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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戰國策)

[전국책(戰國策) 진책2(秦策 二) 64] 증삼살인(曾參殺人) - 감무를 믿어준 진 무왕

by प्रज्ञा 2024.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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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武王謂甘茂曰: “寡人欲車通三川以闚周室, 而寡人死不杇乎.” 甘茂對曰: “請之魏, 約伐韓.” 王令向壽輔行. 甘茂至魏, 謂向壽: “子歸告王曰: ‘魏聽臣矣, 然願王勿攻也.’ 事成盡以爲子功.”

진 무왕이(秦武王) 감무에게 말하길(謂甘茂曰): “과인이(寡人) 마차를 타고(車) 삼천을 지나(通三川以) 주 왕실을 엿보려고 하는데(闚周室, 而) 과인이 죽더라도(寡人死) 이름은 남지 않겠는가(不杇乎).”라고 했다.

감무가 대답하길(甘茂對曰): “청컨대(請) 위나라에 가서(之魏), 한나를 칠 것을(伐韓) 약속받겠습니다(約).”라고 했다.

왕이(王) 향수로 하여금(令向壽) 도우며 가도록 했다(輔行). 감무가 위나라에 이르자(甘茂至魏), 향수에게 이르길(謂向壽): “그대는 돌아가서(子歸) 왕에게 고하길(告王曰): ‘위나라가(魏) 나의 말을 들어주었지만(聽臣矣), 그러나(然) 원컨대(願) 왕이 아직 공격하지 말 것을(王勿攻) 바란다(也).’라고 해라. 일이 이루어지면(事成) 모두(盡) 그대의 공으로 여길 것이다(以爲子功).”라고 했다.

 

* 寡人死不杇(과인사불후): 杇는 '흙손'이란 뜻이고 여기서는 朽가 되어야 맞다. 朽는 '썩다, 없어지다'의 뜻이다. 

 

向壽歸以告王. 王迎甘茂於息壤. 甘茂至, 王問其故, 對曰: “宜陽大縣也, 上黨ㆍ南陽積之久矣, 名爲縣, 其實郡也. 今王倍數險, 行千里而攻之, 難矣. 臣聞張儀西幷巴ㆍ蜀之地, 北取西河之外, 南取上庸, 天下不以爲多張儀, 而賢先王. 魏文侯令樂羊將, 攻中山, 三年而拔之. 樂羊反, 而語功. 文侯示之謗書一篋, 樂羊再拜稽首曰: ‘此非臣之功, 主君之力也.’

향수가 돌아와(向壽歸) 왕에게 고했다(以告王). 왕이(王) 식양에서(於息壤) 감무를 맞이했다(迎甘茂).

감무가 이르자(甘茂至), 왕이(王) 그 까닭을 물었고(問其故), 대답하길(對曰): “의양은(宜陽) 큰 고을이고(大縣也), 상당과 남양의 <재물> 비축이(上黨南陽積之) 오래되었으니(久矣), 이름은 현이지만(名爲縣), 그 실제는(其實) 군입니다(郡也). 지금(今) 왕께서(王) 위험을 무릅쓰고(倍數險), 천리를 가서(行千里而) 공격하더라도(攻之), 어렵습니다(難矣).

신이 듣기로(臣聞) 장의가(張儀) 서쪽으로(西) 파와 촉의 땅을 병합하고(幷巴蜀之地), 북으로(北) 서하의 바깥을 취하고(取西河之外), 남으로 상용을 취했지만(南取上庸), 천하가(天下) 장의에게 공이 있다고(多張儀) 여기지 않고(不以爲, 而) 선왕을 현명하다고 여깁니다(賢先王). 위 문후가(魏文侯) 악양을 장수로 삼아(令樂羊將), 중산을 공격해서(攻中山), 삼 년이 지나(三年而) 함락시켰습니다(拔之). 악양이 돌아와서(樂羊反, 而) 전공을 말했습니다(語功). 문후가(文侯) 그에게 참소하는 글(之謗書) 한 궤짝을 보여주자(一篋), 악양이(樂羊) 재배하고(再拜) 머리를 조아려 말하길(稽首曰): ‘이것은(此) 신의 공이 아니라(非臣之功), 주군의 공입니다(主君之力也).’라고 했습니다.

