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卻說李·郭二賊欲弒獻帝. 張濟·樊稠諫曰: "不可. 今日若便殺之, 恐衆人不服; 不如仍舊奉之爲主, 賺諸侯入關, 先去其羽翼, 然後殺之, 天下可圖也." 李·郭二人從其言, 按住兵器. 帝在樓上宣諭曰: "王允旣誅, 軍馬何故不退?" 李傕·郭汜曰: "臣等有功王室, 未蒙賜爵, 故不敢退軍." 帝曰: "卿欲封何爵?"
1 한편(卻說) 이각과 곽사(李·郭) 두 역적은(二賊) 헌제를 시행하려고 했다(欲弒獻帝).
장제와 번조가(張濟·樊稠) 간하여 말하길(諫曰): "안됩니다(不可). 오늘(今日) 만약(若) 바로 죽인다면(便殺之), 여러 사람이(衆人) 복종하지 않을까 걱정되니(恐不服); 예전에 받들던 것을 따라(仍舊奉之) 주인으로 삼고(爲主), 제후를 속여(賺諸侯) 관에 들어오도록 해서(入關), 먼저(先) 그 보좌하는 사람을 없애고 나서(去其羽翼, 然後) 죽이고(殺之), 천하를 도모하는 것만(天下可圖) 못합니다(不如也)."라고 했다.
이각과 곽사( 李·郭) 두 사람이(二人) 그 말을 따라서(從其言), 병기를 거두었다(按住兵器).
황제가(帝) 누상에 있으면서(在樓上) 선유하여 말하길(宣諭曰): "왕윤이(王允) 이미 죽었는데(旣誅), 군마를(軍馬) 무슨 까닭으로(何故) 물리지 않는가(不退)?"라고 했다.
이각과 곽사가 말하길(李傕·郭汜曰): "신 등에게는(臣等) 왕실에 세운 공이 있으나(有功王室), 관작을 받지 못했고(未蒙賜爵), 그러므로(故) 감히 군사를 물릴 수 없습니다(不敢退軍)."라고 했다.
황제가 말하길(帝曰): "경은(卿) 어떤 작위에(何爵) 봉해지기를 바라는가(欲封)?"라고 했다.
* 羽翼(우익): 윗사람을 도와서 일하는 사람. 보좌(補佐ㆍ輔佐)하는 일.
* 宣諭(선유): 임금의 훈유(訓諭)를 백성(百姓)들에게 널리 공포(公布)함.
2 李·郭·張·樊·四人各自寫職銜獻上, 勒要如此官品. 帝只得從之, 封李傕爲車騎將軍池陽侯, 領司隸校尉, 假節鉞; 郭汜爲後將軍, 假節鉞: 同秉朝政; 樊稠爲右將軍萬年侯; 張濟爲驃騎將軍平陽侯, 領兵屯弘農. 其餘李蒙·王方等, 各爲校尉. 然後謝恩, 領兵出城. 又下令追尋董卓屍首, 獲得些零碎皮骨, 以香木雕成形體, 安湊停當, 大設祭祀, 用王者衣冠棺槨, 選擇吉日, 遷葬郿塢. 臨葬之期, 天降大雷雨, 平地水深數尺, 霹靂震開其棺, 屍首提出棺外. 李傕候晴再葬, 是夜又復如是. 三次改葬, 皆不能葬. 零皮碎骨, 悉爲雷火消滅. 天之怒卓, 可謂甚矣!
