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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史記列傳)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 2/3] 淳于髡(순우곤)/慎到(신도)/田駢(전병)/環淵(환연)/接子(접자)/騶奭(추석) 淳于髡(순우곤), 齊人也(제인야). 博聞彊記(박문강기), 學無所主(학무소주). 其諫說(기간세), 慕晏嬰之爲人也(모안영지위인야), 然而承意觀色爲務(연이승의관색위무). 客有見髡於梁惠王(객유현곤어양혜왕), 惠王屏左右(혜왕병좌우), 獨坐而再見之(독좌이재현지), 終無言也(종무언야). 순우곤은(淳于髡), 제나라 사람이다(齊人也). 널리 알고(博聞) 기억을 잘했고(彊記), 배움에(學) 위주로 하는 것이 없었다(無所主). 그 간언하고 유세하는 것이(其諫說), 안영의 사람됨을 본받았고(慕晏嬰之爲人也), 그렇지만(然而) 뜻을 받들고(承意) 얼굴색 살피는 것을(觀色) 힘썼다(爲務). 한 객이(客) 양혜왕에게(於梁惠王) 순우곤을 보인 적이 있는데( 有見髡 ), 양혜왕이(惠王) 좌우를 물리고(屏左右), 홀로 앉아(獨坐而) 두 .. 2024. 2. 12.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8 중장통(仲長統) 락지론(樂志論)] 행복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락지론은 벼슬길을 마다하고 평생 포의(布衣)로 살았던 중국 후한시대 ‘중장통(仲長統, 179~220)’의 글로 ‘즐겁게 큰 뜻을 실행하는 방법'을 말했다. 직언을 서슴지 않고 작은 일에 구속받지 않아서 광생(狂生)이라고 불렸다. 주군에서 기용하려고 했지만 병을 핑계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헌제 때 순욱이 상서랑으로 천거했고 조조의 군사로도 일했다. 後漢仲長統, 字公理. 少好學, 性倜儻敢言, 不矜小節. 每州郡命召, 輒稱疾不就, 常以爲: “凡遊帝王者, 欲以立身揚名耳, 而名不常存, 人生易滅, 優游偃仰, 固以自娛其志.” 故爲之著論云. 후한의 중장통은(後漢仲長統), 자가 공리이다(字公理). 어려서부터(少) 배우기를 좋아했고(好學), 성품이 기개가 있고(性倜儻) 말을 과감하게 했으며(敢言), 작은 예절을 존중.. 2024. 2. 12.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7 왕포(王褒) 성주득현신송(聖主得賢臣頌)] 어진 임금이 현명한 신하 얻은 것을 기리며 此篇起句有策體. 蓋前漢王褒, 字子淵本蜀人, 爲漢宣帝徵召, 詔爲此頌. 起四句說譬自叙, 第一節, 且謙辭叙應詔之意, 第二節, 勉宣帝審己正統, 第三節, 方論賢者國家之器用, 第四節, 論聖主得賢臣之功, 第五節, 論人臣之遭遇, 第六節, 總論臣主相得之美. 時上頗好神仙, 故末段不取彭祖喬松之事. 이 편의(此篇) 기구에는(起句) 책문의 체제가 있다(有策體). 대체로(蓋) 전한의 왕포는(前漢王褒), 자가(字) 자연이고(子淵) 본래(本) 촉나라 사람이다(蜀人), 한나라 선제가(漢宣帝) 불렀기 때문에(爲徵召), 이 송을 지었다(詔爲此頌). 기 4구의 말로(起四句) 비유해서(說譬) 자기를 서술했고(自叙), 제1절은(第一節), 또(且) 겸손한 말로(謙辭) 부름에 응하는 뜻을 서술했고(叙應詔之意), 제2절은(第二節), 선제가(宣帝) .. 2024. 2. 12.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9-0 제갈량(諸葛亮) 출사표(出師表) 해설] 이 글을 읽고 눈물 떨구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陳靜觀云: “前段起處, 便提先帝中道崩殂, 後面又繼以深追先帝遺詔, 後段提起先帝臨崩, 寄臣以大事, 後面又繼以不効, 告先帝之靈, 此最是感激痛苦懇切處. 盖緣先帝臨崩, 祗分付後主孔明兩人, 今日如何忘得?” 진정관이 말하길(陳靜觀云): “앞 단락이(前段) 일어난 곳에서(起處), 선제가(先帝) 중간에(中道) 죽었음을(崩殂) 제시하고(便提), 뒤에서(後面) 또(又) 선제가 남긴 유언을(先帝遺詔) 깊이 따르는 것으로(以深追) 이었으며(繼), 후단에서(後段) 선제가 죽음에 직면해서(先帝臨崩), 신(제갈량)에게(臣) 대사를 부탁한 것을(寄以大事) 제시하고(提起), 후면에서(後面) 또한(又) 효력이 없으면(不効), 선제의 영령에게 고하는 것으로(以告先帝之靈) 이었으니(繼), 이것이(此) 가장(最是) 감격스럽고(感激) 고통스러우.. 2024. 2. 11.
