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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101

[史記列傳(사기열전) 77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 1/4] 허좌이대(虛左以待) / 인재를 얻으려면 정성을 다해야 한다 / 후영과 주해 1 魏公子無忌者, 魏昭王子少子而魏安釐王異母弟也. 昭王薨, 安釐王即位, 封公子爲信陵君. 是時范睢亡魏相秦, 以怨魏齊故, 秦兵圍大梁, 破魏華陽下軍, 走芒卯. 魏王及公子患之. 1 위 공자 무기는(魏公子無忌者), 위 소왕의(魏昭王) 아들 중(子) 막내로(少子而) 위(魏) 안희왕의(安釐王) 어머니가 다른(異母) 형제다(弟也). 소왕이 죽고(昭王薨), 안희왕이 즉위하자(安釐王即位), 공자를 봉하여(封公子) 신릉군으로 삼았다(爲信陵君). 이때(是時) 범저가(范睢) 위나라에서 도망쳐서(亡魏) 진나라에서 재상이 되었는데(相秦), 위제에 대한 원한 때문에(以怨魏齊故), 진날 군대가(秦) 대량을 포위하고(兵圍大梁), 위나라 화양에 주둔한 군대를(魏華陽下軍) 무찌르고(破), 망묘를 도망치도록 했다(走芒卯). 위왕과(魏王及) 공.. 2024. 4. 7.
[史記列傳(사기열전) 76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4/4] 우경의 계책을 얼마나 교묘했던가 15 虞卿聞之, 入見王曰: "此飾說也, 王慎勿予!" 樓緩聞之, 往見王. 王又以虞卿之言告樓緩. 樓緩對曰: "不然. 虞卿得其一, 不得其二. 夫秦趙構難而天下皆說, 何也? 曰『吾且因彊而乘弱矣』. 今趙兵困於秦, 天下之賀戰勝者則必盡在於秦矣. 故不如亟割地爲和, 以疑天下而慰秦之心. 不然, 天下將因秦之(彊)怒, 乘趙之獘, 瓜分之. 趙且亡, 何秦之圖乎? 故曰虞卿得其一, 不得其二. 願王以此決之, 勿復計也." 15 우경이 그것을 듣고(虞卿聞之), 들어가(入) 왕을 보며 말하길(見王曰): "이것은(此) 겉만 번드르르한 말입니다(飾說也), 왕께서는(王) 부디(慎) 주지 마십시오(勿予)!"라고 했다. 누완이 그것을 듣고(樓緩聞之), 가서 왕을 만났다(往見王). 왕이(王) 또(又) 우경의 말을(以虞卿之言) 누완에게 알렸다(告樓緩)... 2024. 4. 7.
[史記列傳(사기열전) 76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3/4] 강한 나라는 공격을 잘하고 약한 나라는 수비를 잘한다 10 虞卿者, 游說之士也. 躡蹻檐簦說趙孝成王. 一見, 賜黃金百鎰, 白璧一雙;再見, 爲趙上卿, 故號爲虞卿. 10 우경은(虞卿者), 유세하는 선비다(游說之士也). 짚신을 신고(躡蹻) 삿갓을 쓰고(檐簦) 조 효성왕에게 유세했다(說趙孝成王). 한 번 보고는(一見), 황금 백 일과 백옥 한 쌍을 주고(賜黃金百鎰, 白璧一雙); 두 번 보고는(再見), 조나라 상경으로 삼았고(爲趙上卿), 그러므로(故) 부르는 것이(號) 우경이 되었다(爲虞卿). * 躡蹻(섭교) : 짚신을 신다. 躡은 짚신으로 짚신은 고대의 먼 길을 갈 때 신었다. * 檐簦(첨등) : 어깨가지 걸치는 긴 삿갓. 檐은 擔과 통하여 어깨에 걸머짐. 簦(등)은 고대의 삿갓. 11 秦趙戰於長平, 趙不勝, 亡一都尉. 趙王召樓昌與虞卿曰: "軍戰不勝, 尉復死, 寡人.. 2024. 3. 29.
