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史記列傳) 73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 2/2] 각자에게 단점이 있었다 / 척단촌장(尺短寸長)
9 王翦者, 頻陽東鄉人也. 少而好兵, 事秦始皇. 始皇十一年, 翦將攻趙閼與, 破之, 拔九城, 十八年, 翦將攻趙. 歲餘, 遂拔趙, 趙王降, 盡定趙地爲郡. 明年, 燕使荊軻爲賊於秦, 秦王使王翦攻燕. 燕王喜走遼東, 翦遂定燕薊而還. 秦使翦子王賁擊荊, 荊兵敗. 還擊魏, 魏王降, 遂定魏地. 9 왕전은(王翦者), 빈 양 동향 사람이다(頻陽東鄉人也). 어려서부터(少而) 병법을 좋아했고(好兵), 진시황을 섬겼다(事秦始皇). 시황 11년에(始皇十一年), 왕전이 장군이 되어(翦將) 조나라 연여를 공격해서(攻趙閼與), 무찌르고(破之), 성 9개를 빼앗았고(拔九城), 18년에(十八年), 왕전이 장수가 되어(翦將) 조나라를 공격했다(攻趙). 1년여 만에(歲餘), 마침내(遂) 조나라를 무너뜨리고(拔趙), 조왕이 항복하고(趙王降), 조..
2024. 3. 17.
[사기열전(史記列傳) 73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 1/2] 하늘에 죄를 지으면 죽음 뿐이다
1 白起者, 郿人也. 善用兵, 事秦昭王. 昭王十三年, 而白起爲左庶長, 將而擊韓之新城. 是歲, 穰侯相秦, 舉任鄙以爲漢中守. 其明年, 白起爲左更, 攻韓、魏於伊闕, 斬首二十四萬, 又虜其將公孫喜, 拔五城. 起遷爲國尉. 涉河取韓安邑以東, 到乾河. 明年, 白起爲大良造. 攻魏, 拔之, 取城小大六十一. 明年, 起與客卿錯攻垣城, 拔之. 後五年, 白起攻趙, 拔光狼城. 後七年, 白起攻楚, 拔鄢、鄧五城. 其明年, 攻楚, 拔郢, 燒夷陵, 遂東至竟陵. 楚王亡去郢, 東走徙陳. 秦以郢爲南郡. 白起遷爲武安君. 武安君因取楚, 定巫、黔中郡. 昭王三十四年, 白起攻魏, 拔華陽, 走芒卯, 而虜三晉將, 斬首十三萬. 與趙將賈偃戰, 沈其卒二萬人於河中. 昭王四十三年, 白起攻韓陘城, 拔五城, 斬首五萬. 四十四年, 白起攻南陽太行道, 絕之. 1 백기는(白..
2024. 3. 16.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002-2] 황제의 장인 하씨는 환관을 죽이려고 계략을 꾸미다 / 하국구모주환수(何國舅謀誅宦豎)
13 卻說十常侍既握重權, 互相商議: 但有不從己者, 誅之. 趙忠, 張讓, 差人問破黃巾將士索金帛, 不從者奏罷職. 皇甫嵩·朱雋皆不肯與, 趙忠等俱奏罷其官. 帝又封趙忠等爲車騎將軍, 張讓等十三人皆封列侯. 朝政愈壞, 人民嗟怨. 於是長沙賊區星作亂; 漁陽張舉·張純反: 舉稱天子, 純稱大將軍. 表章雪片告急, 十常侍皆藏匿不奏. 13 한편(卻說) 십상시가(十常侍) 이미 중요한 권력을 쥐고서(既握重權), 서로 상의하고(互相商議): 다만(但)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有不從己者), 죽였다(誅之). 주충과 장양(趙忠, 張讓), 사람을 보내(差人) 황건적을 깨뜨린 장수와 사졸에게(破黃巾將士) 금과 비단을 바칠 것을(索金帛) 묻도록 하고(問), 따르지 않는 사람은(不從者) 직에서 파할 것을 아뢰었다(奏罷職). 황보숭과 주전이(皇甫嵩·..
2024. 3. 16.
