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사기열전) 76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3/4] 강한 나라는 공격을 잘하고 약한 나라는 수비를 잘한다
10 虞卿者, 游說之士也. 躡蹻檐簦說趙孝成王. 一見, 賜黃金百鎰, 白璧一雙;再見, 爲趙上卿, 故號爲虞卿. 10 우경은(虞卿者), 유세하는 선비다(游說之士也). 짚신을 신고(躡蹻) 삿갓을 쓰고(檐簦) 조 효성왕에게 유세했다(說趙孝成王). 한 번 보고는(一見), 황금 백 일과 백옥 한 쌍을 주고(賜黃金百鎰, 白璧一雙); 두 번 보고는(再見), 조나라 상경으로 삼았고(爲趙上卿), 그러므로(故) 부르는 것이(號) 우경이 되었다(爲虞卿). * 躡蹻(섭교) : 짚신을 신다. 躡은 짚신으로 짚신은 고대의 먼 길을 갈 때 신었다. * 檐簦(첨등) : 어깨가지 걸치는 긴 삿갓. 檐은 擔과 통하여 어깨에 걸머짐. 簦(등)은 고대의 삿갓. 11 秦趙戰於長平, 趙不勝, 亡一都尉. 趙王召樓昌與虞卿曰: "軍戰不勝, 尉復死, 寡人..
2024. 3. 29.
[史記列傳(사기열전) 76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2/4] 남의 힘을 빌어 일을 이룬 사람들 / 인인성사(因人成事)
5 平原君已定從而歸, 歸至於趙, 曰: "勝不敢復相士. 勝相士多者千人, 寡者百數, 自以爲不失天下之士, 今乃於毛先生而失之也. 毛先生一至楚, 而使趙重於九鼎大呂. 毛先生以三寸之舌, 彊於百萬之師. 勝不敢復相士." 遂以爲上客. 5 평원군은(平原君) 합종이 정해지고 나서(已定從而) 돌아왔는데(歸, 조나라에 이르러 말하길(歸至於趙, 曰): "내가(勝) 감히(敢) 다시는(復)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不相士). 내가 선비를 고른 것이(勝相士) 많게는(多) 천 명이고(者千人), 적게는(寡者) 백 명인데(百數), 스스로(自) 천하의 선비에 대해 실수하지 않았다고 여겼는데(以爲不失天下之士), 지금(今) 바로(乃) 모 선생에 대해서는(於毛先生而) 실수했다(失之也). 모 선생이(毛先生) 한 번(一) 초나라에 가서(至楚, 而) 조나라..
2024. 3. 29.
[史記列傳(사기열전) 76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1/4] 주머니 속의 송곳 모수 / 낭중지추(囊中之錐), 모수자천(毛遂自薦)
1 平原君趙勝者, 趙之諸公子也. 諸子中勝最賢, 喜賓客, 賓客蓋至者數千人. 平原君相趙惠文王及孝成王, 三去相, 三復位, 封於東武城. 1 평원군 조승은(平原君趙勝者), 조나라의(趙之) 여러 공자 중 한 사람이다(諸公子也). 여러 공자 중에서(諸子中) 조승이(勝) 가장 현명하고(最賢), 빈객을 좋아해서(喜賓客), 빈객이(賓客) 대략(蓋) 이른 사람이(至者) 수천 명이었다(數千人). 평원군이(平原君) 조 혜문왕과 효성왕의 재상이었는데(相趙惠文王及孝成王), 세 번(三) 재상 자리를 떠났다가(去相), 세 번 자리에 복귀해서(三復位), 동무성에 봉해졌다(封於東武城). 2 平原君家樓臨民家. 民家有躄者, 槃散行汲. 平原君美낭중지추(囊中之錐)人居樓上, 臨見, 大笑之. 明日, 躄者至平原君門, 請曰: "臣聞君之喜士, 士不遠千里..
2024. 3. 29.