[史記列傳(사기열전) 76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2/4] 남의 힘을 빌어 일을 이룬 사람들 / 인인성사(因人成事) 5 平原君已定從而歸, 歸至於趙, 曰: "勝不敢復相士. 勝相士多者千人, 寡者百數, 自以爲不失天下之士, 今乃於毛先生而失之也. 毛先生一至楚, 而使趙重於九鼎大呂. 毛先生以三寸之舌, 彊於百萬之師. 勝不敢復相士." 遂以爲上客. 5 평원군은(平原君) 합종이 정해지고 나서(已定從而) 돌아왔는데(歸, 조나라에 이르러 말하길(歸至於趙, 曰): "내가(勝) 감히(敢) 다시는(復)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不相士). 내가 선비를 고른 것이(勝相士) 많게는(多) 천 명이고(者千人), 적게는(寡者) 백 명인데(百數), 스스로(自) 천하의 선비에 대해 실수하지 않았다고 여겼는데(以爲不失天下之士), 지금(今) 바로(乃) 모 선생에 대해서는(於毛先生而) 실수했다(失之也). 모 선생이(毛先生) 한 번(一) 초나라에 가서(至楚, 而) 조나라.. 2024. 3. 29.
[史記列傳(사기열전) 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5/5]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진다 17 齊王惑於秦、楚之毀, 以爲孟嘗君名高其主而擅齊國之權, 遂廢孟嘗君. 諸客見孟嘗君廢, 皆去. 馮驩曰: "借臣車一乘, 可以入秦者, 必令君重於國而奉邑益廣, 可乎?" 孟嘗君乃約車幣而遣之. 馮驩乃西說秦王曰: "天下之游士馮軾結靷西入秦者, 無不欲彊秦而弱齊;馮軾結靷東入齊者, 無不欲彊齊而弱秦. 此雄雌之國也, 勢不兩立爲雄, 雄者得天下矣." 秦王跽而問之曰: "何以使秦無爲雌而可?" 馮驩曰: "王亦知齊之廢孟嘗君乎?" 秦王曰: "聞之." 馮驩曰: "使齊重於天下者, 孟嘗君也. 今齊王以毀廢之, 其心怨, 必背齊;背齊入秦, 則齊國之情, 人事之誠, 盡委之秦, 齊地可得也, 豈直爲雄也!君急使使載幣陰迎孟嘗君, 不可失時也. 如有齊覺悟, 復用孟嘗君, 則雌雄之所在未可知也." 秦王大悅, 乃遣車十乘黃金百鎰以迎孟嘗君. 17 제나라 왕이(齊王) 초나라와 .. 2024. 3. 28.
[史記列傳(사기열전) 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4/5] 꾀주머니 풍환 / 군주가 이익을 쫓으면 백성이 떠난다 14 初, 馮驩聞孟嘗君好客, 躡蹻而見之." 孟嘗君曰: "先生遠辱, 何以教文也?" 馮驩曰: "聞君好士, 以貧身歸於君." 」孟嘗君置傳舍十日, 孟嘗君問傳舍長曰: "客何所爲?" 答曰: "馮先生甚貧, 猶有一劍耳, 又蒯緱." 彈其劍而歌曰『長鋏歸來乎, 食無魚』." 」孟嘗君遷之幸舍, 食有魚矣." 五日, 又問傳舍長." 答曰: "客復彈劍而歌曰『長鋏歸來乎, 出無輿』." 」孟嘗君遷之代舍, 出入乘輿車矣." 五日, 孟嘗君復問傳舍長." 舍長答曰: "先生又嘗彈劍而歌曰『長鋏歸來乎, 無以爲家』." 」孟嘗君不悅." 14 처음에(初), 풍환은(馮驩) 맹상군이 손님을 좋아한다고 듣고(聞孟嘗君好客), 짚신을 신고(躡蹻而) 만났다(見之). 맹상군이 말하길(孟嘗君曰): "선생이(先生)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는데(遠辱), 무엇으로(何以) 나를 가르치.. 2024. 3. 27.
[史記列傳(사기열전) 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2/5] 닭 울음 소리와 개 짖는 소리로 목숨을 구하다 / 계명구도(鷄鳴狗盜) 5 秦昭王聞其賢, 乃先使涇陽君爲質於齊, 以求見孟嘗君. 孟嘗君將入秦, 賓客莫欲其行, 諫, 不聽. 蘇代謂曰: "今旦代從外來, 見木禺人與土禺人相與語. 木禺人曰: '天雨, 子將敗矣.' 土禺人曰: '我生於土, 敗則歸土. 今天雨, 流子而行, 未知所止息也.' 今秦, 虎狼之國也, 而君欲往, 如有不得還, 君得無爲土禺人所笑乎?" 孟嘗君乃止. 5 진 소왕이(秦昭王) 그(맹상군)가 어질다는 것을 듣고(聞其賢), 이에(乃) 먼저(先) 경양군을 시켜(使涇陽君) 제나라에 인질이 되도록 하고(爲質於齊, 以) 맹상군을 만나기를 바랐다(求見孟嘗君). 맹상군이(孟嘗君) 장차(將) 제나라에 들어가려 하자(入秦), 빈객 중에(賓客) 누구도(莫) 그 길을 떠나려 하지 않았고(欲其行), 간 했지만(諫), 듣지 않았다(不聽). 소대가 말하길(蘇代.. 2024. 3. 24.