2 이각과 곽사, 장제, 번조 네 사람은(李·郭·張·樊·四人) 각자(各) 스스로(自) 직함을 묘사하여(寫職銜) 황제에게 바치고(獻上), 이와 같은 관직과 품계를(如此官品) 요구했다(勒要). 황제가(帝) 단지(只) 그들을 따라서(得從之), 이각을 봉하여(封李傕) 차기장군 지양후로 삼고(爲車騎將軍池陽侯), 사례교위 가절월을 겸하게 하고(領司隸校尉, 假節鉞); 곽사를(郭汜) 후장군 가절월로 삼으니(爲後將軍, 假節鉞): 함께(同) 조정을 장악했고(秉朝政); 번조는(樊稠) 우장군 만년후로 삼고(爲右將軍萬年侯); 장제는(張濟) 표기장군 평양후로 봉하고(爲驃騎將軍平陽侯), 홍농에 군대를 주둔하도록 했다(領兵屯弘農). 그 나머지(其餘) 이몽과 왕방 등은(李蒙·王方等), 각각(各) 교위가 되었다(爲校尉).
그러고 나서(然後) 은혜에 감사인사를 하고(謝恩), 군사를 통솔하여(領兵) 성을 나갔다(出城). 또(又) 아래에 영을 내려(下令) 동탁의 시신을(董卓屍首) 찾고(追尋), 조그마게(些) 조각나고 부서진(零碎) 피부와 뼈를(皮骨) 얻어(獲得), 향나무로(以香木) 형체를 깎아 만들어(雕成形體), 적절히 처리하고(安湊停當), 크게 제사를 지내며(大設祭祀), 왕의 옷과 관, 관곽을 쓰고(用王者衣冠棺槨), 길을을 선택해서(選擇吉日), 미오에 옮겨 장사 지냈다(遷葬郿塢).
장사 지낼 때에 임하여(臨葬之期), 하늘에서(天) 큰 우레와 비가 내려(降大雷雨), 평지의 물이(平地水) 몇 척이나 깊어졌고(深數尺), 벼락과 우레가(霹靂) 진동하여(震) 그 관을 열리게 하고(開其棺), 시신의 머리가(屍首) 관 밖으로 나왔다(提出棺外). 이각은(李傕) 날이 개자(候晴) 다시 장사 지내고(再葬), 이날 밤에(是夜) 또다시(又復) 이와 같았다(如是). 세 번째(三次) 다시 장사 지낼 때(改葬), 모두(皆) 장사 지낼 수 없었다(不能葬). 피부 조각과(零皮) 부서진 뼈가(碎骨), 모두(悉) 우레 불 때문에(爲雷火) 없어졌다(消滅). 하늘이(天之) 동탁에게 노한 것이(怒卓), 심하다고 할만하다(可謂甚矣)!
* 停當(정당): 사리(事理)에 합당(合當)함.
3 且說李傕·郭汜旣掌大權, 殘虐百姓, 密遣心腹待帝左右, 觀其動靜. 獻帝此時舉動荊棘. 朝廷官員, 並由二賊陞降. 因採人望, 特宣朱雋入朝, 封爲太僕, 同領朝政. 一日, 人報西涼太守馬騰·并州刺史韓遂二將引軍十餘萬, 殺奔長安來, 聲言討賊. 原來二將先曾使人入長安, 結連侍中馬宇·諫議大夫种邵·左中郎將劉範三人爲內應, 共謀賊黨. 三人密奏獻帝, 封馬騰爲征西將軍·韓遂爲鎮西將軍, 各受密詔, 併力討賊.
3 한편(且說) 이각과 곽사가(李傕·郭汜) 대권을 장악하고 나서(旣掌大權), 백성을 잔학하게 대하고(殘虐百姓), 은밀하게(密) 심복을 보내(遣心腹) 황제의 곁에 대기하도록 하면서(待帝左右), 그 동정을 살폈다(觀其動靜). 헌제가(獻帝) 이때(此時) 거동하는 것이(舉動) 가시방석 같았다(荊棘). 조정의 관원도(朝廷官員), 모두(並) 두 역적으로 인해(由二賊) <벼슬이> 오르내렸다(陞降). 인망에 따라 거두어(因採人望), 특별히(特) 주준을 등용하여(宣朱雋) 조정에 들어오도록 하고(入朝), 봉하여(封) 태복으로 삼고(爲太僕), 함께(同) 조정을 거느렸다(領朝政).
