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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102

[사기열전(史記列傳)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3/6] ⑧ 端木賜(단목사 자공 子貢) (1/2) / 문일지십 문일지이(聞一知十 聞一知二) 본명은 단목사(端木賜). 자공은 자(字)이다. 위나라 출신으로 공자보다 31살 연하였다. 공자가 아끼는 제자로서 언변에 뛰어났으며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노나라와 위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또한, 장사에도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자를 경제적으로 많이 도와주었다. 8. 端木賜(단목사 자공 子貢) 端木賜(단목사), 衛人(위인), 字子貢(자자공). 少孔子三十一歲(소공자삼십일세). 단목사는(端木賜), 위나라 사람으로(衛人), 자는 자공이다(字子貢). 공자보다 31살 어렸다(少孔子三十一歲). 子貢利口巧辭(자공리구교사), 孔子常黜其辯(공자상출기변). 問曰(문왈): "汝與回也孰愈(여여회야숙유)?" 對曰(대왈): "賜也何敢望回(사야하감망회)!回也聞一以知十(회야문일이지십), 賜也聞一以知二(사야문일이지이)." .. 2024. 1. 9.
[사기열전(史記列傳)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2/5] 깽판 치는 자로와 낮잠 자는 재여 / ⑥仲由(중유 자로 子路, 季路) ⑦宰予(재여 자아 子我) 중유는 노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로(子路)다. 계로(季路)라고도 부르며 공자보다 9살 아래다. 본래 야인(野人) 출신으로 공자가 강론하는 자리에서 깽판 치다가 공자의 말에 감동받아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름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공자의 말에 의하면 자로가 제자가 된 후에는 공자를 험담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공자는 그의 과한 용맹에 대해 ‘유(由)는 용맹을 좋아함이 나보다 지나치지만 취하여 쓸 바가 없다.’라고 염려했다. 그리고 그 우려대로 위나라의 권력 다툼에 끼어 전쟁터에서 횡사하고 말았다. 공자는 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 자로의 강직한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예견했다고 한다. "아이고, 자로가 죽었겠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이전에 자로는 제 명에 못 죽을 것이다라고 했.. 2024. 1. 8.
[사기열전(史記列傳)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1/5] ①顏回(안회 자연子淵) ②閔損(민손 자건子騫) ③冉耕(염경 백우伯牛) ④冉雍(염옹 중궁仲弓) ⑤冉求(염구 자유子有) / 사과십철(四科十哲) 공자(孔子)는 “가르침을 받고 육예에 통달한 제자가 77명이다.”라고 했다는데 모두 남다른 능력을 가진 인재들이었다. 덕행으로는 안연(顔淵),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이 있었고, 정치로는 염유(冉有), 계로(季路)가, 언변으로는 재아(宰我), 자공(子貢)이, 문학으로는 자유(子遊), 자하(子夏)가 있었다. 孔子曰'受業身通者七十有七人', 皆異能之士也. 德行: 顏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 政事: 冉有, 季路. 言語: 宰我, 子貢. 文學: 子游, 子夏. 師也辟, 參也魯, 柴也愚, 由也喭, 回也屢空. 賜不受命而貨殖焉, 億則屢中.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학업을 배우고(受業) 통달한 사람이(身通者) 77명이다(七十有七人)'라고 했는데, 모두(皆) 남다른 능력을 가진(異能之) 선비였다(士.. 2024. 1. 7.
[사기열전(史記列傳)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5/5] 일이 이루어지면 경이 되고 이루어지지 않으니 삶아지는구나 / 사성이경 불성이팽(事成爲卿 不成而亨) 실제 오나라는 오자서가 죽고 10년도 지나지 않아 멸망한다. 부차가 오자서를 죽인 후 제나라를 공격하여 굴복시키고 패자로 인정받으려는 회맹을 벌이던 중에 월나라가 오나라의 수도인 고소를 말 그대로 빈집털이 해버렸다. 부차가 급하게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월나라에 맞섰지만 처참하게 패배한 뒤 포로로 잡히게 된다. 부차는 저승에서 오자서를 볼 낯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천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뒤 자결했다고 한다. 오자서와 함께 정나라를 탈출했던 초나라 태자 건의 아들인 승이 초혜왕의 부름을 받고 다시 초나라로 가서 반란을 꾀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사마천은 “오자서는 모든 고초를 참고 견디며 공명을 이루었다. 강인한 대장부가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라고 평하고, 또한 태자 건의 아들인 백공.. 2024. 1. 6.
[사기열전(史記列傳)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4/5] 오나라에게 월나라는 뱃속의 병과 같습니다 / 심복지환(心腹之患) 와신상담(臥薪嘗膽) 강대해진 오나라는 월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지만 월왕 구천의 참모 범려와 지혜 대결에서 패하고, 오군은 월나라에 대패하게 된다. 이때의 상처로 합려는 사망하게 된다. 합려의 아들 부차가 후사를 잇고, 부왕의 복수를 맹세하면서 오자서도 그를 보좌하였다. 기원전 494년 월나라와 싸워 대승하게 된다. 오자서는 구천을 죽일 것을 강력하게 주창하지만 부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간신 백비는 성실하고 정직한 오자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다양한 수단으로 부차와 오자서를 이간질하고, 마침내 부차는 오자서에게 명검 촉루를 내려 자결을 명한다. 其後四年, 孔子相魯. 그 뒤로 4년이 지나(其後四年), 공자가(孔子) 노나라에서 재상이 되었다(相魯). 後五年, 伐越. 越王句踐迎擊, 敗吳於姑蘇, 傷闔廬指, 軍卻. 闔廬病.. 2024. 1. 6.