[사기열전(史記列傳)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 1/3] 맹자와 세 명의 추연 / 孟子(맹자)/騶忌(추기)/騶衍(추연) 제목으로만 보면 맹자(孟子)와 순경(荀卿)의 합전(合傳)이다. 하지만 내용은 제목과 다르게 전국시대 학문으로 일가를 이룬 음양가, 도가, 법가, 명가, 묵가의 대표적인 인물 12명에 대해 기술하였다. 太史公曰(태사공왈): 余讀孟子書(여독맹자서), 至梁惠王問(지양혜왕문)「何以利吾國(하이리오국)」), 未嘗不廢書而嘆也(미상불폐서이탄야). 曰(왈): 嗟乎(차호), 利誠亂之始也(이성란지시야)! 夫子罕言利者(부자한언리자), 常防其原也(상방기원야). 故曰(고왈)「放於利而行(방어리이행), 多怨(다원)」. 自天子至於庶人(자천자지어서인), 好利之獘何以異哉(호리지폐하이이재)!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내가(余) 맹자란 책을 읽다가(讀孟子書), 양혜왕이 묻기를(梁惠王問) '무엇으로(何以)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시겠습니까(利.. 2024. 2. 11.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6 가의(賈誼) 조굴원부(弔屈原賦)] 굴원의 비운을 슬퍼하는 노래 가의가 주발 등에게 미움을 받아 장사왕(長沙王) 태부(太傅)로 좌천당하였다. 장사로 가는 길에 상강(湘江)을 지나게 되었는데 굴원이 상강의 지류인 멱라강에 빠져 죽은 것을 생각하고 그 처지가 자신과 비슷한 것을 애통해하면서 이 글을 썼다. 迂齋云: “誼謫長沙, 不得意, 投書弔屈原而因以自諭. 然譏議時人, 太分明, 其才甚高, 其志甚大, 而量亦狹矣.” 迂齋云: “가의가(誼) 장사로 귀양 가면서(謫長沙), 뜻을 얻지 못하고(不得意), 글을 던져(投書) 굴원을 조문하고(弔屈原而) 잇달아(因) 자신을 비유했다(以自諭). 그러나(然) 당시 사람들을 비난하고 평론한 것이(譏議時人), 매우(太) 분명하고(分明), 그 재주가(其才) 아주 높고(甚高), 그 뜻이(其志) 매우 크지만(甚大, 而) 역량은 또한 작았다(量亦狹矣).. 2024. 2. 9.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5 가의(賈誼) 과진론(過秦論)] 진나라의 잘못을 논함 全篇皆陳靜觀批. ○ 此篇, 論秦能取天下在據關中, 失天下在恃關中, 此是一篇大意. 文如百萬之軍, 鼓譟赴敵, 而行陣部曲整然. 前日據關中, 便有取天下之勢, 後來恃關中, 乃不思守天下之道. 전편은(全篇) 모두(皆) 진종관의 비평이다(陳靜觀批). ○ 이 편은(此篇), 진나라가(論秦) 천하를 취할 수 있던 것은(能取天下) 함곡관을 의지함에 있고(在據關中), 천하를 잃은 것이(失天下在) 함곡관을 믿었기 때문이니(恃關中), 이것은(此) 이 한 편의(是一篇) 큰 뜻이다(大意). 문장은(文) 백만 대군이(百萬之軍), 북 치고 떠들며(鼓譟) 적에게 달려가는 듯했고(如赴敵, 而) 행진과 대오가(行陣部曲) 정연했다(整然). 전에는(前日) 함곡관에 의지해서(據關中), 바로(便) 천하를 취하는 기세가 있었지만(有取天下之勢), 나중에(.. 2024. 2. 8.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4 한무제(漢武帝) 추풍사(秋風辭)] 가을 바람을 노래하다 休齋云: “詩變而爲騷, 騷變而爲辭, 皆可歌也. 辭則兼詩騷之聲而尤簡邃焉者.”휴제가 말하길(休齋云): “시가 변해서(詩變而) 소가 되었고(爲騷), 소가 변해서(騷變而) 사가 되었으니(爲辭), 모두(皆) 노래라고 할 수 있따(可歌也). 사란(辭則) 시와 소의 소리를 함께 가져서(兼詩騷之聲而) 더욱(尤) 질박하고 심오한 것이다(簡邃焉者).”라고 했다.漢武帝因祠后土於汾陰, 作「秋風辭」一章, 凡三易韻, 其節短, 其聲哀, 此辭之權輿乎.한 무제가(漢武帝) 분음에서(於汾陰) 후토에 제사 지내고 잇달아(因祠后土), 추풍사 1장을 지었으니(作「秋風辭」一章), 모두(凡) 3번(三) 운을 바꿨고(易韻), 그 가락이 짧고(其節短), 그 소리가 슬프니(其聲哀), 이것이(此) 사의 시작이다(辭之權輿乎). * 后土(후토): 토지의 신.. 2024. 2. 8.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3 이사(李斯)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 시황제가 외국 유세객을 쫓아내는 것에 대해 올리는 글 * 이사(李斯, 기원전 284년 ~ 기원전 208년)는 중국 전국시대 ~ 진나라의 철학자·정치가이며, 자는 통고(通古), 초나라 상채(上蔡) 사람이다. 여불위 천거로 진나라 조정에 출사하여 시황제를 섬겼다. 그는 유학자였으나 사상적 기반은 법치주의이며, 도량형의 통일, 분서 등 실시하여, 진시황을 도와 진의 법치주의 기반을 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고, 시황제 사후, 조고와 권력 싸움에 패하고서 살해당했다. 생전 유학자를 자처하였으나 사후 법가로 분류되었다. 순황의 문인이다. 臣聞吏議逐客, 竊以爲過矣. 昔者繆公求士, 西取由余於戎; 東得百里奚於宛; 迎蹇叔於宋; 來邳豹ㆍ公孫支於晉, 此五子者, 不産於秦. 而繆公用之, 幷國二十, 遂覇西戎. 孝公用商鞅之法, 移風易俗, 民以殷盛, 國以富强, 百姓樂用, 諸侯親服, 獲.. 2024. 2. 8.