[사기열전(史記列傳) 72 양후열전(穰侯列傳) 2/2] 잃을 게 없는 싸움을 하는 양후
7 明年, 魏背秦, 與齊從親. 秦使穰侯伐魏, 斬首四萬, 走魏將暴鳶, 得魏三縣. 穰侯益封. 7 다음 해에(明年), 위나라가(魏) 진나라를 배반하고(背秦), 제나라와(與齊) 합종을 맺었다(從親). 진나라가(秦) 양후를 시켜(使穰侯) 위나라를 치고(伐魏), 4만 명의 목을 베고(斬首四萬), 위나라 장군 포연을 도망치도록 하고(走魏將暴鳶), 위나라 3개 현을 얻었다(得魏三縣). 양후는(穰侯) 봉지를 더했다(益封). 8 明年, 穰侯與白起客卿胡陽復攻趙·韓·魏, 破芒卯於華陽下, 斬首十萬, 取魏之卷·蔡陽·長社, 趙氏觀津. 且與趙觀津, 益趙以兵, 伐齊. 齊襄王懼, 使蘇代爲齊陰遺穰侯書曰: "臣聞往來者言曰'秦將益趙甲四萬以伐齊', 臣竊必之敝邑之王曰'秦王明而熟於計, 穰侯智而習於事, 必不益趙甲四萬以伐齊'. 是何也? 夫三晉之相與也..
2024. 3. 15.
[사기열전(史記列傳) 72 양후열전(穰侯列傳) 1/2] 외척의 정치 참여
1 穰侯魏冉者, 秦昭王母宣太后弟也. 其先楚人, 姓羋氏. 1 양후 위염은(穰侯魏冉者), 진 소왕의 어머니(秦昭王母) 선태후의 동생이다(宣太后弟也). 그 선조는(其先) 초나라 사람이고(楚人), 성은 미씨다(姓羋氏). 2 秦武王卒, 無子, 立其弟爲昭王. 昭王母故號爲羋八子, 及昭王即位, 羋八子號爲宣太后. 宣太后非武王母. 武王母號曰惠文后, 先武王死. 宣太后二弟: 其異父長弟曰穰侯, 姓魏氏, 名冉; 同父弟曰羋戎, 爲華陽君. 而昭王同母弟曰高陵君·涇陽君. 而魏冉最賢, 自惠王·武王時任職用事. 武王卒, 諸弟爭立, 唯魏冉力爲能立昭王. 昭王即位, 以冉爲將軍, 衛咸陽. 誅季君之亂, 而逐武王后出之魏, 昭王諸兄弟不善者皆滅之, 威振秦國. 昭王少, 宣太后自治, 任魏冉爲政. 2 진 무왕이 죽고(秦武王卒), 자식이 없어(無子), 그 동생을..
2024. 3. 14.
[사기열전(史記列傳) 71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茂列傳) 3/3] 열두 살에 재상이 되다 / 감라자천(甘羅自薦) / 연령불문(年齡不問)
16 甘羅者, 甘茂孫也. 茂既死後, 甘羅年十二, 事秦相文信侯呂不韋. 16 감라는(甘羅者), 감무의 손자다(甘茂孫也). 감무가(茂) 죽은 뒤에(既死後), 감라의 나이(甘羅年) 열두 살이 되어(十二), 진날 재상(秦相) 문신후 여불위를 섬겼다(事文信侯呂不韋). 17 秦始皇帝使剛成君蔡澤於燕, 三年而燕王喜使太子丹入質於秦. 秦使張唐往相燕, 欲與燕共伐趙以廣河閒之地. 張唐謂文信侯曰: "臣嘗爲秦昭王伐趙, 趙怨臣, 曰: '得唐者與百里之地.' 今之燕必經趙, 臣不可以行." 文信侯不快, 未有以彊也. 甘羅曰: "君侯何不快之甚也?" 文信侯曰: "吾令剛成君蔡澤事燕三年, 燕太子丹已入質矣, 吾自請張卿相燕而不肯行." 甘羅曰: "臣請行之." 文信侯叱曰: "去!我身自請之而不肯, 女焉能行之?" 甘羅曰: "大項橐生七歲爲孔子師. 今臣生十二歲於茲..
2024. 3. 14.
[사기열전(史記列傳) 71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茂列傳) 2/3] 남는 빛을 나누어도 빛은 줄지 않는다
7 甘茂者, 下蔡人也. 事下蔡史舉先生, 學百家之說. 因張儀·樗里子而求見秦惠王. 王見而說之, 使將, 而佐魏章略定漢中地. 7 감무는(甘茂者), 하채 사람이다(下蔡人也). 하채의 사거선생을 모시고(事下蔡史舉先生), 백가의 설을 배웠다(學百家之說). 장의와 저리자를 의지해서(因張儀·樗里子而) 진 혜왕을 만날 것을 구했다(求見秦惠王). 왕이 만나고서(王見而) 기뻐하며(說之), 장수로 삼아(使將, 而) 위장을 도와(佐魏章) 한중 땅을 평정하도록 했다(略定漢中地). 8 惠王卒, 武王立. 張儀·魏章去, 東之魏. 蜀侯煇·相壯反, 秦使甘茂定蜀. 還, 而以甘茂爲左丞相, 以樗里子爲右丞相. 8 혜왕이 죽고(惠王卒), 무왕이 즉위했다(武王立). 장의와 위장이 떠나(張儀·魏章去), 동쪽(東) 위나라고 갔다(之魏). 촉후 휘와(蜀侯..
