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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21 원결(元結)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 당나라를 중흥시킨 공적을 찬양함 [해설] 安祿山反, 明皇幸蜀. 肅宗時爲太子 自卽位於靈武, 命郭子儀ㆍ李光弼, 復兩京, 迎明皇還京師, 唐業中興.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켰다(安祿山反), 명황(현종)이(明皇) 촉으로 행차했다(幸蜀). 숙종이(肅宗) 당시(時) 태자가 되어(爲太子) 스스로(自) 영무에서 즉위했다(卽位於靈武), 곽자의와 이광필에게 명령해서(命郭子儀ㆍ李光弼), 양경을 수복하고(復兩京), 명황을 맞이해서(迎明皇) 경사로 돌아오게 하니(還京師), 당나라의 왕업이(唐業) 다시 일어났다(中興). 元結, 遂於湖南永州祁陽縣南之浯溪石崖上, 刻此頌, 顔魯公眞卿書之, 後人, 因名磨崖碑, 詩人文士, 論此事者多矣. 黃山谷之「題磨崖碑」, 楊誠齋之「浯溪賦」, 皆是也而范石湖一詩, 尤明言之焉. 謂: “頌者, 美盛德之形容, 次山, 乃以魯史筆法, 婉辭含譏, 後之詞.. 2024. 2. 27.
[사기열전(史記列傳) 69 소진열전(蘇秦列傳) 8/13] 원수를 버리고 친구를 얻어라 / 전화위복(轉禍爲福) 其後秦使犀首欺齊、魏, 與共伐趙, 欲敗從約. 齊、魏伐趙, 趙王讓蘇秦. 蘇秦恐, 請使燕, 必報齊. 蘇秦去趙而從約皆解. 그 뒤에(其後) 진나라가(秦) 서수를 시켜(使犀首) 제나라와 위나라를 속이고(欺齊魏), 함께(與共) 조나라를 치게 해서(伐趙), 합종의 맹약을 깨려고 했다(欲敗從約). 제나라와 위나라가 조나라를 치자(齊魏伐趙), 조왕이(趙王) 소진을 꾸짖었다(讓蘇秦). 소진이 놀라(蘇秦恐), 연나라에 사신으로 가서(使燕), 반드시(必) 제나라에 보복하겠다고(報齊) 청했다(請). 소진이 조나라를 떠나서(蘇秦去趙而) 합종의 맹약이(從約) 모두 풀어졌다(皆解). 秦惠王以其女爲燕太子婦. 是歲, 文侯卒, 太子立, 是爲燕易王. 易王初立, 齊宣王因燕喪伐燕, 取十城. 易王謂蘇秦曰: "往日先生至燕, 而先王資先生見趙, 遂約六.. 2024. 2. 27.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20 장온고(張蘊古) 대보잠(大寶箴)] 당 태종을 경계하려는 글(작성 중) 聖人之大寶曰位, 此篇, 專箴人主以守位之難. 盖自唐太宗初卽位時, 張蘊古直中書省, 乃上「大寶箴」, 其辭委曲, 可是鑑戒. 성인의 큰 보물을(聖人之大寶) 위라 하고(曰位), 이 편은(此篇), 오로지(專) 자리를 지키는 어려움으로(以守位之難) 임금을 경계한 것이다(箴人主). 대체로(盖) 당태종이 처음 즉위할 때부터(自唐太宗初卽位時), 장온고가 중서성에 숙직하며(張蘊古直中書省), 곧(乃) 대보잠을 올렸으니(上「大寶箴」), 그 말이 자세하고 소상해서(其辭委曲), 교훈이 될만했다(可是鑑戒). * 委曲(위곡): 자세(仔細)하고 소상(昭詳)함. 또는 그 곡절(曲折). * 鑑戒(감계): 교훈(敎訓)이 될 만한 본보기(本--), 지난 잘못을 거울로 삼아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아니하도록 하는 경계(警戒). 임금의 역할과 자.. 2024. 2. 27.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001-1] 도원에서 잔치를 열고 호걸 셋이 의형제가 되다 / 도원결의(桃園結義) 연도원호걸삼결의 참황건영우수립공(宴桃園豪傑三結義, 斬黃巾英雄首立功) (1) 詞曰: 滾滾長江東逝水, 浪花淘盡英雄. 是非成敗轉頭空: 靑山依舊在, 幾度夕陽紅. 白髮漁樵江渚上, 慣看秋月春風. 一壺濁酒喜相逢: 古今多少事, 都付笑談中. 글에서 말하길(詞曰): 세차게 넘실대는 장강은(滾滾長江) 동으로(東) 물을 흘려보내고(逝水), 물보라는(浪花) 영웅을 씻어 없앴네(淘盡英雄). 옳고 그름과(是非) 성공 실패는(成敗) 머리 돌리니(轉頭) 공허하고(空): 청산은(靑山) 옛날 그대로(依舊) 있는데(在), 여러 해(幾度) 저녁노을은 붉다(夕陽紅). 백발 어부는(白髮漁樵) 강 모래톱에서(江渚上), 가을 달 봄바람 본다(慣看秋月春風). 한 병 탁주로(一壺濁酒) 서로 만나 것을 기뻐하고(喜相逢): 옛날과 지금의(古今) 많고 적은.. 2024. 2. 26.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9 이백(李白)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 형자 한자사에게 자기를 추천하는 글 韓朝宗, 元宗時人. 爲荊州刺史, 人皆景慕之. 李白與此書膾炙人口, 學者不可不讀. 한조종은(韓朝宗), 원종 때 사람이다(元宗時人). 형주자사가 되어(爲荊州刺史), 사람들이 모두(人皆) 우러러보아 사모했다(景慕之). 이백이(李白) 이 편지를 주어(與此書)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으니(膾炙人口), 학자들은(學者) 읽지 않을 수 없다(不可不讀). * 景慕(경모): 우러러 사모(思慕)함. 한조종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 白聞, 天下談士, 相聚而言曰: “生不用封萬戶侯, 但願一識韓荊州.” 何令人之景慕, 一至於此. 豈不以周公之風, 躬吐握之事, 使海內豪俊, 奔走而歸之. 제(이백)가 들으니(白聞), 천하의 담론 하는 선비들이(天下談士), 서로 모여(相聚而) 말하길(言曰): “살아서(生) 만호후에 봉해지지 않더라도(不用封.. 2024. 2. 25.