[史記列傳(사기열전) 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5/5]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진다
17 齊王惑於秦、楚之毀, 以爲孟嘗君名高其主而擅齊國之權, 遂廢孟嘗君. 諸客見孟嘗君廢, 皆去. 馮驩曰: "借臣車一乘, 可以入秦者, 必令君重於國而奉邑益廣, 可乎?" 孟嘗君乃約車幣而遣之. 馮驩乃西說秦王曰: "天下之游士馮軾結靷西入秦者, 無不欲彊秦而弱齊;馮軾結靷東入齊者, 無不欲彊齊而弱秦. 此雄雌之國也, 勢不兩立爲雄, 雄者得天下矣." 秦王跽而問之曰: "何以使秦無爲雌而可?" 馮驩曰: "王亦知齊之廢孟嘗君乎?" 秦王曰: "聞之." 馮驩曰: "使齊重於天下者, 孟嘗君也. 今齊王以毀廢之, 其心怨, 必背齊;背齊入秦, 則齊國之情, 人事之誠, 盡委之秦, 齊地可得也, 豈直爲雄也!君急使使載幣陰迎孟嘗君, 不可失時也. 如有齊覺悟, 復用孟嘗君, 則雌雄之所在未可知也." 秦王大悅, 乃遣車十乘黃金百鎰以迎孟嘗君. 17 제나라 왕이(齊王) 초나라와 ..
2024. 3. 28.
[史記列傳(사기열전) 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4/5] 꾀주머니 풍환 / 군주가 이익을 쫓으면 백성이 떠난다
14 初, 馮驩聞孟嘗君好客, 躡蹻而見之." 孟嘗君曰: "先生遠辱, 何以教文也?" 馮驩曰: "聞君好士, 以貧身歸於君." 」孟嘗君置傳舍十日, 孟嘗君問傳舍長曰: "客何所爲?" 答曰: "馮先生甚貧, 猶有一劍耳, 又蒯緱." 彈其劍而歌曰『長鋏歸來乎, 食無魚』." 」孟嘗君遷之幸舍, 食有魚矣." 五日, 又問傳舍長." 答曰: "客復彈劍而歌曰『長鋏歸來乎, 出無輿』." 」孟嘗君遷之代舍, 出入乘輿車矣." 五日, 孟嘗君復問傳舍長." 舍長答曰: "先生又嘗彈劍而歌曰『長鋏歸來乎, 無以爲家』." 」孟嘗君不悅." 14 처음에(初), 풍환은(馮驩) 맹상군이 손님을 좋아한다고 듣고(聞孟嘗君好客), 짚신을 신고(躡蹻而) 만났다(見之). 맹상군이 말하길(孟嘗君曰): "선생이(先生)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는데(遠辱), 무엇으로(何以) 나를 가르치..
2024. 3. 27.
[史記列傳(사기열전) 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3/5] 맹상군을 위해 죽은 사람 /
10 孟嘗君相齊, 其舍人魏子爲孟嘗君收邑入, 三反而不致一入. 孟嘗君問之, 對曰: "有賢者, 竊假與之, 以故不致入." 孟嘗君怒而退魏子. 居數年, 人或毀孟嘗君於齊湣王曰: "孟嘗君將爲亂." 及田甲劫湣王, 湣王意疑孟嘗君, 孟嘗君乃奔. 魏子所與粟賢者聞之, 乃上書言孟嘗君不作亂, 請以身爲盟, 遂自剄宮門以明孟嘗君. 湣王乃驚, 而蹤跡驗問, 孟嘗君果無反謀, 乃復召孟嘗君. 孟嘗君因謝病, 歸老於薛. 湣王許之. 10 맹상군이(孟嘗君) 제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때(相齊), 그의 일하는 사람(其舍人) 위자가(魏子) 맹상군을 위해(爲孟嘗君) 읍의 수입을 거두었는데(收邑入), 세 번 갔다 오고도(三反而) 한 번도 가져오지 않았다(不致一入). 맹상군이 묻자(孟嘗君問之),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현명한 사람이 있어서(有賢者), 은밀하게(..
2024. 3. 27.
[史記列傳(사기열전) 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2/5] 닭 울음 소리와 개 짖는 소리로 목숨을 구하다 / 계명구도(鷄鳴狗盜)
5 秦昭王聞其賢, 乃先使涇陽君爲質於齊, 以求見孟嘗君. 孟嘗君將入秦, 賓客莫欲其行, 諫, 不聽. 蘇代謂曰: "今旦代從外來, 見木禺人與土禺人相與語. 木禺人曰: '天雨, 子將敗矣.' 土禺人曰: '我生於土, 敗則歸土. 今天雨, 流子而行, 未知所止息也.' 今秦, 虎狼之國也, 而君欲往, 如有不得還, 君得無爲土禺人所笑乎?" 孟嘗君乃止. 5 진 소왕이(秦昭王) 그(맹상군)가 어질다는 것을 듣고(聞其賢), 이에(乃) 먼저(先) 경양군을 시켜(使涇陽君) 제나라에 인질이 되도록 하고(爲質於齊, 以) 맹상군을 만나기를 바랐다(求見孟嘗君). 맹상군이(孟嘗君) 장차(將) 제나라에 들어가려 하자(入秦), 빈객 중에(賓客) 누구도(莫) 그 길을 떠나려 하지 않았고(欲其行), 간 했지만(諫), 듣지 않았다(不聽). 소대가 말하길(蘇代..
