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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史記列傳) 69 소진열전(蘇秦列傳) 5/13] 제나라 왕을 설득하다 / 제국방문(齊國訪問) 因東說齊宣王曰: "齊南有泰山, 東有琅邪, 西有淸河, 北有勃海, 北所謂四塞之國也. 齊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粟如丘山. 三軍之良, 五家之兵, 進如鋒矢, 戰如雷霆, 解如風雨. 即有軍役, 未嘗倍泰山, 絶淸河, 涉勃海也. 잇달아(因) 동으로 가서(東) 제나라 선왕에게 유세하여 말하길(說齊宣王曰): "젠나라에는(齊) 남으로(南) 태산이 있고(有泰山), 동으로 낭야가 있고(東有琅邪), 서로 청하가 있고(西有淸河), 북으로 발해가 있고(北有勃海), 이른바(北所謂) 사방이 막힌 요새의 나라입니다(四塞之國也). 제나라의 땅이(齊地) 사방 2,000여 리이고(方二千餘里), 무장한 장졸이(帶甲) 수십 만이고(數十萬), 곡식이 산더미 같습니다(粟如丘山). 삼군의 정예와(三軍之良), 오가의 군대가(五家之兵), 나아가는 것이(.. 2024. 2. 18.
[사기열전(史記列傳) 69 소진열전(蘇秦列傳) 4/13] 싹을 베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한다 / 호모부가(毫毛斧柯) 又說魏襄王曰: "大王之地, 南有鴻溝·陳·汝南·許·郾·昆陽·召陵·舞陽·新都·新郪, 東有淮·潁·煑棗·無胥, 西有長城之界, 北有河外·卷·衍·酸棗, 地方千里. 地名雖小, 然而田舍廬廡之數, 曾無所芻牧. 또(又) 위 혜왕을 설득하여 말하길(說魏襄王曰): "대왕의 땅이(大王之地), 남으로(南) 홍구, 여남, 허, 언, 곤양, 소릉 무양, 신도, 신처가 있고(有鴻溝·陳·汝南·許·郾·昆陽·召陵·舞陽·新都·新郪), 동으로(東) 회수와 영수, 자조, 무서가 있으며(有淮·潁·煑棗·無胥), 서로(西) 장성의 경계가 있고(有長城之界), 북으로(北) 하외, 권, 연, 산조가 있어(有河外·卷·衍·酸棗), 땅이(地) 사방 천 리입니다(方千里). 땅이 비록 작지만(地名雖小), 그러나(然而) 농지와 집의 수가 많아(田舍廬廡之數), 일찍이.. 2024. 2. 18.
[사기열전(史記列傳) 69 소진열전(蘇秦列傳) 3] 닭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마라 / 계구우후(鷄口牛後) 於是說韓宣王曰: "韓北有鞏·成皋之固, 西有宜陽·商阪之塞, 東有宛·穰·洧水, 南有陘山, 地方九百餘里, 帶甲數十萬, 天下之彊弓勁弩皆從韓出. 이에(於是) 한나라 선왕을 설득하여 말하길(說韓宣王曰): "한나라에는(韓) 북으로(北) 공읍과 성고의 견고함이 있고(有鞏·成皋之固), 서로(西) 의양과 상판의 요새가 있고(有宜陽·商阪之塞), 동으로(東) 완읍과 양읍, 유수가 있고(有宛·穰·洧水), 남으로(南) 경산이 형산이 있고(有陘山), 땅은(地) 사방 900여 리이고(方九百餘里), 갑옷을 갖춘 장졸이 수십 만이며(帶甲數十萬), 천하의(天下之) 강한 활과 쇠뇌는(彊弓勁弩) 모두(皆) 한나라에서 나옵니다(從韓出). * 帶甲(대갑): 갑옷(甲-)을 입은 장졸(將卒). 谿子·少府時力·距來者, 皆射六百步之外. 韓卒超足而射, .. 2024. 2. 17.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5 도연명(陶淵明)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다섯 그루 버드나무집 선생 陶淵明, 門栽五柳, 因自著「五柳先生傳. 도연명은(陶淵明), 문에(門)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栽五柳), 인하여(因) 스스로(自) 오류선생전을 지었다(著五柳先生傳). 先生不知何許人, 亦不詳其姓字, 宅邊有五柳樹, 因以爲號焉. 선생이(先生)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不知何許人), 또한(亦) 그 성과 자도 확실하지 않지만(不詳其姓字), 집 주변에(宅邊)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어(有五柳樹), 이것으로 인하여(因以) 호를 삼았다(爲號焉). * 何許(하허): 어느 곳, 何許人(하허인): 어떠한 사람. 閑靖少言, 不慕榮利. 好讀書, 不求甚解, 每有意會, 便欣然忘食. 性嗜酒, 家貧, 不能常得, 親舊知其如此, 或置酒而招之, 造飮輒盡, 期在必醉, 旣醉而退, 曾不吝情去留. 한가롭고 편안하며(閑靖) 말이 적었고(少言.. 2024. 2. 16.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4 도연명(陶淵明) 귀거래사(歸去來辭)] 나, 돌아갈래! 귀거래사는 중국 동진 시대의 시인인 도연명이 41세가 되던 해 가을, 팽택(彭澤, 장시성 심양 부근)의 현령을 그만두고 고향(심양)으로 돌아가면서 지은 산문시다. 어느 날 도연명은 군에서 보낸 감독관에게 예복을 입고 가서 뵈라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탄식하며 "내 닷 말 곡식 때문에 소인 앞에 허리를 꺾을 수 없다"라고 하면서 그날로 사표를 냈다고 한다. 글을 지은 배경 朱文公曰: “「歸去來辭」者, 晉處士陶淵明之所作也. 潛有高志遠識, 不能俯仰時俗. 嘗爲彭澤令, 督郵行縣且至, 吏白‘當束帶見之,’ 潛歎曰: ‘吾安能爲五斗米, 折腰向鄕里小兒耶?’ 卽日解印綏去, 作此詞, 以見志. 後以劉裕將移晉祚, 恥事二姓, 遂不復仕, 宋文帝時, 特徵不至, 卒諡靖節徵士. 歐陽公言, ‘兩晉, 無文章, 幸獨有此篇耳. 然其詞義夷曠.. 2024. 2. 16.
