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史記列傳)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2/5] 아직 때가 아니니 기다려야 합니다
아버지와 형을 잃고 송(宋)나라로 도망 온 오자서는 송나라의 화씨지란으로 태자 건과 함께 정(鄭)나라로 탈출한다. 정나라로 간 태자는 진나라 군주 경공의 부추김을 받아 정나라 군주를 없애려고 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역으로 정 정공에게 살해되었다. 오자서는 태자의 아들 승과 함께 이번에는 오나라로 도망쳤다. 伍胥旣至宋, 宋有華氏之亂, 乃與太子建俱奔於鄭. 鄭人甚善之. 太子建又適晉, 晉頃公曰: "太子旣善鄭, 鄭信太子. 太子能爲我內應, 而我攻其外, 滅鄭必矣. 滅鄭而封太子."太子乃還鄭. 事未會, 會自私欲殺其從者, 從者知其謀, 乃告之於鄭. 鄭定公與子產誅殺太子建. 오자서가(伍胥) 송나라에 다다르고 나서(旣至宋), 송나라에(宋) 화씨의 난이 있었고(有華氏之亂), 이에(乃) 태자 건과 함께(與太子建俱) 정나라로 달아났..
2024. 1. 1.
[사기열전(史記列傳)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1/5] 복수는 나의 힘,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뒤로 하고 도망치다
오자서(伍子胥, ? ~ 기원전 485년)는 중국 춘추 시대 오나라의 정치가로, 자서(子胥)는 자이며, 이름은 운(員)이다. 본래 초나라 출신이나 아버지 오사와 형 오상이 비무기의 참언(讒言: 거짓으로 남을 헐뜯어 윗사람에게 고해바침)으로 평왕(平王)의 노여움을 사 처형된 뒤 초나라를 떠나 오나라로 갔다. 오나라의 행인(行人: 외교장관에 해당하는 관직) 올라 오왕 합려를 설득해 초나라를 공격하고 수도를 함락시켰다. 오나라가 강해지는데 크게 공헌했지만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와 사이가 벌어져 목숨을 잃었다. 伍子胥者, 楚人也, 名員. 員父曰伍奢. 員兄曰伍尙. 其先曰伍舉, 以直諫事楚莊王, 有顯, 故其後世有名於楚. 오자서는(伍子胥者), 초나라 사람이며(楚人也), 이름은 원이다(名員). 원의 아버지는(員父) 오사..
2023. 12. 31.
[사기열전(史記列傳)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손자/손빈(孫臏) 급소를 치고 빈틈을 노려라
빈(臏)이란 이름은 무릎뼈(슬개골)를 도려내는 형벌을 받아서 스스로 이런 이름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본명은 알 수 없고, 아버지는 손조(孫操), 5대 조가 손자병법을 지은 손무(孫武)이다. 젊은 시절에 방연(龐涓)과 함께 병법을 배웠는데 손빈의 재주를 시기한 방연이 위나라로 초대한 후 모함하여 무릎뼈를 도려내고 얼굴에 먹칠을 하는 형을 당했다. 제나라로 탈출해서 제나라에서 장군 전기(田忌)의 빈객(賓客)이 되었다. 마릉전투에서 방연이 이끈 위나라군을 크게 무찌르고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아 이름을 떨쳤다. 孫武旣死, 後百餘歲有孫臏. 臏生阿鄄之閒, 臏亦孫武之後世子孫也. 孫臏嘗與龐涓俱學兵法. 龐涓旣事魏, 得爲惠王將軍, 而自以爲能不及孫臏, 乃陰使召孫臏. 臏至, 龐涓恐其賢於己, 疾之, 則以法刑斷其兩足而黥之, ..
2023. 12. 29.
[사기열전(史記列傳) 사마양저열전(馬穰苴列傳)] 약속은 생명과도 같다
사마 양저(司馬穰苴)는 춘추시대 제나라의 장군으로, 성은 규(嬀), 씨는 전(田), 이름은 양저(穰苴)이다. 재상 안영(晏嬰)의 추천으로 등용되어 장군에 임명되었다. 군사적으로 불리했던 제나라에 큰 공을 세우자 경공(景公)이 대사마로 임명하였으며, 이때 사마(司馬)를 씨로 칭하여 사마양저라 불리었다. 사마천은 사마양저에 대해서 이론과 실천 면에서 '사마법'을 계승 발전시키고 대의와 예절을 아는 유가의 풍모를 지닌 장수라고 평가했다. 司馬穰苴者, 田完之苗裔也. 齊景公時, 晉伐阿·甄, 而燕侵河上, 齊師敗績. 景公患之. 晏嬰乃薦田穰苴曰: "穰苴雖田氏庶孽, 然其人文能附眾, 武能威敵, 願君試之." 사마양저는(司馬穰苴者), 전완의(田完之) 먼 후손이다(苗裔也). 제나라 경공 때(齊景公時), 진나라가(晉) 아읍과 견..
2023. 12. 28.
[사기열전(史記列傳)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한비자(韓非子 1/3) / 용의 비늘을 건드리지 말아라
전국시대의 철학자로 본명은 한비(韓非)이다. 젊어서 진(秦)의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의 밑에서 동문수학했다. 언변이 뛰어난 이사와 대조적으로 한비자는 말더듬이였다고 한다. 하나 학문에 있어서는 이사가 한비자에 미치지 못했다. 이때 한비자는 법가뿐만 아니라 도가, 유가, 묵가 등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법에 의한 부국강병의 논리를 정립했다. 韓非者, 韓之諸公子也. 喜刑名法術之學, 而其歸本於黃老. 非爲人口吃, 不能道說, 而善著書. 與李斯俱事荀卿, 斯自以爲不如非. 한비는(韓非者), 한나라의(韓之) 여러 공자 중 한 명이다(諸公子也). 형명과 법술의 학문을 좋아했지만(喜刑名法術之學, 而) 그 돌아간 곳은(其歸) 황노에 근본을 두었다(本於黃老). 한비의 사람됨이 말을 더듬어(非爲人口吃), 말을 잘하지..
2023.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