瓚就橋邊與文醜交鋒. 戰不到十餘合, 瓚抵擋不住, 敗陣而走. 文醜乘勢追趕. 瓚走入陣中, 文醜飛馬逕入中軍, 往來衝突. 瓚手下健將四員, 一齊迎戰; 被文醜一鎗, 刺一將下馬, 三將俱走. 文醜直趕公孫瓚出陣後, 瓚望山谷而逃. 文醜驟馬厲聲大叫: "快下馬受降!" 瓚弓箭盡落, 頭盔墮地; 披髮縱馬, 奔轉山坡; 其馬前失, 瓚翻身落於坡下. 文醜急捻鎗來刺. 忽見草坡左側轉出一個少年將軍, 飛馬挺鎗, 直取文醜.
8 말이(言) 끝나기도 전에(未畢), 문추가(文醜) 말을 채찍질하며(策馬) 창을 빼어 잡고挺鎗), 곧바로(直殺) 다리에 올랐다(上橋). 공손찬이(公孫瓚) 다리 가로 나아가(就橋邊) 문추와(與文醜) 칼끝을 주고받았다(交鋒). 싸움이(戰) 십여 합에 이르지 않아(不到十餘合), 공손찬이(瓚) 막아서(抵擋) 멈추지 못하고(不住), 패하여(敗) 진으로 달아났다(陣而走). 문추가(文醜) 승세를 타고(乘勢) 추격했다(追趕). 공손찬이 도주하여(瓚走) 진 안에 들어오니(入陣中), 문추가(文醜) 나는 듯이 말을 달려(飛馬) 바로(逕) 중군으로 들어와(入中軍), 오가며(往來) 충돌했다(衝突). 공손찬의 부하 가운데(瓚手下) 용맹한 장수(健將) 4명이(四員), 일제히(一齊) 맞아 싸웠는데(迎戰); 문추의 창을 맞고(被文醜一鎗), 한 장수가 찔려(刺一將) 말에서 떨어졌다(下馬), 세 장수가(三將) 모두 달아났다(俱走). 문추가(文醜) 곧바로(直) 공손찬을 쫓아(趕公孫瓚) 진 뒤로 나오자(出陣後), 공손찬이(瓚) 산곡을 바라보며(望山谷而) 도주했다(逃).
문추가(文醜) 말을 몰아(驟馬) 크게 소리 지르며(厲聲) 큰 소리로 말하길(大叫): "빨리(快) 말에서 내려(下馬) 항복해라(受降)!"라고 했다.
공손찬의 활과 화살이(瓚弓箭) 모두 떨어지고(盡落), 투구도(頭盔) 땅에 떨어져(墮地); 머리를 풀어헤치고(披髮) 말을 몰아(縱馬), 산비탈에서(山坡) 달려 돌다가(奔轉); 말이(其馬) 앞으로 넘어져(前失), 공손찬이(瓚) 몸을 뒤집으며(翻身) 비탈 아래로 떨어졌다(落於坡下). 문추가(文醜) 급히(急) 창을 잡고(捻鎗) 와서 찔렀는데(來刺). 갑자기(忽見) 풀밭 비탈 왼쪽에서(草坡左側) 한 소년 장군이(一個少年將軍) 뛰쳐나와(轉出), 나는 듯이 말을 달려(飛馬) 창을 잡고(挺鎗), 곧바로(直) 문추를 취했다(取文醜).
* 厲聲(여성): (성이 나서) 언성을 높여 큰 소리를 지름. 또는 그 소리.
9 公孫瓚爬上坡去, 看那少年: 生得身長八尺, 濃眉大眼, 闊面重頤, 威風凜凜, 與文醜大戰五六十合, 勝負未分. 瓚部下救軍到, 文醜撥馬回去了. 那少年也不追趕. 瓚忙下土坡, 問那少年姓名. 那少年欠身答曰: "某乃常山眞定人也: 姓趙, 名雲, 字子龍; 本袁紹轄下之人. 因見紹無忠君救民之心, 故特棄彼而投麾下不期於此處相見." 瓚大喜, 遂同歸寨, 整頓甲兵.