[사기열전(史記列傳) 69 소진열전(蘇秦列傳) 2] 조나라를 찾아가 연횡을 이야기하다 / 조국방문(趙國訪問) 於是資蘇秦車馬金帛以至趙. 而奉陽君已死, 卽因說趙肅侯曰: "天下卿相人臣及布衣之士, 皆高賢君之行義, 皆願奉教陳忠於前之日久矣. 雖然, 奉陽君而君不任事, 是以賓客游士莫敢自盡於前者. 今奉陽君捐館舍, 君乃今復與士民相親也, 臣故敢進其愚慮. 이에(於是) 소진에게(蘇秦) 수레와 말, 금과 비단을 주어(資車馬金帛以) 조나라에 보냈다(至趙). 그러나(而) 봉양군이 이미 죽었기에(奉陽君已死), 곧 잇달아(卽因) 조나라 숙후를 설득하여 말하길(說趙肅侯曰): "천하의(天下) 공경과 재상, 신하로부터(卿相人臣) 포의지사에 이르기까지(及布衣之士), 모두(皆) 임금께서(君之) 의를 행하는 것을(行義) 높고 어질다고 여겨( 高賢), 모두(皆) 가르침을 받들어(奉教) 앞에서 충성스러움을 진술하기를(陳忠於前) 원한 것이(願之) 오래 되었습.. 2024. 2. 16.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3 이밀(李密) 진정표(陳情表)] 조모를 봉양하려고 관직을 사양하면서 올린 글 이밀(李密, 224년 ~ 287년)은 중국 삼국시대 건위군 무양(武陽) 출신으로, 자(字)는 영백(令伯), 일명은 건(虔)이다. 진(晉)의 무제(武帝)는 그를 태자선마(太子洗馬)로 삼으려 했으나, 조모(祖母) 유(劉)씨의 병환 때문에 사양하면서 태시(泰始) 3년에 무제(武帝)에게 상주문(上奏文)으로 진정사표를 올렸다. 무제는 감동하여 노비와 식량을 하사하였다. 이밀의 진정표는 효심이 잘 표현한 문장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蜀志』, “李密父早亡, 母何氏更適人. 密見養於祖母, 以孝聞, 侍疾, 日夜未嘗解帶. 蜀平, 晉帝徵爲太子洗馬, 密上表, 帝嘉其誠款, 賜奴婢二人, 使郡縣供祖母奉膳服, 遷漢中太守.” 촉지에(『蜀志』), “이밀의 아버지가(李密父) 일찍 죽고(早亡), 어머니 하씨가(母何氏) 다시(.. 2024. 2. 14.