[사기열전(史記列傳)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2/5] 아직 때가 아니니 기다려야 합니다 아버지와 형을 잃고 송(宋)나라로 도망 온 오자서는 송나라의 화씨지란으로 태자 건과 함께 정(鄭)나라로 탈출한다. 정나라로 간 태자는 진나라 군주 경공의 부추김을 받아 정나라 군주를 없애려고 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역으로 정 정공에게 살해되었다. 오자서는 태자의 아들 승과 함께 이번에는 오나라로 도망쳤다. 伍胥旣至宋, 宋有華氏之亂, 乃與太子建俱奔於鄭. 鄭人甚善之. 太子建又適晉, 晉頃公曰: "太子旣善鄭, 鄭信太子. 太子能爲我內應, 而我攻其外, 滅鄭必矣. 滅鄭而封太子."太子乃還鄭. 事未會, 會自私欲殺其從者, 從者知其謀, 乃告之於鄭. 鄭定公與子產誅殺太子建. 오자서가(伍胥) 송나라에 다다르고 나서(旣至宋), 송나라에(宋) 화씨의 난이 있었고(有華氏之亂), 이에(乃) 태자 건과 함께(與太子建俱) 정나라로 달아났.. 2024. 1. 1.
[사기열전(史記列傳)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1/5] 복수는 나의 힘,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뒤로 하고 도망치다 오자서(伍子胥, ? ~ 기원전 485년)는 중국 춘추 시대 오나라의 정치가로, 자서(子胥)는 자이며, 이름은 운(員)이다. 본래 초나라 출신이나 아버지 오사와 형 오상이 비무기의 참언(讒言: 거짓으로 남을 헐뜯어 윗사람에게 고해바침)으로 평왕(平王)의 노여움을 사 처형된 뒤 초나라를 떠나 오나라로 갔다. 오나라의 행인(行人: 외교장관에 해당하는 관직) 올라 오왕 합려를 설득해 초나라를 공격하고 수도를 함락시켰다. 오나라가 강해지는데 크게 공헌했지만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와 사이가 벌어져 목숨을 잃었다. 伍子胥者, 楚人也, 名員. 員父曰伍奢. 員兄曰伍尙. 其先曰伍舉, 以直諫事楚莊王, 有顯, 故其後世有名於楚. 오자서는(伍子胥者), 초나라 사람이며(楚人也), 이름은 원이다(名員). 원의 아버지는(員父) 오사.. 2023. 12. 31.
[사기열전(史記列傳)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오기(吳起)(2/2) 도왕의 시신 위에 엎드리다 / 吮疽之仁(연저지인) 위나라에서 맹활약한 오기지만, 자부심이 강한 성격 때문에 위나라 대신들과 갈등을 빚다가 초나라로 몸을 피했다. 초나라 왕은 오기를 높게 평가해서 재상에 임명했고, 오기는 초나라 왕족과 귀족들이 받는 녹을 몰수해서 국고를 늘리고 초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오기를 신임한 초나라 왕이 죽자 특권을 빼앗긴 왕족과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오기는 그들이 쏜 수많은 화살을 맞고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오기는 죽는 순간까지 기지를 부렸다. 죽음을 예감해 초나라 선왕의 시신 위로 몸을 숨겼고, 왕의 시신에도 수많은 화살이 꽂히게 되었다. 왕족과 귀족들은 오기를 죽이는 데 성공했지만 왕의 시신을 훼손했기에 많은 사람이 사형을 당했고 그 수만 해도 500여 명이나 됐다. 오기는 용병술과 과감한 추진력으로 시대.. 2023. 12. 30.
[사기열전(史記列傳)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오기(吳起)(1/2) 아내를 죽이고 병사의 고름을 빨아주다 / 살처구장(殺妻求將) 연저지인(吮疽之仁) 오기는 작은 위(衛) 나라 출신으로 잔인하고 의심이 많다고 비난하는 마을 사람 30여 명을 죽이고, 어머니 앞에서 자신의 팔을 깨물면서 한 나라의 재상이 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증자의 문하에서 공부했지만 의절한 후 병법을 공부하여 노나라 장군이 되었다. 이후 노나라 · 위나라 · 초나라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전공을 거두어 명성을 떨쳤고, 마지막에는 초나라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후대의 많은 평가는 오기의 잔인하고 끈질긴 면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오기의 리더십은 충분히 주목하고 본받을 만하다. 오기는 부하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자신들을 아껴주고 존중하며, 수고로움을 함께하는 리더를 누가 따르지 않겠는가? 오기의 리더십은 깨끗한 승복 태도에서 더 빛.. 2023. 12. 30.
[사기열전(史記列傳)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손자/손빈(孫臏) 급소를 치고 빈틈을 노려라 빈(臏)이란 이름은 무릎뼈(슬개골)를 도려내는 형벌을 받아서 스스로 이런 이름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본명은 알 수 없고, 아버지는 손조(孫操), 5대 조가 손자병법을 지은 손무(孫武)이다. 젊은 시절에 방연(龐涓)과 함께 병법을 배웠는데 손빈의 재주를 시기한 방연이 위나라로 초대한 후 모함하여 무릎뼈를 도려내고 얼굴에 먹칠을 하는 형을 당했다. 제나라로 탈출해서 제나라에서 장군 전기(田忌)의 빈객(賓客)이 되었다. 마릉전투에서 방연이 이끈 위나라군을 크게 무찌르고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아 이름을 떨쳤다. 孫武旣死, 後百餘歲有孫臏. 臏生阿鄄之閒, 臏亦孫武之後世子孫也. 孫臏嘗與龐涓俱學兵法. 龐涓旣事魏, 得爲惠王將軍, 而自以爲能不及孫臏, 乃陰使召孫臏. 臏至, 龐涓恐其賢於己, 疾之, 則以法刑斷其兩足而黥之, ..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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