9 공손찬이(公孫瓚) 산비탈을(坡去) 기어 올라(爬上), 이 소년을 보니(看那少年): 태어나며 얻은(生得) 몸길이가(身長) 8척이고(八尺), 눈썹이 짙고 눈이 크며(濃眉大眼), 넓은 얼굴에(闊面) 무거운 턱을 하고(重頤), 위풍이 늠름하며(威風凜凜), 문추와(與文醜) 크게 싸우기를(大戰) 50합이 지났는데(五六十合), 승부가(勝負) 갈리지 않았다(未分). 공손찬의(瓚) 부하 구원군이(部下救軍) 도착하자(到), 문추가(文醜) 말을 돌려(撥馬) 돌아갔다(回去了). 이 소년은(那少年也) 추격하지 않았다(不追趕). 공손찬이(瓚) 황망하게(忙) 언덕을 내려와(下土坡), 이 소년의 성명을(那少年姓名) 물었다(問).
이 소년이(那少年) 몸을 굽혀(欠身) 대답하길(答曰): "저는(某乃) 상산군(常山) 진정현 사람으로(眞定人也): 성은 조이고(姓趙), 이름은 운이며(名雲), 자는 자룡이니(字子龍); 본래(本) 원소가 관할하는 아래의(袁紹轄下之) 사람입니다(人). 원소에게(紹) 임금에게 충성하고(忠君) 백성을 구하는 마음이(救民之心) 없는 것을(無) 보았기 때문에(因見), 그러므로(故) 다만(特) 저 사람을 버리고(棄彼而) 휘하에 가담하려고 했는데(投麾下) 예기치 않게(不期) 이곳에서(於此處) 서로 만났습니다(相見)."라고 했다.
공손찬이 크게 기뻐하며(瓚大喜), 마침내(遂) 함께(同) 요새로 돌아가서(歸寨), 병사를 정돈했다(整頓甲兵).
* 濃眉大眼(농미대안): 눈썹이 짙고 눈이 큼.
* 欠身(흠신): 경의(敬意)를 표(表)하기 위(爲)하여 몸을 굽히는 것.
10 次日, 瓚將軍馬分作左右兩隊, 勢如羽翼. 馬五千餘匹, 大半皆是白馬. 因公孫瓚曾與羌人戰, 盡選白馬爲先鋒, 號爲「白馬將軍」; 羌人但見白馬便走, 因此白馬極多. 袁紹令顏良·文醜爲先鋒, 各引弓弩手一千, 亦分作左右兩隊; 令在左者射公孫瓚右軍, 在右者射公孫瓚左軍. 再令麴義引八百弓手, 步兵一萬五千, 列於陣中. 袁紹自引馬步軍數萬, 於後接應.
10 다음날(次日), 공손찬이(瓚) 군마를 이끌고(將軍馬) 나누어(分) 좌우 양 부대를 만들고(作左右兩隊), 형세가(勢) 날개를 펼친 듯했다(如羽翼). 말(馬) 50여 필이(五千餘匹), 거의 반이(大半) 모두(皆) 백마였다(是白馬). 공손찬이(公孫瓚) 일찍이(曾) 강족과 싸우면서(與羌人戰), 모두(盡) 백마를 뽑아(選白馬) 선봉으로 삼았기 때문에(因爲先鋒), 부르는 것이(號) 백마장군이 되었는데(爲'白馬將軍'); 강족이(羌人) 다만(但) 백마만 보고도(見白馬) 곧 달아나서(便走), 이 때문에(因此) 백마가(白馬) 매우 많았다(極多). 원소가(袁紹) 안량과 문추를 시켜(令顏良·文醜) 선봉으로 삼아(爲先鋒), 각자(各) 궁노수 천 명을 이끌도록 하고(引弓弩手一千), 또(亦) 나누어(分) 좌우 양 부대를 만들고(作左右兩隊); 왼쪽에 있는 부대는(在左者) 공손찬의 오른쪽 군대를 쏘도록 하고(令射公孫瓚右軍), 오른쪽에 있는 부대는(在右者) 공손찬의 왼쪽 군대를 쏘도록 했다(射公孫瓚左軍). 다시(再) 국의에게 궁수 800명과(令麴義引八百弓手), 보명 15,000명을 이끌고(步兵一萬五千), 별도로(列) 지 가운데서 벌려서도록 했다(於陣中). 원소가(袁紹) 직접(自) 마보군 수 만을 이끌고(引馬步軍數萬), 뒤에서(於後) 접응했다(接應).