어느 날(一日), 누군가 보고하길(人報) 서량태수 마등과(西涼太守馬騰) 병주자사 한수(并州刺史韓遂) 두 장수가(二將) 군사 10여만 명을 이끌고(引軍十餘萬), 장안으로 달려오며(殺奔長安來), 역적을 토벌한다고 말했다고(聲言討賊) 했다. 원래(原來) 두 장수가(二將) 먼저(先曾) 사람을 시켜(使人) 장안에 들어와(入長安), 시중 마우와 간의대부 종소, 좌중랑장 유범 세 사람과(侍中馬宇·諫議大夫种邵·左中郎將劉範三人) 연락하여(結連) 안에서 응하기로 하고(爲內應), 함께(共) 도적 무리를 도모하려고 했다(謀賊黨). 세 사람이(三人) 은밀하게(密) 헌제에게 아뢰자(奏獻帝), 마등을 봉하여(封馬騰) 정서장군으로 삼고(爲征西將軍) 한수를(韓遂爲) 진서장군으로 삼아(鎮西將軍), 각각(各) 은밀한 조서를 받고(受密詔), 힘을 합쳐(併力) 역적을 토벌하려고 했다(討賊).
4 當下李傕, 郭汜, 張濟, 樊稠聞二軍將至, 一同商議禦敵之策. 謀士賈詡曰: "二軍遠來, 只宜深溝高壘, 堅守以拒之. 不過百日, 彼兵糧盡, 必將自退, 然後引兵追之, 二將可擒矣." 李蒙·王方出曰: "此非好計. 願借精兵萬人, 立斬馬騰·韓遂之頭, 獻於麾下." 賈詡曰: "今若即戰, 必當敗績." 李蒙·王方齊聲曰: "若吾二人敗, 情願斬首; 吾若戰勝, 公亦當輸首級與我." 詡謂李傕·郭汜曰: "長安西二百里盩厔山, 其路險崚, 可使張·樊兩將軍屯兵於此, 堅壁守之; 待李蒙·王方自引兵迎敵, 可也." 李傕·郭汜從其言, 點一萬五千人馬與李蒙·王方. 二人忻喜而去, 離長安二百八十里下寨. 西涼兵到, 兩個引軍迎去. 西涼軍馬攔路擺開陣勢. 馬騰·韓遂聯轡而出, 指李蒙·王方罵曰: "反國之賊! 誰去擒之?"
4 이때(當下) 이각과 곽사, 장제, 번조가(李傕, 郭汜, 張濟, 樊稠) 두 장수가 이르렀다는 것을(二軍將至) 듣고(聞), 함께(一同) 적을 막을 책략을(禦敵之策) 상의했다(商議).
모사(謀士) 가후가 말하길(賈詡曰): "두 군대는(二軍) 멀리서 오는 것이니(遠來), 다만(只) 마땅히(宜) 해자를 깊이 파고(深溝) 보루를 높이고(高壘), 견고하게 지켜서(堅守以) 물리쳐야 합니다(拒之). 100일이 지나지 않아서(不過百日), 저들의 군량이(彼兵糧) 다할 것이고(盡), 반드시(必) 스스로 물러가고 나서(將自退, 然後) 병사를 이끌고(引兵) 추격하면(追之), 두 장수를(二將) 잡을 수 있습니다(可擒矣)."라고 했다.
이몽과 왕방이(李蒙·王方) 나서며 말하길(出曰): "이것은(此)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非好計). 원컨대(願) 정예 병사 만 명을 주시면(借精兵萬人), 마등과 한수의 머리를(馬騰·韓遂之頭) 선채로 베어(立斬), 휘하에 바치겠습니다(獻於麾下)."라고 했다.
가후가 말하길(賈詡曰): "지금(今) 만약(若) 바로 싸운다면(即戰), 반드시(必) 패할 것입니다(當敗績)."라고 했다.