[전국책(戰國策) 동주책(東周策) 03] 동주와 서주의 싸움 / 동주여서주전(東周與西周戰) 東周與西周戰, 韓救西周. 爲東周謂韓王曰: “西周者, 故天子之國也, 多名器重寶. 案兵而勿出, 可以德東周, 西周之寶可盡矣.” 동주와 서주가(東周與西周) 싸우자(戰), 한나라가(韓) 서주를 구원했다(救西周). 동주를 위하여(爲東周) 한나라 왕에게 말하길(謂韓王曰): “서주는(西周者), 천자의 나라이기 때문에(故天子之國也), 많은(多) 이름난 기물과(名器) 소중한 보물이 있습니다(重寶). 군대를 인도하여(案兵而) 내보내지 않으면(勿出), 동주에 덕을 베풀 수 있고(可以德東周), 서주의 보물을(西周之寶) 받아낼 수 있습니다(可盡矣).”라고 했다. 東周與西周爭, 西周欲和於楚·韓. 齊明謂東周君曰: “臣恐西周之與楚·韓寶, 令之爲己求地於東周也. 不如謂楚·韓曰: ‘西周之欲入寶, 持二端. 今東周之兵不急西周, 西周之寶不入楚·.. 2024. 2. 25.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8 이백(李白)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봄날 밤에 도리원 연회에서 지은 시집의 서문 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 무릇(夫) 천지란 것은(天地者) 만물의(萬物之) 여관이고(逆旅), 시간이란(光陰者) 백 대의(百代之) 지나가는 손님이다(過客). * 逆旅(역려): ‘나그네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여관(旅館)’을 이르는 말. * 光陰(광음): ‘햇빛과 그늘, 즉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時間)이나 세월(歲月)을 이르는 말. 而浮生若夢, 爲歡幾何? 덧없는 인생(而浮生) 꿈과 같으니(若夢), 즐기는 것이(爲歡) 얼마나 되겠는가(幾何)? * 浮生(부생): 덧없는 인생 * 幾何(기하): 얼마 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 옛사람이(古人) 촛불을 잡고(秉燭) 밤에 노닌 것은(夜遊), 진실로(良) 까닭이 있구나(有以也). * 良有以也: 良은 '진실로', 以는 원인, 근거를 나타내므로 '까닭'.. 2024. 2. 24.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7 왕발(王勃) 등왕각서(滕王閣序)] 등왕각에서 느낀 인생무상(작성 중) 등왕각(滕王閣)은 장시성 난창에 있는 누각으로 악양의 악양루, 우한의 황학루와 함께, 《강남 3대 누각》으로 불린다. 당나라 때인 653년(영휘 4년) 이 땅에 봉해진 이원영(당 고조의 22번째 아들)의 도락에 의해서 지어졌다. 짓고 나서 20년이 지나 홍주도독이 재건하고 여러 문인들로 하여금 시를 짓게 했는데 이 중에서 왕발의 등왕각서가 유명하다. 서문을 지은 사연 唐高祖子元嬰, 爲洪州刺史, 置此閣, 時封騰王, 故曰: ‘騰王閣.’ 咸亨二年, 閻伯嶼爲洪州牧, 大宴于此, 宿命其壻, 爲序以誇客. 因出紙筆遍請客, 莫敢當. 勃在席最少, 受之不辭, 都督怒, 遣吏伺其文, 輒報. 一再報, 語益奇, 乃瞿然曰: “天才也.” 請遂成文, 極歡而罷. 勃字子安, 少有逸才, 高宗召爲博士, 因作鬪鷄檄文, 高宗怒, 謂有交構之漸乃黜... 2024. 2. 24.