11 公孫瓚初得趙雲, 不知心腹, 令其另領一軍在後. 遣大將嚴綱爲先鋒. 瓚自領中軍, 立馬橋上, 傍豎大紅圈金線「帥」字旗於馬前. 從辰時擂鼓, 直至巳時, 紹軍不進. 麴義令弓手皆伏於遮箭下, 只聽砲響發箭. 嚴綱鼓譟吶喊, 直取麴義, 義軍見嚴綱兵來, 都伏而不動; 直到來得至近, 一聲砲響, 八百弓弩手一齊俱發. 綱急得回, 被麴義拍馬舞刀, 斬於馬下, 瓚軍大敗. 左右兩軍, 欲來救應, 被被顏良·文醜引弓弩手射住. 紹軍並進, 直殺到界橋邊麴義馬到, 先斬執旗將, 把繡旗砍倒.
11 공손찬이(公孫瓚) 처음(初) 조운을 얻고서(得趙雲), 그 속마음을 알지 못하므로(不知心腹), 그 한 부대를 나누어(其另領一軍) 뒤에 있도록 했다(令在後). 대장 엄감을 보내(遣大將嚴綱) 선봉으로 삼았다(爲先鋒). 공손찬이(瓚自) 중군을 이끌고(領中軍), 말을 다리 위에 세우고(立馬橋上), 크게 붉고 둥글며(大紅圈) 금색실로(金線) 수놓은 대장기를('帥'字旗) 말 앞에(於馬前) 세웠다(傍豎). 진시를 따라(從辰時) 북을 쉴 새 없이 울려(擂鼓), 곧(直) 사시에 이르렀지만(至巳時), 원소군은(紹軍) 나아가지 않았다(不進). 국의가(麴義) 궁수에게 명령하여(令弓手) 모두(皆) 화살을 가리는 방패 아래 엎드렸다가(伏於遮箭下), 다만(只) 포향을 들으면(聽砲響) 화살을 쏘도록 했다(發箭). 엄강이(嚴綱) 북을 울리고(鼓) 소리를 지르며(譟吶喊), 곧바로(直) 국의를 취하니(取麴義), 국의의 군대가(義軍) 엄감의 병사가 온 것을(嚴綱兵來) 보고도(見), 모두 엎드려서(都伏而) 움직이지 않았고(不動); 바로(直) 와서(到來) 가까이 이르자(得至近), 포향이 한 번 울리고(一聲砲響), 800 궁수가(八百弓弩手) 일제히(一齊) 모두 발사했다(俱發). 엄강이(綱) 급히(急) 돌아가려고 했는데(得回), 국의가(被麴義) 말을 박차고(拍馬) 칼을 휘둘러(舞刀), 베어(斬) 말 아래로 떨어뜨려(於馬下), 공손찬 군이(瓚軍) 크게 패했다(大敗). 좌우 양군이(左右兩軍), 와서 구하려고 했지만(欲來救應), 안량과 문추의 궁노수가(被顏良·文醜引弓弩手) 쏜 화살을 맞았다(被射住). 원소의 군대가(紹軍) 함께 나아가(並進), 곧바로(直殺) 계고 가에 이르렀고(到界橋邊) 국의의 말도 도착해서(麴義馬到), 먼저(先) 기를 잡은 장수를(執旗將) 베고(斬), 수놓은 기를 잡아(把繡旗) 베어 넘겼다(砍倒).
* 擂鼓(뇌고): 북을 쉴 사이 없이 (빨리) 자꾸 침.
12 公孫瓚見砍倒繡旗, 回馬下橋而走. 麴義引軍直衝到後軍, 正撞著趙雲, 挺鎗躍馬, 直取麴義. 戰不數合, 一鎗刺麴義於馬下. 趙雲一騎馬飛入紹軍, 左衝右突, 如入無人之境. 公孫瓚引軍殺回, 紹軍大敗.