이몽과 왕방이(李蒙·王方) 일제히(齊) 소리쳐 말하길(聲曰): "만약(若) 우리 두 사람이(吾二人) 패한다면(敗), 진실로(情) 참수될 것을 원합니다(願斬首); 우리가(吾) 만약(若) 싸움에서 이긴다면(戰勝), 공도 또한(公亦) 마땅히(當) 우리에게(與我) 수급을 주어야 합니다(輸首級)."라고 했다.
가후가(詡) 이각과 곽사에게 말하길(謂李傕·郭汜曰): "장안(長安) 서쪽(西) 2백 리 되는 곳에(二百里) 주질산이 있는데(盩厔山), 그 길이 험해서(其路險崚), 장제와 번조 두 장수로 하여금(可使張·樊兩將軍) 이곳에(於此) 군사를 주둔하도록 하고(屯兵), 견고하게 지키는 것을(堅壁守之) 기다렸다가(待) ; 이몽과 방방이(李蒙·王方) 병사를 이끌고(自引兵) 적을 맞이하는 것이(迎敵), 좋겠습니다(可也)."라고 했다.
이각과 곽사가(李傕·郭汜) 그 말을 따라(從其言), 15000의 인마를 소집하여(點一萬五千人馬) 이몽과 왕방에게 주었다(與李蒙·王方). 두 사람이(二人) 기뻐하며 떠나서(忻喜而去), 장안에서 280리 떨어진 곳에(離長安二百八十里) 영채를 세웠다(下寨). 서량의 병사가 도착하자(西涼兵到), 두 사람이(兩) 각자(個) 군사를 이끌고(引軍) 맞이했다(迎去). 서량의 군마가(西涼軍馬) 길을 막고(攔路) 진세를 열었다(擺開陣勢).
마등과 한수가(馬騰·韓遂) 말고삐를 잡고(聯轡而) 나아가(出), 이몽과 왕방을 가리키며(指李蒙·王方) 꾸짖어 말하길(罵曰): "나라를 배반한(反國之) 도적이로구나(賊)! 누가 가서(誰去) 잡아올 것인가(擒之)?"라고 했다.
* 敗績(패적): 자기(自己) 나라에 패전(敗戰)을 일컫는 말.
5 言未絕, 只見一位少年將軍, 面如冠玉, 眼若流星; 虎體猿臂; 彪腹狼腰; 手執長鎗, 坐騎駿馬, 從陣中飛出. 原來那將即馬騰之子馬超, 字孟起, 年方十七歲, 英勇無敵. 王方欺他年幼, 躍馬迎戰. 戰不到數合, 早被馬超一鎗刺於馬下. 馬超勒馬便回. 李蒙見王方刺死, 一騎馬從馬超背後趕來. 超只做不知. 馬騰在陣門下大叫: "背後有人追趕!"
5 말이(言) 끝나지 않았는데(未絕), 다만(只) 한 자리의(一位) 소년 장군이(少年將軍) 보이는데(見), 얼굴이(面) 관옥과 같고(如冠玉), 눈이 유성과 같으며(眼若流星); 호랑이 몸매에(虎體) 원숭이 팔을 하고(猿臂); 표범의 배에(彪腹) 이리의 허리를 가지고(狼腰); 손에(手) 장창을 잡고(執長鎗), 준마를 올라타고(坐騎駿馬), 진중을 따라(從陣中) 나는 듯이 나왔다(飛出).
원래(原來) 이 장수는(那將) 바로(即) 마등의 아들(馬騰之子) 마초로(馬超), 자는 맹기이고(字孟起), 나이는(年) 막(方) 열일곱이었고(十七歲), 영특하고 용감함에(英勇) 적수가 없었다(無敵). 왕방이(王方) 그 나이 어린것을(他年幼) 업신여기고(欺), 말을 뛰어(躍馬) 맞아 싸웠다(迎戰). 싸움이(戰) 몇 합에도 이르지 않아서(不到數合), 일찍(早) 마초의 한 창에 찔려(被馬超一鎗刺) 말에서 떨어졌다(於馬下). 마초가(馬超) 말고삐를 당겨(勒馬) 바로 돌아왔다(便回). 이몽은(李蒙) 왕방이 찔려 죽은 것을 보고(見王方刺死), 말을 타고(一騎馬) 마초를 따라(從馬超) 뒤에서(背後) 쫓아왔다(趕來). 마초가(超) 다만(只) 일부러 알지 못하는 척했다(做不知). 마등이(馬騰) 진문 아래 있으면서(在陣門下) 크게 소리 지르길(大叫): "뒤에(背後) 사람이 있어(有人) 쫓아온다(追趕)!"라과 했다.