[사기열전(史記列傳) 69 소진열전(蘇秦列傳) 7/13] 부귀하면 우러러보고 가난하면 업신여긴다 / 육국겸상(六國兼相) 於是六國從合而竝力焉. 蘇秦爲從約長, 竝相六國. 이에(於是) 여섯 나라가(六國) 합종하고(從合而) 힘을 합쳤다(竝力焉). 소진은(蘇秦) 합종 맹약의 우두머리가 되어(爲從約長),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했다(竝相六國). 北報趙王, 乃行過雒陽, 車騎輜重, 諸侯各發使送之甚衆, 疑於王者. 周顯王聞之恐懼, 除道, 使人郊勞. 蘇秦之昆弟妻嫂側目不敢仰視, 俯伏侍取食. 북으로(北) 조왕에게 보고하러 가면서(報趙王), 이에(乃) 길이(行) 낙양을 지나게 되어(過雒陽), 마차와 기병과(車騎) 짐을 실은 수레(輜重), 제후가(諸侯) 각자(各) 사자를 보내(發使) 그를 전송하는 사람이(送之) 매우 많아(甚衆), 왕의 행차와 헷갈릴 정도였다(疑於王者). 주나라 현왕이(周顯王) 그 소문을 듣고(聞之) 두려워하여(恐懼), 길을 쓸고(除.. 2024. 2. 24.
[전국책(戰國策) 동주책(東周策) 02] 진나라가 의양을 공격하다 / 진공의양(秦攻宜陽) 秦攻宜陽, 周君謂趙累曰: “子以爲何如?” 對曰: “宣陽必拔也.” 君曰: “宜陽城方八里, 材士十萬, 粟支數年, 公仲之軍二十萬, 景翠以楚之衆臨山而救之, 秦必無功.” 對曰: “甘茂, 羈旅也, 攻宜陽而有功, 則周公旦也; 無功, 則削迹於秦. 秦王不聽羣臣父兄之義, 而攻宜陽, 宜陽不拔, 秦王耻之. 臣故曰‘拔’. 진나라가(秦) 의양을 공격하자(攻宜陽), 주나라 임금이(周君) 조루에게 말하길(謂趙累曰): “그대는(子) 어떻게 생각하는가(以爲何如)?”라고 했다.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의양은(宣陽) 반드시(必) 빼앗길 것입니다(拔也).”라고 했다. 임금이 말하길(君曰): “의양은(宜) 성이(陽) 사방 80리고(城方八里), 재사가 10만이고(材士十萬), 곡식은(粟) 수년을 지탱할 수 있고(支數年), 공중의 군사가(公仲之.. 2024. 2. 22.
[사기열전(史記列傳) 69 소진열전(蘇秦列傳) 6/13] 재앙이 닥친 뒤에는 걱정해도 소용없다 / 치지기미란(治之其未亂) 乃西南說楚威王曰: “楚, 天下之彊國也: 王, 天下之賢王也. 西有黔中ㆍ巫郡, 東有夏州ㆍ海陽, 南有洞庭ㆍ蒼梧, 北有陘塞ㆍ郇陽, 地方五千餘里, 帶甲百萬, 車千乘, 騎萬匹, 粟支十年. 此霸王之資也. 夫以楚之彊與王之賢, 天下莫能當也. 今乃欲西面而事秦, 則諸侯莫不西面而朝於章台之下矣. 이에(乃) 서남쪽으로 가서(西南) 초나라 위왕에게 유세하여 말하길(說楚威王曰): “초나라는(楚), 천하의 강국입니다(天下之彊國也): 왕께서는(王), 천하의 현명한 왕입니다(天下之賢王也). 서쪽에는(西) 검중과 무군이 있고(有黔中巫郡), 동쪽에는(東) 하주와 해양이 있고(有夏州海陽), 남쪽에는(南) 동정호와 창오가 있고(有洞庭蒼梧), 북쪽에는(北) 형새와 순양이 있고(有陘塞郇陽), 땅은(地) 사방(方) 5000여 리이고(五千餘里), 무장.. 2024. 2. 20.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6 공치규(孔稚圭) 북산이문(北山移文)] 북산의 신령이 주옹에게 보내는 경고 孔稚圭, 字德璋, 會稽人. 少涉學有美譽, 仕至太子詹事. 鍾山在郡北, 其先周彦倫隱於北山, 後應詔出爲海鹽縣令. 欲却適北山, 孔生乃假山靈之意移之, 使不許再至, 故云「北山移文」, 迂齋云: “建康蔣山, 是也.” 공치규는(孔稚圭), 자가 덕장이고(字德璋), 회계 사람이다(會稽人). 어려서(少) 학문을 섭렵해(涉學) 아름다운 명예가 있었다(有美譽), 벼슬이(仕) 태자첨사에 이르렀다(至太子詹事). 종산은(鍾山) 군의 북쪽에 있고(在郡北), 그 먼저(其先) 주언륜이(周彦倫) 북산에 은거했다(隱於北山), 나중에(後) 부름에 응해(應詔) 나가서(出) 해렴 현령이 되었다(爲海鹽縣令). 북산에 가려고 하자(欲却適北山), 공생이(孔生) 이에(乃) 산령의 뜻을 빌려(假山靈之意) 이문을 지어(移之), 다시 오는 것을(再至) 허락하지.. 2024.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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