2024. 3. 24.
[史記列傳(사기열전) 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1/5] 맹상군의 식객 삼천
1 孟嘗君名文, 姓田氏. 文之父曰靖郭君田嬰. 田嬰者, 齊威王少子而齊宣王庶弟也. 田嬰自威王時任職用事, 與成侯鄒忌及田忌將而救韓伐魏. 成侯與田忌爭寵, 成侯賣田忌. 田忌懼, 襲齊之邊邑, 不勝, 亡走. 會威王卒, 宣王立, 知成侯賣田忌, 乃複召田忌以爲將. 宣王二年, 田忌與孫臏ㆍ田嬰俱伐魏, 敗之馬陵, 虜魏太子申而殺魏將龐涓. 宣王七年, 田嬰使於韓ㆍ魏, 韓ㆍ魏服於齊. 嬰與韓昭侯ㆍ魏惠王會齊宣王東阿南, 盟而去. 明年, 複與梁惠王會甄. 是歲, 梁惠王卒. 宣王九年, 田嬰相齊. 齊宣王與魏襄王會徐州而相王也. 楚威王聞之, 怒田嬰. 明年, 楚伐敗齊師於徐州, 而使人逐田嬰. 田嬰使張醜說楚威王, 威王乃止. 田嬰相齊十一年, 宣王卒, 湣王卽位. 卽位三年, 而封田嬰於薛. 맹상군의 이름은 문이고(孟嘗君名文), 성은 전씨다(姓田氏). 맹상군의 아버..
2024. 3. 24.
[사기열전(史記列傳) 73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 2/2] 각자에게 단점이 있었다 / 척단촌장(尺短寸長)
9 王翦者, 頻陽東鄉人也. 少而好兵, 事秦始皇. 始皇十一年, 翦將攻趙閼與, 破之, 拔九城, 十八年, 翦將攻趙. 歲餘, 遂拔趙, 趙王降, 盡定趙地爲郡. 明年, 燕使荊軻爲賊於秦, 秦王使王翦攻燕. 燕王喜走遼東, 翦遂定燕薊而還. 秦使翦子王賁擊荊, 荊兵敗. 還擊魏, 魏王降, 遂定魏地. 9 왕전은(王翦者), 빈 양 동향 사람이다(頻陽東鄉人也). 어려서부터(少而) 병법을 좋아했고(好兵), 진시황을 섬겼다(事秦始皇). 시황 11년에(始皇十一年), 왕전이 장군이 되어(翦將) 조나라 연여를 공격해서(攻趙閼與), 무찌르고(破之), 성 9개를 빼앗았고(拔九城), 18년에(十八年), 왕전이 장수가 되어(翦將) 조나라를 공격했다(攻趙). 1년여 만에(歲餘), 마침내(遂) 조나라를 무너뜨리고(拔趙), 조왕이 항복하고(趙王降), 조..
2024. 3. 17.
[사기열전(史記列傳) 73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 1/2] 하늘에 죄를 지으면 죽음 뿐이다
1 白起者, 郿人也. 善用兵, 事秦昭王. 昭王十三年, 而白起爲左庶長, 將而擊韓之新城. 是歲, 穰侯相秦, 舉任鄙以爲漢中守. 其明年, 白起爲左更, 攻韓、魏於伊闕, 斬首二十四萬, 又虜其將公孫喜, 拔五城. 起遷爲國尉. 涉河取韓安邑以東, 到乾河. 明年, 白起爲大良造. 攻魏, 拔之, 取城小大六十一. 明年, 起與客卿錯攻垣城, 拔之. 後五年, 白起攻趙, 拔光狼城. 後七年, 白起攻楚, 拔鄢、鄧五城. 其明年, 攻楚, 拔郢, 燒夷陵, 遂東至竟陵. 楚王亡去郢, 東走徙陳. 秦以郢爲南郡. 白起遷爲武安君. 武安君因取楚, 定巫、黔中郡. 昭王三十四年, 白起攻魏, 拔華陽, 走芒卯, 而虜三晉將, 斬首十三萬. 與趙將賈偃戰, 沈其卒二萬人於河中. 昭王四十三年, 白起攻韓陘城, 拔五城, 斬首五萬. 四十四年, 白起攻南陽太行道, 絕之. 1 백기는(白..
2024.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