6 聲猶未絕, 只見馬超已將李蒙擒在馬上. 原來馬超明知李蒙追趕, 卻故意俄延; 等他馬近, 舉鎗刺來, 超將身一閃, 李蒙搠個空, 兩馬相並, 被馬超輕舒猿臂, 生擒過去. 軍士無主, 望風奔逃. 馬騰·韓遂乘勢追殺, 大獲勝捷, 直逼隘口下寨, 把李蒙斬首號令.
6 소리가(聲) 아직(猶) 끊어지지 않았는데(未絕), 다만(只) 마초가(馬超) 이미(已) 이몽을 거두어 잡아(將李蒙擒) 말 위에 있는 것이(在馬上) 보였다(見). 원래(原來) 마초는(馬超) 이몽이 쫓는 것을(李蒙追趕) 잘 알았지만(明知), 일부러(卻故意) 잠시 시간을 끌어(俄延); 그 말이 가까워지기를(他馬近) 기다렸다가(等), 창을 들어(舉鎗) 찔러 오자(刺來), 마초가(超) 몸을 번개처럼 돌리니(將身一閃), 이몽이(李蒙) 허공을 찔렀고(搠個空), 두 말이(兩馬) 서로 나란히 갈 때(相並), 마초가(被馬超) 원숭이 같은 팔을(猿臂) 가볍게 펴서(輕舒), 산채로 잡아(生擒) 지나갔다(過去). 군사에게(軍士) 주인이 없으므로(無主), 바람을 맞은 것처럼(望風) 분주히 달아났다(奔逃). 마등과 한수가(馬騰·韓遂) 승세를 타고(乘勢) 추격하여 죽여서(追殺), 크게(大) 승리를 얻고(獲勝捷), 바로(直) 험하고 좁은 입구에 이르러(逼隘口) 영채를 치고(下寨), 이몽의 벤 머리를 잡고(把李蒙斬首) 호령했다(號令).
* 隘口(애구): 험하고 좁은 목.
7 李傕·郭汜聽知李蒙·王方皆被馬超殺了, 方信賈詡有先見之明, 重用其計, 只理會緊守關防, 由他搦戰, 並不出迎. 果然西涼軍未及兩月, 糧草俱乏, 商議回軍. 恰好長安城中馬宇家僮出首家主與劉範·种邵, 外連馬騰·韓遂, 欲爲內應等情. 李傕·郭汜大怒, 盡收三家少良賤斬於市, 把三顆首級, 直來門前號令.
7 이각과 곽사는(李傕·郭汜) 이몽과 왕방이(李蒙·王方) 모두(皆) 마초에게 죽임 당했다는 것을(被馬超殺) 들어 알고는(聽知了), 비로소(方) 가후에게(賈詡) 선견지명이 있음을(有先見之明) 믿고(信), 그의 계책을 중용하고(重用其計), 다만(只) 이회가(理會) 요새를 견고하게 지키고(緊守關防), 다른 것 때문에(由他) 싸우더라도(搦戰), 함께(並) 나가 싸우지 않았다(不出迎).
