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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史記列傳)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한비자(韓非子 3/3) / 전국시대의 마키아벨리 / 노자심원(老子深遠) 한비자는 흔히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와 비교되곤 한다. 마키아벨리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라를 지키려면 배신과 잔인함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의 사상은 다섯 지역으로 분열해서 싸우던 조국 이탈리아를 통일시키려는 마키아벨리의 애국심이 그 배경이다. 마키와벨리와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큰 차이가 나는 한비자지만 세상의 평가는 비슷한 점이 많다. 전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강력한 군주를 통한 법치의 실현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 한비자였다. 人或傳其書至秦. 秦王見孤憤、五蠹之書, 曰: "嗟乎, 寡人得見此人與之游, 死不恨矣!" 李斯曰: "此韓非之所著書也." 秦因急攻韓. 韓王始不用非, 及急, 乃遣非使秦. 秦王悅之, 未信用. 어떤 사람이(人或) 그 책을(其書) 진나라에 가서 전했.. 2023. 12. 27.
[사기열전(史記列傳)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한비자(韓非子 2/3) / 설득하는 일의 어려움(說難) / 용의 비늘-역린(逆鱗) 사마천은 한비자의 세난 편에 있는 글을 사기에 옮겨두었다. 한비는 설득의 어려운 것은 나의 지식, 나의 말재주, 나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내가 설득하려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관심사를 알아내고 그것에 공감하는 것이 협상의 첫걸음이라는 통찰은 현대 사회의 수많은 협상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 說難曰: 凡說之難, 非吾知之有以說之難也; 又非吾辯之難能明吾意之難也; 又非吾敢橫失能盡之難也. 凡說之難, 在知所說之心, 可以吾說當之. 세난에서 말하길(說難曰): 모든 유세의 어려운 점은(凡說之難), 내 지식으로(吾知之) 설득하는 것이(有以說之) 어려운 것이 아니고(非難也); 또(又) 내 말재주의 어려움으로.. 2023. 12. 26.
[사기열전(史記列傳)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한비자(韓非子 1/3) / 용의 비늘을 건드리지 말아라 전국시대의 철학자로 본명은 한비(韓非)이다. 젊어서 진(秦)의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의 밑에서 동문수학했다. 언변이 뛰어난 이사와 대조적으로 한비자는 말더듬이였다고 한다. 하나 학문에 있어서는 이사가 한비자에 미치지 못했다. 이때 한비자는 법가뿐만 아니라 도가, 유가, 묵가 등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법에 의한 부국강병의 논리를 정립했다. 韓非者, 韓之諸公子也. 喜刑名法術之學, 而其歸本於黃老. 非爲人口吃, 不能道說, 而善著書. 與李斯俱事荀卿, 斯自以爲不如非. 한비는(韓非者), 한나라의(韓之) 여러 공자 중 한 명이다(諸公子也). 형명과 법술의 학문을 좋아했지만(喜刑名法術之學, 而) 그 돌아간 곳은(其歸) 황노에 근본을 두었다(本於黃老). 한비의 사람됨이 말을 더듬어(非爲人口吃), 말을 잘하지.. 2023. 12. 25.
[사기열전(史記列傳)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신불해(申不害), 형명지학의 대가 신불해(申不害, 하남성 정주시 형양시 ? ~ 기원전 337년)는 한(韓) 나라의 명재상이며, 형명지학의 대가였다. 법가 사상 중 술(術)을 강조했고, 한나라의 소후(昭侯) 시절 재상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사기》(史記)에 “신자(申子: 신불해를 높여 부른 말)의 학문은 황로(黃老)에 근거를 두고 형명(刑名)을 주로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저서는 《사기》에서는 , 《한서》(漢書)에서는 이라고 전하고 있으나, 송(宋) 나라 때에 모두 없어지고, 현재는 《군서치요》(群書治要), 《태평어람》(太平御覽) 등에 전해지는 일문(逸文)을 모은 책이 남아 있다. * 중국 韓非子(한비자) 등이 제창한 법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학설. 출전 韓非子(한비자) 主道篇(주도편). 申不害者, 京人也, 故鄭之賤臣. .. 2023. 12. 25.
[사기열전(史記列傳)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장자(莊子)] 벼슬하느니 더러운 시궁창에서 놀겠다 [유희오독(游戲污瀆)] 비록 짧지만 장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사기열전에 실린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독립된 글로 장자만을 다룬 것은 아니고 에 짧게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노자한비열전>은 노자와 장자, 한비자와 신불해를 함께 기록해 둔 글이어서 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사마천은 장자가 노자 학설을 근본으로 했다고 생각하고 그 근거로 '어부', '도척', '거협'과 같은 우언을 예로 든다. 이런 글은 하지만 장자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 낸다고 할 수 있는 "내편"의 글이 아니다. 실제로 장자 내편의 글은 노자 사상과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자와 비슷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노자 사상의 계승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공자를 오히려 더 우호적으로 보는 듯한 시각도 있다. 莊子者.. 2023. 12. 25.