12 공손찬은(公孫瓚) 수놓은 기를(繡旗) 베어 넘기는 것을(砍倒) 보고(見), 말을 돌려(回馬) 다리를 내려가(下橋而) 달아났다(走). 국의가(麴義) 군사를 이끌고(引軍) 곧바로 가로질러(直衝) 후군에 도착해서(到後軍), 바로(正) 조운과 부딪혔는데(撞著趙雲), 창을 잡고(挺鎗) 말을 뛰어(躍馬), 바로(直) 국의를 취했다(取麴義). 사움이(戰) 몇 합 지나지 않아(不數合), 창 한 번으로(一鎗0 국의를 찔러(刺麴義) 말에서 떨어뜨렸다(於馬下). 조운이(趙雲) 말 한 기로(一騎馬) 나는 듯이(飛) 원소군에 들어와(入紹軍), 좌충우돌하니(左衝右突), 마치(如) 사람이 없는 곳에 들어온 듯했다(入無人之境). 공손찬이(公孫瓚) 군사를 이끌고(引軍) 바로 돌아와(殺回), 원소군이(紹軍) 크게 패했다(大敗).
13 卻說袁紹先使探馬看時, 回報麴義斬將搴旗, 追趕敗兵; 因此不作準備, 與田豐引著帳下持戟軍士數百人, 弓箭手數十騎, 乘馬出觀, 呵呵大笑曰: "公孫瓚無能之輩!"
13 한편(卻) 원소는(說袁紹) 먼저(先) 척후병을 보내(使探馬) 살피도록 했을 때(看時), 국의가(麴義) 장수를 베고(斬將) 기를 뽑아내고(搴旗), 패잔병을 추격한다고(追趕敗兵) 돌아가 보고하자(回報); 이것 때문에(因此) 준비를 하지 못하고(不作準備), 전풍과 함께(與田豐) 장막 아래서(著帳下) 창을 가지고 있던 군사(持戟軍士) 수백 명과(數百人), 궁전수(弓箭手) 수십 기를(數十騎) 이끌고(引), 말을 타고(乘馬) 나와서 보며出觀), 크게 소리 내 웃으며 말하길(呵呵大笑曰): "공손찬이(公孫瓚) 능력 없는(無能之) 놈이로구나(輩)!"라고 했다.
* 呵呵大笑(가가대소): 크게 소리 내어 웃음.
14 正說之間, 忽見趙雲衝到面前. 弓箭手急待射時, 雲連刺數人, 眾軍皆走. 後面瓚軍團團圍裹上來. 田豐慌對紹曰: "主公且於空牆中躲避!" 紹以兜鍪撲地, 大呼曰: "大丈夫願臨陣鬥死, 豈可入牆而望活乎!" 眾軍士齊心死戰, 趙雲衝突不入, 紹兵大隊掩至, 顏良亦引軍來到, 兩路并殺. 趙雲保公孫瓚殺透重圍, 回到界橋. 紹驅兵大進, 復趕過橋, 落水死者, 不計其數. 袁紹當先趕來, 不到五里, 只聽得山背後喊聲大起, 閃出一彪人馬, 爲首三員大將, 乃是劉玄德, 關雲長, 張翼德. 因在平原探知公孫瓚與袁紹相爭, 特來助戰. 當下三匹馬, 三般兵器, 飛奔前來, 直取袁紹. 紹驚得魂飛天外, 手中寶刀墜於馬下, 忙撥馬而逃, 眾人死救過橋. 公孫瓚亦收軍歸寨. 玄德·關·張動問畢, 瓚曰: "若非玄德遠來救我, 幾乎狼狽." 教與趙雲相見. 玄德甚相敬愛, 便有不捨之心.
14 바로(正) 말하는(說之) 사이에(間), 홀연히(忽) 조운이(趙雲) 면전에 돌진해 들어온 것이(衝到面前) 보였다(見). 궁전수가(弓箭手) 다급하게(急) 쏘려고 준비할 대(待射時), 조운이(雲) 연달아(連) 몇 명을 찌르니(刺數人), 여러 군사들이(眾軍) 모두 달아났다(皆走). 뒤에서(後面) 공산찬의 군대가(瓚軍) 겹겹이(團團) 둘러싸고(圍) 포위해 올라왔다(裹上來).