[사기열전(史記列傳)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6/6] 칠조개(漆彫開) 사마경(司馬耕) 번수(樊須) 유약(有若) 공서적(公西赤) 등 21.商瞿(상구子木 자목) / 주역의 전수 商瞿(상구), 魯人(노인), 字子木(자자목). 少孔子二十九歲(소공자이십구세). 상구는(商瞿), 노나라 사람이고(魯人), 자는 자목이다(字子木). 공자보다 29살 어리다(少孔子二十九歲). 孔子傳易於瞿(공자전역어구), 瞿傳楚人馯臂子弘(구전초인한비자홍), 弘傳江東人矯子庸疵(홍전강동인교자용자), 疵傳燕人周子家豎(자전연인주자가수), 豎傳淳于人光子乘羽(수전순우인광자승우), 羽傳齊人田子莊何(우전제인전자장하), 何傳東武人王子中同(하전동무인왕자중동), 同傳菑川人楊何(동전치천인양하). 何元朔中以治易爲漢中大夫(하원삭중이치역위한중대부). 공자가(孔子) 상구에게(於瞿) 주역을 전했고(傳易), 상구가(瞿) 초나라 사람 한비자홍에게 전했고(傳楚人馯臂子弘), 홍은(弘) 강동사람 교자용자에게.. 2024. 1. 13.
[사기열전(史記列傳)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5/6] ⑨言偃(언언 자유) ⑩卜商(복상 자하) ⑪顓孫師(단손사 자장) ⑫曾參(증삼 자여) ⑬澹台滅明(담대멸명 자우) 9. 言偃(언언, 子游자유) / 牛刀割鷄(우도할계,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는가) 言偃(언언), 吳人(오인), 字子游(자자유). ​少孔子四十五歲(소공자사십오세). 언언은(言偃), 오나라 사람이고(吳人), 자는 자유다(字子游). 공자보다 45세 어리다(​少孔子四十五歲). 子游旣已受業(자유기이수업), 爲武城宰(위무성재). 孔子過(공자과), 聞弦歌之聲(문현가지성). 孔子莞爾而笑曰(공자완이이소왈): "割雞焉用牛刀(할계언용우도)?" 자유가(子游) 이미(旣已) 가르침을 받고 나서(受業), 무성의 읍재가 되었다(爲武城宰). 공자가 지나다가(孔子過), 거문고 타고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聞弦歌之聲). 공자가(孔子) 빙긋이 웃으며 말하기를(莞爾而笑曰): "닭 잡는데(割雞) 어찌(焉) 소 잡는 칼을 쓰느냐(用牛刀.. 2024. 1. 12.
[사기열전(史記列傳)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4/6] ⑧ 端木賜(단목사 자공 子貢) (2/2) / 한 번 움직여 세상의 판도를 바꾸다 / 자공일사 사세상파(子貢一使 使勢相破) 說曰(세왕): "臣聞之(신문지), 王者不絕世(왕자부절세), 霸者無彊敵(패자무강적), 千鈞之重加銖兩而移(천균지중가수양이이). 今以萬乘之齊而私千乘之魯(금이만승지제이사천승지노), 與吳爭彊(여오쟁강), 竊爲王危之(절위왕위지). 且夫救魯(차부구노), 顯名也(현명야); 伐齊(벌제), 大利也(대리야). 以撫泗上諸侯(이무사상제후), 誅暴齊以服彊晉(주폭제이복강진), 利莫大焉(이막대언). 名存亡魯(명존망노), 實困彊齊(실곤강제). 智者不疑也(지자불의야)." 유세하여 말하길(說曰): "신이 듣건대(臣聞之), 왕도로 다스리는 사람은(王者) 세대(후사)를 끊지 않고(不絕世), 패도로 다스리는 사람에게는(霸者) 적을 강하게 만드는 일이 없고(無彊敵), 천균의 무거움이라도(千鈞之重) 작은 것이 더해지면(加銖兩而) 움직입니다(移)... 202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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