[사기열전(史記列傳) 소진열전(蘇秦列傳) 1] 천 리 밖의 근심을 버리고 백 리 안의 근심을 해결해라 蘇秦者, 東周雒陽人也. 東事師於齊, 而習之於鬼谷先生. (소진자 동주낙양인야 동사사어제 이습지어귀곡선생) 소진은(蘇秦者), 동주 낙양 사람이다(東周雒陽人也). 동쪽으로(東) 제나라에서 스승을 모시고(事師於齊, 而) 귀곡선생에게 배웠다(習之於鬼谷先生). 出游數歲, 大困而歸. 兄弟嫂妹妻妾竊皆笑之, 曰: "周人之俗, 治產業, 力工商, 逐什二以爲務. 今子釋本而事口舌, 困, 不亦宜乎!" 나가(出) 수년을 유세했지만(游數歲), 크게 어려움을 겪고(大困而) 돌아왔다(歸). 형제와 형수, 누이, 아내와 첩이(兄弟嫂妹妻妾) 은근히(竊) 모두 비웃으며 말하길(皆笑之, 曰): "주나라 풍속에(周人之俗), 산업을 다스리고(治產業), 공상에 힘쓰고(力工商), 10분의 2를 쫒는 것을(逐什二以) 임무로 삼는다(爲務). 지금(今) .. 2024. 2. 14.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2 왕희지(王羲之) 난정기(蘭亭記)] 난정에서 모여 지은 시문을 모은 글의 서문 영화 9년 난정에서 연 시회 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 會于會稽山陰之蘭亭, 修禊事也. 群賢畢至, 少長咸集. 此地有崇山峻嶺, 茂林修竹, 又有淸流激湍, 映帶左右, 引以爲流觴曲水. 영화 9년(永和九年) 계축년(歲在癸丑) 늦은 봄 초에(暮春之初), 회계산 북쪽의(會稽山陰之) 난정에 모여(會于蘭亭), 계제사를 지냈다(修禊事也). 여러 어진 사람이(群賢) 모두 오고(畢至), 젊은이와 늙은이가(少長) 함께 모였다(咸集). 이 땅에(此地) 높은 산과 험준한 봉우리가 있고(有崇山峻嶺), 무성한 숲과 긴 대나무가 있고(茂林修竹), 또(又) 맑은 물과 격한 여울이 있어(有淸流激湍), 반사해서(映) 좌우로 띠처럼 둘렀는데(帶左右), 끌어다가(引以) 잔을 띄울 물을 만들었다(爲流觴曲水). * 歲在癸丑: 그 해의 간지가 癸丑이라는.. 2024. 2. 13.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1 유령(劉伶) 주덕송(酒德頌)] 술의 덕을 칭송함 劉伶, 字伯倫, 沛國人. 貌甚醜悴, 而志氣放曠, 以宇宙爲狹. 性好酒, 常携酒自隨, 使人荷鍤從之, 云: “死便埋我.” 故著此頌, 頌酒德之美也. 유령은(劉伶), 자가 백륜이고(字伯倫), 패국 사람이다(沛國人). 모습은(貌) 매우(甚) 추하고 파리했지만(醜悴, 而) 뜻과 기상은(志氣) 거리낌이 없어서(放曠, 以) 우주가(宇宙) 작다고 여겼다(爲狹). 성품이(性) 술을 좋아해서(好酒), 늘(常) 술을 휴대하고(携酒) 스스로 지녔으며(自隨), 사람들로 하여금(使人) 삽을 메고 따르게 하여(荷鍤從之), 말하길(云): “죽거든(死) 바로(便) 나를 묻어라(埋我).”라고 했다. 그러므로(故) 이 송을 지어(著此頌), 술의 덕이 아름다운 것을 노래했다(頌酒德之美也). * 放曠(방광): 언행(言行)에서 거리낌이 없음. 有.. 2024. 2. 13.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0 제갈량(諸葛亮) 후출사표(後出師表)] 뒤에 군사를 이끌고 나가며 올리는 상소문 의견이 분분하지만 先帝慮漢賊不兩立, 王業不偏安, 故託臣以討賊也. 以先帝之明, 量臣之才, 固知臣伐賊, 才弱敵强也. 然不伐賊, 王業亦亡, 惟坐而待亡, 孰與伐之, 是故託臣而弗疑也. 臣受命之日, 寢不安席, 食不甘味. 선제께서(先帝) 한나라와 적은(漢賊) 양립할 수 없고(不兩立), 왕업이(王業) 한쪽에서 편안할 수 없음을(不偏安) 염려하셨고(慮), 그러므로(故) 적을 토벌할 것을(以討賊) 신에게 부탁하셨습니다(託臣也). 선제의 밝음으로(以先帝之明), 신의 재주를 헤아려(量臣之才), 신이 적을 토벌하는 것이(臣伐賊), 재주가 약하고(才弱) 적이 강한 것을(敵强) 진실로 알았습니다(固知也). 그러나(然) 적을 토벌하지 않으면(不伐賊), 왕업도 또한 없을 것이니(王業亦亡), 오직(惟) 앉아서(坐而) 망하기를 기다리 것.. 2024. 2. 13.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09 제갈량(諸葛亮) 출사표(出師表)]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기에 앞서 올린 상소 명확한 신상필벌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殂. 今天下三分, 益州疲弊, 此誠危急存亡之秋也. 然侍衛之臣, 不懈於內; 忠志之士, 忘身於外者, 蓋追先帝之殊遇, 欲報之於陛下也. 선제가 창업하시고(先帝創業) 반도 지나지 않아서(未半, 而) 중도에(中道) 돌아가셨습니다(崩殂). 지금(今) 천하가 셋으로 나뉘었고(天下三分), 익주는(益州) 피폐하니(疲弊), 이것은(此) 진실로(誠) 위급하고(危急) 사느냐 죽느냐의(存亡之) 중요한 때입니다(秋也). 그러나(然) 모시는 신하가(侍衛之臣),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不懈於內); 충성스러운 무사가(忠志之士), 밖에서 몸을 잊은 것은(忘身於外者), 대개(蓋) 선제의 특별한 대우를 추모하고(追先帝之殊遇), 폐하에게(於陛下) 그것을 갚고자 하는 것입니다(欲報之也). * 急存亡之秋: 秋는 .. 2024.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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