[史記列傳(사기열전) 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1/5] 맹상군의 식객 삼천 1 孟嘗君名文, 姓田氏. 文之父曰靖郭君田嬰. 田嬰者, 齊威王少子而齊宣王庶弟也. 田嬰自威王時任職用事, 與成侯鄒忌及田忌將而救韓伐魏. 成侯與田忌爭寵, 成侯賣田忌. 田忌懼, 襲齊之邊邑, 不勝, 亡走. 會威王卒, 宣王立, 知成侯賣田忌, 乃複召田忌以爲將. 宣王二年, 田忌與孫臏ㆍ田嬰俱伐魏, 敗之馬陵, 虜魏太子申而殺魏將龐涓. 宣王七年, 田嬰使於韓ㆍ魏, 韓ㆍ魏服於齊. 嬰與韓昭侯ㆍ魏惠王會齊宣王東阿南, 盟而去. 明年, 複與梁惠王會甄. 是歲, 梁惠王卒. 宣王九年, 田嬰相齊. 齊宣王與魏襄王會徐州而相王也. 楚威王聞之, 怒田嬰. 明年, 楚伐敗齊師於徐州, 而使人逐田嬰. 田嬰使張醜說楚威王, 威王乃止. 田嬰相齊十一年, 宣王卒, 湣王卽位. 卽位三年, 而封田嬰於薛. 맹상군의 이름은 문이고(孟嘗君名文), 성은 전씨다(姓田氏). 맹상군의 아버.. 2024. 3. 24.
[사기열전(史記列傳) 73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 2/2] 각자에게 단점이 있었다 / 척단촌장(尺短寸長) 9 王翦者, 頻陽東鄉人也. 少而好兵, 事秦始皇. 始皇十一年, 翦將攻趙閼與, 破之, 拔九城, 十八年, 翦將攻趙. 歲餘, 遂拔趙, 趙王降, 盡定趙地爲郡. 明年, 燕使荊軻爲賊於秦, 秦王使王翦攻燕. 燕王喜走遼東, 翦遂定燕薊而還. 秦使翦子王賁擊荊, 荊兵敗. 還擊魏, 魏王降, 遂定魏地. 9 왕전은(王翦者), 빈 양 동향 사람이다(頻陽東鄉人也). 어려서부터(少而) 병법을 좋아했고(好兵), 진시황을 섬겼다(事秦始皇). 시황 11년에(始皇十一年), 왕전이 장군이 되어(翦將) 조나라 연여를 공격해서(攻趙閼與), 무찌르고(破之), 성 9개를 빼앗았고(拔九城), 18년에(十八年), 왕전이 장수가 되어(翦將) 조나라를 공격했다(攻趙). 1년여 만에(歲餘), 마침내(遂) 조나라를 무너뜨리고(拔趙), 조왕이 항복하고(趙王降), 조.. 2024. 3. 17.
[사기열전(史記列傳) 73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 1/2] 하늘에 죄를 지으면 죽음 뿐이다 1 白起者, 郿人也. 善用兵, 事秦昭王. 昭王十三年, 而白起爲左庶長, 將而擊韓之新城. 是歲, 穰侯相秦, 舉任鄙以爲漢中守. 其明年, 白起爲左更, 攻韓、魏於伊闕, 斬首二十四萬, 又虜其將公孫喜, 拔五城. 起遷爲國尉. 涉河取韓安邑以東, 到乾河. 明年, 白起爲大良造. 攻魏, 拔之, 取城小大六十一. 明年, 起與客卿錯攻垣城, 拔之. 後五年, 白起攻趙, 拔光狼城. 後七年, 白起攻楚, 拔鄢、鄧五城. 其明年, 攻楚, 拔郢, 燒夷陵, 遂東至竟陵. 楚王亡去郢, 東走徙陳. 秦以郢爲南郡. 白起遷爲武安君. 武安君因取楚, 定巫、黔中郡. 昭王三十四年, 白起攻魏, 拔華陽, 走芒卯, 而虜三晉將, 斬首十三萬. 與趙將賈偃戰, 沈其卒二萬人於河中. 昭王四十三年, 白起攻韓陘城, 拔五城, 斬首五萬. 四十四年, 白起攻南陽太行道, 絕之. 1 백기는(白.. 2024.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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