2024. 3. 13.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002-1] 장비가 화가 나서 독우를 매질하고 / 장익덕노편독우(張翼德怒鞭督郵)
1 且說董卓字仲顈, 隴西臨洮人也. 官拜河東太守, 自來驕傲. 當日怠慢了玄德, 張飛性發, 便欲殺之. 玄德與關公急止之曰: "他是朝廷命官, 豈可擅殺?" 飛曰: "若不殺這廝, 反要在他部下聽令, 其實不甘! 二兄要便住在此, 我自投別處去也!" 玄德曰: "我三人義同生死, 豈可相離? 不若都投別處去便了." 飛曰: "若如此, 稍解吾恨." 1 한편(且說) 동탁은(董卓) 자가 중경이고(字仲顈), 농서 임조 사람이다(隴西臨洮人也). 벼슬은(官) 하동태수를 받았고(拜河東太守), 이래로(自來) 교만하고 방자했다(驕傲). 그날(當日) 현덕을 태만하게 대하자(怠慢了玄德), 장비의 성질이 일어나(張飛性發), 곧(便) 죽이려고 했다(欲殺之). 현덕과 관공이(玄德與關公) 급히(急) 장비를 막아 말하길(止之曰): "저 사람은(他是) 조정이 임명..
2024. 3. 13.
[사기열전(史記列傳) 71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茂列傳) 1/3] 지혜 주머니 저리자
1 樗里子者, 名疾, 秦惠王之弟也, 與惠王異母. 母, 韓女也. 樗里子滑稽多智, 秦人號曰「智囊」. 1 저리자는(樗里子者), 이름이 질이고(名疾), 진 혜왕의 동싱으로(秦惠王之弟也), 혜왕과(與惠王) 어머니가 다르다(異母). 어머니는(母), 한나라 여자다(韓女也). 저리자는(樗里子) 말을 잘하고(滑稽) 지혜가 많아서(多智), 진나라 사람들이 부르기를(秦人號) 지혜 주머니라고 했다(曰「智囊」). * 滑稽(골계): 말이 매끄럽고 익살스러워 웃음을 자아내는 일. 2 秦惠王八年, 爵樗里子右更, 使將而伐曲沃, 盡出其人, 取其城, 地入秦. 秦惠王二十五年, 使樗里子爲將伐趙, 虜趙將軍莊豹, 拔藺. 明年, 助魏章攻楚, 敗楚將屈丐, 取漢中地. 秦封樗里子, 號爲嚴君. 2 진 혜왕(秦惠王) 8년에(八年), 저리자에게(樗里子) 우..
2024. 3. 11.
[사기열전(史記列傳) 70 장의열전(張儀列傳) 14/14] 이백대패(李伯大敗) / 공손연이 의거군을 이용해 진나라를 깨뜨리다
55 犀首者, 魏之陰晉人也, 名衍, 姓公孫氏. 與張儀不善. 55 서수는(犀首者), 위나라(魏之) 음진 사람으로(陰晉人也), 이름은 연이고(名衍), 성은 공손씨다(姓公孫氏). 장의와(與張儀) 사이가 좋지 않았다(不善). 56 張儀爲秦之魏, 魏王相張儀. 犀首弗利, 故令人謂韓公叔曰: "張儀已合秦魏矣, 其言曰'魏攻南陽, 秦攻三川'. 魏王所以貴張子者, 欲得韓地也. 且韓之南陽已舉矣, 子何不少委焉以爲衍功, 則秦魏之交可錯矣. 然則魏必圖秦而棄儀, 收韓而相衍." 公叔以爲便, 因委之犀首以爲功. 果相魏. 張儀去. 56 장의가(張儀) 진나라를 위해(爲秦) 위나라로 가자(之魏), 위왕이(魏王)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다(相張儀). 서수가(犀首) 이롭지 않다고 생각했고(弗利), 그러므로(故) 사람을 시켜(令人) 한공숙에게 말하길(謂韓..
2024.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