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5

[사기열전(史記列傳)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2/5] 아직 때가 아니니 기다려야 합니다 아버지와 형을 잃고 송(宋)나라로 도망 온 오자서는 송나라의 화씨지란으로 태자 건과 함께 정(鄭)나라로 탈출한다. 정나라로 간 태자는 진나라 군주 경공의 부추김을 받아 정나라 군주를 없애려고 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역으로 정 정공에게 살해되었다. 오자서는 태자의 아들 승과 함께 이번에는 오나라로 도망쳤다. 伍胥旣至宋, 宋有華氏之亂, 乃與太子建俱奔於鄭. 鄭人甚善之. 太子建又適晉, 晉頃公曰: "太子旣善鄭, 鄭信太子. 太子能爲我內應, 而我攻其外, 滅鄭必矣. 滅鄭而封太子."太子乃還鄭. 事未會, 會自私欲殺其從者, 從者知其謀, 乃告之於鄭. 鄭定公與子產誅殺太子建. 오자서가(伍胥) 송나라에 다다르고 나서(旣至宋), 송나라에(宋) 화씨의 난이 있었고(有華氏之亂), 이에(乃) 태자 건과 함께(與太子建俱) 정나라로 달아났.. 2024. 1. 1.
[사기열전(史記列傳)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1/5] 복수는 나의 힘,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뒤로 하고 도망치다 오자서(伍子胥, ? ~ 기원전 485년)는 중국 춘추 시대 오나라의 정치가로, 자서(子胥)는 자이며, 이름은 운(員)이다. 본래 초나라 출신이나 아버지 오사와 형 오상이 비무기의 참언(讒言: 거짓으로 남을 헐뜯어 윗사람에게 고해바침)으로 평왕(平王)의 노여움을 사 처형된 뒤 초나라를 떠나 오나라로 갔다. 오나라의 행인(行人: 외교장관에 해당하는 관직) 올라 오왕 합려를 설득해 초나라를 공격하고 수도를 함락시켰다. 오나라가 강해지는데 크게 공헌했지만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와 사이가 벌어져 목숨을 잃었다. 伍子胥者, 楚人也, 名員. 員父曰伍奢. 員兄曰伍尙. 其先曰伍舉, 以直諫事楚莊王, 有顯, 故其後世有名於楚. 오자서는(伍子胥者), 초나라 사람이며(楚人也), 이름은 원이다(名員). 원의 아버지는(員父) 오사.. 2023. 12. 31.
[사기열전(史記列傳)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오기(吳起)(2/2) 도왕의 시신 위에 엎드리다 / 吮疽之仁(연저지인) 위나라에서 맹활약한 오기지만, 자부심이 강한 성격 때문에 위나라 대신들과 갈등을 빚다가 초나라로 몸을 피했다. 초나라 왕은 오기를 높게 평가해서 재상에 임명했고, 오기는 초나라 왕족과 귀족들이 받는 녹을 몰수해서 국고를 늘리고 초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오기를 신임한 초나라 왕이 죽자 특권을 빼앗긴 왕족과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오기는 그들이 쏜 수많은 화살을 맞고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오기는 죽는 순간까지 기지를 부렸다. 죽음을 예감해 초나라 선왕의 시신 위로 몸을 숨겼고, 왕의 시신에도 수많은 화살이 꽂히게 되었다. 왕족과 귀족들은 오기를 죽이는 데 성공했지만 왕의 시신을 훼손했기에 많은 사람이 사형을 당했고 그 수만 해도 500여 명이나 됐다. 오기는 용병술과 과감한 추진력으로 시대.. 2023. 12. 30.
[사기열전(史記列傳)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오기(吳起)(1/2) 아내를 죽이고 병사의 고름을 빨아주다 / 살처구장(殺妻求將) 연저지인(吮疽之仁) 오기는 작은 위(衛) 나라 출신으로 잔인하고 의심이 많다고 비난하는 마을 사람 30여 명을 죽이고, 어머니 앞에서 자신의 팔을 깨물면서 한 나라의 재상이 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증자의 문하에서 공부했지만 의절한 후 병법을 공부하여 노나라 장군이 되었다. 이후 노나라 · 위나라 · 초나라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전공을 거두어 명성을 떨쳤고, 마지막에는 초나라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후대의 많은 평가는 오기의 잔인하고 끈질긴 면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오기의 리더십은 충분히 주목하고 본받을 만하다. 오기는 부하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자신들을 아껴주고 존중하며, 수고로움을 함께하는 리더를 누가 따르지 않겠는가? 오기의 리더십은 깨끗한 승복 태도에서 더 빛.. 2023. 12. 30.
[사기열전(史記列傳)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손자/손빈(孫臏) 급소를 치고 빈틈을 노려라 빈(臏)이란 이름은 무릎뼈(슬개골)를 도려내는 형벌을 받아서 스스로 이런 이름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본명은 알 수 없고, 아버지는 손조(孫操), 5대 조가 손자병법을 지은 손무(孫武)이다. 젊은 시절에 방연(龐涓)과 함께 병법을 배웠는데 손빈의 재주를 시기한 방연이 위나라로 초대한 후 모함하여 무릎뼈를 도려내고 얼굴에 먹칠을 하는 형을 당했다. 제나라로 탈출해서 제나라에서 장군 전기(田忌)의 빈객(賓客)이 되었다. 마릉전투에서 방연이 이끈 위나라군을 크게 무찌르고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아 이름을 떨쳤다. 孫武旣死, 後百餘歲有孫臏. 臏生阿鄄之閒, 臏亦孫武之後世子孫也. 孫臏嘗與龐涓俱學兵法. 龐涓旣事魏, 得爲惠王將軍, 而自以爲能不及孫臏, 乃陰使召孫臏. 臏至, 龐涓恐其賢於己, 疾之, 則以法刑斷其兩足而黥之, .. 2023. 12. 29.