과연(果然) 서량 군사가(西涼軍) 두 달도 되지 않아서(未及兩月), 군량과 마초가(糧草) 모두 부족하자(俱乏), 회군을 상의했다(商議回軍). 그런데(恰) 바로 그때(好) 장안성 가운데서(長安城中) 마우 집안의 종이(馬宇家僮) 가주와 유범, 종소가(家主與劉範·种邵), 밖으로(外) 마등, 한수와 연결하여(連馬騰·韓遂), 안에서 응하려 했다는 실정을(欲爲內應等情) 出首. 이각과 곽사가(李傕·郭汜) 크게 노하여(大怒), 삼가의 어린 양인과 천을(三家少良賤) 모두 잡아다가(盡收) 거리에서 참수하고(斬於市), 세 개의 수급을 잡아(把三顆首級), 바로(直) 문 앞에 와서(來門前) 호령했다(號令).
* 關防(관방): 국경(國境)을 지킴, 변방(邊方)의 방비(防備)를 위하여 설치(設置)한 요새(要塞).
8 馬騰·韓遂見軍糧已盡, 內應又泄, 只得拔寨退軍. 李傕·郭汜令張濟引軍趕馬騰, 樊稠引軍趕韓遂, 西涼軍大敗. 馬超在後死戰, 殺退張濟. 樊稠去趕韓遂, 看看趕上, 相近陳倉, 韓遂勒馬向樊稠曰: "吾與公乃同鄉之人, 今日何太無情?" 樊稠也勒住馬答道: "上命不可違!" 韓遂曰: "吾此來亦爲國家耳, 公何相逼之甚也?" 樊稠聽罷, 撥轉馬頭, 收兵回寨, 讓韓遂去了. 不隄防李傕之姪李別, 見樊稠放走韓遂, 回報其叔. 李傕大怒, 便欲興兵討樊稠. 賈詡曰: "目今人心未寧, 頻動干戈, 深爲不便; 不若設一宴, 請張濟·樊稠慶功, 就席間擒稠斬之, 毫不費力."
8 마등과 한수는(馬騰·韓遂) 군량이 이미 떨어지고(軍糧已盡), 내응이(內應) 이미 새어나간 것을(又泄) 보고(見), 다만(只) 영채를 뽑아(得拔寨) 군사를 물렸다(退軍). 이각과 곽사가(李傕·郭汜) 장제에게 명하여(令張濟) 군사를 이끌고(引軍) 마등을 쫓도록 하고(趕馬騰), 번조에게 명하여(樊稠) 군사를 이끌고 한수를 쫓도록 하자(引軍趕韓遂), 서량군이(西涼軍) 크게 패했다(大敗).
마초가(馬超) 뒤에 있으면서(在後) 죽기로 싸워(死戰), 장제를 물리쳤다(殺退張濟).
번조가(樊稠) 가서(去) 한수를 쫓았는데(趕韓遂), 둘러보며(看看) 쫓다가(趕上), 서로(相) 진창에 가까워지자(近陳倉), 한수가(韓遂) 말고삐를 돌려(勒馬) 번조를 향해 말하길(向樊稠曰): "나와 공은(吾與公) 곧(乃) 동향 사람인데(同鄉之人), 오늘(今日) 어찌(何) 그리(太) 무정한가(無情)?"라고 했다.
번조가(樊稠也) 고삐를 당겨(勒) 말을 세우고(住馬) 답하여 말하길(答道): "윗사람의 명을(上命) 어길 수 없다(不可違)!"라고 했다.
한수가 말하길( 韓遂曰): "내가(吾) 여기 온 것도(此來) 또한(亦) 나라를 위한 것일 뿐인데(爲國家耳), 공은(公) 어찌(何) 서로 핍박하는 것이(相逼之) 심한가(甚也)?"라고 했다.
번조가(樊稠) 듣기를 마치고(聽罷), 말머리를 돌려(撥轉馬頭), 병사를 거두어(收兵) 영채로 돌아가서(回寨), 한수가 떠나도록 해주었다(讓韓遂去了). 이각의 조카(李傕之姪) 이별이(李別), 번조가(樊稠) 한수를 달아나도록 해준 것을(放走韓遂) 보고(見), 돌아가(回) 그 숙부에게 보고하는 것을(報其叔) 막지 못했다(不隄防). 이각이(李傕) 크게 노하여(大怒), 바로(便) 군사를 일으켜(興兵) 번조를 토벌하려고 했다(欲討樊稠).