전풍이(田豐) 황급히(慌) 원소에게 말하길(對紹曰): "주공은(主公) 우선(且) 담장 안에서(於空牆中) 몸을 숨기고 피하십시오(躲避)!"라고 했다.
원소가(紹) 투구로(以兜鍪) 땅을 치며(撲地), 크게 말하길(大呼曰): "대장부가(大丈夫) 싸움에 임해서(臨陣) 싸우다 죽기를 바라는 것이니(願鬥死), 어찌(豈) 담장에 들어가(可入牆而) 살기를 바라겠는가(望活乎)!"라고 했다.
여러 군사가(眾軍士) 마음을 합쳐(齊心) 죽을 각오로 싸우니(死戰), 조운이(趙雲) 치고 들어오지 못했고(衝突不入), 원소의 군대가(紹兵) 큰 부대로(大隊) 엄습하여 도착하고(掩至), 안량도 또한(顏良亦) 군사를 이끌오(引軍) 와서 도착해서(來到), 양쪽 길로(兩路) 함께 쇄도했다(并殺). 조운이(趙雲) 공손찬을 보호하며(保公孫瓚) 여러 겹의 포위를 뚫고(殺透重圍), 돌아와(回) 경계의 다리에 이르렀다(到界橋). 원소가(紹) 군사를 몰아(驅兵) 크게 나아가서(大進), 다시(復) 추격하여(趕) 다리를 건너니(過橋), 물에 떨어져(落水) 죽은 사람이(死者), 그 숫자를 셀 수 없었다(不計其數). 원소가(袁紹) 앞서서(當先) 추격하여 오다가(趕來), 5리도 이르지 못해서(不到五里), 문득 들리는 것이(只聽) 산 뒤에서(得山背後) 함성이 크게 일어나고(喊聲大起), 불쑥(閃) 한 무리의 인마가 나왔는데(出一彪人馬), 세 사람을 대장으로 삼은 것이(爲首三員大將), 바로(乃是) 유현덕과 관운장, 장익덕이었다(劉玄德, 關雲長, 張翼德). 평원에 있으면서(因在平原) 공손찬과 원소가 서로 싸우는 것을(公孫瓚與袁紹相爭) 알고(探知), 특별히(特) 와서(來) 싸움을 도왔다(助戰). 바로(當) 세 필의 말과(下三匹馬), 세 종류의(三般) 병기가(兵器), 나는 듯이 달려와(飛奔) 앞에 이르러(前來), 바로(直) 원소를 취했다(取袁紹). 원소가 놀라(紹驚) 혼이(得魂) 하늘 밖으로 날아가고(飛天外), 손 안의(手中) 보도를(寶刀) 말 아래 떨어뜨리고(墜於馬下), 황급히(忙) 말을 박차(撥馬而) 도망가니(逃), 많은 사람이(眾人) 죽음을 무릅쓰고 구해서(死救) 다리를 지나갔다(過橋). 공손찬도(公孫瓚) 또한(亦) 군사를 거두어(收軍) 요새로 돌아갔다(歸寨).
현덕과 관우, 장비가(玄德·關·張) 움직여(動) 인사를 마치니(問畢), 공손찬이 말하길(瓚曰): "만약(若) 현덕이(玄德) 멀리서 와서(遠來) 나를 구하지 않았다면(非救我), 거의(幾乎) 낭패를 볼뻔했구나(狼狽)."라고 했다.
조운을 시켜(教與趙雲) 서로 만나게 했다(相見). 현덕이(玄德) 매우(甚) 서로(相) 공경하고 사랑해서(敬愛), 문득(便) 버리지 못하는(아쉬운) 마음이 있었다(有不捨之心).
* 當下(당하): 일이 있는 바로 그 자리 또는 바로 그때.