[사기열전(史記列傳)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손자(손무)[孫子(孫武)] / 궁녀를 훈련시켜 특수부대로 만든 천재 전략가 손무는 제나라 출신으로 제나라의 내란을 피해 아버지 손빙(孫憑)과 함께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한다. 강남 지방 오나라(吳)로 피신했을 때 오나라 재상 오자서(伍子胥)를 알게 되었고 수도 근처의 산간에서 손자병법 13편을 저술했다고 한다. 기원전 515년 오자서의 추천으로 오나라 왕 합려의 초빙을 받아 오나라의 군사(軍師)가 되었다. 손무는 오나라의 군졸을 훈련시켜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고, 기원전 506년, 합려는 손무와 오자서를 대장으로 삼아 초나라 원정을 개시하였다. 이후 진나라의 개입으로 오나라는 철군하였으나, 그 후로도 오나라는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패자의 위세를 떨쳤다. 기원전 496년, 손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려는 월나라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하고, 합려도 부상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손무와.. 2023. 12. 29.
[사기열전(史記列傳) 사마양저열전(馬穰苴列傳)] 약속은 생명과도 같다 사마 양저(司馬穰苴)는 춘추시대 제나라의 장군으로, 성은 규(嬀), 씨는 전(田), 이름은 양저(穰苴)이다. 재상 안영(晏嬰)의 추천으로 등용되어 장군에 임명되었다. 군사적으로 불리했던 제나라에 큰 공을 세우자 경공(景公)이 대사마로 임명하였으며, 이때 사마(司馬)를 씨로 칭하여 사마양저라 불리었다. 사마천은 사마양저에 대해서 이론과 실천 면에서 '사마법'을 계승 발전시키고 대의와 예절을 아는 유가의 풍모를 지닌 장수라고 평가했다. 司馬穰苴者, 田完之苗裔也. 齊景公時, 晉伐阿·甄, 而燕侵河上, 齊師敗績. 景公患之. 晏嬰乃薦田穰苴曰: "穰苴雖田氏庶孽, 然其人文能附眾, 武能威敵, 願君試之." 사마양저는(司馬穰苴者), 전완의(田完之) 먼 후손이다(苗裔也). 제나라 경공 때(齊景公時), 진나라가(晉) 아읍과 견.. 2023. 12. 28.
[사기열전(史記列傳)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한비자(韓非子 3/3) / 전국시대의 마키아벨리 / 노자심원(老子深遠) 한비자는 흔히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와 비교되곤 한다. 마키아벨리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라를 지키려면 배신과 잔인함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의 사상은 다섯 지역으로 분열해서 싸우던 조국 이탈리아를 통일시키려는 마키아벨리의 애국심이 그 배경이다. 마키와벨리와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큰 차이가 나는 한비자지만 세상의 평가는 비슷한 점이 많다. 전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강력한 군주를 통한 법치의 실현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 한비자였다. 人或傳其書至秦. 秦王見孤憤、五蠹之書, 曰: "嗟乎, 寡人得見此人與之游, 死不恨矣!" 李斯曰: "此韓非之所著書也." 秦因急攻韓. 韓王始不用非, 及急, 乃遣非使秦. 秦王悅之, 未信用. 어떤 사람이(人或) 그 책을(其書) 진나라에 가서 전했.. 2023. 12. 27.
[사기열전(史記列傳)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한비자(韓非子 2/3) / 설득하는 일의 어려움(說難) / 용의 비늘-역린(逆鱗) 사마천은 한비자의 세난 편에 있는 글을 사기에 옮겨두었다. 한비는 설득의 어려운 것은 나의 지식, 나의 말재주, 나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내가 설득하려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관심사를 알아내고 그것에 공감하는 것이 협상의 첫걸음이라는 통찰은 현대 사회의 수많은 협상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 說難曰: 凡說之難, 非吾知之有以說之難也; 又非吾辯之難能明吾意之難也; 又非吾敢橫失能盡之難也. 凡說之難, 在知所說之心, 可以吾說當之. 세난에서 말하길(說難曰): 모든 유세의 어려운 점은(凡說之難), 내 지식으로(吾知之) 설득하는 것이(有以說之) 어려운 것이 아니고(非難也); 또(又) 내 말재주의 어려움으로.. 2023. 12. 26.
[사기열전(史記列傳)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한비자(韓非子 1/3) / 용의 비늘을 건드리지 말아라 전국시대의 철학자로 본명은 한비(韓非)이다. 젊어서 진(秦)의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의 밑에서 동문수학했다. 언변이 뛰어난 이사와 대조적으로 한비자는 말더듬이였다고 한다. 하나 학문에 있어서는 이사가 한비자에 미치지 못했다. 이때 한비자는 법가뿐만 아니라 도가, 유가, 묵가 등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법에 의한 부국강병의 논리를 정립했다. 韓非者, 韓之諸公子也. 喜刑名法術之學, 而其歸本於黃老. 非爲人口吃, 不能道說, 而善著書. 與李斯俱事荀卿, 斯自以爲不如非. 한비는(韓非者), 한나라의(韓之) 여러 공자 중 한 명이다(諸公子也). 형명과 법술의 학문을 좋아했지만(喜刑名法術之學, 而) 그 돌아간 곳은(其歸) 황노에 근본을 두었다(本於黃老). 한비의 사람됨이 말을 더듬어(非爲人口吃), 말을 잘하지.. 2023. 12. 2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