가후가 말하길(賈詡曰): "바로 지금(目今) 인심이(人心) 아직 편안하지 못한데(未寧), 자주(頻) 군사를 움직이면(動干戈), 매우(深) 불편합니다(爲不便); 잔치를 한 번 열고(設一宴), 장제와 번조를 청하여(請張濟·樊稠) 공을 세운 것을 축하하고(慶功), 자리에 나아간 사이에(就席間) 번조를 잡아(擒稠) 베어버려(斬之), 털끝만큼도(毫) 힘을 낭비하지 않는 것만(不費力) 못합니다(不若)."라고 했다.
9 李傕大喜, 便設宴請張濟·樊稠. 二將忻然赴宴. 酒半闌, 李傕忽然變色曰: "樊稠何故交通韓遂, 欲謀造反?" 稠大驚; 未及回言, 只見刀斧手擁出, 早把樊稠斬首於案下. 嚇得張濟俯伏於地. 李傕扶起曰: "樊稠謀反, 故而誅之; 公乃吾之心腹, 何須驚懼?" 將樊稠軍撥與張濟管領. 張濟自回弘農去了.
9 이각이(李傕) 크게 기뻐하며(大喜), 바로(便) 연회를 열고(設宴) 장제와 번조를 청했다(請張濟·樊稠). 두 장수가(二將) 흔쾌히(忻然) 연회에 달려왔다(赴宴).
술자리가(酒) 반쯤 무르익자(半闌), 이각이(李傕) 갑자기(忽然) 안색을 바꾸며 말하길(變色曰): "번조는(樊稠) 무슨 까닭으로(何故) 한수와 서로 통하여(交通韓遂), 반란 일으킬 것을 모의했는가(欲謀造反)?"라고 했다.
번조가 놀라서(稠大驚); 말대답이 이르지도 않았는데(未及回言), 다만(只) 도부수에게 잡혀 끌려나가서(見刀斧手擁出), 바로(早) 번조를 잡고(把樊稠) 술상 아래서(於案下) 머리를 잘랐다(斬首). 무서워하며(嚇得) 장제가(張濟) 땅에 엎드렸다(俯伏於地).
이각이(李傕)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하길(扶起曰): "번조가(樊稠) 모반했고(謀反), 그러므로(故而) 죽인 것이고(誅之); 공은(公乃) 나의 심복인데(吾之心腹), 어찌(何) 놀라고 두려워하는가(須驚懼)?"라고 했다.
번조의 군사를 거두어(將樊稠軍) 장제에게 배치하여 주고(撥與張濟) 도맡아 다스리도록 했다(管領). 장제가(張濟) 스스로(自) 홍농으로 돌아가버렸다(回弘農去了).
* 管領(관령): 도맡아 다스림. 또는 그런 사람, 자기(自己) 물건(物件)으로 함.
10 李傕·郭汜自戰敗西涼兵, 諸侯莫敢誰何. 賈詡屢勸撫安百姓, 結納賢豪. 自是朝廷微有生意. 不想青州黃巾又起, 聚衆數十萬, 頭目不等, 劫掠良民. 太僕朱雋, 保舉一人, 可破群賊. 李傕·郭汜問是何人. 朱雋曰: "要破山東群賊, 非曹孟德不可." 李傕曰: "孟德今在何處?" 雋曰: "見爲東郡太守, 廣有軍兵. 若命此人討賊, 賊可剋日而破也." 李傕大喜, 星夜草詔, 差人齎往東郡, 命曹操與濟北相鮑信一同破賊. 操領了聖旨, 會合鮑信, 一同興兵, 擊賊於壽陽. 鮑信殺入重地, 爲賊所害. 操追趕賊兵, 直到濟北, 降者數萬. 操即用賊爲前驅, 兵馬到處, 無不降須. 不過百餘日, 招安到降兵三十餘萬·男女百餘萬口. 操擇精銳者, 號爲「青州兵」, 其餘盡令歸農. 操自此威名日重. 捷書報到長安, 朝廷加曹操爲鎮東將軍.