지금(今) 신은(臣) 외국 출신 벼슬아치입니다(羈旅之臣也). 저리질과 공손연(樗里疾公孫衍) 두 사람은(二人者), 한나라를 끼고(挾韓而) 의논하고(議), 왕께서(王) 반드시(必) 그들의 말을 들어줍니다(聽之). 이것은(是) 왕께(王) 위나라를 속이는 것이고(欺魏, 而) 신은(臣) 공중치의 원망을 받아야 합니다(受公仲侈之怨也).

옛날(昔者), 증자가(曾子) 비 땅에 머물 때(處費), 비 사람 가운데(費人) 증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족속이 있었는데(有與曾子同名族者而) 사람을 죽였습니다(殺人). 사람들이(人) 증자 어머니에게 말하길(告曾子母曰): ‘증삼이(曾參) 사람을 죽였다(殺人).’라고 했습니다. 증자 어머니가 말하길(曾子之母曰): ‘우리 아들은(吾子)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不殺人).’라고 하고, 베를 짜고 있었습니다(織自若). 얼마 뒤에(有頃焉), 사람들이 또 말하길(人又曰):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曾參殺人).’라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가(其母) 여전히(尙) 베를 짜고 있었습니다(織自若也). 얼마 뒤에(頃之), 한 사람이 또 말하길(一人又告之曰):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曾參殺人).’라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두려워하며(其母懼), 북을 던지고(投杼) 담을 넘어 달아났습니다(踰牆而走).

무릇(夫) 증삼의 현명함과(曾參之賢與) 어머니의 믿음으로도(母之信也, 而) 세 사람이 의심하면(三人疑之, 則) 자애로운 어머니가(慈母) 믿을 수 없습니다(不能信也). 지금(今) 저의 현명함이(臣之賢) 증자에 미치지 못하고(不及曾子, 而) 왕이 저를 믿는 것이(王之信臣) 또(又) 증자의 어머니만 못한데(未若曾子之母也), 저를 의심하는 사람이(疑臣者) 다만 세 사람이 아니기에(不適三人), 저는(臣) 왕이 저를 위해 북을 던질까(王爲臣之投杼) 두렵습니다(也).”라고 했다.

 

* 羈旅之臣(기려지신): 그 나라 출신이 아니면서 벼슬하는 사람을 말한다. 羈旅(기려)는 객지(客地)에 머물거나 그런 나그네를 가리킨다.  


王曰: “寡人不聽也. 請與子盟.” 於是與之盟於息壤. 果攻宜陽, 五月而不能拔也. 樗里疾ㆍ公孫衍二人在, 爭之王. 王將聽之, 召甘茂而告之. 甘茂對曰: “息壤在彼.” 王曰: “有之.” 因悉起兵, 復使甘茂攻之, 遂拔宜陽.

왕이 말하길(王曰): “과인이(寡人) 듣지 않을 것이다(不聽也). 청컨대(請) 그대와(與子) 맹세하기를 바란다(盟).”라고 했다.

이에(於是) 그와 더불어(與之) 식양에서 맹세했다(盟於息壤). 과연(果) 의양을 공격해서(攻宜陽), 다섯 달이 지났는데(五月而) 함락시킬 수 없었다(不能拔也). 저리질과 공손연(樗里疾公孫衍) 두 사람이 있어(二人在), 그를 왕에게 비난했다(爭之王). 왕은(王) 그것을 듣고(將聽之), 감무를 불러(召甘茂而) 일러주었다(告之).

감무가 대답하길(甘茂對曰): “식양이(息壤) 저기에 있습니다(在彼).”라고 했다.

왕이 말하길(王曰): “그렇다(有之).”라고 했다.

이에(因) 모든(悉) 군사를 일으켜(起兵), 다시(復) 감무로 하여금(使甘茂) 공격하게 하고(攻之), 마침내(遂) 의양을 함락시켰다(拔宜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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