15 卻說袁紹輸了一陣, 堅守不出. 兩軍相拒月餘, 有人來長安報知董卓. 李儒對卓曰: "袁紹與公孫瓚, 亦當今豪傑. 見在磐河廝殺, 宜假天子之詔, 差人往和解之. 二人感德, 必順太師矣." 卓大喜. 次日便使太傅馬日磾·太僕趙岐, 齎詔前去. 二人來至河北, 紹出迎於百里之外, 再拜奉詔. 次日二人至瓚營宣諭, 瓚乃遣使致書於紹, 互相講和; 二人自回京復命. 瓚即日班師, 又表薦劉玄德爲平原相. 玄德與趙雲分別, 執手垂淚, 不忍相離. 雲歎曰: "某日誤認公孫瓚爲英雄; 今觀所爲, 亦袁紹等輩耳!" 玄德曰: "公且屈身事之, 相見有日." 灑淚而別.
15 한편(卻說) 원소가(袁紹) 일진을 보내고 나서(輸了一陣), 굳게 지키고(堅守) 나오지 않았다(不出). 양군이(兩軍) 서로(相) 버틴 것이(拒) 한 달여가 지나고(月餘), 어떤 사람이 있어(有人) 장안으로 와서(來長安) 동탁에게 보고했다(報知董卓).
이유가(李儒) 동탁에게 말하길(對卓曰): "원소와 공손찬은(袁紹與公孫瓚), 또한(亦) 오늘날의(當今) 호걸입니다(豪傑). 반하에 있으면서(在磐河) 서로 마구 싸우는 것을(廝殺) 보니(見), 마땅히(宜) 천자의 조서를 빌어(假天子之詔), 사람을 보내(差人) 가서(往) 화해하도록 하십시오(和解之). 두 사람이(二人) 덕에 감동하여(感德), 반드시(必) 태사를 따를 것입니다(順太師矣)."라고 했다.
동탁이 기뻐했다(卓大喜). 다음날(次日) 고도(便) 태부 마일제와(使太傅馬日磾) 태복 조기가(太僕趙岐), 조서를 가지고(齎詔) 앞서 가도록 했다(前去). 두 사람이(二人) 와서(來) 하북에 이르자(至河北), 원소가(紹) 나와(出) 백 리 밖에서 맞이하고(迎於百里之外), 재배하고(再拜) 조서를 받들었다(奉詔). 다음날(次日) 두 사람이(二人) 공손찬의 진영에 이르러(至瓚營) 천자의 명을 전하니(宣諭), 공손찬이(瓚) 곧(乃) 사자를 보내(遣使) 원소에게(於紹) 글이 이르도록 하고(致書), 서로(互相) 강화하고(講和); 두 사람이(二人) 서울로 돌아가(自回京) 복명했다(復命). 공손찬이(瓚) 그날(即日) 군대를 되돌렸고(班師), 또(又) 표를 올려(表) 유현덕을 천거하여(薦劉玄德) 평원의 상으로 삼았다(爲平原相). 현덕과 조운이(玄德與趙雲) 이별하면서(分別), 손을 잡고(執手) 눈물을 흘리며(垂淚), 차마 서로 떨어지지 못했다(不忍相離).
조운이(雲) 탄식하며 말하길(歎曰): "제가(某) 지난날(日) 공손찬이(公孫瓚) 영웅이 될 것이라고(爲英雄) 잘못 생각했고(誤認); 지금(今) 하는 것을 보니(觀所爲), 또한(亦) 원소와(袁紹等) 비슷한 무리입니다(輩耳)!"라고 했다.
현덕이 말하길(玄德曰): "공은 우선(公且) 몸을 낮추고(屈身) 섬기다가(事之), 서로(相) 보는 것에(見) 날이 있을 것이다(有日)."라고 했다.
눈물을 흘리며(灑淚而) 작별했다(別).
* 廝殺(시살): 전투(戰鬪)에서 마구 침.
* 齎詔(재조): 임금의 명령을 받아 지님.
* 宣諭(선유): 임금의 훈유(訓諭)를 백성(百姓)들에게 널리 공포(公布)함.
* 復命(복명): 명령(命令)을 받고 일을 처리(處理)한 사람이 그 결과(結果)를 보고(報告)함.
* 班師(반사): 군사(軍士)를 거느리고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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