10 이각과 곽사가(李傕·郭汜) 스스로(自) 싸워(戰) 서량병을 물리치자(敗西涼兵), 제후 가운데(諸侯) 누구도 감히(莫敢) 그가 누구인가라고 하지 못했다(어쩌지 못했다)(誰何). 가후가(賈詡)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撫安百姓), 호걸을 받아들이라고(結納賢豪) 자주 권했다(屢勸). 이로부터(自是) 조정에(朝廷0 조금(微) 생기가 돌았다(有生意). 생각지 못하게(不想) 청주에서(青州) 황건적이(黃巾) 또 일어나(又起), 무리 수십만을 모았고(聚衆數十萬), 두목이(頭目) 같지 않은데(不等), 양민을 협박하고 약탈했다(劫掠良民). 태복 주준이(太僕朱雋), 한 사람이(一人), 도적 무리를 깨뜨릴 수 있다고(可破群賊) 책임지고 추천했다(保舉). 이각과 곽사가(李傕·郭汜) 그것이 누구인지를 물었다(問是何人).
주준이 말하길(朱雋曰): "반드시(要) 산동의 도적을 깨뜨리는 것은(破山東群賊), 조맹덕이 아니면(非曹孟德) 안됩니다(不可)."라고 했다.
이각이 말하길(李傕曰): "조맹덕이(孟德) 지금(今) 어디에 있는가(在何處)?"라고 했다.
주준이 말하길(雋曰): "동군태수가 되어(見爲東郡太守), 널리(廣) 군대가 있습니다(有軍兵). 만약(若) 이 사람에게 명을 내려(命此人) 도적을 토벌하도록 한다면(討賊), 도적을(賊) 기한 안에 깨뜨릴 수 있습니다(可剋日而破也)."라고 했다.
이각이 크게 기뻐하며(李傕大喜), 밤새(星夜) 조서를 만들고(草詔), 사람을 시켜(差人) 동군에 가져가도록 해서(齎往東郡), 조조와 제북상 포신에게 명하여(命曹操與濟北相鮑信) 함께(一同) 적을 깨뜨리도록 했다(破賊). 조조가(操) 성지를 받고서(領了聖旨), 포신과 회동하여(會合鮑信), 함께(一同) 군사를 일으켜(興兵), 수양에서 적을 습격했다(擊賊於壽陽). 포신이(鮑信) 중지에 뛰어들다가(殺入重地), 적에게 해를 입었다(爲賊所害). 조조가(操) 적병을 추격하여(追趕賊兵), 바로(直) 제북에 이르렀고(到濟北), 항복한 사람이(降者) 수만 명이었다(數萬). 조조가(操) 바로(即) 도적을 써서(用賊) 선봉을 만들고(爲前驅), 병마가 도처에 이르자(兵馬到處), 항복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無不降須). 백여 일이 지나지 않아(不過百餘日), 귀순하고(招安) 항복에 이른 병사가(到降兵) 30만이었고(三十餘萬) 남녀가(男女) 100여만이었다(百餘萬口). 조조가(操) 정예병을 가려(擇精銳者), 호칭을(號) 청주병으로 하고(爲「青州兵」), 그 나머지는(其餘) 모두(盡) 돌아가 농사 짓도록 했다(令歸農). 조조가(操) 이때부터(自此) 위엄과 명성이(威名) 날로 무거워졌다(日重). 첩보의 글이(捷書報) 장안에 이르자(到長安), 조정에서(朝廷) 조조에게 <벼슬을> 더해(加曹操) 진동장군으로 삼았다(爲鎮東將軍).
* 招安(초안): 불러서 위로(慰勞)함.
* 捷書(첩서): 첩보(據報)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