[사기열전(史記列傳)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노자(老子)]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히 감춰둔다 노자는 무위자연을 말하는 도가의 조종이 되고 한비자는 법에 의한 다스림을 말하는 법가의 대가이다. 그런데 노자와 한비자가 서로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 사마천은 왜 노자와 한비자를 묶어서 기록했을까? 뒤의 한비열전에 사마천은 한비의 학문이 황제와 노자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고 말한다. 황제를 노자를 묶어서 고대 중국에서는 '황로학 (黃老學)이라고도 불렀다. 황제는 전설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역사상 최초로 법률을 제정한 사람이기에 법가의 뿌리가 될 수 있다. 이런 사정이 섞여서 자연스럽게 노자와 한비를 한 테두리에 넣은 것은 아닐까? 老子者, 楚苦縣厲鄕曲仁里人也, 姓李氏, 名耳, 字耼, 周守藏室之史也. (노자자 초고현여향곡인리인야 성이씨 명이 자담 주수장실지사야) 노자는(老子者), 초나라(楚) 고현(苦縣) 여향.. 2023. 12. 22.
[사기열전(史記列傳) 관안열전(管晏列傳) (2/2)]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 뜻을 보인다 [안어양양(晏御揚揚)] 안자는 제나라 영공, 장공, 경공 3대에 걸쳐 군주를 섬긴 명재상이었다. 키가 140cm도 되지 않는 작은 체구였지만 현실 정치에 밝았고, 상황에 맞춰 말을 적절하게 잘해 어려운 문제도 쉽게 해결했다고 한다. 안자의 재주를 보여주는 일화는 많다. 그중에서도 복숭아 2개로 무용이 뛰어난 3명의 장수를 죽인 안중의 계략을 엿볼 수 있는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와 안중의 임기응변을 잘 보여주는 '귤화위지橘化爲枳', 안중의 지혜를 보여주는 '양두구육羊頭狗肉' 같은 고사성어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다. 晏平仲嬰者, 萊之夷維人也. 事齊靈公·莊公·景公, 以節儉力行重於齊. 旣相齊, 食不重肉, 妾不衣帛. 其在朝, 君語及之, 卽危言;語不及之, 卽危行. 國有道, 卽順命;無道, 卽衡命. 以此三世顯名於諸侯. 안평.. 2023. 12. 21.
[사기열전(史記列傳) 관안열전(管晏列傳) (1/2)]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관중과 안영은 시간적으로는 100년의 차이가 난다. 40여 년 동안 제나라의 재상을 지내면서 모든 방면에서 개혁을 단행했고 환공을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로 만들었다. 출신이 보잘것없던 관중이 재상이 되어 능력을 발휘한 것은 전적으로 포숙의 추천 덕분이었다. 사마천은 이런 포숙의 능력을 더 높이 보는듯하다. 안영은 제나라 영공, 장공, 경공 3대에 걸쳐 재상을 지내면서 제나라의 중흥을 이끌었다. 이인자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귀감이 된다고 평가받는 사람이다. 또한, 평생 절제하는 삶을 살았던 안영은 옷 한 벌로 30년을 지냈을 만큼 검소함으로 유명하다. 管仲夷吾者, 潁上人也. 少時常與鮑叔牙游, 鮑叔知其賢. 管仲貧困, 常欺鮑叔, 鮑叔終善遇之, 不以爲言. 已而.. 2023. 12. 21.
[사기열전(史記列傳) 백이열전(伯夷列傳) (2/2)] 착한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하늘의 도인가? 안연은 배우기를 좋아하는 최고의 덕을 지녔지만 쌀독이 자주 비어 변변치 못한 음식도 맘껏 먹지 못하고 죽었다. 도척은 모질고 사나운 짓을 멋대로 하고 천하를 휘젓고 다녔지만 천수를 누렸다. 천도가 있다면 이것이 바른 것인가? 그른 것인가? 或曰: "天道無親, 常與善人." 若伯夷、叔齊, 可謂善人者非邪? 積仁絜行如此而餓死! 且七十子之徒, 仲尼獨薦顔淵爲好學. 然回也屢空, 糟糠不厭, 而卒蚤夭. 天之報施善人, 其何如哉? 盜蹠日殺不辜, 肝人之肉, 暴戾恣睢, 聚黨數千人橫行天下, 竟以壽終. 是遵何德哉? 此其尤大彰明較著者也. 누군가 말하길(或曰): "하늘의 도에는(天道) 사사롭게 친함이 없으니(無親), 늘(常) 선한 사람과 같이 한다(與善人)."라고 했다. 만약 백이와 숙제 같다면(若伯夷·叔齊), 선한 사람이라고(善人者.. 2023. 12. 19.
[사기열전(史記列傳) 백이열전(伯夷列傳) (1/2)] 백이와 숙제는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고죽군의 두 아들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가 망한 뒤에도 은나라에 대한 충성을 버릴 수 없다고 하여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 굶어 죽었다고 한다. 공자는 백이와 숙제가 원망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사마천은 정말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夫學者載籍極博, 猶考信於六藝. 詩書雖缺, 然虞夏之文可知也. 무릇(夫) 학자들의(學者) 서책은(載籍) 지극히 방대하지만(極博), 오히려(猶) 살펴보면(考) 육예를 믿을 수 있다(信於六藝). 시경과 서경이(詩書) 비록(雖) 없어진 것도 있지만(缺), 그러나(然) 우나라와 하나라의 글을(虞夏之文) 알 수 있다(可知也). * 載籍(재적), 書冊(서책): 여러 문서(文書)를 묶어 놓은 책(冊). 堯將遜位, 讓於虞舜, 舜禹之閒, 岳牧咸薦, 乃試之於位, 典職數十年, 功用旣.. 2023.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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