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惠王死, 公孫衍欲窮張儀. 李讎謂公孫衍曰: “不如召甘茂於魏, 召公孫顯於韓, 起樗里子於國. 三人者, 皆張儀之讎也, 公用之, 則諸侯必見張儀之無秦矣.”
진 혜왕이 죽자(秦惠王死), 공손연이(公孫衍) 장의를 궁지로 몰려고 했다(欲窮張儀).
이수가(李讎) 공손연에게 말하길(謂公孫衍曰): “위나라에서(於魏) 감무를 부르고(召甘茂), 한나라에서 공손현을 부르고(召公孫顯於韓), 나라에서는(於國) 저리자를 기용하는 것만(起樗里子) 못합니다(不如). 세 사람은(三人者), 모두(皆) 장의의 원수이니(張儀之讎也), 공께서(公) 그들을 등용하면(用之, 則) 제후들은(諸侯) 반드시(必) 장의에게(張儀之) 진나라<의 권력이> 없다고(無秦) 볼 것입니다(見矣).”라고 했다.
* 공손연(公孫衍): 전국시대 음진(陰晉) 출신으로 서수(犀首)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장의와 동시대 인물로 위(魏)나라 양왕(襄王) 원년 각국이 연합해 진(秦)나라에 대항하자는 합종책(合縱策)을 올려 장의(張儀)의 연횡책(連衡策)에 맞섰다. 이후 다섯 나라에서 유세하여 초(楚), 한(韓), 월(越), 연(燕), 위(魏)의 승상(丞相)에 임명되었다. 진무왕(秦武王)은 장의(張儀)를 쫓아내어 죽도록 하고 공손연을 불러들여 재상으로 삼았다. 진나라 재상이 된 후에도 허리에는 5국의 재상인을 차고 다니며 연횡(連橫)의 약장(約長) 노릇을 했다. 진무왕 4년(기원전 307년) 감무(甘茂)에 의해 참소를 당하고 진나라에서 쫓겨나 위나라로 돌아갔다.
* 감무(甘茂): 생몰연대는 알수 없는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秦)의 정치가이자 장군이다. 진 무왕 때 저리자와 더불어 승상에 임명되었으며, 의양(宜陽)을 공략하여 진나라의 중원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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